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문촌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가옥으로,

경기도의 문화재자료 제96호인 "용인 이주국 장군 고택(龍仁 李柱國 將軍 古宅)'입니다.

 

이주국(李柱國,1721∼1798)은 조선 후기 문신이며,

안채 기와에 쓰여진 기록에 따르면 이 가옥은 영조 29년(1753)에 세운 건물로,

현재 건물은 안채, 사랑채, 행랑채로 구성되어 있는데,


안채는 "ㄱ"자형으로 왼쪽부터 광·부엌·안방·대청·건너방 순이며,

안방 뒤쪽과 건너방 앞에 각각 방이 있고,

사랑채는 앞면 4칸 규모로 청방·방·다락방과 아궁이를 짜임새 있게 갖추고 있는 형태이묘,

행랑채는 앞면 7칸으로 대문·방·창고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주국(李柱國,1721∼1798)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자는 군언(君彦), 호는 오백(梧栢)이며,

정종의 서자인 덕천군(德泉君)의 후손으로,

1740년(영조 16) 무과에 급제하여 이듬 해 선전관에 임명된 뒤 훈련원주부·판관 등을 지냈고,

1748년 통신사를 따라 일본에 갔다온 뒤 호조좌랑에 임명되니 이 때 처음 호조에 무랑(武郎)이 설치 되었는데,

1754년 충청도수군절제사를 거쳐 이듬 해 경상우도병마절도사, 1759년에 함경북도절도사가 되었고,

어영대장과 훈련대장, 형조판서를 지냈습니다.


이주국(李柱國)의 용모는 건장하고 뛰어났다 하며,

성품은 강직해서 권세 있고 부귀한 자에게 아첨하지 않아 명망이 있었으나,

남과 반목한 때가 많았기에 여러 번 문신의 횡포를 감수하기도 하였으나,

홍국영(洪國榮)이 실세한 뒤 정조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 성도·궁성 호위의 임무가 주어 졌으며,

춘당대(春塘臺)에서 활쏘기할 때의 모습이 마치 추운 겨울철에도 잎이 푸른 소나무와 측백나무 같다고 하여,

정조가 오백이라는 당호를 하사 하였으며 시호는 무숙(武肅)입니다.

 

이주국(李柱國)의 생을 돌아 볼수있는 용인의 고택 문화재로,

"용인 이주국 장군 고택(龍仁 李柱國 將軍 古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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