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의 영암과 강진은 오래전 한시적으로 연고가 있어서,

그곳에 머무를 당시 주변 유적지 여러곳을 대부분 돌아 보았었는데

호남의 3대 별서원림중 하나인 백운동 정원(白雲洞 庭園)이 월출산 남쪽 아래의,

무위사와 경천대 인근에 있슴을 최근에야 알게되어 찾아 보았습니다.

 

주소를 찾아서 도착한 백운동 정원의 입구입니다.

주차장도 변변치 않고 이정표도 부실한 편여서 이상한 느낌였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이곳은 후문격에 해당하는곳 였습니다.

 

 

 

백운동 정원의 입구로 들어가는길의 앞에는,

월출산 남쪽 아래의 태평양 설록차 강진다원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어,

녹차밭 이라면 전국 제일이라는 명성의 보성차밭에 뒤지지 않는 전경을 보여주고,

왼쪽으로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백운동 12경"의 제 1경인 "옥판상기(玉版爽氣)" 를 볼수가 있는데,

백운동 원림 너머로 보이는 월출산의 서남쪽 봉우리인 옥판봉을 일컬음 입니다.

 

 

 

백운동 정원의 뒷쪽으로 들어가는길은,

산속의 자연스럽게 나있는 오솔길을 걷는듯한 느낌으로 오붓해서 좋습니다.

 

 

 

 

이곳 백운동을 찾았던 다산 정약용이,

제자인 초의선사에게 그리게 했다는 "백운도" 입니다.

이그림으로 백운동 정원의 배치와 주변환경을 미리 살펴보고 들어갑니다.

 

 

 

백운동 별서 정원의 지형도도 함께 살펴 봅니다.

월출산 땅끝기맥을 타고 흘러드는 좌청룡맥이 이중삼중으로 감싸고

우백호가 후덕하고 흐르는 물이 한번 감아돌아 백호쪽 기운이 예사롭지 않는곳으로 자기안산을 이루고, 

안산 넘어로 암공수가 자리하고 있어명당으로 이름나 있는곳 입니다.

 

 

 

백운동 정원의 담장이 보이고 동백림과 비자나무가 계곡을 따라 숲을 이루고 있어서,

이곳을 다녀간 다산의 백운첩에는 그가 꼽은 "백운동 12경"이 있는데,

외원은 진입공간과 계변(溪邊) 공간, 정선대 공간과 운당원 공간, 백매오 공간 등 다섯 공간으로 나뉘고,

이곳에 백운동 12경 중 9경이 배치되어 있으며 외원은 담장으로 경계를 짓고 있습니다.

 

제4경인  "풍리홍폭(楓裏紅瀑)" 으로 단풍나무의 붉은 빛이 어린 옥구슬 폭포인데,

폭포의 물에 바위 위의 단풍나무 붉은빛이 얼비치면 물색이 마치 홍옥과 같다 해서 이처럼 멋진 이름을 얻었다고 하는데,

수량도 적은데다 단풍이 오기전의 가을철이라 단풍은 볼수 없어 아쉽습니다.

 

 

 

백운동 별서의 삼문을 들어 서려고보니,

개울을 건너는 나무다리가 보여서 그제서야 후문으로 들어 온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백운동으로 들어오는 길목에는,

이곳을 지은 이담로 선생이 자연석 바위에 새긴 “白雲洞”이라는 암각글이 있어 이곳의 존재를 알려 주고 있으며,

전남 영암 월출산 자락에 숨어 있듯 자리한 백운동 원림의 "백운동(白雲洞)"은 흰 구름이 머문다는 의미로,

처사 이담로(李聃老·1627~1701)가 중국의 유학자 주자의 "백록동 서원"을 의식해 조성한 정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백운동 12경 중 제2경은 "유차성음(油茶成陰)" 으로,

백운동원림으로 가는 좁은 길에 드리워진 동백나무 그늘입니다. 동백나무는 산다경(山茶徑)이라고도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백운동 별서 삼문을 앞에둔 곳에는,

다산이 백운동 제6경으로 꼽은 "창벽염주(蒼壁染朱)" 가 있으며,

시내 옆에 우뚝 솟은 바위 절벽을 가리키며 창하벽(蒼霞壁)에 쓴 글씨를 말하는데 이끼로 인해 찾아보기 힘듭니다.

 

 

 

솟을 삼문을 통하면 백운동 별서로 들어서게 됩니다.

이곳은 본래 원주이씨 이후백(李後白 1520~1578) 집안의 사패지(賜牌地)였다고 하며,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이담로가 백마 1필을 주고 사서 들어왔다고 전하는곳으로,

그는 말년에 둘째 손자 이언길(李彦吉, 1684~1767)을 데리고 이곳에 들어와 살았으며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백운동 원림이 조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담로는 은둔적인 생활을 즐긴 탓인지 그의 호를 '백운동은(白雲洞隱)"이라 했습니다.

 

 

 

삼문을 들어서면 두개의 연못이 보이고,

작은 규모의 연못이지만 음양의 도리를 적용한 네모난 연못의 한복판에 있는 섬의 형태는 "석가산"을 의미하며,

인공섬처럼 만든 석가산은 한국의 전통 정원에서는 반드시 들어가는 요소 이기도 합니다.

 

* 석가산(石假山): 신선사상에 근거를 둔 것으로 돌과 흙을 쌓아 만든 산을 뜻하며,

                       감상가치가 있는 여러 개의 돌을 쌓아 산의 형태를 축소시켜 재현한 것으로,

                       기세를 느낄 수 있고 관상 가치가 있는 화강암을 주로 활용하였습니다.

 

 

 

두개의 연못을 두고 낮은 누마루가 배치가 되어있는 정자형태의 초가로,

백운동을 찾는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으로 보이는 정자형의 초당이 복원되어 있습니다.

 

 

 

초당의 벽면에 그려진 그림으로,

달빛의 월출산 아래에 자리잡은 이곳의 풍경을 그린듯 합니다.

 

 

 

자연석 기단에 낮은 누마루와 한칸의 방에 초가지붕이 자연스럼고 소박하고 꾸밈이 없어보여 소담스런 모습입니다.

백운동은 원주(原州) 이담로처사가 은거하던 곳으로,

1812년 9월 12일 후손 이덕휘(李德輝·1749~1828)의 초청으로 다산 정약용은 초의선사와 윤동 등과 함께 찾아 즐기곤 했는데,

초의선사가 ‘백운도’와 ‘다산도’를 그렸고 거기 모인 사람들이 시를지어 붙였다고 합니다.

 

 

 


제5경은 곡수유상(曲水流觴)의 "유상곡수(流觴曲水)" 입니다.

유상이란 경주 포석정처럼 물길 위로 술잔을 흘려 띄워 즐긴다는 말로서,

집 밖의 계곡의 물을 마당 안으로 끌어 들인뒤 배수로를 따라 마당 가운데 연지를 채운 다음 다시 밖으로 나가도록 되어있어,

조영방법이 기발하고 독특한데 집 마당으로 계류를 끌어들여 만든 경우는 흔치 않은 경우여서,

일반 민간 정원에 유상곡수가 조성되어 있는 것은 이곳이 유일하다고 하며  백운동 정원의 화룡점정과 같은 곳이 유상곡수 입니다.

 

 

 

단을 하나 높여서 자리한 또하나의 초가건물이 들어옵니다.

백운동 별서정원은 경사진 지면을 이용해 건물과 정원이 조화롭게 들어서 있는데,

3개의 단으로 터를 일구어 건물과 화단에는 목련이나, 매화, 모란이나 영산홍, 국화와 같은 나무와 화초가 잘 가꾸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제9경인 "십홀선방(十笏禪房)"으로,

십홀은 좁은 크기를 나타내고 선방은 내부의 조촐함을 드러낸 표현인데,

사랑채인 "취미선방(翠微禪房)"의  세칸 초당으로 백운동 원림의 사랑방격으로 이곳의 주인이 기거하는 곳으로,

강진군에서 2009년 원래 모습대로 복원해 두었습니다.

 

 

 

취미선방(翠微禪房)의 현판이구요..

 

 

 

제8경은 "화계모란(花階牡丹)"으로,

기울어 가는 가을이라 볼수는 없지만 꽃 계단에 심은 모란을 말합니다.

 

 

 

취미선방의 윗쪽에는 사당 인듯한 작은 건물이 서있고,

그아래에 발굴을 했던 흔적을 자갈로 덮어두고 그물망으로 막아두었는데 이곳은 안채가 있던 자리로 '백운유거(白雲幽居)'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다고 전하는 곳으로,

복원사업으로 발굴 조사결과 조선시대 건물지에서 조선백자와 기와유물이 출토되어 여기에서 건물의 모습을 추정할 수 있는 기단과 아궁이와 구들장 등이 발견 되었다고 하며,

또한 그아래에서는 고려시대 유물이 쏟아져 나왔는데 고려청자 편과 명문기와 등이 출토가 되어,

이 인근이 고려시대의 사찰인 백운암이라는 사찰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 되었습니다.

 

 

 

안채가 있던 자리옆에는 신맛을 고이게 하는 유자가 가을 햇살에 탐스럽게 익어가고..

 

 

 

정선대(停仙臺) 정자에 오르기위해 마주한 언덕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본채에서 바라보면 정선대가 있는 곳이  내청룡이 안산을 이루고 있는곳 입니다.

 

 

 

정선대에 오르는 돌계단 길은 가을햇살로 눈이 부십니다.

 

 

 

정선대(停仙臺) 정자 입니다.

이곳에서는 창하벽 위의 단풍나무가 심겨진 단위에 자리해 있어서 ,

제10경으로 단풍철에 잎이 물들면 온통 붉은 비단 커튼을 둘러친 것 같다 해서,  

풍단의 "홍라보장(紅羅步障)"을 즐길수 있는데 가을빛이 가장 화려할 때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것으로 이곳 역시 아직은 철이 일러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정선대(停仙臺)의 현판으로 원두막을 연상케하는 소담스런 정자 입니다.

 

 

 

정선대(停仙臺)에서 내려다 보이는 백운동 별서의 전경으로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시기에 다시 찾고 싶은곳입니다.

 

 

 

정선대의 숲사이로 멀리 월출산의 한자락이 들어오고..

 

 

 

나무들 사이로 들어오는 월출산의 옥판봉의 모습으로,  

제11경인 정선대의 "선대봉출(仙臺峰出)" 입니다.

 

 

 

시원한 가을바람에 자리를 펴고 누워서,

별서정원 에서의 휴식을 만끽하고픈 충동이 일어나는 정선대(停仙臺) 입니다.

 

 

 

정선대를 내려오면서,

소담스럽게 피어난  녹차나무꽃이 찾은이들을 배웅해 주는듯 합니다.

 

 

 

호남의 3대 별서원림 백운동 정원(白雲洞 庭園)은 황페화 되었다가, 

2001년 《백운세 수첩(白雲世守帖)》이라는 문헌이 공개되면서 그 존재가 밝혀졌고,

백운동원림을 본 다산 정약용은 그 아름다움에 반해 제자 초의선사를 시켜 12경(景)을 그리게 했으며,

자신의 다산초당과 견주어 백운첩에 이곳에서의 감흥과 백운동 12경 그림을 남기게 되어,

호남의 3대 원림으로 불리다 쇠락한 그곳에서 다산의 ‘기록’을 바탕으로 다시 원형을 찾아갈수 있게되어 다행이 아닐수 없습니다.

백운동의 12경을 모두 찾아 담지는 못하였지만 우리나라 전통 원림의 원형을 살펴 볼수가 있어서 다행 였습니다.

영암, 강진을 찾으시면 주변의 월출산과 도갑사, 무위사, 월남사지등과 함께 반드시 찾아 보아야 할곳으로 백운동 정원(白雲洞 庭園)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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