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천을 여행하면서,

영천시 화남면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인 귀애정(龜厓亭)을 찾았습니다.

 

귀애정(龜厓亭)은 귀애고택(龜厓古宅) 의 사랑채에 있는 정자의 이름으로,

화남면 귀호리의 "별별마을"을 찾아야 만날수 있습니다.

 

 

 

귀애고택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보이는 조형물로,

별을 따는 아이와 그 아이를 바라보고 있는 강아지의 형상으로  별의 도시 영천에 어울리는 조형물 입니다.

 

 

 

별별마을의 조형물들은 2011 마을미술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설치되었는데,

참고로 "별별미술마을" 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한 2011마을미술프로젝트 공모사업에 선정된 마을로 50여 명의 작가가 참여하여,

경북 영천시 화산면과 화남면 일원 마을 곳곳의 문화유산과 자연풍광, 주민의 일상과 연계한 총 45점의 작품을 설치,

평범하던 농촌마을이 지붕없는 미술관으로 바꿔 놓았는데  버스 정류장, 마을 안길 담벼락, 마을 저수지, 버려진 폐가, 낡은 정미소 등,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곳곳에 수준 높은 예술작품들이 숨겨져 있으며 인근의 화산면 가상리에는 폐교건물을 활용한 "시안미술관"도 있어서 돌아 봄직합니다.

 

 

 

고택의 입구에는 오래된듯한 우물이 보이며,

안쪽에 있지않고 대문앞에 자리해 있어 이채롭습니다.

 

 

 

고택의 오른쪽으로는 연못이 자리잡고 있어,

 

 

 

한해를 마무리하고 봄을 기다리는 연의 모습도 들어옵니다.

 

 

 

귀애고택(龜厓古宅)의 대문채로 행랑채 라고도 불리우며,

 

 

 

귀애고택 행랑채의 현판으로,

산림처사로 영천에서 명망이 높았던 "조명직(曺命稷)"은 풍수지리에 능했다고 하며,

영천 금호읍 창수마을 창녕조씨 세거지에 살던 그는 명당 집터와 묘터를 구하기 위해,

영천지역 일대 산천을 샅샅히 찾아다닌 끝에 1767년(영조43년) 이곳 구호리에 터를 잡고 정착했습니다.

 

 

 

마당에서 보이는 행랑채의 모습으로,

문헌공 조명직(曺命稷)[1733~1807]이 1767년(조선 영조 43)에 이곳으로 터를 잡아 들어온 뒤,

귀애 조극승(曺克承)[1803~1877], 운파 조병수(曺秉秀)[1832~1903] 등 일산 삼대가 귀애정·사당·별묘·육각정 등 47칸을 건축하였는데,

별묘는 50년전에 도괴 되고 1988년 화재로 사랑채, 아랫 사랑채등 15칸이 소실되어 1991년 사랑채를 복원 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대가의 장독대 답게 규모도 큰편이지만 정리가 잘되어 있는 모습입니다.

 

 

 

내당의 건너채의 모습으로 보수작업을 하여 말끔한 모습으로,

 

 

 

겨울을 위해 마루아래에 나무장작을 보관해둔 모습이 이채로우며..

 

 

 

무쇠솥의 옛날 아궁이는 아니지만 불을 넣었던 흔적도 보입니다.

 

 

 

귀애고택의 내당인 안채의 모습으로,

조명직이 이곳에 자리잡은후 5세손인 일산공때에 이르러,

"학문이 천석이요 재물또한 천석이며 이웃에 적선함이 천석이라" 합하여 "삼천석 집" 으로 명망에 올랐습니다.

 

 

 

안채로 들어가는 방문위에는 "일산(一山)" 이라는 현판이 있으며,

 

 

 

운파(雲波)라는 당호도 자리해 있는데,

 

 

 

안채의 방앞에 걸려있는 두개의 현판과 함께,

"관인재( 寬忍齋)"의 현판으로 이곳 안채의 당호를 알수가 있습니다.

 

 

 

관인재 안방의 문살의 모양도 살펴보고..

 

 

 

섬돌위에 나란히 놓인 고무신에서,

고택에서의 옛정취를 흠뻑 맛볼수 있습니다.

 

 

 

관인재를 드나들때에 그리 높지 않지만,

섬돌위와 마루사이의 오르내림의 편함을 위해 매달아놓은 물고기 문양의 손잡이에 정감이 갑니다. 

 

 

 

고택을 지키는 위상에 어울리게,

순해보이는 삽살개도 문까지 있는 아담한 나무집 한채를 차지한 모습입니다.

 

 

 

귀애고택의 사랑채인 귀애정은 안채의 뒤쪽에 자리해 있는데,

1877년 조극승의 사후  1917년에 그의 동생 성재 조규승이 공을 추모하기 위해   정사터에 현재의 모습으로 중건했습니다.

 

 

 

귀애 고택의 귀애정(龜厓亭)으로,

귀애고택의 특징은 연못으로 3면이 터져 있는데,

이는 담장을 둘러 폐쇄적인 형태를 띄고 있는 영남의 일반적인 정원구성 수법이 아니라 호남의 원림구성 수법을 보여주고 있어서,

귀애정을 둘러싼 주변 풍경은 자연을 고스란히 고택안으로 끌어들여 더욱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안채에서 구애정으로 가는 길목에는 사당이 자리해 있는데,

 

 

 

귀애정을 건립하면서 정자 왼쪽에  조극승의 사당 2칸을 건립했었는데,

1978년 정자의 기둥과 마루의 보수가 있었고 귀애가 불천위에 으르면서 사당을 현재의 3칸으로 증축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사당의 주인 조극승(曺克承)[1803~1877]은 조선 후기의 학자로 본관이 창녕이고 자는 경휴(景休), 호는 귀애(龜厓)로,

성품과 도량이 돈후하고 단정했으며, 효도와 공부에 힘써 1831년 순조(純祖) 신묘년(辛卯年)에 식년문과에 등제 하였고, 

순조 때, 사간원간사, 사헌부 집의를 역임하고 공조참의에 제수되어 당상관까지 올랐고,

벼슬을 내려놓은후 고향으로 내려와 집근처로 현재 귀애정 터에 작은 건물을 짓고 후학 양성에 힘썼다고 하며 시를 읊고 선비들과 교류하며 만년을 보냈습니다.

일반적으로 열복(熱福)을 누렸던 이는 청복(淸福)을 누리기 어렵다고 하는데 두가지를 모두 누렸던 인물로,

열복이란 높은 벼슬에 부귀영화 이고, 청복이란 깊은 산속에 살며 맑은 물에 발 담그고 산승이나 우객과 왕래하며 소요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아 사는 삷을 의미합니다.

 

 

 


조선후기의 건축물여서인지 기와의 문양도 볼수있어서,

 

 

 

사당으로 통하는 솟을 외문의 기와의 문양이 선명합니다.

 

 

 

사당에서 솟을 외문을 들어오면 보이는 귀애정(龜厓亭)으로

조극승(曺克承)을 위한 추모의 정자로 날아갈듯이 서있습니다.

 

 

 

귀애정(龜厓亭)의 귀애'는 '거북이가 있던 언덕'이라는 의미로 선상지의 경사지에 있는데,

배치는 후고전저(後高前低)형의 지형에 정자와 사당 그리고 연지의 세 구역으로 구분해 북동향으로 자리해 있습니다.

 

 

 

귀애정은 장대석의 기단 위에 두칸의 온돌방, 한칸의 마루방을 두었는데,

한 칸 온돌방을 기본구성으로 한뒤 전면에 반 칸의 퇴를 두어 툇마루와 계자각 난간을 시설해 두었고,

배면은 반 칸을 안으로 들여 벽장과 툇마루를 두어 겨울의 찬바람에 대비해 두었습니다.

 

 

 

귀애정의 누마루에 올라 옛선비의 감흥에 젖어 봅니다.

 

 

 

 

온돌방 앞에있는 누마루는 마루 바깓에 쪽마루가 둘러져 있으며 계자 난간을 돌려 정자의 운치를 한껏 높였습니다.

 

 

 

정자 앞 연지에는 육각 정자가 세워져 있으며, 

이곳으로 통하는 나무다리는 30년전에 허물어져 복원을 해두었다고 합니다.

 

 

 

연지에 있는 육각정자에도 올라봅니다.

 

 

 

조선의 선비사상에 입각한 하늘을 뜻하는 네모난 연못에 땅을 의미하는 둥그런 하나의 섬은, 

음양의 이치를 표현하는 것으로 연지의 둥근섬에 정자를 세워둔것은 또하나의 정점으로 보여집니다.

 

 

 


조선 전기의 문인,학자인 정극인(丁克仁)은 상춘곡에서,

"청풍명월 말고 무슨 벗이 또 있을고" 라며 달과 노니는 일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다는데,

방 앞의 툇마루의 현판은 "몽희헌(夢喜軒)"으로 "꿈 속에서 기뻐하다" 라는 의미로,

도연명의 "도화원기"도 무릉도원에서 즐겁게 놀다 온 꿈같은 이야기는,

"인생(人生)은 한바탕 꿈이니 기쁘게 즐기다가 가자" 라는 도가적 풍류를 담은 의미의 현판으로 보여집니다.

 

 

 

조선의 선비가 고향으로 돌아와 시를 짓는데 중국의 시인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빼놓을 수 없는데,

조극승(曺克承)은 "동쪽 울타리에서 국화를 따며 아득한 남산을 본다" 라는 도연명 풍의 시집 '귀애집'을 남기고 있어 들여다 봅니다.


울밑에 서리 맞은 국화

온산에 가득한 단풍잎 사이사이

갑자기 입게 된 조화옹의 사랑이라

밝은 향기 담백함을 스스로 간직하니

그 마음 알았을 때 묻노니 그때가 언제인고

"울타리 아래 서리 맞은 국화" 라는 시 입니다.

 

 

 

귀애정의 연지앞을 통해 들어왔던 안채쪽으로 나옵니다.

 

 

 

안채인 관인재( 寬忍齋)의 팔작지붕의 옆면에는 거북이의 형상이 새겨져있어,

"거북이가 있던 언덕" 이라는 의미인 귀애(龜厓)를 되새기게 합니다.

 

 

 

귀애정을 나오며 병풍 모양의 철제 조형물도 볼수가 있는데,

2011년 별별마을 미술프로젝트의 일부로 설치된 작품으로 보여집니다.

 

 

 


단순하게 병풍 모양의 철제 조형물이 아니라,

병풍에는 그림대신 이곳을 소개하는 글씨가 빼곡하게 씌여져 있어서 한참을 들여다 봅니다.

 

 

 

이곳 귀애고택 에서는 "한옥 스테이" 도 진행한다고 하는데,

"행랑채"는 물론 내당인 "관인재" 와  내당의 건너채, 그리고 귀애정까지 고택체험을 할수있다고 하니,

온라인으로 찾아 보시면 상세하게 안내가 되어 있으니 참고 하시면 됩니다.

 

조선 후기의 건축양식도 둘러볼수가 있고,

여건이 되시면 고택에서의 호젓한 하룻밤도 즐기실수 있는곳으로,

영천의 아름다운 정자, 귀애고택(龜厓古宅)의 귀애정(龜厓亭) 방문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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