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외곽 지역인 현풍의 문화재 답사길에,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에 있는 정자 관수정(觀水亭)을 찾았습니다.

 

관수정(觀水亭)으로 오르는길의 모습으로,

이곳은  도동서원 바로위에 자리해 있으나 도동서원의 유명세에 가려, 

그다지 많이 알려져있지 않는곳으로 찾는이도 많지않습니다.  

참고로, 경남의 합천과 전남의 장성에도 관수정이 있으며,  

그외 문화재로 등록되지 않은 곳도 많은데 그이유는 정자의 이름 때문으로 보여집니다.

 

 

 

대구시 문화재자료 36호인 관수정은,

1624년 임진왜란 때 곽재우 장군과 함께 공을 세운 의병장으로,

김굉필의 5대손인 사우당(四友堂) 김대진(金大振:1571~1644)이 경상감사 이민구와 지역 사림의 협조로,

1624년(인조 2년)건립하였으나 1721년 소실된 것을 1866년 그의 후손 김규한(1810~1837)이 중건한 건물로,

정면 5칸, 측면 1칸의 일자형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팔작지붕이며,

가운데 대청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1칸의 온돌방을, 왼쪽에는 2칸의 온돌방을 배치한 구조 입니다.

 

 

 

관수정(觀水亭) 의 현판으로,

맹자가 말한 "원천에서 근본이 있고 반드시 그 하류의 물결을 본다."는 의미에서,

관수정(觀水亭) 이라고 이름 하였다고 중건지(重建誌)에 쓰여 있다고 합니다.

 

 

 

관수정(觀水亭)의 내력을 알아 볼수있는  중건기(重建記) 편액이며,

 

 

 

나란히 걸려있는 편액의 왼쪽은 한주 이진상의 차운시 이며,

중간에는 성재 허전의 차운시와  오른쪽에 김규한의 원운시가 걸려 있습니다.

참고로 차운시(次韻詩)는 남이 지은 시운(時韻)을 따서 다시 지은 시(詩)를 뜻합니다.

 

 

 

관수정 마루에서 보이는 천정의 구조로, 

상량식 때 쓴  "동치오년 병인정월십팔일(同治五年 丙寅正月十八日)"이라고 적힌 글자의 일부가 보입니다.

 

 

 

정자의 마루에서는 한그루의 회화나무와 낙동강의 시원함이 들어옵니다.

 

 

 


관수정을 보수하기위한 목재로 여겼는데..

 

 

 

 


정자앞 마당의 오른쪽에 기초를 해둔 모습이 보여,

또다른 건축을 준비하는듯 보이는데 기초로 보아 정면 3칸정도의 규모로 그리 큰건물은 아닌듯 합니다.

 

 

 

마당의 다른쪽에 석재와 목재를 보관해둔 모습도 보입니다.

 

 

 

정자의 뒤쪽은 어수선한 모습으로,

관수정은 주위 자연환경과 잘 조화되고 건물 각부의 비례구성이 단정하고 안정감을 느끼게 하며,

건물에 사용된 부재의 치수가 비교적 넉넉하고 치목(治木)수법이 치밀하고 결구(結構)상태가 견실하며,

원형을 잘 보존하여 조선후기 정자건축의 흐름을 잘 표현하는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하는데 관리에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달성의 명소인 도동서원을 찾으신다면,

서원의 입구마당에서 올려다 보이는 정자로,

낙동강의 강물을 내려다보는 정취를 즐길수있는 "관수정(觀水亭)"도 찾아 보시길 권합니다.

대구 달성의 홀로 서있는 정자 문화재 관수정 방문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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