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을 여행하면서 찾은곳은,

밀양 무안면에 있는 생가 유적지로,

이곳은 조선중기 승려 사명당 유정이 태어난 곳으로 사명대사의 생가입니다.

 

조선중기의 고승으로,

우리에게 잘알려진 사명대사(1544~1610)의 생가를 돌아봅니다.

 

 

 

 

사명대사의 생가로 들어가는 외삼문입니다.

 

 

 

 

외삼문의 현판입니다.

현판에는 사명대사를 "송운대사"라고 한 것은,

사랑채 당호와의 혼돈을 피하기 위해서 라고 하며,

대사에 관한 기록은 사명보다 송운이라고 기록에 더 많이 나오고 있으므로,

"송운대사구택" 이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대문을 들어서면,

왼쪽에는 하인이 기거 하였을듯한 방한칸과,

오른쪽에는 창고의 용도로 보이는곳이 양쪽에 있습니다.

 

 

 

 

방을 들여다 보았더니,

깔끔하게 잘 정리가 되어있는 모습입니다.

 

 

 

건너편의 창고에는,

짚으로 짠 멍석과 농기구가 들어 있습니다.

나무 농기구는 소를 이용하는 것으로 쟁기의 종류인듯 합니다.

 

 

 

 

사랑채인 사명당입니다.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명당자리 라는 이 곳에서 조부때부터 살았다고 하며,

증조부 임효곤은 문과에 급제하여 장악원정이 되어 대구 수령으로 있다가 밀양에서 살았는데,

사명당의 조부는 괴과에 급제하여 강계부사를 지낸 유학자입니다.

 

 

 

 

사랑채의 현판 "사명당(四溟堂)" 입니다.

 

 

 

 

사랑채의 내부에는,

찾는이들의 이해를 돕기위해,

 

 

 

 

가구나 소품등으로,

내부를 재현해 두어 일반 고택등에서의 허전함 보다,

실제 사람이 살고있는듯한 느낌을주어 따뜻함이 느껴집니다.

 

 

 

 

사랑채인 사명당 대청의 난간 이구요,

 

 

 

 

사랑채의 뒤편에는 내당이 있습니다.

이곳 사명대사 생가지는 1992년에,

경상남도 기념물 제116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사명대사는 어린 시절을 여기서 보냈으며,

사명당이 이따금씩 고향으로 돌아올때 쉬었다는 바위가 아직 그대로 남아 있으며,

마을 뒷산 서쪽 기슭에 사명대사의 조모와 부모의 묘소가 있습니다.

 

 

 

 

사명대사가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육영당" 입니다.

사명대사의 어머니 달성 서씨는 어느날,

흰 구름을 타고 누런 두건을 쓴 금인(金人)이,

만 길이나 되는 높은 대에 올라가 머리가 허옇게 쉔 신선을 만나,

예를 올리는 모습을 꿈에 본 후 대사를 잉태하였으며,

1544년 갑진(甲辰) 10월 17일에 부친 임수성 공과 달성서씨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육영당의 현판입니다.

 

 

 

 

안채의 내부도 사랑채와 마찬가지로,

그당시의 실내 모습을 재현해 두었습니다.

 

 

 

 

13세때인 명종 11년(1556년) 유촌 황여헌선생으로부터 글을 배우다,

"세속 학문은 천하고 비루하여 시끄러운 세상 인연에 얽매여 있으니,

어찌 번뇌 없는 학문을 배우는 것과 같을 것인가?" 하고

그 해 가을 황악산 직지사로 가서 신묵화상에게 머리를 깍고 선문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육영당의 옛날 부엌의 모습입니다.

 

 

 

 

사람이 살고 있는듯하게 많은 장독들도 놓여있습니다.

 

 

 

 

생가의 왼쪽 뒤편에는,

사명대사의 사당과 비석이 있습니다.

 

 

 

 

사당의 왼쪽앞에 사명대사의 유허 기념비가 있고,

 

 

 

 

사당으로 들어가는 외삼문입니다.

 

 

 

 

외삼문의 현판이구요,

 

 

 

 

외삼문을 들어서면,

사당인 "숙청사"가 자리해 있습니다.

 

 

 

 

숙청사(淸祠)는,

맑고 고상한 유상에 대해 엄숙하게 경의를 표한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숙청사의 현판이구요,

 

 

 

 

사당에 모셔진 대사의 영정입니다.

사명대사의 호는 사명당, 송운, 종봉이라고 하며,

성은 임(任), 자는 이환, 법명은 유정(惟政) 본관은 풍천입니다.

 

 

 

 

사명대사는,

임진왜란(1592년)이 일어나자 승병을 모아,

평안도 순안으로가서 서산대사와 합세 하였으며 그곳에서 '의승도대장'이 되었습니다.

이후 대사는 여러 전투에 참여했으며,

1593년 명나라 구원군이 주축이 되었던 평양성 탈환전투에 참가하여 공을 세웠고,

네 차례나 왜군의 진영에 들어가 휴전 협상을 벌이며,

왜군이 제시한 휴전 내용의 모순과 그들의 죄악을 낱낱이 들추어냈다고 합니다.


선조는 그의 공을 크게 인정하여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의 벼슬을 내렸으며,

전쟁이 끝난 뒤인 1604년(선조 37)에,

일본과 강화를 위한 사신으로 임명되어 일본으로 건너가,

3,000여명의 조선인 포로를 귀국시키는 등 많은 공을 세웠습니다.

일본에서 돌아온 뒤,

대사는 모든 공직을 버리고 묘향산으로 들어갔으며,

광해군 2년(1610) 해인사에서 제자들을 모아놓고 설법하시던중 그대로 입적하셨습니다.

대사가 입적하신 뒤 나라에서는 '慈通弘濟尊者자통혼제존자'라는 시호를 내렸으며,

저서로 『사명당대사집』7권과 『분충서난록』1권 등이 있습니다.

 

 

 

 

 

사명대사의 생가를 나와 기념관으로 갑니다.

기념관으로 들어가는 외삼문인 "충의문"으로,

사명대사의 숭고한 충의 정신을 기리며 널리 계승해 나가는 의미로 지어진 문입니다.

 

 

 

 

삼강문입니다.

중앙광장은 주광장의 진입부를,

사명당의 세계로 가는 길로 개념을 설정하고,

세개의 구조물로 묘사하는 삼강문을 설치했다고 합니다.

 

 

 

 

타일 벽으로 사명대사가 포로 송환을 위해,

사신으로 일본으로 건너 갔을때의 불로 시험을 하였으나 수염에는 고드름이 어는등,

일본에서의 활약등을 상징적 그림으로 묘사해두었습니다.

 

 

 

 

사명대사의 평양성 탈환 입니다.,

195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정의 근왕문과,

스승 휴정의 격문을 받고 의승병을 모아 순안으로 가서 휴정과 합류 하였고,

그곳에서 의승도대장이 되어 의승병 2,000명을 이끌고 평양성과,

중화 사이의 길을 차단하여 탈환의 전초 역활을 했다고 합니다.

 

 

 

 

중앙광장을 지나면 기념관이 있으며,

 

 

 

 

중앙의 문으로 기념관으로 들어가 봅니다.

 

 

 

 

직지사에 선문에 들어가기 위한,

삭발의 형상을 문살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입산후의 사명대사의 유물들이 전시가 되어있으며,

 

 

 

 

임진왜란때 승군이 사용한 칼과 활 병장기도 있습니다.

 

 

 

 

화승총외 농기구등으로 무기로 사용하였습니다.

 

 

 

 

청동함은향완, 사명대사 가사장삼 등,

 

 

 

 

유물의 복제품 65점이 전시가 되어있으며,

 

 

 

 

평양성 탈환 디오라마와 영상실,

정보검색실 등이 사명대사 기념관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디오라마는 작은 공간안에,

어떤 대상을 설치해 놓고 틈을 타서 볼 수 있게 한 입체 전시물을 말합니다.

 

 

 

 

한눈에 들어오도록 알기쉽게 해둔 모습입니다.

 

 

 

 

밀양시 무안면 고라리 399번지 일대는,

학계 등, 전문가들의 고증을 통해 “사명대사 유적지”로 선정되어,

지난 1992년 10월 지방기념물 제116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밀양출신인 사명대사의 호국정신과

애민애족의 숭고한 얼을 기리기 위해,

지난 1999~2006년까지 부지면적 49,146㎡ (기념관 40,670㎡, 유적지 8,476㎡)에,

사명대사 동상과 사명대사 기념관, 추모공원, 기념비 등을 조성하여,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안내가 되어있습니다.

 

 

 

 

전시관 뒤에는 추모광장이 있어서,

사명대사의 높은 뜻을 기리고 계승할 수 있도록,

추모공간이 구성되어 있으며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사명대사의 동상입니다.

 

 

 

 

기념관을 나와,

입구의 공원으로 조성이되어있는 저수지쪽으로 나옵니다.

 

 

 

 

중촌 소류지의 한쪽에는,

나무데크로 조성이 되어있어서 산책하기에도 그만 입니다.

 

 

 

 

저수지 건너에는,

사명대사의 생가와 사당이 있으며,

이곳은 수백 년 동안 풍수사(風水師)들이,

뒷산은 천리를 달려온 목마른 말이 엎드려 물을 먹는 형상이요,

주산은 동자형(童子形)이며 그 아래 좌청룡과 우백호가 감돌고, 맑은 연못이 있다.

안산은 범이 엎드려있고, 원안은 보검인데, 외원안 다섯 봉우리가 읍(揖)을 향하고 있는 형국이라 하여..

삼국의 명장(三國名將)이 날 명당이라 하였다고 합니다.

 

 

 

 

기념관의 길건너,

사당의 뒤쪽에는 오래전 민가가 있은듯 하고,

크고 작은 감나무가 빨갛게 익은 작은 감홍시를 매달고 있습니다.

멀쩡하게 땅에 떨어진것을 모아보았습니다.

작아도 맛은 뛰어난 감홍시 맛을 보며,

사명대사 유적지를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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