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의 가볼만한곳으로,

옥간정(玉磵亭)을 소개합니다.

 

옥간정은 횡계계곡의 경치 좋은곳에 자리해 있으며,

가까운 거리에 "모고헌"도 있어서 함께 찾아볼수 있습니다.

 

 

 

 

도로에 인접해 있는 작은 외문은 굳게 닫혀있어,

 

 

 

 

낮은 담장너머로 들여다 봅니다.

 

옥간정은,

조선 숙종 때 성리학자인 훈수(塤叟) 정만양(鄭萬陽)과 지수(篪叟) 정규양(鄭葵陽) 형제가,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1717년(숙종 43)에 세운 정자이며,

훈수와 지수 형제는 임진왜란 때 선비의 몸으로 의병을 일으킨 호수 정세아 장군의 5세손 입니다.

양수(훈수, 지수를 일컬음)는 형제가 한 곳에서 학문연구에 힘쓰면서 육유재와 태고와(후에 모고와로 고침)를 지을때,

정각선에 살던 승려에게 어린 향나무 두 그루를 얻어 그중 한그루를 태고와에 심었는데 오늘날까지 자리고 있습니다.

이곳에 있는 나무 한 그루 돌 하나에도 양수형제의 의지를 담아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으니,

"횡계구곡"이 바로 그것입니다.

시전에 나오는 "맏형은 흙으로 만든 나팔을 불고 동생은 대나무로 만든 피리를 분다"에서 나온,

"훈수"로 형제간의 우의를 표상하여 두 분 선생의 저술을 "훈지록"이라 합니다.

 

 

 

 

두분은 나라의 기둥을 길러내기 위해 1716년 봄에 옥간정을 짓고,

가을에 진수재를 횡계리에 지어 1720년 2월부터 매달 강의를 실시하니,

향내의 제자가 100여 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 제자 중에서 형조참의 정중기(鄭重器) 매산 정중기, 풍원부원군 영의정 조현명, 명고 정간, 이유, 신준 등,

수많은 명현달사를 배출하였으며 나라에서 몇 차례 관직을 제수하였으나 끝까지 사양하고, 이곳에서 은거하여 살았습니다.

훌륭한 스승에 출중한 제자, 이곳의 아름다운 산수가 한데 어울려,

자그마한 산골 횡계마을은 교육의 전당으로 전국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4칸 반의 "ㄱ"자형 누각 건물로 창호 구성방법 등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는 건물입니다.

 

 

 

 

옥간정은 보현산(寶賢山)을 등에 엎고 정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는데,

일각문을 들어서면 우측쪽에 옥간정이 있고, 좌측에는 풍뢰당(豊雷堂)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옥간정은 대지의 고저차를 이용하여 전면은 누형식으로 꾸미고, 후면쪽은 자연석 기단 1단을 돌려 건물을 세웠습니다.

 

 

 

건물 내부에는 ‘성재(誠齋)’, ‘정재(定齋)’ 등의,

현판과 편액이 걸려있다고 하는데 들어가 볼수가 없으니 안타까울뿐 입니다.

 

 

 

 

노거수 한그루가 앞을 지키듯 서있는,

도로에서 비스듬히 들어가는 옥간정의 입구입니다.

이곳도 역시 문은 굳게 닫혀 있습니다.

 

 

 

들어갈수는 없지만,

주변을 한바퀴 돌아볼 생각으로 계곡의 물가로 내려와 보았습니다.

 

 

 

 

내려온 보람이 있습니다.

맞배지붕과 팔작지붕의 두건물이,

서로 기대듯 함께 서있는 모습이 웅장한 자태로 눈에 들어옵니다.

 

 

 

겨울가뭄인데도 불구하고,

제법 많은 수량을 보여주는 옥간정을 지나가는 횡계계곡 입니다.

 

 

 

 

오른쪽의 옥간정은,

평면은 정면 3칸, 측면 4칸반인데,

전면의 어칸과 좌협칸은 2통칸의 마루이고 우협칸에는 한칸 온돌방을 두었다고 합니다.

좌협칸 후면쪽은 온돌방 2칸과 서고 1칸을 두어 전체적으로 ㄴ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는 구조 입니다.

전면 온돌방 앞쪽과 우측면 및 마루 좌측면 창문에는 가운데 설주가 있으며,

가구는 3량가인데, 기둥 위에 주두(柱頭)를 얹고 퇴량과 대량을 합보[合梁]시킨 다음,

대량 위에 제형 판대공을 세우고 종량을 얹은 구조 입니다.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좌협칸 후면 3칸은 전면 지붕보다 한 단 낮게 꾸몄다.

왼쪽의 풍뢰당 입니다.
대청 우측의 방 전면과 측면에는 머름 위에 쌍여닫이 세살창을 두었고 배면에는 외여닫이문을 두었습니다.

대청 북쪽의 두 통칸 방은 측면에 외여닫이문만 부설했으며,

서고는 동쪽 면에만 외여닫이문을 달아 마루방으로 된 서고로 출입하도록 되어 있다고 합니다.



진입은 배면 진입으로 대청 우측 칸의 배면 판벽에 외여닫이 판문으로 진입을 하며,

자연석 주춧돌 위에 방과 퇴 칸 모두 원주를 세워 오량 가의 가구를 완성했습니다.

퇴 칸의 주 상부는 초익공으로 처리하고 주간에는 소로를 끼웠으며,

대청 상부는 연등천장으로 처리하고 방 앞의 퇴 칸 상부는 소란반자로 처리해 격식을 갖춘 구조 입니다.

지붕은 홑처마의 맞배지붕에 박공 면에는 풍판을 달아 비바람에 대비한 모습이 보입니다.

 

 

 

계곡을 따라 좀더 아래쪽으로 내려와 봅니다.

 

 

 

 

옥간정은 횡계천 변 암반 위에 지은 정면 3칸, 측면 4.5칸의 ‘ㄴ'자형 맞배집으로,

우측에 풍뇌정이란 건물과 함께 전체적으로 ’ㄷ'자형을 취하고 있습니다.

경내 북쪽과 서쪽은 토석 담장이 둘러져 있으며,

도로에서 두 칸 대문채를 들어서면 먼저 정면 3칸, 측면 1칸의 풍뇌정이 남-북으로 배치되어 있고,

풍뇌정을 돌아 들어가면 옥간정이 계변에 걸쳐 있습니다.


 

 

옥간정의 평면은 횡계천과 나란히 배치된 누각형 건물에 직교해,

방과 서고가 풍뇌정 배치와 같은 향으로 놓인 ‘ㄴ'자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누각형 건물은 두 칸 대청 우측에 한 칸 온돌방을 드린 다음 전면에 반 칸의 퇴를 둔 편당형이며,

대청 좌측 칸 북쪽에는 직교해 온돌방 두 통칸 뒤로 서고 한 칸이 있습니다.

건물의 전면 계곡 쪽에는 퇴 칸 가장자리에 계자각 난간을 두른 헌함을 두고,

나머지는 쪽마루를 부설해 동선의 편의를 도모하였습니다.

청방 간에 모두 삼분합 들문을 설치해 유사시에 넓은 공간이 창출되도록 했습니다.

(옥간정의 구조를 설명한 글을 가져왔습니다)

 

 

 

 

옛날 이곳에서는,

바위 사이를 둑으로 막아 작은 연못을 만든뒤,

뗏목을 타고 거문고를 켜기도 하면서 풍류를 즐기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계곡을 따라 내려와보니,

옥간정의 자태를 앞에서 볼수가 있습니다.

 

 

 

 

옥간정 앞에서,

300여년의 세월을 늠름하게 지키고 서있는 은행나무입니다.

전염병이 만연할때에는 이나무의 열매로 떡을 해먹으면,

전염병이 예방이 된다는 전설이 있는 나무입니다.

 

 

 

 

보현산에서 발원한 횡계천이 퇴적암의 청석 암반을 드러내 절경을 이루는 곳이다.

앞의 횡계천을 내려다보며 시원한 경관을 정자로 끌어들이고 있다.

특히 이 지역의 기후에 영향을 받은 듯 누하 공간은 천석으로 축대를 쌓고 건물 측면 앞쪽을 돌담으로 막았다.

또 온돌방의 함실아궁이 양 옆도 바람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돌담을 쌓았다.

(옥간정의 구조를 설명한 글을 가져왔습니다)

 

 

 

 

안으로 들어가 볼수가 없어서 아쉬움은 있었지만,

바깥에서나마 옥간정의 정취를 어느정도 느낄수가 있어서 다행입니다.

 

 

 

 

나즈막한 담장너머로,

풍뢰당의 모습도 살펴봅니다.

 

 

 

 

한참을 머물렀슴에도,

옥간정의 정취에 이곳을 떠날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계곡의 맑은물과 노거수에 둘러싸인 옥간정..

푸르른날에 다시한번더 찾고 싶은곳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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