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으로의 여행에는  여러곳의  명소가 있지만,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인 온양온천(溫陽溫泉)과 충무공의 현충사가 있으며,

더불어 아산 여행에서 빼놓을수 없는곳인 민속마을인 "외암(外巖) 마을" 을 찾았습니다.

 

외암리 민속마을 주차장에서 가장먼저 눈에 들어오는곳은,

외암마을의 저잣거리로 처음 오시는분들은 이곳이 민속마을의 시작으로 착각할수도 있는데..

 

 

 

마치 입장료를 내고 민속마을로 들어가는곳처럼 입구를 두어 더욱 그러 합니다.

 

 

 

저잣거리 입구에는 소달구지 조형물이 있어서 포토존으로 인기만점이구요,

 

 

 

저잣거리는 마포구 용강동에 있던 옛날 시장거리로서,

가게가 죽 늘어서 있는 길거리를 말함인데 민속마을의 한부분처럼 깔끔하게 꾸며놓았습니다.

 

 

 

저잣거리 에서는 간식또는 먹거리 가게들로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안쪽에는 소공연장과 억새의 군락도 조성해두어 거닐어 봄직 합니다.

 

 

 

외암마을로 들어가기전에 마을의 안내도를 먼저 살펴 봅니다.

이곳은 다른지방의 민속마을에 비해 양택의 3대 필수 조건인 배산임수(背山臨水)와 전착후관(前窄後寬) 그리고 전저후고(前低後高)를 두고 보았을때,

지형적으로는 탁월한 길지는 아니지만 회룡고조(回龍顧祖) 형국이라고도 하는데,

풍수지리 등을 고려할 때 여러 가지 면에서 불리한 입지에 조성된 마을 이지만,

숲을 조성한 비보나 물을 끌여들이는 보완등을 통해서 극복한 예라고 할수 있는곳 입니다.

예를 들자면, 마을의 주산인 설화산(雪華山)은 ‘화산(火山)’으로서 그 ‘화’의 기운이 마을에 미칠 것으로 생각하여

화와 상극하는 ‘물(水)’을 마을로 끌어들여 ‘화’의 기를 제압하자는 뜻에서 마을내 수로를 만든 것으로,

이를 풍수에서 ‘염승(厭勝)’이라고 하는데,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에 스스럼없이 적응해 나가기 위한 빼어난 착상이라고 합니다.


 

 

아산 외암마을(牙山 外巖마을)의 전경으로,

이곳은 약 500년전에 강씨와 목씨 등이 정착하여 마을을 이루었다고 전함며,

조선 명종 때 장사랑을 지낸 이정이 이주해 오면서 예안 이씨가 정착하여 대대로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후 이정의 후손들이 번창하고 많은 인재를 배출하면서 점차 양반촌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는데,

이정의 6대손인 이간이 호를 ‘외암’이라 지은 후 마을 이름도 "외암" 으로 불려졌다고 합니다.

 

 

 

외암마을의 시작은 다리가 출발점이고 별도의 입장료가 있어야 합니다.

 

 

 

다리를 건너기전에 안동 권씨의 정려각이 자리해 있는데,

사유지에 있어서인지 정여각 주변에 장사를 하고있어 찾아 보기에 거북함을 느끼게 합니다.

 

 

 

정려각의 주인인 권씨는 예안 이씨 이용덕에게 13세 때 시집왔는데 불행하게도 다음 해에 남편이 요절했습니다.

청상과부가 된 권씨는 늙은 시어머니를 봉양하면서 가사를 이끌다 86세에 사망했는데,

이것이 알려져 정부로부터 표창을 받자 1978년에 이곳에 정려각을 세웠습니다.

 

 

 

다리를 건너기전 개울 왼쪽에는 섶다리가 재현되어 있는데,

섶이란 작은 나뭇가지를 지칭하며 섶다리는 초겨울에 나무, 솔가지, 흙 등으로 다리를 만들어 건넜는데,

여름 장마에 떠내려가는일이 잦았던 임시 다리의 하나로 해마다 다리를 새로 놓거나 손보아야 했으므로,

매년 마을 사람들이 연중행사로 공동으로 만들면서 결속력을 강화하는 기능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원래 섶다리는 마을 입구로 들어가는 곳에 있었으며 바닥 바위 위에 섶다리를 만들 때 사용한 돌구멍이 남아 있는데,

섶다리는 매년 홍수가 날때 떠내려 가곤 하였는데 이곳의 다리는 그러지 않도록 구조를 튼튼하게 보강해 전통 섶다리와는 다소 다른 형태입니다.

 

 

 

외암마을의 명칭의 유래를 살펴보면,
마을 서쪽에 위치한 송악면 소재지 인근에 조선 초기부터 시흥(時興)이라는 역(驛)이 있었고,

시흥역의 말을 거두어 먹이던 외양간이 외암마을에 있었다고 하여 예부터 ‘오양골’이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외암" 이라는 이름은 바로 오양골의 "오야"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외암마을로 들어가는 다리에서의 모습으로 개울가의 물레방아간과 주변풍경이 민속마을임을 실감하게 합니다.

 

 

 

다리를 건너면 맞이하는 솟대를 배경으로 서있는 장승의 모습으로,

나무의 뿌리까지 이용해 거꾸로 세워 두었는데도 어색함을 느낄수 없습니다.

 

 

 

다리를 건너기전 보았던 물레방아간으로

필요시에만 사용하여서 인지 물레방아는 돌아가지만 방아는 사용하지 않고 있는데,

방문객이 많은 주말이나 휴일만 이라도 작동을 하게하여 찾는이들에게 민속마을의 볼거리를 제공했으면 하는바램입니다.

 

 

 

개천 바닥에 너른 암반이 크게 비스듬히 자리해있고 그위 반석에 글이 새겨진 석각이 보입니다.

"외암동천(巍岩洞天)" 의 글씨는 높이 52cm, 너비 175cm으로 외암 이간의 직계 후손인 이용찬이 썼다고 합니다.

 

 

 

단을 하나 차이를 두고 "동화수석(東華水石)"의 글씨도 보이는데,

높이 50cm, 너비 2m 정도의 크기로 이글씨 또한 예안 이씨인 이백선이 썼다고 합니다.

 

 

 

물레방아간 위로 돌담안에 들어가 있는 한옥의 모습이 보이고..

 

 

 

마을을 들어서면 작은 동산이 있고 그안에는 묘소가 자리해 있는데,

세월의 흔적이 보이는 석물이 있어 양반가의 묘소로 보이는데 마을의 초입에 자리해있어 특이 합니다.

 

 

 

외암마을은 고택과 담장이라 할수 있습니다.

마을 어디를 가도 돌담장으로 이어진 모습을 볼수있는데,

남도의 낙안읍성과 경북 군위의 한밤마을을 연상케 하는데 돌의 크기나 모양새는 지역의 특성탓인지 조금달라 보입니다.

 

 

 

마을로 들어서니 높지않은 돌담장 너머로 감홍시를 따고있고 방문객들은 그광경을 구경합니다.

과일은 뭐니해도 나무에 달려있는 것이 싱싱해서인지 가장 맛있습니다.

 

 

 

외암마을을 다니다보면 발견하게 되는것으로,

사람이 살지않는 비어있는 초가들을 보게되는데 민속마을로 지정이되어,

빈집을 보수하여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의 관람용으로 관리 하는듯 보여집니다.

 

 

 

본채와 헛간채도 말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어 충청지역의 가옥을 살펴보는데에도 도움이 되는데,

문화재는 아니어도 안내표지로 가옥에 대한 설명이라도 해두었으면 이해에 도움이 될텐데 아쉬움이 남습니다.

 

 

 

돌담은 외암마을의 특징으로,

마을 내 모든 가옥은 돌로 담장을 둘러져 있슴을 볼수가 있는데,

이곳의 지질조건상 마을 지표면에 수많은 괴석(塊石)이 형성되어 있어서,

담장에 사용된 돌은 마을 현지에서 채취 것으로 총 연장은 약 6㎞입니다.

또한 경작지를 만들기 위해 돌을 걷어내어 논밭의 축대를 쌓기도 하였습니다.

 

 

 

돌담 사잇길을 따라 마을을 돌다보면 디딜방아의 모습도 보입니다.

 

 

 

디딜방아는 곡식을 찧거나 빻는 데 쓰는 농기구로 방아와 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땅을 움푹 파서 홈파진 절구확을 묻어 놓은 것을 확이라 하며, 방아는 나무로 만들어져 있으며,

두 갈래진 다른 양 끝을 발로 디디게 되어 있는구조로 물을 이용한 물레방아가 기계식 이라면 디딜방아는 인력식이라 할수있겠습니다.

 

 

 

외암마을의 고택인 "송화댁" 입구에 있는 초가로,

 

 

 

마음씨 좋은 이곳의 주인께서는 나들이를 나온 가족에게 감홍시를 딸수있게 배려를 해주십니다.

어린이가 감을 따고 아빠가 곁에서 코치를 하는 모습이 정겨워 보입니다.

 

 

 

외암마을의 담은 모두 돌로 쌓았는데 줄눈이나 속흙 채움 없이 막돌로만 쌓아올린 담장여서,

두텁게 돌만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배수가 잘되고 동결로 파괴되지도 않습니다.

돌각 담장의 두께는 위로 갈수록 줄어들어 맨 윗부분은 80~90cm로 두터운 편이고,

돌담의 높이는 일정하지 않지만 대부분 성인의 눈높이인 1.5m 이하로 되어 있는데,

두 공간 사이가 눈높이 이상인 담으로 차단될 경우 서로 폐쇄적이고 배타적으로 인식하는데,

이를 의도적으로 피하려고 그리 높지않은 담장을두었슴을 볼수 있으며,

외암마을의 돌각 담은 낙안읍성마을의 돌각 담과 함께 '아름다운 마을 돌각 담'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마을 중간에서 만난 삽살개로,

집앞에서 경계심도 보이지 않고 물끄럼이 방문객을 바라만 봅니다.

 

 

 

마을의 어느집에는 한해를 위한 지붕공사를 마쳤나 봅니다.

이엉으로 초가지붕을 말끔하게 단장한 모습입니다.

 

 

 

아직은 마무리가 남았는지 한분이 지붕위에 올라가 있고,

아래에서는 위를 올려다보고 이리저리 위치를 알려주는것이 지붕 잇는 작업의 마무리 모양내기를 하는듯 합니다.

 

 

 

초가 지붕의 두께가 상당 합니다.

해를 거듭하면서 지붕을 올리다 보니 이렇게 두툼해졌나 봅니다.

 

 

 

아직 초가를 올리지않은 이곳도 사람은 살지 않아 보이는데,

칸수도 제법 여러칸에다 크진 않지만 대청마루까지 있어서 빈농의 가옥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외암마을은 역시나 돌담의 마을입니다.

돌담으로 시작해서 마을을 나오기까지 돌담이 보이지 않는곳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 입니다.

 

 

 

마을을 나오는길에 마을앞 추수가 끝난 논에는,

시골 체험을 할수있도록 해둔 모습으로 어린이들에게 인기 만점여서 가족 나들이에 좋은 추억의 장소로 활용되고있는데,

 

 

 

이곳 외암마을 에서는 2000년부터 매년 가을 짚풀축제를 하고 있어서,

짚풀과 관련된 주제와 함께 전통놀이, 음식, 전시회 등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외암마을을 찾아오는 방문객이 년간 약 30만 명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도시생활에서 접해볼수 없었던 추억이 담겨진 시골문화를 즐길수 있습니다.

 

 

 

옛날 시골에서 추수가 끝나면 볏단을 논의 가장 자리에 쌓아두었고,

그곳이 시골 어린이들에게 인기있는 놀이터였는데 그것을 활용한듯 합니다.

 

 

 

조선후기의 전통적인 상류·중류·서민가옥이 한마을에 고스란이 남아있어,

마을의 형성이나 전통가옥의 연구에 매우 가치가 있으며,

설화산에서 시작된 냇물이 마을을 통과시켜 이루어낸 정원은 매우 특색있고 운치있는 곳이 외암마을 입니다.

 

 

 

마을에는 조선 후기에 만든 반가 정원이 여러 곳에 남아 있어서,

주로 반가의 사랑마당에 정원을 꾸며두었는데 이 정원은 돌담, 인공수로와 함께 이 마을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인데,

고택에 관한 내용은 따로이 정리해서 올려두겠습니다.

 

가을의 수확을 마칙고 겨울을 준비하는 외암 민속마을 방문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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