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에서 숨은듯 숨겨져있는,

여차정(如此亭)을 다녀 왔습니다.

 

비교적 외진곳에 속하는,

구미의 국립 구미전자공고를 지나,

차량으로 갈수있는곳까지 가다보면 낙동강과 산이 가로막아,

더이상 갈수 없는곳에 이르면 여차정이 있습니다.

여차정 앞에는 세운지 오래지않아 보이는,

장학 선생 기념비가 여차정의 길목에 자리해 있습니다.

 

 

 

 

여차정(如此亭)은 남파(南坡) 장학(張澩)이,

1659년 제자들과 공부하기 위해 건립한 곳으로,

여차정(如此亭) 이란 이름은 바깥 세상은 시끄럽지만 현재의 이곳은 맑다는 뜻입니다.

여차정의 외삼문은 굳게 닫혀있습니다.

답사를 하다보면 가끔 겪게되는 일인데..

시간을 내고 차를 달려서 찾아왔는데 맥이 풀리기도 합니다.

 

 

 

 

둘러 보아도,

외삼문 외에는 달리 들어가는 통로가 없는듯하여,

남쪽으로 보이는 낙동강을 내려다볼 뿐입니다.

 

 

 

 

담장 너머로 여차정을 들여다 봅니다.

남파(南坡) 장학(張澩, 1614~1669) 의 강학처인 이곳은,

1659년(효종 10)에 건립하였으며, 1959년에와서 다시 복원하였다고 합니다.

정면 4칸, 측면 2칸 반 규모의 ㄱ자형 건물이다,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1칸의 온돌방을 두었으며,

앞면에는 반 칸 규모의 퇴칸을 두었습니다.

왼쪽 온돌방 앞면에는 누마루 1칸을 돌출시켰으며,

5량가(五樑架) 구조이며, 겹처마 구조입니다.

주위에는 토석 담장을 둘러져 있으며, 담장의 앞면에는 3칸 규모의 평대문 출입구를 세워져 았습니다.

 

 

 

 

정자의 오른쪽에는,

남파 장학선생이 1659년 46세 되던해 심었다는,

수령 350여 년의 백일홍이 함께 있습니다.

이곳 여차정은 배롱나무(백일홍)로 인해 어느정도 알려진 곳이기도 합니다.

 

 

 

 

남파는 1614년(광해군 6년),

지금은 구미시가 된 인동에서 아버지 장경우와 어머니 광산 이씨 사이에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만회당은 당시 이름 높은 선비이자 정묘호란 시 인동지역의병장으로 활동했던 분이다.

11살 때 아버지에 이어 당대 최고의 성리학자인 여헌 장현광선생의 제자가 되었다.

1634년(인조 12) 공의 나이 21세 때,

인동향교를 이건하게 되는데 재정이 부족해 감사의 도움이 필요했다.

공이 향내 사림을 대표해 청원서를 올려 성사시켰다.

글이 간절하고 성의가 있어서 감사를 감동시킨 결과라고 많은 사람들이 칭찬했다.

1642년(인조 20) 식년시 생원 1등 3위로 합격했다.

여헌 선생을 포은을 주향으로 하는 영천 임고서원에 배향(配享)하는데 힘을 썼다.

1652년(효종 3) 창릉 참봉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아니하고,

스승 여헌선생이 살았던 부지암 정사를 가꾸는 일에 몰두했다.

1659년(효종 10) 공의 나이 46세에,

여차정을 짓고 강학을 했는데 백일홍은 이 때 심었으니 지금으로부터 350여 년 전이다.

정자 이름 여차(如此)는 '더 없이 가난하기도 하나 더 없이 부유하기도 하고,

더 없이 좁기도 하나 더 없이 넓기도 하고 더 없이 더럽기도 하나 더 없이 조촐하기 때문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듬해 유양원 등이 모의하여,

당시 인동부사로 와 있던 유정(兪椗)을 몰아내려고 했는데 이 일에 가담했다는 죄목으로 의금부에 투옥되었다.

동지의금부사 권시 등이 공이 무고함을 주장했지만 받아드려지지 않고 충북 보은으로 귀양 가게 되었다.

이 때 공은 유배생활을 일기로 남겼다.

1661년(현종 2) 허적(許積)이 석방할 것을 진언해 해배되면서 8개월 만에 고향으로 돌아 올 수 있었다.

세상일에 뜻을 접고 은인자중하며 자연을 벗 삼아 여생을 보내다가,

1669년(현종 10) 돌아가시니 향년 56세였다. 저서로 <남파집>을 남겼다.

<남파(南坡) 장학(張澩, 1614~1669)의 자료를 찾아 보았습니다.>

 

 

 

 

 

여차정과 백일홍 입니다.

백일홍은 말 그대로 붉은 꽃이 100일정도 피는 나무라고 지어진 이름입니다.

다만 초본류 백일홍이 있어 나무 목(木)자를 앞에 붙여 목백일홍이라고도 하고,

순수한 우리말로 배롱나무 라고도 합니다.

또한 원산지인 중국에서는 자미화(紫微花)라고 합니다.

꽃이 소담스럽고 붉은 색이 선비의 충절을 상징해서 그런지,

매(梅), 난(蘭), 국(菊),죽(竹)으로 일컬어지는 사군자 반열에는 들지 않으나,

소나무처럼 사대부들이 좋아했던 나무 중 하나 입니다.

이름다운 흙담과 배롱나무가 함께 어울리는 "여차정" 입니다.

 

 

 

 

구미대교 다리의 왼쪽의 산너머에,

인동 향교와 동락서원이 자리해 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 볼수없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낙동강변의 조망좋은 곳에 숨어있듯 자리한 여차정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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