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에는 지은지 아주 오래된 고택은 아니지만,

보존이 잘되어있으며 집의 담장이 아름다운 특이한 고택이있어 찾아 보았습니다.

 

남양주시 진접면에 있는 여경구씨 가옥(呂卿九 家屋)으로,

그림으로 주택의 배치구조를 살펴 봅니다.

 

 

 

 

여경구씨 가옥은 마을에서 제일 높은 산기슭의 동남향에 자리잡고 있어서,

마을에서 오르막길을 길을 올라가야 대문채에 다다를수가 있으며,

대문은 서북향을 한 솟을대문이고 외양간과 행랑방이 좌우에 배치해 있습니다.

 

 

 

 

마을에서는 이고택을 연안 이씨(延安李氏) 동관댁이라 부르는데,

명당의 터에 집을 지어서 누대에 걸쳐 복록을 누려왔다고 전합니다.

 

 

 

 

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마당이 있고..

 

 

 

 

산기슭 쪽으로 동남향으로 자리한 사랑채가 있습니다.

 

 

이 집은 여경구(呂卿九)의 장인인 이덕승의 8대조가 약 250여 년 전에 지었다고 전해오는데,

실제로 조사한 바에서도 대략 18세기의 기법과 형상을 잘 간직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으며,

대문채·사랑채·안채·사당이 비교적 옛 모습을 잘 지니고 있는 편입니다.

 

 

 

 

기단은 무사석(武砂石)처럼 큼직큼직한 돌을 알맞게 다듬어서 적절하게 쌓았았는데,

산석(山石) 그대로의 자연석도 아니고 말끔하게 다듬은 것도 아니지만 네 켜쯤 높직이 쌓은 품이 매우 활달하면서도 둔중한 감각을 지니고 있으며,

자연석의 주춪돌과 댓돌위의 검정고무신이 정겹게 다가옵니다.

 

 

 

 

사랑채에는 방이 두 칸, 마루 한 칸, 작은 방이 한 칸있으며,

뒤쪽으로 쪽마루와 방에는 벽장을 들여 합리적이고 쓸모 있게 배치 하였습니다.

 

 

 

 

사랑채의 방들중 왼쪽의 방으로 들어가 봅니다.

방의 왼쪽 뒤편에 배치 되어있는 다락의 모습이 보이고,

 

 

 

 

직사각형의 아주 작은 벽장도 자리해 있으며,

 

 

 

 

방의 뒤편에는 비교적 큰벽장이 자리해 있습니다.

아마도 이중벽의 효과로 겨울철의 북풍을 한번더 막아보려는 배치가 아닌가 합니다.

 

 

 

 

방의 뒤편인 문또한,

북쪽의 찬바람을 막을 요량으로 이중의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방에서 나와 사랑채의 뒤편으로 돌아봅니다.

 

 

 

 

사랑채의 뒤편에도 작은 쪽마루가 나와 있으며,

너른 수로를 내고 두개의 층으로된 돌축대로 안정된 모습입니다.

 

 

 

 

사당은 사랑채 뒤편 한단 높은 곳에 있으며,

반오량의 가구법과 좌우의 꽃담을 쌓은 반벽의 구성 등에서 주목할만한 기법을 발휘하였습니다.

 

처마는 홑처마 구조이고 지붕은 기와를 이은 맞배지붕으로

맞배지붕아래 반담을 쌓은 기법은 특히 이채로운데,

하방에서 중방까지는 작은 돌을 켜에 따라 쌓되,

돌의 크기를 일정하게 하지 않고 화장줄눈을 주어서 열롱무늬의 맛을 약간 풍겼고,

그 위에는 지네발 마루를 수키와만으로 지었으며,

그 위에 암키와를 이용하여 꽃담벼락을 꾸며두어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조형미를 연출하게 되었습니다.

 

 

 

 

즉흥미가 돋보이는 사당의 꽃담.

어둠 속으로 반복해서 나타나는 갈림길과 나들목을 확인하는 일은,

오래된 기억의 뿌리를 좇는 것처럼 의심스럽고 자신 없는 일이다.

우리는 이따금 고택(古宅)을 한옥과 같은 뜻으로 쓴다.

시멘트 건축의 역사가 짧은 까닭이다.

굳이 고택이라는 말을 떠올리는 것은 '한옥'에는 없는 매력이 그 속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세월이 내려앉은 고택에서 머리가 희끗거리는 노신사의 멋과 여유가 묻어나는 것은 그래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손자의 머리맡에 앉아 이야기를 풀어 내던 할머니의 체취를 추억해 낼 수 있다면, 이 역시 고택이 주는 향기다.

 

고택 여경구가옥의 머리맡에는 조상을 모신 사당이 있다.

할머니의 구수한 입담처럼 이 사당은 많은 이야깃거리를 몰고 다닌다.

실제 여경구가옥은 사당 좌우의 아름다운 담벼락만으로도 적지 않은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화려하게 장식한 벽을 통칭하여 '꽃담'이라 한다.

(담과 벽을 구분하면, 사당 벽의 꽃담은 꽃벽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겠지만, 꽃담이라는 말을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문양으로 반드시 꽃이 들어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 살림집에서는 화방(火防)벽(목조 가옥인 한옥을 불에서 보호하기 위해 쌓은 벽)을,

화려하게 꾸며 꽃담을 대신하기도 한다.

때로는 붉은 벽돌을 이용하여 길상문을 만든다.

길상문은 수복부귀(壽福富貴)처럼 장수와 복을 기원하는 무늬인데,

이조차 많은 비용과 정성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검소함을 미덕으로 여기는 한옥에서 꽃담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꽃담 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경복궁을 떠올린다.

경복궁의 담장에는 화려한 나무와 꽃, 거북을 묘사한 귀갑문,

그리고 영원을 소망하며 이어지는 다양한 기하 문양이 매우 꼼꼼하게 장식되어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사람을 한자리에 오랫동안 잡아 놓는 깊은 감흥이 없다.

 

이 집 사당의 꽃담에는 우리 고유의 즉흥미가 잘 녹아 있다.

때문에 자칫 진부할 수 있는 길상문이나 화려하고 정교하기만 한 궁궐의 꽃담과는 전혀 다른 감동을 일으킨다.

무심히 쌓아 올린 즉흥성에서 출발하는 수수함이 사람의 발길을 잡고 놓지 않는다.

여러 가지 색깔의 돌을 가져다 벽의 허리춤까지 고르게 쌓고, 그 위에는 기와를 올려 장식했다.

돌의 거친 질감이 돌을 감싼 고운 줄눈과 잘 어우러진다.

담장 위쪽의 기와 역시 현장 장인의 즉흥적인 미감을 잘 살려 냈다.

다른 사당의 평범한 담벼락에 비한다면 단연 눈에 띄는 맵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꽃담은 예전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다. 수리를 하면서 전혀 새롭게 변하고 말았다.

수리 전의 이미지를 아는 이에게 현재의 꽃담은 진한 아쉬움을 남긴다.

현재 꽃담의 화려함과 경쾌함도 보는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는 데에 모자람이 없지만, 옛날 꽃담에 비할 바는 아니다.

벽의 허리까지 자연의 돌을 가져다 쌓고 그 위로 기와를 얹어 장식한 것은 똑같지만,

담장을 감상하는 우리에게 전해 주는 감동의 울림이 다르다.

옛날 꽃담은 전통적인 기법을 써서 담벼락 밑에 큰 돌을 놓고 점점 돌의 크기를 줄여 가며 쌓아 올려,

데크레셴도(decrescendo, 악보에서 점점 여리게 연주하라는 말)의 선율을 만들어 낸다.

이는 시각적으로도 매우 안정적이다. 그 위로 수키와를 두 줄과 네 줄로 포개어 쌓았다.

포개어 쌓은 수키와 사이의 꽤 넓은 공간에는 암키와를 원뿔 모양으로 심어서 강한 율동감을 일으킨다.

현재의 꽃담이 곧은 선이라면, 과거의 그것은 부드러운 곡선이다.

옛 꽃담의 문양이 된 암키와는 일정한 패턴이 있어서, 4개의 암키와가 크기를 달리하면서 하나의 장식 단위가 되었다.

그리고 짙은 색의 암키와가 2개씩 짝을 이룬다.

이 전체가 벽이라는 작은 우주에서 한 몸이 된다.

작은 우주에 주역의 태극, 음양, 사상(四象)이 담겨 있는 것이다.

때문에 주먹구구식 보수의 결과물인 현재의 꽃담과는 확연히 다르다.

(사당의 꽃담에대한 평가를 가져와보았습니다)

 

 

 

 

 

사당에서 보이는 안채와 사랑채 사이의 모습으로,

안채로 들어가는 작은문이 따로 있으나 문위에는 벌집있어 감히 가까이 가지 못합니다.

 

 

 

 

사당에서 내려와 사랑채로 다시 내려옵니다.

앞쪽에는 반 칸의 툇마루가 길게 설치가 되어 있는데,

서쪽 끝의 반 칸은 방을 앞으로 내어놓아 툇마루를 두지 않은 모습을 볼수가 있습니다.

 

 

 

 

맞닿을듯 서로 바라보고있는,

굴똑을 가운데둔 사랑채와 안채의 지붕입니다.

 

 

 

 

사랑채에서 안채에 들어서려면,

곳간채 귀퉁이에 설치된 크게보이는 중문을 통하여야 하는데,

문이 걸려져 있어서 들어가 볼수가 없어서 다른 통로를 찾아보았지만,

내외벽(內外壁)이 저절로 이룩되게 되어 있는까닭에 담장을따라 돌아볼뿐입니다.

 

 

 

 

동남향한 부분에 간반통의 두 칸 넓이의 대청이 있고,

그 서쪽에 두 칸의 방이 있다고 되어있는데 담장에서 들여다 볼뿐입니다.

 

 

 

 

안채는 특색 있는 평면구성으로 배치되어 있다고 하나,

들어가 볼수가 없어 안채 뒤에있는 우물만 바라보며 아쉬움을 남깁니다.

 

 

 

 

여경구가옥에서도 자연과 문화는 중요한 테마인데, 꽃담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하며,

꽃담은 자연에서 구한 막돌과 사람이 구운 기와로 장식됐었으며 자연석은 주로 담장에 쓰여 집의 안과 밖을 구분하고,

기와는 집 안 곳곳에서 아름다움을 피워 내고 있습니다.

 

꽃담만큼이나 독특한 공간 디자인도 눈길을 끄는데,

이를 통해 19세기를 살아 낸 사람들의 생각을 들여다 보는것도 한옥 답사의 의미 일것입니다.

 

 

조선후기의 건축기법과 선조들의 미적감각을 함께 느낄수있는곳,

남양주 진접의 "여경구가옥" 답사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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