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의 문화유적을 찾아보면서,

찾은곳은 강화 석수문과 서문입니다.

서문은 강화읍에서 교동도 방향으로 나가는쪽인,

강화읍의 서편으로 도심을 벗어나기 직전즈음의 자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강화산성의 서문으로,

 

 

 

 

서문 문루의 현판은 "첨화루(瞻華樓)" 입니다.

강화산성의 서쪽방향으로의 정문으로 남쪽의 고려산과 강화읍 북쪽 송악산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강화문화권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는,

강화산성 서문의 주변정비공사가 완공되어 주민생활 속에,

살아있는 문화재로서의 모습을 널리 알리기 위해 조명시설을 설치해,

밤마다 환하게 불을 밝혀두고 닫혔던 성문을 열어 주민들이 통행을 하고 있습니다.

 

 

 

 

첨화루(瞻華樓) 성문 천정에 그려진 호랑이의 모습으로,

천정에서 금방이라도 내려 올것같은 분위기로 위압감을 줍니다.

 

 

 

 

서문을 받치고있는 성곽 구조의 일부입니다.

 

고려가 대몽항쟁을 위해 이곳 강화로 천도후,

궁궐을 지을때 (고종 19년) 도성도 함께 쌓았는데,

개성의 성곽과 비슷하게 내성, 중성, 외성으로 축조하였다고 하며,

1232년부터 축조를 하였고 서문이 있는 이곳이 내성에 해당하는 현재의 강화산성입니다.

 

원래는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으나,

숙종 3년(1677)에 현재와 같은 석성으로 재 공사를 하였다고 합니다.

성의 길이는 7122m이며, 4개의 대문, 4개소의 암문(暗門), 2개소의 수문(水門),

2개소의 성문장청(城門將廳)​이있었으며 강화산성의 남문은 안파루, 북문은 진송루, 동문은 망한루, 서문은 첨화루입니다.​

 

 

 

 

 

강화성의 역사를 좀더 살펴봅니다.

1259년 고려가 개성으로 환도하기전 성을 헐었는데 조선초에 다시 보수됐다가,

1637년 병자호란때 청군의 침략으로 파괴가 되었으며,

1677년 조선 숙종때 다시 대대적인 개축공사를 했습니다.

1796년에 유수 김이익이 중수하고 우강 홍봉장이 기문을 작성 게시하였는데,

근세엔 병인,신미양요와 일본의 침략을 겪은 아픔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강화문화권 재 정비로 1975년에 대대적으로 복원 정화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강화산성의 첨화루는 주민생활 속에 살아있는 문화재입니다.

 

 

 

 

 

강화산성의 서문을 돌아보고 건너편에 있는 연무당으로 향합니다.

 

 

 

 

연무당은 1870년(고종 7년)에

강화유수부의 군사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세워진 조련장으로 지금의 상시장 군농협 자리 서쪽에 있었는데,

자리가 좁아 동소문 밖으로 옮겼다가 내성서문 남쪽에 당을 세우고 그 전면에 조련장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1876년에 와서는 일본과의 강압적인 강화도조약(병자수호조약)이 체결한 곳으로서,

이 조약으로 인천, 부산, 원산의 항구가 개항되고 새로운 문명을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으나,

일본에 치외법권을 인정하여 36년간 나라를 빼앗긴 결과가 되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암울했던 과거사를 잊지않기 위해 이 곳에 기적비가 세워두어,

민족 자주의식을 드높이 간직해야 한다는 경고를 하고 있는곳 입니다

 

 

 

 

 

연무당 너머에는 강화석수문 (江華石水門)이 있으며,

 

 

 

 

석수문은 인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수문으로,

수문의 길이 10m, 높이 3.8m, 너비 4m의 규모로 세개의 수문으로 되어 있는데,

각 수문은 화강석을 다듬은 선단석(扇單石)을 4단 내지 5단으로 쌓아 이를 교각으로 삼고,

그 위에 매끄럽게 다듬은 월단석을 반원형으로 잇대어서 아치를 이루게 하였습니다.

 

 

 

 

개천을 건너서 석수문을 살펴볼수 있겠금,

돌로된 징검다리도 놓여있어 건너 갈수있게 해놓았으며..

 

 

 

 

세 개의 수문으로 되어 있는 이 수문은,

1709년(숙종 35)에 강화 내성(內城)을 쌓을 때,

남문 옆 성곽과 연결해서 강화읍의 중심부를 질러 흐르는 동낙천(東洛川) 위에 설치하였던 것인데,

1900년에 갑곶 나루터의 통로로 삼기 위하여 나루에 가까운 개천 어구에 옮겨 시설하였다가,

1977년에 다시 지금 자리로 옮겨 복원 하였습니다.

 

 

 

 

교각만 돌로 되어 있는게 아니라,

바닥에도 반듯하게 돌을 깔아둔 모습이 보입니다.

 

 

 

 

교각아래 한쪽으로 지나가볼수있게,

낮게 이어진 징검다리가 있어 다리 아래로 통과하며 살펴볼수있게 해두었습니다.

 

 

 

 

아치와 아치 사이도 역시,

다듬은 무사석으로 메워 올려서 아치석 윗돌과 평평하게 한 다음 그 위에 흙을 깔아 두었습니다.

 

 

 

 

다리너머쪽에도 개천을 건널수있게 해두어서,

다리 아래에서 다리를 중심으로 한바퀴 돌아볼수 있습니다.

 

 

 

수난의 시대와, 아픔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 하고있는 강화읍 서편의 강화 석수문과 서문,

그리고 연무당 옛터를 돌아보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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