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은 우리나라 제철산업의 선두도시로,

철강 산업과 그와 관련한 제조업이 발달해 있으며,

장엄한 연산폭포외 폭포와 뛰어난 경치가 있는 사찰 보경사와,

송도외 여러개의 해수욕장과 해맞이 공원의 푸른바다 등이 유명합니다.

 

바다 가까운쪽으로 아름난곳이 많다보니,

자연히 바닷가의 유명한곳 위주로 찾게 되는곳이 포항입니다.

이번에 소개 할곳은 포항의 내륙으로 죽장면의 "일제당(日躋堂)" 입니다.

 

한 폭의 동양화가 다름이 없는곳 "일제당(日躋堂)" 입니다.

 

행정구역으로는 포항시 죽장면 입암리가 소재 이지만,

문화나 생활, 연고 등은 영천의 영향을 많이 받아온 지역입니다.

 

 

 

 

인근의 입암서원(立巖書院)의 부속건물로,

일제당은 선조 33년(1600년:병자)에 지었으며,

조선중기의 학자 여헌 장현광(張顯光) 수암 정사진(鄭四震) 윤암 손우남(孫宇男) 등이 학문을 강론하던 장소로,

마을 앞으로 흐르는 맑은 가사천과 전읍천이 만나는곳인 합수지점을 바라보는곳에 자리해 있습니다.

 

 

 

 

1629년에는 가사문학의 대가인 노계 박인로(朴仁老)가

이곳에 머물던 여헌 장현광과의 각별한 교분으로 이곳을 8차례나 내유하여,

시조 "입암가(立岩歌)" 29수와 가사 "입암별곡(立岩別曲)"을 남겼습니다.

69세의 장현광을 찾아 죽장에 왔다가 입암의 풍광에 취하여 지은 것이 입암 29곡으로,

노계 문학 중에서도 빼어난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입암서원과 만활당을 돌아서 일제당으로 와보니,

두곳과 다름없이 이곳도 역시 문은 굳게 잠겨있습니다.

이곳을 찾는 이들이 훼손을 우려 해서인지 원래 잠궈 두는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입암서원과 일제당을 찾은 많은 이들은 문틈사이를 들여다 보다가 담장 너머를 기웃거리고 돌아갑니다.

 

영천댐을 경유하든, 기계면쪽에서 들어오든..

예나 지금이나 이곳은 오지에 까깝다고 할만큼이나 멀고 한적한 곳입니다.

우연히 지나가다 들러보기엔 외따로 떨어진 곳인데,

멀리서 일부러 시간을 내어 세시간여를 달려 이곳을 찾았는데,

문틈으로만 들여다보고 발걸음을 돌리고보니 편의를 위한 문화재 관리를 하는듯하여 아쉽기만 합니다.

 

 

 

 

발 뒤꿈치를 들구서,

멀리서온 아쉬움에 담장 안을 들여다봅니다.

 

 

 

 

일제당(日躋堂)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기와지붕으로 되어있으며,

평면구성에 있어 측면의 보간 2칸중 후열 3칸은 절벽에 의지하여,

높은 자연석 축대를 쌓고 그 위에 건물을 앉혔는데,

중간의 어칸이 마루이고 양측에 온돌방을 각 1칸씩 배치하였으며,

마루 뒷벽에 출입문을 세우고 루마루를 꾸며서 계자 난간을 돌린 구조입니다.

 

 

 

 

기암절벽을 등지고 서 있는듯한 모습입니다.

 

 

 

 

자연을 거스러지 않고,

최대한 이용하여 작은 축대로 보완을하여 자리를 잡고 있슴을 보여줍니다.

 

 

 

 

이곳의 주인공은 단연 "선돌" 입니다.

우리말 이름이 선돌이니..

입암(立岩)이라는 단어가 생겨났으리라 짐작해 봅니다.

 

 

 

 

두줄기의 맑은물이 만나는곳에,

선돌을 앞에 새우고서 든든한 암벽을 등지고 자리함은,

실로 절묘한 자리배치가 아닐수 없습니다.

 

 

 

1907년(순종1) 산남의진(山南義陣)이라는 의병조직이,

일본군 영천수비대를 맞아 이곳 입암리 일대에서 전투를 벌였는데,

일제당은 이때에 일본군에 의해 소실되었다가, 1914년에 복원되었다고 합니다.

 

 

 

 

일제당의 마루에서,

박인로의 감상을 따라 느껴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여건이 허락치않아 뒤돌아 보며 발걸음을 돌립니다.

 

 

 

 

"가사천"과 "전읍천"이 이곳에서 만나,

영천댐으로 흘러 들어가는곳에 자리잡은 "일제당"의 모습입니다.

 

 

 

 

가사천 건너에서 보이는,

바위뒤에 숨을듯한 모습의 일제당 입니다.

 

 

 

 

포항의 아름다운 정자,

입암의 "일제당(日躋堂)" 입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