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의 명소 "낙안읍성"을 찾았습니다.

낙안읍성은 원주민이 살고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보존된 민속마을로,

 성의 규모는 높이 4m 정도의 성곽은 4㎞ 정도로 한 바퀴 도는데  30여분 정도 걸립니다.

 

낙안읍성은 넓고 돌아볼곳도 많은곳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읍성의 안내도를 살펴보고 길을 나섭니다.

 

 

 

동문앞 주자장에서 읍성으로 들어가는길목에 서있는 장승으로,

제각기 가슴에 이름을 달고서 재미있는 표정으로 방문객들을 맞이합니다.

 

 

 


주차장에서 동문에 이르기전 풍물장터의 모습으로,

낙안읍성은 전라남도에 위치해 있는 만큼 맛있는 먹거리도 풍부한 곳으로,

임진왜란 당시 낙안읍성을 방문한 이순신 장군에게 고을 주민들이,

이곳 읍성 주변에서 나는 8가지 귀한 재료를 이용해 음식을 만들어 대접했다는 설에서 유래해 "낙안팔진미"를 선보이고 있는데,

팔진미 에는 금전산 석이버섯과, .백이산의 고사리, 오봉산 도라지가 있으며, 제석산 더덕이 있으며,

남내리의 미나리, 성북리의 무, 그리고 서내리 녹두묵과, 용추천어를 포함해 여덟가지 입니다.


팔진미는 지역민들 사이에서 구전으로만 전해오다 순천시가 전문가의 연구와 고증을 통해,

현대인의 취향에 맞도록 사또밥상, 선비밥상, 팔진미 비빔밥 등을 개발하여 읍성에서 맛볼수 있습니다.

 

 

 

초가지붕을 이고있는 매표소의 모습으로,

 

 

 

매표소에 보이는 입장료 표지 입니다.

 

 

 

낙안읍성 앞문에는 몇기의 고인들 모습도 보여 옛날부터 사람이 살았던 곳으로,

삼한시대에는 마한땅, 백제 때는 파지성으로 고려 때는 낙안군 고을터로,

조선 태조 6년(1397) 왜구가 침입하자 이 고장 출신 양혜공 김빈길 장군이 의병을 일으켜 토성을 쌓아 방어에 나섰고,

300년 후 인조 4년(1626) 충민공 임경업 장군이 낙안 군수로 부임하여 현재의 석성으로 중수했다고 합니다.

 

다른 지역 성과는 달리 넓은 평야 지대에 1~2m 크기의 정방형의 자연석을 이용하여,

높이 4m, 너비 3~4m, 성곽 총길이가 1,410m로 동내, 남내, 서내 등 3개 마을 생활근거지를 감싸안은 듯 장방형으로 견고하게 축조되어,

400년이 가까운 지금도 원형이 많이 남아 있는곳 입니다.

 

 

 


낙안읍성의 동문(낙풍루) 옆에서 보이는 모습으로,

산이 바로 보이는 읍성으로 조선시대 마을앞에 서있는 느낌입니다.

 

 

 

순천 낙안읍성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지방계획도시로 대한민국 3대 읍성 중 하나로 사적 제30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연간 120만명의관광객이 방문하는 주요 관광지로 현재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 등재 및,

CNN선정대한민국 대표 관광지 16위로 선정되었습니다.

 

 

 

동문을 들어서면서 올려다 보이는 옹성(甕城)의 모습으로,

 

 

 

동문위의 낙풍루(樂豊樓)에 올라 옹성의 구조를 다시 봅니다.

 

 

 

낙풍루에서 읍성의 안쪽도 내려다 봅니다.

 

 

 

낙안 읍성에는 80여 가구의 원주민이 민박과 주막등을 관청인 시의 관리하에 운영 하며,

집앞 텃밭 등에서는 갖가지 농작물도 일구며 직접 생산하여 자급을 하여,

옛사람들의 생활상과  촌가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살아 있는 전통 민속마을입니다.

 

 

 

민속마을답게 곳곳에 모형등으로 포토존이 있어 추억을 남기기에도 그만입니다.

 

 

 

길옆에 따로이 나있는 샛길에는 국화 꽃밭도 조성이 되어있어 그유혹을 뿌리치기 힘드는데,

 

 

 

표지를 보니 이길은 동편제 국창 송만갑 선생과 가야금병창 중시조 오태석 명인의 생가로 가는길인데,

음력 정월 대보름 민속한마당 큰잔치와 낙안민속문화축제, 전국가야금병창경연대회 등을 통해 소리로도 이름난 지역을 알리고 있습니다.

 

 

 

오태석 명인의 생가로 가는길에 초가의 모형이 길가운데 자리잡고 있어 눈길을 잡습니다.

 

 

 

박과 수세미등의 터널도 가을의 결실이 주렁주렁 달렸고,

 

 

 

어디선가 공연을 하는듯 소리에 이끌려 가보니,

객사가 있고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무엇인가에 집중하며 몰려 있습니다.

 

 

 

한바탕 소리마당 공연이 펼쳐지고 있어서 한참을 서있게 합니다.

국악도 소리도 좋지만 진행을 재미있게 해주어 부담없이 한층더 가까이 있는듯 합니다.

 

 

 


대문옆에서 보이는 소리마당의 안내문 입니다.

 

 

 

객사에서 나오니 임경업 장군 비각(林慶業 郡守 碑閣)이 가까이 있어 들여다 봅니다.

비각은 앞면 1칸, 옆면 1칸으로 되어 있으며 지붕은 팔작지붕을 올린 모습입니다.

 

 

 

비각앞 상단에 걸려 있는 현판으로,

"차임장군비 각판상운"이 있어 영조 24년(1748)에 비각을 세운 후 1893년에 보수를 하였음을 알 수 있은데,

임경업(1594∼1646)은 조선시대 중기의 명장으로, 인조 4년(1626) 이곳 전라도 낙안지역의 군수로 부임해왔으며,

인조 6년(1628) 3월 서울지역으로 옮겨갈 때까지 낙안읍성을 쌓는 등 어진 다스림을 베풀었으며  병자호란과 정묘호란 때에도 큰 공을 세웠습니다.

이 지역에는 그에 관한 많은 전설이 내려오고 있는데, 그를 이 지역의 수호신으로 신봉하기도 하여 매년 정월 보름이면 낙안면 주인들에 의한 큰 제사가 행하여지고 있습니다.

 

 

 

거북받침돌 위에 비를 세우고 머릿돌을 올린 형태로,

"군수임공경업선정비" 라는 비의 명칭을 세로로 새겨져 있으며,

왼쪽 아래부분에 건립연대를 적어놓아서,

임경업이 군수직을 마치고 서울로 떠나던 인조 6년(1628)에 이 비를 세웠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용인, 제주의 민속마을과 같은 전시용이나 안동 하회마을과 같은 양반마을도 아닌,

우리 서민들이 살아왔던 옛모습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옛사람들의 체취가 물씬 풍겨 친근함이 있습니다.

 

 

 


"박의준 가옥" 입니다.

이고을의 향리의 집으로 전해지는 곳으로,

초가의 가옥이지만 고을의 일반 주택중 규모도 크고 멋을 부린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세기 중엽에 지어진 이가옥은 지금도 안채에 사람이 살고 있으며,

민박을 하고 있어  초가집의 한옥 체험도 할수 있도록 내부는 현대식으로 꾸며놓았습니다.

 

 

 

추수후 곡식의 알갱이를 골라주는 기구인 풍로의 모습도 보이구요..

 

 

 

남쪽지방 이긴해도 겨울의 찬바람에 대비해 2중,3중의 문을 달아놓은 모습입니다.

 

 

 


해마다 가을 걷이후에는,

월동 준비를 하듯 이엉을 올린 초가지붕은 여러해가 지나면서 겹겹이 두툼하게 쌓아 올려져 있습니다.

 

 

 

처마아래에는 감을 깍아서 걸어두어 겨울 간식인 곳감을 준비해둔 모습입니다.

 

 

 

낙안읍성의 돌담길을 따라 걷다보니,

줄을 타고 오르는 나팔꽃의 모습도 보이고..

 

 

 

낙안읍성의 초가지붕은 겨울옷 갈아입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곳 마을 주민들은 잘 건조된 볏짚을 엮어 '이엉'을 만들어,

서로 도와가며 초가지붕을 올리는데 '이엉'은 초가 지붕을 새로 덮기위한 짚으로된 섶입니다.

 

 

 

초가지붕을 올리는 분들은 대부분 나이가 지긋한 분들로,

낙안읍성은 매년 10월 중순부터 월동 채비를 위해 '이엉잇기'를 한다고 전하는데,

제법 쌀쌀해진 날씨 탓이으로 올해는 20여 일 앞당긴 10월 초부터 시작되어 서로 도와가며 차례로 지붕을 올린다고 합니다.

 

 

 

옥사를 보기위해 남문으로 가는길에는 연지라는 연못이 있습니다.

 

 

 

연못의 가장자리에 세워둔 고기잡는 아이의 조형물이 찾은이들의 눈길을 잡습니다.

 

 

 

연못의 한쪽에는 연지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연의 모습도 보이고..

 

 

 

연못의 돌막이 축대에 보이는 모습으로, 

우렁이 라고도 불리는 논고동이 내년에도 대를 이어가가 위해 준비해둔 산란처로 이곳이 친환경적인 저수지임을 보여줍니다.

 

 

 

저수지 한쪽에는 물레방아간도 길옆에 있어서,

어린이들에게는 옛모습을 설명해주고 포토존 으로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물레방아간 안쪽에는 포졸이 앞을 지키고 있는 옥사가 있어 찾아 봅니다.

 

 

 

낙안읍성의 옥사(獄舍)입니다.

옛날 고을내의 죄수들을 수용하였던 건물인 옥사(獄舍)로,

다른 읍성과는 다르게 관아와 멀리 떨어진 외진 곳에 위치해 있는데,

옥사 주변의 연지(蓮池)는 죄수들의 탈주를 막아주는 역활을 한것으로 보여집니다.

 

 

 

죄인을 가두어 두는 옥사(獄舍)의 내부 모습으로,

밀랍인형으로 표현을 해두어 알기쉽게 해두었으며 옆의 빈칸에는 직접 체험을 할수도 있게 해두었습니다.

 

 

 

 


옥사의 앞마당에는 형틀이며 심문하는 수령과 관리들의 밀랍인형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실제로 체험도 해볼수 있게 해두어 포토기념의 장소로도 활용이 되고 있습니다.




낙안읍성의 옥사로 전편을 마무리하고 후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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