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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의 문화재, 정재종택(定齋宗宅)과 만우정(晩愚亭)

겨울섬. 2021. 3. 6. 00:04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건축물인 "정재종택(定齋宗宅)"과 "만우정(晩愚亭)을 찾았습니다.

 

만우정(晩愚亭)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7호로 지정 되었으며,

조선시대 병조참판을 지낸 유치명(柳致明,1771∼1861)이 학문을 연구하던 곳으로 철종 6년(1855)에 세운 정자로,

처음에는 임하면 사의동에 자리잡고 있었으나 임하댐의 수몰로 1988년 이곳으로 옮겨 지었는데,

건물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팔작지붕이며,

이원조가 쓴 ‘만우정’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고, 유치명이 스스로 지은 기문이 남아 있습니다.

 

정재종택(定齋宗宅)은 경상북도 기념물 제170호로 지정 되었고,

퇴계 이황의 학문을 계승한 정재(定齋) 유치명(柳致明,1777∼1861)의 종가이며,

증조부인 유관현이 조선 영조 11년(1735)에 세운 이 집은 원래 임동면에 있었으나,

임하댐 건설로 1987년 지금 있는 자리에 옮겨 세웠습니다.

 

종택(定齋宗宅)은 대문채, 정침, 사당으로 구성 되었는데,

정침은 안채와 사랑채를 포함한 건물로 "ㅁ"자 형의 평면을 갖추고 있으며,

앞쪽에는 사랑채를 구성하고 뒤쪽에는 안채를 두었으나,

앞·뒤 공간이 안쪽에서 연결되지 않고 분리되어 있는데,

안채와 사랑채의 구획이 뚜렷하며 비교적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전통 가옥이며,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정재(定齋) 유치명(柳致明,1777∼1861)은 경상북도 안동 출신으로,

1805년(순조 5)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승문원부정자·성균관전적·사간원정언·사헌부지평·세자시강원문학 등을 거쳐,

1831년 전라도장시도사(全羅道掌試都事)가 되었으며 1832년에는 홍문관교리에 발탁되었고,

1835년(헌종 1)에 우부승지가 되었으며 그 뒤 초산부사·공조참의를 거쳐 1847년 대사간이 되었습니다.

초산부사로 있을 때에는 진정(賑政)에 힘쓰고 환곡(還穀)·전결(田結)의 폐단을 교정하는 등,

여러 가지 치적을 쌓아 백성들이 생사당(生祠堂)을 지었으며,

1853년(철종 4) 가선계(嘉善階)에 오르고 한성좌윤·병조참판 등을 역임 하였고,

1855년 장헌세자(莊獻世子: 사도세자)의 추존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대사간 박내만(朴來萬)의 탄핵을 받고 상원에 유배 되었다가 이어서 지도(智島)에 안치되었다가 그 해에 석방 되었으며,

1856년 가의대부(嘉義大夫)의 품계에 올랐으나 나가지 않았으며,

1857년 제자들이 지어준 뇌암(雷巖)의 만우재(晩愚齋)에서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으며,

1860년 동지춘추관사가 되고 이듬 해 별세 하였습니다.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에서 찾은,

안동의 문화재인 "정재종택(定齋宗宅)"과 "만우정(晩愚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