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끝자락에,

경북 구미시의  해평 도리사(桃李寺)를 찾았습니다.

 

도리사(桃李寺)로 들어가는 길의 모습으로,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송곡리 태조산(太祖山)에 있는 사찰 입니다.

 

 

 

소나무 숲이 인상적인 도리사(桃李寺)는,

이른 봄에 복숭아와 배꽃이 만발하는 곳이라 하여 이름 지어졌으며,

신라 19대 눌지왕때 아도화상이 세운 해동 불교의 발상지로 알려져있는 곳으로,

아도스님이 중국에서 현창화상에게 선도를 배워 19세에 자명을 받아,

선산 도개부에 있는 모례의 집에서 굴실을 지어 거처하다가 시봉자가 늘어나게 되어 진기승지를 찻아 결암봉불 하던중,

이곳에 오색도화가 설중에 만개하여 사호를 도리사라 하니 해동 최초 가람으로 신라불법의 초전법륜지 입니다.

 

 

 

도리사의 초입에 있는 화장실도 오래된듯 보이나 보수중여서 들여다 볼수는 없습니다.

 

 

 

도리사(桃李寺)의 이야기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불우조」에 전하는 설화에 따르면,

아도(阿道)가 신라에 불교를 전파하기 위하여 서라벌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겨울인데도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만발하여 있음을 보고 그곳에 절을 짓고 도리사라 하였다고 하는데,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이 절이 신라 최초의 사찰이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처음의 절터는 태조산 기슭에 있는 옛 절터로 보고 있으며  지금의 절이 있는 곳은 금당암(金堂庵)이 있었던 곳입니다.

 

 

 

2005년에 건립된 범종각으로,

정면 1칸, 측면 1칸 규모의 사모지붕 건물로,

범종각에는  사물 가운데 범종만 봉안되어 있습니다.

 

 

 

담장을 두고 가지런히 놓인 장독대의 모습에서, 

사중(寺中)스님들의 정갈한 수행과 일상이 찾아볼수 있습니다.

 

 

 

아도화상(阿道和尙)의 좌상으로,

아도화상의 별명은 묵호자(墨胡子)라고도 알려졌는데  그의 살빛이 검은데서 온듯 합니다.

아도는 원래 고구려 사람으로 부친은 위(魏)나라 사람 아굴마(阿掘摩)로,

그를 찿아 중국으로 들어가던 도중에 부자(父子)가 뜻밖에 상봉하였고,

그후 현창화상(玄彰和尙)에게 수학을 하였으니  한국 최초의 승려인 셈입니다.

263년(미추왕 2) 신라로 가서 왕성의 서리(西里)에 머물렀으며,

아도화상이 대궐에 들어가서 불교를 행하기를 청하였으나  전에 보지 못하던 것이라 하여 꺼려하였고,

심지어는 죽이려는 사람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일선현(一善縣)  모례(毛禮)의 집에 숨어 살았습니다.


264년 성국공주(成國公主)가 병이 들어 무당과 의원이 치료를 하였으나 효험이 없자,

사방으로 사람을 보내 의사를 구하였는데,

아도화상이 대궐로 들어가 병을 치료한 끝에 낫자 왕이 대단히 기뻐하며 소원을 물었습니다.

아도화상이 천경림에 절을 세워 불교를 크게 일으켜 방가(邦家-나라)의 복을 비는 것이 소원이라고 하자,

왕이 허락하여  띠로 집을 덮고 흥륜사(興輪寺)를 창건한 뒤 불법을 강연하였으며,

모례의 누이인 사씨(史氏)도 이때 여승이 되어 삼천기에 절을 짓고 영흥사(永興寺)라 하였습니다.

얼마후  미추왕이 세상을 떠난 뒤 사람들이 아도화상을 해하려고 하자,

모례의 집으로 돌아와 스스로 무덤을 만든 다음 문을 닫고 들어가서 자절(自絶)하여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삼국유사』의 다른 기록과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아도화상이 신라 소지왕 때 3명의 시자를 데리고 일선현 모례의 집에 와서 있다가 몇년뒤 병 없이 입적하였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고려말의 공만왕사인 나옹스님의 시로,

靑山見我無語居  (청산견아무어거)

蒼空視吾無埃生  (창공시오무애생)

貪慾離脫怒抛棄  (탐욕이탈노포기)

水如風居歸天命  (수여풍거귀천명)

한문 원시로 옮겨 보았습니다.

 

 

 

스님들이 공부하는 선방 태조선원(太祖禪院) 으로,

도리사의 창건 역사는 전하지 않으며, 1677년(숙종 3)의 화재로 대웅전을 비롯한 모든 건물이 불타 버린 뒤,

1729년(영조 5)대인(大仁)이 아미타불상을 개금(改金)하여 금당암으로 옮겨 봉안하고 금당암을 도리사로 개칭하여,

1807년(순조 7) 절을 중창하였고, 1823년 조사전(祖師殿)을 중수하였으며, 1876년(고종 13) 극락전을 중건하였고,  1922년 칠성각을 건립하였습니다.

 

 

 

태조선원(太祖禪院) 의 현판으로 태조산 아래에 있어 명명된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포대화상(布袋和尙)도 있습니다.

포대 화상은 중국 당나라 후량(後梁)의 고승으로 법명은 계차(契此)이며 악림사에서 출가하였는데,

뚱뚱한 몸집에 항상 웃으며 배는 풍선처럼 늘어져 괴상한 모습으로,

작대기에 항상 큰 자루를 메고 다니면서 무엇이든 동냥한 것을 그 속에 담곤 하였기 때문에 그러한 별명을 얻게 되었는데,

그자루 속에는 별별것이 다들어 있어서 중생이 원하는대로 다 내어주어서 포대스님 이라고도 불리웠으며,

포대화상은 배가 나오고 대머리이며 때로는 호탕하게 웃고, 때로는 거칠면서도 선종에 명석하였던 인물로,

미륵보살의 현신(現身)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극락전(極樂殿)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다포계 건물로,

이곳 도리사는 부처님 진신사리가 나온 곳이라 적멸보궁이 있어 부처님을 따로 모시지 않는 곳인데,

극락전은 아마 진신사리가 발견되기 전에 지어진 것이 아닌가 여겨지며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모신곳 입니다.

 

 

 


극락전은  불교도의 이상향인 서방극락정토를 묘사한 법당으로,

17세기경에 창건됐으나 1875년(고종 12) 용해화상(龍海和尙)에 의해 중수되었습니다.

 

 

 

내부에는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는데,

아미타불(阿彌陀佛)은 자기의 이상을 실현한 극락정토에서 늘 중생을 위하여 설법하고 있는 형상으로,

이 불상은 조선시대 양식으로 높이 129㎝, 무릎너비 92.5㎝로서 1731년과,1764년에 이어 1876년에 개금하였습니다.

 

 

 

 


극락전 천정의 모습으로 목재의 조각과 단청이 화려합니다.

 

 

 

극락전 초석은 자연석을 골라 사용했슴을 보여줍니다.

 

 

 

보물 제470호로 지정된  도리사 석탑으로,

극락전 앞뜰에 자리해 있는 고려 중기의 석탑이며 높이 330㎝의 크기로  각 부재의 결합방식이 특이한 이형 석탑으로,

여러 개의 석주를 맞대어 기단부를 형성하고 중층의 탑신부와 상륜을 배치한 특이한 형식의 석탑입니다.

 

 

 

크지않은 규모이지만 화려함이 돋보이는 극락전앞을 지나,

 

 

 

아래로 내려가는 길을 잡아 잠시 내려가면,

 

 

 

도리사(桃李寺) 남쪽 비탈진 송림(松林) 속의 평탄한 곳에 아도화상 사적비가 자리해 있습니다. 

"아도화상 사적비"는 아도화상이 고구려에서 신라로 와서 불교를 포교한 내력을 적어둔 비석으로,

높이 296㎝, 비신 높이 197㎝로 그 뒷면에 자운비(慈雲碑)가 음각되어 있으며,

사적비는 1639년(인조 17)에, 자운비는 1655년(효종 6)에 쓰여 졌습니다.

곁에 있는 도리사 "불량답시주질비"는 비슷한 시대에 도리사 신도들이논과 밭을 시주한 내역을 담고 있는 비석입니다.

 

 

 

아도화상 사적비 앞쪽에는 고인돌을 연상케하는 커다란 바위가 놓여 있는데,

 

 

 

아도화상이 참선을 했다는 좌선대로,

돌위에 큰 돌이 정연하게 놓여 있고 바위 위에는 평평하게 깍여져 있어..

 

 

 

아도화상이 좌선을 한곳으로 전해지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자연스럽지 못한 인위적으로 쌓은듯한 모습이 보이는데,

일부 학자들은 좌선대라기 보다는 탑을 올렸던 기단이 아닌가 하는 해석도 있습니다.

 

 

 

내려 왔던길을 다시올라 경내로 향합니다.

 

 

 

삼성각(三聖閣)입니다.

사찰에 따라 독성각,산신각,칠성각이 있으며  대개 삼성각에 삼신을 같이 모시기도 하는데,

 

 

 

삼성각의 현판으로,

 

 

 

산신(山神) 또는 칠성(七星)또는 홀로 깨우침을 얻은 독성(獨聖)을 함께 봉안하고 있는 삼성각으로,

삼성은 각각 재물과 수명과 복을 관장하는 존재로서  우리나라의 전통신앙인 삼신신앙(三神信仰)과 불교의 습합현상을 보여주는곳 이기도 합니다.

 

 

 

삼성각내부의 회벽이 세월의 흐름으로 일부가 떨어지고 있어 보수가 필요해 보입니다.

 

 

 

지붕쪽을 올려다보니 기와불사를 하신분들의 내용이 기와 아래로 보여 눈길이 갑니다.

 

 

 

도리사 세존사리탑(世尊舍利塔)으로,

사리탑은 석종 부도 형식이며 상부에 "세존사리탑(世尊舍利塔)" 이라는 명문이 있는데,

세존사리탑에서 발견된 사리는 무색투명하고 둥근 콩알 크기의 큰 사리로,

우리 나라에서 발견된 것 중 가장 가치 있는 사리로 평가되고 있으며,

1977년 4월 세존사리탑(世尊舍利塔)을 해체, 복원하다가 금동육각탑 형태를 띤 사리구(舍利具)와,

석가모니 진신사리(眞身舍利) 1과가 발견되었으며  사리구는 현재 직지사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세존사리탑(世尊舍利塔)에서 나온 금동육각사리함은,

8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이 되며 국보 제208호로 지정되어,

현재 직지사 성보 박물관에 위탁 소장되어 있어 참고로 자료를 가져왔습니다.

 

 

 


세존사리탑뒤에 서있는 노거수 고사목으로,

세월의 흐름을 대면해주는듯 묵묵히 서있습니다.

 

 

 

적멸보궁을 오르는 계단 앞에서,

해맑은 모습으로 정겹게 맞이하는 "천진동자불"로,

어느 누군가가 걸어둔 목걸이가 사찰을 찾은이들의 마음을 대신해 주는듯 합니다.

 

 

 

도리사의 적멸보궁으로,

이곳은 세존사리탑(世尊舍利塔)에서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발견후 적멸보궁을 짓고 뒷쪽에 새로이 사리탑을 세웠다고 합니다.

 

 

 

적멸보궁(寂滅寶宮) 현판으로,

이곳은 적멸도량(寂滅道場)을 뜻하는 전각으로  불사리를 모심으로써,

부처님이 항상 이곳에서 적멸의 낙을 누리고 있는 곳임을 상징합니다.

 

 

 

그러한 연유로 보궁 법당안에는 당연히 불상이 따로 없고 창문 넘어 적멸보궁 사리탑이 불상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적멸보궁은,

경남 양산에 있는 영취산 통도사, 강원도 평창에 있는 오대산 상원사, 강원도 설악산에 있는 봉정암,

강원도 영월에 있는 사자산 법흥사, 강원도 정선에 있는 태백산 정암사 가 5대 적멸보궁 사찰로 유명하며,

금강산 건봉사, 비슬산 용연사와 더불어 이 곳 도리사는 8대 보궁사찰로 알려져 있습니다.

 

 

 

적멸보궁 뒤편에있는 석가여래 사리탑으로,

1977년 세존사리탑에서 발견된 사리를 봉안하기위해 1987년 법등스님이 조성하였습니다.

 

 

 

적멸보궁옆에 자리한  팔정도(八正道) 조각으로,

불교 수행에서의 8가지 올바른 길을 알려 주는 수레바퀴로,

팔정도지(八正道支) 또는 팔정도분(八正道分)이라고도 하며 불교를 실천 수행하는 중요한 종목을 여덟가지로 나눈 것으로,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념(正念), 정정진(正精進), 정정(正定)을 말하며,

팔정도(八正道) 조각의 수레바퀴를 아도화상이 끌고 모례장자가 밀고있는 모습이 이채롭습니다.

 

 

 


적멸보궁을 나와 사찰의 입구로 나오는길에 개인의 소망이 담긴 돌탑들도 돌아보고..

 

 

 

사찰 서쪽에 자리한 서대로 향하는 길을 잡습니다.

 

 

 

도리사 서쪽 전망대인,

서대(西臺)의 멋진 풍경과 더불어 수련의 장소인듯 좌선대의 모습도 보이고..

 

 

 

태조산에서 내려다 본 풍경으로, 

저물어가는 가을의 넉넉함을 담아 내고 있습니다.

 

 

 

태조산은 고려 태조 왕건이,

당시 태조산 주변인 일선군(선산)에서 백제 견훤의 군사를 대파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며,

 

 

 

서대에서의 산아래로 향한 풍경은 일품여서,

이곳을 다녀간 유홍준 교수도 낙동강의 수려함을 인상깊게 보았다고 합니다.

 

 

 

노을이 아름다운 서대(西臺)는,

도리사를 창건한 아도화상 스님이 손가락을 곧게 가르켜 김천 직지사 터를 잡았다는 설화가 전해져 내려오는 곳으로,

굽이굽이 흐르는 낙동강과 금오산을 조망 할수있어 도리사의 또다른 명소로 자리잡았습니다.

 

 

 


서대에서 내려오며 만나게되는 소나무의 군락 또한 도리사의 즐길거리 입니다.

 

 

 

도리사에서 내려오는 길을 잡습니다.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활짝 피어있어 길지에 자리잡은,

신라 최초의 절로 전해지는 곳으로 서대의 아름다움이 함께있는,

구미 해평의 "도리사(桃李寺)" 방문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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