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안동시 임동면 지리에 위치하고 있는 재사로,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48호인 "운천재사(雲川齋舍) "입니다.

 

지동재사(枝洞齋舍)로도 불리는 운천재사(雲川齋舍)는,

운천(雲川) 김용(金涌, 1557-1620)과 그의 부인(夫人) 이씨(李氏)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하여,

인조17년(1639)에 건립한 것으로,

 

정면 4칸에 측면 5간의 "口"자형 팔작지붕의 박공집으로,

이 건물은 임하댐 건설로 임동면 지리 567번지에서,

1989년에 현 위치로 이건(移建) 하였습니다.

 

재사 곁에는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0호인 "운천신도비(雲川神道碑)"가 있어,

이 비는 조선 선조때의 문신인 운천(雲川) 김용(金涌,1557∼1620)의 신도비(神道碑)이며,

조선 고종(高宗) 29년(1892)에 세워진 이 비는,

총 높이 180㎝, 가로 72㎝, 세로 114㎝의 크기이며,

좌대(坐臺) 위에 오석(烏石)의 비신(碑身)을 세웠으며,

이수의 높이는 64㎝이고 화강석으로,

비문은 돈영부도정 가선대부(敦寧府都正 嘉善大夫) 김연하(金璉夏)가 짓고,

김한락(金翰洛)의 글씨 입니다.

이 비는 임하댐 건설로 1989년 운천재사(雲川齋舍)와 함께 현 위치로 이건 하였습니다.

 

운천신도비(雲川神道碑)와 운천재사(雲川齋舍)의 주인이 김용(金涌,1557∼1620)은,

조선 선조와 광해군 때의 문신으로,

자는 도원(道源)이고 호는 운천(雲川)이며 본관은 의성이며,

선조 23년(1590) 34세에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승문원 부정학(承文院副正學)과 예문관 검열(藝文館檢閱)을 지냈고,

선조 25년(1592)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안동에서 의병을 일으켜 안동수성장(安東守城將)에 추대 되었습니다.

 

1597년 정유재란 때에는 이원익(李元翼)의 종사관으로 많은 역할을 하였으며,

향교를 중수하는 등 문교에도 힘썼으며,

1609년에는 편수관(編修官)으로 선조실록(宣祖實錄) 편찬에 참여하기도 하였으며,

그리고 임란시에는 선조를 호종(扈從)하였는데,

그 때 기록한 문서인 운천호종일기(雲川扈從日記)가 보물 제484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운천(雲川) 김용(金涌)을 수호하는 재사와 그의 신도비로,

김용(金涌)의 생을 되돌아 볼수 있는 곳으로,

안동의 문화재인 "운천재사(雲川齋舍)"와 "운천신도비(雲川神道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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