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은 여러번 와보았으나,

익어가는 가을의 단풍을 즐기거나 잠시 머물다 가는정도로 지나친적이 대부분였기에,

이번에는 남한산성의 문화재를 살펴볼 요량으로 길을 나서 보았습니다.

 

산성로타리 주변에서 행궁으로 향하는 길목 방향에서,

전통 취주악 소리가 울려퍼지어 사람들을 불어 모웁니다.

 

 

 

 

남한산성의 종각에서 행궁까지 오가며,

전통 취주악을 연주하는 "남한산성 취고수악대" 입니다.

 

 

 

 

서른여명으로 구성된 남한산성 취고수악대는,

빼어난 실력은 아닐지라도 전통악기로 연주를 함으로 이목을 끌기에는 모자람이 없습니다.

 

 

 

 

침괘정으로 오르기위해 방향을 잡았건만,

취주악 연주에 한동안 발목을 잡혔다가 연주대가 행궁쪽으로 길을 잡고서야 뒤돌아 섭니다.

 

 

 

 

침괘정 올라가는 계단 입구에 자리한,

남한산성 종각에 있는 천흥사 동종(天興寺銅鐘)입니다.

 

 

 

 

고려시대인 1010년(헌종1년)에 세워진,

높이 170cm에 지름이 1m 크기로 대한민국의 국보 제280호로 지정된 동종으로,

본래 태조 4년 (921)년에 태조가 세운 충남 천안의 천흥사에 있었던것을,

남한산성으로 옮겨와 조선시대 남한산성에서 시간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였고,

해방이후에는 덕수궁에 옮겨졌고 현재는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현재의 종은 타종 소리가 더 좋으라고 원형보다 더 크게 제작 하였으며 종의 문양은 원형 그대로 재현하여 두었습니다.

 

 

 

 

종의 정상에는 고리 역할을 하는 용뉴(龍鈕)가 여의주를 입에 물고 있는 형상으로 조각되어 있고,

5단으로 나누어져 각각 꽃무늬가 장식되어 있는 음통(音筒)이 곁에 있으며,

그 아래로 어깨부분에는 연판대가 돌아가면서 조각되어 있습니다.

 

 

 

 

천흥사 동종(天興寺銅鐘)의 본래의 모습입니다.

이 동종은 신라범종의 양식을 계승하면서도 제작기법이나 양식에서 고려시대의 새로운 요소가 반영된 것으로,

현재 국내에 남아 있는 고려시대 동종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형태가 아름다운 대표적인 것으로,

전체적으로 단정하면서도 세련된 기법이 보이며 이 같은 제작기법이나 양식으로 볼 때,

고려 범종을 대표하는 우수한 작품이라 할수있다고 합니다.

 

 

 

 

종각에서 행궁까지를 오가며,

연주를 들려주어 수고 햐셨던 분들이 종각으로 되돌아와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뒤로하고..

 

 

 

 

숲사이로 나있는 돌계단을 오르며 침괘정으로 향합니다.

 

 

 

 

돌계단을 올라서면,

노거수 향나무 사이로 큰규모의 정각이 보이고..

 

 

 

 

"침괘정"으로 다른 표기로는 "침과정(枕戈亭)"입니다.

다르게 불리우는 이름과 같이 다양한 역사적 견해가 담겨있는 침괘정(枕戈亭)은,

남한산성내 마을 동쪽 작은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는 정각으로 정확한 한자음은 ‘침과정’인데, 관례상 ‘침괘정’으로 부르는데,

이건물의 정확한 창건 시기는 알수없으나 침과(枕戈) 는 "창을 베개로 삼는다"는 뜻으로, 병자호란의 치욕을 되새긴다는 의미입니다.

 

 

 

 

안내문에 있는 침괘정의 옛날의 모습으로,

『남한지(南漢志)』에 의하면, 1624년(인조 2)에 남한산성을 쌓을 때,

수어사(守禦使) 이서(李曙, 1580~1637)가 울창한 숲에서 그 흔적을 발견하였다고 하며,

주변은 백제 온조왕의 왕궁터라고 전하지만 주변에는 군기고(軍器庫)가 있었다고도 하므로,

이서가 발견한 흔적은 군기고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는데,

처음 이 정각을 발견했을 때 주춧돌도 괜찮았고 방 안 온돌도 불을 지펴보았더니 아무 이상없이 따뜻해 졌다고 하며,

그후 1751년(영조 27)에 광주유수(廣州留守) 이기진(李箕鎭, 1687~1755)이 중수하고 침과정이라 명명하였습니다.

 

 

 

 


이곳의 주춧돌은 자연석을 네모지게 약간만 가공하여 사용한 모습을 보이고,

 

 

 

 

아궁이에는 불을 넣었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구조를 살펴보면,

이익공식(二翼工式)으로 2고주(高柱)7량(樑)의 가구(架構)인데, 보는 모두 직선으로 다듬었으며,

동자기둥을 사용하였고, 대공은 판대공(板臺工)으로 끝부분에 화초를 조각한 파련대공(波蓮臺工)입니다.

 

 

 

 

이곳은 이익공식 짜임 방식, 화초를 새긴 초각(草刻), 가구 기법, 기둥의 마름질 수법,

우물천장의 구성, 단청 수법 등에서 조선 후기에 궁궐 건물에 사용하였던 전형적인 관식(官式) 기법이 갖추어져 있어서,

조선시대의 군사 관련 건물을 살피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이곳 침괘정에는 다양한 문양으로 단청이 되어 있슴을 볼수가 있으며,

 

 

 

 

침괘정 포벽을 살펴봅니다.

침괘정 표벽에 표현된 연꽃 문양으로 푸른 화병 속에 한 송이의 연꽃이 피어난 모습을 나타내었는데,

연줄기 위에 핀 붉은색 연꽃을 중심으로 연잎이 연덩굴처럼 서로 엉키면서 구불구불하게 자라난 모습을 표현하였습니다.

 

 

 

 

참고로 침괘정 포벽의 연꽃문양 표지를 가져와보았습니다.

 

 

 

 

앞면 7칸, 옆면 3칸에 겹처마 팔작지붕을 올린 모습인데, 누정 건물로는 규모가 큰 편으로,

기둥 배열만으로 보면 가운데에 도리통 5칸, 양통 1칸의 내진부(內陣部)를 두고 그것의 네 주변에는 툇간[退間]을 둔 내외진형(內外陣形)구조로,

네모기둥은 비교적 굵은 편으로 흘림은 거의 느낄 수 없는데, 모서리를 접고서4면에 2줄의 둥근 선인 쌍사(雙絲)를 내었으며,

실제 공간의 구성은 한쪽에 도리통 2칸, 양통 3칸의 넓은 대청을 두고서 이것에 3면으로 툇간을 돌린 도리통 4칸,

양통 1칸 규모의 온돌방을 붙여, 기둥 배열과 공간 구성이 일치하지 않는 독특한 평면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곳 침괘정(枕戈亭)은,

백제 온조왕의 왕궁지라는 설이 있으나,

이를 고증할 아무런 자료도 없기 때문에 무어라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정자옆의 노거수 은행나무는 대답없이 그자리를 지킬뿐 입니다.

 

 

 

 

침괘정의 굴뚝은 건물에서 상당히 떨어진곳에 위치해 있으며,

 

 

 

 

침괘정의 뒤편을 돌아보며,

남한산성의 유서깊은 문화재인 침괘정(枕戈亭)의 답사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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