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우매리 지장산(地藏山),

또는 백화산으로도 불리는 곳에 있는 사찰인 "반야사(般若寺)"입니다.

 

영동 반야사(般若寺)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이며,

 

 

 

 

반야사(般若寺)는 신라 문무왕 때 원효(元曉)가 창건하였다는 설도 있으나,

720년(성덕왕 19) 의상(義湘)의 십대제자 중 한 사람인 상원(相源)이 창건하였다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으며,

그 뒤 수차례의 중수를 거쳐서 1464년(세조 10)세조의 허락을 얻어 크게 중창 하였습니다.

 

 

 

 

반야사(般若寺)에서는 그림에서와 같이,

호랑이의 기운을 품은 사찰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경내 뒷쪽으로는 꼬리를 치켜올린 호랑이를 닮았다는 반야산 호랑이 형상인 돌너덜이 보이는데,

반야사 호랑이는 2010년 영동의 특산물인 곶감 CF에도 출연해,

대도시 소비자에게 영동곶감의 인지도를 높여 농가소득 증대에도 한몫 하였기에,

영동지역을 호위하고 있다고도 합니다.

 

 

 

 

세조는 속리산 복천사(福泉寺)에 들러 9일 동안의 법회를 끝낸 뒤,

신미(信眉) 등의 청으로 이 절의 중창된 모습을 살피고 대웅전에 참배 하였는데,

이때 문수동자(文殊童子)가 세조에게 따라오라 하면서,

절 뒤쪽 계곡인 망경대(望景臺) 영천(靈泉)으로 인도하여 목욕할 것을 권하였는데,

 

동자는 “왕의 불심(佛心)이 갸륵하여 부처님의 자비가 따른다.”는 말을 남기고 사자를 타고 사라졌다 하며,

세조는 황홀한 기분으로 절에 돌아와서 어필(御筆)을 하사하였는데 지금까지도 보관되어 있다고 하며,

이 절의 이름을 반야사라고 한 것도 이 절 주위에 문수보살이 상주한다는 신앙 때문이며,

문수의 반야를 상징하여 절 이름을 붙인 것이라 합니다.

 

 

 

 

범종각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면,

정면 3칸의 맞배지붕인 대웅전(大雄殿)이 자리해 있어,

 

 

 

 

대웅전의 내부에는 높이 1m의 석가여래좌상과,

좌우에 협시불로 각 72㎝의 문수보살상과 보현보살상이 봉안되어 있는데,

이들은 모두 경주 옥석으로 제작하여 개금(改金)한 것이라 하며,

 

 

 

 

또한 대웅전 안에는 탱화 6폭이 봉안되어 있는데,

1890년 청주 보국사(輔國寺)에서 제작한 후불탱화(後佛幀畫)와 신중탱화(神衆幀畫),

1753년(영조 29) 지례(知禮) 봉곡사(鳳谷寺)에서 조성한 지장탱화(地藏幀畫)가 매우 양호한 상태로 보존되고 있습니다.

 

 

 

 

대웅전의 안쪽에는 조선 후기의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맞배지붕의 극락전(極樂殿)이 있어,

 

 

 

 

극락전(極樂殿)은 무량수전(無量壽殿)이라고도 하는데,

서방극락정토와 관련하여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 아미타불(阿彌陀佛)봉안하는 전각으로,

극락의 주불인 아미타불(阿彌陀佛)은 자기의 이상을 실현한 극락정토에서 늘 중생을 위하여 설법하고 있는데,

대승불교의 부처 가운데 서방 극락정토의 주인이 되는 부처님 입니다.

 

 

 

 

극락전 뒤편의 산아래에는,

산신을 봉안하는 한국 사원 특유의 전각 가운데 하나인,

아담한 규모의 산신각(山神閣)이 자리해 있고,

 

 

 

 

극락전 앞에는 수령이 500년이나 된 영동군 보호수로 지정된 배롱나무가 있어,

배롱나무는 중국이 원산지로 자미화(紫薇花). 백일홍(百日紅), 만당홍(滿堂紅), 간지럼 나무 등의 여러 이름이 있으며,

한여름에 100일 동안 꽃을 볼수있어 목백일홍(木百日紅)으로 불립니다.

 

 

 

 

2그루의 노거수 배롱나무 앞에는 보물 제1371호인,

"영동 반야사 삼층석탑(永同 般若寺 三層石塔)"이 있어,

 

 

 

 

석탑의 전체 높이는 315㎝로,

반야사는 728년(성덕왕 27)에 의상대사의 10대 수제자인 상원화상(相願和尙)이 창건하였다고 하며,

절 동쪽 500m 지점의 탑벌에 있던 것을,

1950년경에 주지 성학(性學)이 대웅전 앞으로 이건 하였는데,

 

 

 

 

기단부(基壇部)는 각 면석(面石)을 별석으로 조합 하였고,

두 개의 우주(隅柱)와 하나의 탱주(撐柱)를 모각(模刻)하였으며,

초층 옥신은 원래의 것이 아닌 것으로 보이며,

흩어져 있는 탑재를 수습하여 세운 탑으로,

 

 

 

 

지대석(地臺石)을 양각하고 1층 기단석(基壇石)을 이루고,

기단석에는 우주와 탱주를 양각 하였으며,

1층 옥신은 석등(石燈)의 화사석(火舍石)과 같이 전후로 꿰뚫리고,

2, 3층 옥신에는 우주각(隅柱刻)이 명확하지 않으며,

옥개(屋蓋)의 처마는 둔중(鈍重)하며 옥개 받침은 4단을 이루고 있으며,

 

 

 

 

상륜부(上輪部)에는 4각의 노반부(露盤部)가 남아 있습니다.

 

 

 

 

탑을 세운 확실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옥개석의 전각(轉角)과 낙수면(落水面)의 경사 옥개석 받침 등 전체적인 구성이,

신라 탑의 양식을 계승한 고려 초기의 탑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호랑이 기운을 품은 사찰로,

조선시재 세조와 문수보살이 이야기가 전하는 곳이며,

그리 큰규모의 사찰은 아니나 아담한 규모로 반겨주는 사찰로,

충북 영동의 사찰인 "반야사(般若寺)"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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