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군위군 군위읍 상곡리 280번지의,

선방산(船放山,437m) 자락에 자리 잡은 "지보사(持寶寺)"입니다.

 

지보사(持寶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은해사의 말사이며,

 

 

 

 

신라 문무왕(673년) 때 의상에 의해 창건된 천년고찰로,

창건 이후의 연혁은 전하지 않고 1942년 천오스님과 동허스님이 중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으며,

 

 

 

 

주차장의 한쪽에는 비슷하게 생긴 오래된 부도와 근자세 세운듯한 부도가 함께있어,

무경당(無鏡堂) 문수종사(文殊宗師)의 비와 부도로,

문수(文殊)스님은 1963년 8월 19일 전북 완주생으로,


지보사에서 무문 3년 결사하고 무자화두를 타파하기 위해 용맹정진하던 중,

"강과 강에 깃든 생명을 살리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위한 사회와 불국정토를 이루고자 하는 서원을 세우고,

2010년에 "이명박 정권은 4대강 사업을 즉각 중지 폐기하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긴 채,

자신이 마지막으로 수행했던 군위군 지보사 근처 낙동강 지류인 위천 둑에서,

세납 48세(법납 25년)에 소신공양(燒身供養)하였으며,

스님의 사리 30과를 모신 부도탑과 그의 행적을 기록한 비석이며,

 

 

 

 

옆에는 무염당(無染堂)의 부도로 알려진 부도가 있어,

선종의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성주산문(聖住山門)의 개조(開祖)이신,

무염국사(無染國師,800-888)의 부도(浮圖)로 알려져 있는데,

무염국사(無染國師)는 무염 국사는 신라 무열왕의 8대손으로 태어 났으며,

충남 보령의 성주사지에 있는 국보 제8호 “보령 성주사지 낭혜화상탑비(保寧 聖住寺址 郎慧和尙塔碑)”가,

무염대사의 일생을 기록한 부도비 이기도 합니다.

 

 

 

 

지보사(持寶寺)는 예로부터 신기한 보물(寶物)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며,

신라시대부터 전해온 청동향로와 열 사람이 들어가고도 남을 만큼 큰 가마솥,

그리고 아무리 갈아도 물만 부으면 처음 모습으로 되돌아가 닳지 않는 맷돌 등의 3가지 보물이 있었는데,

임진왜란 당시 소실되었다고 하고 또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가져갔다고 전할 뿐 지금은 남아 있는 것이 없습니다.

 

 

 

 

경내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면,

지보사(持寶寺)의 관문 역활을 하고있는 선방루(船放樓)를 만나게 되어,

정면 3칸 측면 2칸 맞배지붕의 중층 누각으로,

선방루(船放樓)는 1994년에 옛 모습대로 중수 하였다고 하며,

 

 

 

 

왼쪽에는 아담한 규모의 석탑이 한기 서있어,

 

 

 

 

보물 제682호로 지정되어 있는 "군위 지보사 삼층석탑(軍威 持寶寺 三層石塔)"으로,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아담한 모습이며,

 

 

 

 

높이 4.2m로 2층기단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전형양식을 따르면서,

기단부에는 장엄조각이 가득 채워졌고,

탑신부에도 새로운 양식이 가미 되었습니다.

 

 

 

 

하층기단은 지대석(地臺石)과 하대석(下臺石) 그리고 중석(中石)이 모두 높아서 전형양식에 비하여 우뚝해 보이는데,

중석 각 면에는 모서리기둥인 우주(隅柱)가 있고 받침기둥인 탱주(撑柱)로 양분한 다음,

각각 사자로 보이는 동물상이 조각되었으나 표면이 많이 닳아 버렸으며,

 

 

 

 

갑석(甲石) 또한 두껍고 상면에는 경사가 있으며,

추녀 위에 경미한 반전(反轉)이 있고 중앙에는 호형을 중심으로 상하가 각형인 3단의 받침이 있으며,

이 위에 높은 하층기단 중석이 놓였는데 우주와 탱주 1주가 모두 굵게 표현 되었고,

각 면에는 팔부중상(八部衆像)이 하나씩 조각되었는데 역시 손상이 많으며,

 

 

 

 

갑석은 두꺼우며 밑에는 부연(副椽)이 있고 상면에는 극히 경미한 경사가 있는데,

중앙에 앙련(仰蓮)이 조각된 방형(方形) 별석을 놓아 탑신부를 받게 한 새로운 양식이 나타나 있습니다.

 

 

 

 

탑신부는 옥신석(屋身石)과 옥개석(屋蓋石)이 각각 1석씩이며 옥신은 높고 옥개석은 두꺼운데,

각 층의 옥신석에는 굵은 우주가 모각되었으며,

 

 

 

 

특히 초층옥신에는 4면에 문비형(門扉形)이 얕게 조각되었고,

2층 이상의 옥신석도 따라서 높아 졌으며,

옥개석의 처마 밑은 수평이고 받침수는 각 층 4단씩인데, 초층옥개석에는 큰 손상이 있으며,

 

 

 

 

상륜부(相輪部)에는 탑의 최상부 옥개석 위에 놓아,

복발·앙화·상륜 등을 받치는 장식인 노반(露盤)과,

탑의 노반 위에 놓는 엎은 주발 모양의 장식인 복발(覆鉢)이 남아 있습니다.

 

 

 

 

지보사 삼층석탑(持寶寺 三層石塔)은 원래 산너머에 있던 극락사란 절에 있었는데,

절이 없어진 뒤 군위읍내로 옮겼다가 지금의 위치로 다시 옮겼다고 하며,

각 부재가 대체로 높아서 전체가 고준해진 시대적 특징이 나타나 있으며,

초층옥신 밑의 앙련석 받침은 특히 뚜렷한 특징을 보이고 있는 탑으로,

통일신라시대 후기 또는 고려 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선방루를 지나게 되면,

여러 전각들이 서있는 경내로 들어오게 되며,

 

 

 

 

신기한 보물(寶物)이 있었던 지보사(持寶寺)에 현재에 남아있는 보물(寶物)이라면,

보물 제682호로 지정된 지보사삼층석탑(持寶寺三層石塔 )과,

조선후기에 조성된 것으로추정되는 삼존불(三尊佛)이 전하고 있으며,

1999년 대웅전 해체당시 나온 상량문에는 지보사의 "지(持)"가 "땅(地)"로 쓰여있어,

의상대사가 이 사찰을 창건한 후 이 절터 자체가 명당이라 보물(寶物)로 생각하고 붙인 이름으로 여겨 지기도 합니다.

 

 

 

 

1999년에 중건한 사찰의 중심 전각인 대웅전(大雄殿)으로,

 

 

 

 

대웅전(大雄殿)은 정면 3칸에 측면 2칸의 규모로 맞배지붕을 이고 있으며,

 

 

 

 

대웅전(大雄殿)의 현판으로 동곡(東谷) 일타(日陀,1929~1999)스님의 글씨이며,

 

 

 

 

대웅전에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26호인,

"군위 지보사 석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軍威 持寶寺 石造阿彌陀如來三尊坐像)"이 있어,

주존상과 두 협시상의 복장(腹藏)에서 발견된 발원문에 의하면,

1686년에 승호파(勝湖派) 상륜(尙倫)의 주도로 제작 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수조각승 상륜은 조선후기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까지,

경상도 일대에서 가장 활발한 조상(彫像) 활동을 펼친 승호파의 주요 조각승 입니다.

 

 

 

 

대웅전과 삼성전 사이에는 관음보살이 있어,

 

 

 

 

관음보살(觀音菩薩)은 자비로써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로 관세음, 광세음, 관자재보살이라고도 하며,

초기 대승불교 경전에서부터 나오는 보살이지만,

그 이름을 외우기만 하면 중생의 성품에 따라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서 중생을 구제 해주는 부처님 입니다.

 

 

 

 

대웅전 옆에는 산신(山神)·칠성(七星)·독성(獨聖)을 함께 봉안하고 있는 전각인 삼성전(三聖殿)이 있어,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의 구조이며,

 

 

 

 

삼성전(三聖殿)의 현판 또한 동곡(東谷) 일타(日陀)스님의 글씨이며,

 

 

 

 

삼성전에는 중앙칸에 칠성 독성 용왕탱을 봉안하고 있어,

불교에서는 산신을 가람수호신과 산 속 생활의 평온을 지켜주는 외호신으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만 볼수있는 불교 전각으로 전통신앙인 삼신신앙(三神信仰)과의 습합현상을 살필수 있는 곳이기도 하며,

산신각은 불교 밖에서 유입된 신을 모시는 건물이기 때문에 "전(殿)"이라 하지 않고 "각(閣)"이라 하는데,

이곳에서는 특이하게도 "삼성전(三聖殿)"으로 되어 있습니다.

 

 

 

 

지보사(持寶寺)는 봄날의 따스한 기운으로,

주변의 꽃들이 피어나는 화사한 봄을 맞고 있습니다.

 

 

 

 

경북 군위의 천년 고찰로,

신기한 보물을 보유하고 있었던 사찰로 알려진 곳이며,

장엄조각이 가득 채워진 삼층석탑을 만날수 있는 곳으로,

군위의 사찰인 "지보사(持寶寺)"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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