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을 돌아 보면서 외암마을 가는길에,

아산시 읍내동에 있는 아산의 문화재인 "온주아문 과 동헌(溫州衙門─東軒)"을 찾았습니다.

 

온주아문 과 동헌은,

아산시에서 외암마을로 가는중간 기점인 읍내동에 위치해 있으며,

관아를 지키듯 늠름하게 서있는 온주아문(溫州衙門)입니다.

 

 

 

온주아문 옆에는 담장을 따라,

이곳을 거쳐 이지방을 잘다스렸던 현감또는, 군수의 업적을 적어놓은 비석들이 서있습니다.

 

 

 

날아갈듯 서있는 온주아문(溫州衙門)으로,

문루의 크기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익공계(翼工系) 팔작지붕 건물로,

내부의 동헌과 함께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6호로 지정이 되어 있는데,

아문 건축에서 흔히 보는 2층의 문루 건물로 아래층은 통로로 사용하고 위층은 누마루로 이용하도록 하였습니다.

다듬은 장대석 한벌을 깔아 만든 기단 위에 4각형의 기초석을 갖춘 높이 1.5m의 주형 초석을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놓고, 그 위에 둥근 기둥을 세워 누마루를 설치해 두었습니다.

 

 

 

문루에 보이는는 "溫州衙門(온주아문)"의 현판으로,

이곳은 신라 문무왕 3년(663)에 군이름을 온주라 하였으므로 그 지명에서 따온것으로 보입니다.

 

 

 

아래층 기둥에 화려한 초반을 한 낙양을 붙여둔 모습이 특이하며,

1871년(고종 8)에 중건된 건물로 알려져 있으며 아문(衙門)은 관청의 총칭으로 상급의 관청을 이르기도 합니다.

 

 

 

활짝 열려 있는 온주아문을 들어서면 동헌의 모습이 들어 옵니다.

 

 

 

아문에서 약 50m 북쪽에 서 있는 동헌의 모습으로,

 

 

 

정면 6칸, 측면 2칸의 평면이며 잘 다듬은 장대석을 한벌 쌓아 기단을 마련하고,

덤벙주초를 두고 그 위에 네모난 기둥을 세웠으며 우물천장이며 홑처마 팔작지붕의 구조 입니다.

 

 

 


동헌 앞마당의 나무그늘 아래에는,

여름의 쉼터로 사용되었을 의자가 눈에들어 옵니다.

 

 

 

아문과 함께 고종 8년 (1871)경에 건립된 건물로,

동헌은 여러 차례 변형되었으나 여지도서(輿地圖書) 온양군 공해조(公廨條) 에는,

동헌 10칸, 아사(衙舍) 23칸, 객사(客舍) 37칸, 무학당(武學堂) 3칸, 향청(鄕廳)12칸등,

건물의 이름과 칸수가 기록되어 있으나 지금은 2동의 건물만 남아 있습니다.

 

 


 

동헌의 마루에는 별도의 현판은 볼수 없으며,

한글로 된 설명문으로 보이는 현판이 자리해 있습니다.

 

 

 


동헌은 지금으로 말하면 군수의 집무실 이라고 볼수 있으며,

 

 

 


조선시대 온양군 동헌으로 쓰이다가 1928년 일제의 주재소, 해방후에는 파출소로 쓰였으며,

1986년에 시(市) 승격에 따라 1988년까지 온주동 동사무소로 2년간 사용되다가 1993년에 수리 복원을 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역사의 흐름에 따라,

조선조의 "동헌"에서  일제의 "주재소"로,

해방후에는 파출소와 동사무소로 사용이 되었던 곳여서,

격동의 근대사를 지켜 보았고 몸으로 격어온곳으로 여겨져 새삼 스럽습니다.

 

 

동헌의 옆면에는,

방이 있는곳을 위한것으로 보이는 쪽마루의 모습으로 동헌의 양쪽에 자리해 있습니다.

 

 

 


동헌의 뒷마당도 돌아보고,

관리를 잘해두어 깔끔하게 정리 되어있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던, 

조선의 관청 온주아문과 함께있는 동헌의 답사기 입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