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영동군 용산면 신항리에 있는 구한말의 상여인,

"영동 신항리 상여(永洞 新項里 喪輿)"입니다.

 

충청북도 시도민속문화재 제10호로 지정되어 있는,

"영동 신항리 상여(永洞 新項里 喪輿)"는,

 

 

 

 

1909년(순종 3)에 제작된 것으로 재료는 목재와 천이고, 대차와 소차 이중구조 인데,

이의 보관을 위해서 2003년 4월 12일부터 상여 전시관 건립을 위한 국비 5천만 원, 지방비 7천5백만 원 등으로,

토지를 매입하여 37.8㎡의 전시관 공사가 7월 25일 준공 되었으며,

 

 

 

 

전시관은 닫혀있고 유리를 통하여 상여(喪輿)를 들여다 볼수 있는데,

유리로 되어있어 들여다 보기에 불편한 점도 있어,

 

 

 

 

혼백을 모시는 요여(腰輿)는 4명이 들도록 되어 있으며,

 

 

 

 

왕가의 상여로 고종의 6촌 형인 이용강 대감이 충정북도 영동군 황간면 금계리로 유배 온 뒤,

1870년에 세상을 떠나자 고종이 그를 애도해 하사한 것으로 알려 졌으나,

실제는 세종의 열셋째 아들인 밀성군(密城君)의 15세손 이용직(李容直, 1824∼1909)의 것으로 밝혀 졌는데,

한 동안 주민들이 고종의 6촌 형인 이용강 대감의 것이라고 주장하게 된 것은

이용직이 용강 현감을 지낸 것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이며,

 

 

 

 

이용직은 철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용강현감을 거쳐,

여주목사, 영남어사, 경상도감사에 이어 공조판서가 되었고,

홍문관·예문관 제학을 지냈고 기로사(耆老社)에 들어갔으며,

묘소는 황간면 수석리 후록에 있습니다.

 

 

 

 

1909년(순종 3)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이 상여의 특징은,

보통 상여와는 달리 대차와 소차 등 2중 구조로 대차 32명, 소차 24명이 메도록 되어 있는데,

규모가 크고 외부장식이 섬세하고 다채로우며 대차는 총길이 10m에 둘레 47㎝로 만들어져 있어,

이 상여는 이용강 대감의 장례때 시신을 묘소까지 운반하기 위해 제작된 기구이며,

 

 

 

 

또, 칠성판으로 불리는 교차판이 있어 관을 칠성판(가로 123㎝, 고리 8개)에 고정시킬 수 있으며,

장식은 용머리가 앞뒤로 1개씩 2개씩 4개, 봉(鳳: 수컷)이 앞뒤로 2개씩 4개, 황(凰: 암컷) 앞뒤로 1개씩 2개,

동자상이 앞뒤좌우에 6개씩 12개 등으로 정교하게 장식되어 있고 연꽃 등 단청과 풍경이 섬세하게 그려져 있으며,

 

 

 

 

그 외에 매듭과 바닥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단청이 섬세하여,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남은들 상여와 강원도 춘천시 청풍부원군 상여와 비교하여 크기와 모양이 비슷 합니다.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옛 풍습중 하나인 장례의 문화로,

많은 이들이 참여하여 상여(喪輿)를 메고 산으로 향하는 옛모습은 볼수없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전통적인 장례의 모습중 일부나마 유츄해 볼수있는 곳으로,

충북 영동의 문화재인 "신항리 상여(新項里 喪輿)"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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