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달성의 유적지를 돌아보고 돌아오는길에,

옛추억을 더듬어 사문진(沙門津)나루터를 찾았습니다. 

 

대구인근에서는 화원유원지로 더알려진 사문진(沙門津)나루터로,

입구에는 주막촌 안내와 "임자없는 나룻배” 촬영지의 표석이 있습니다.

 

 

 

1932년 일제 강점기,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대구 계성학교 출신의 이규환(1904~1982) 감독의 무성영화로,

나운규, 문예봉 등 당시의 유명배우가 출연한 "임자없는 나룻배"는 1932년 일제치하에 단성사에서 개봉돼,

향토색과 저항정신, 서정적인 풍경을 담아 우리 영화사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는 영화 입니다.

 

 

 

안으로 들어서면 장승이 웃는 얼굴로 방문객을 맞이하고,

사문진(沙門津)나루를 지켜온 500여년 수령의 팽나무가 웅장한 모습으로 서있습니다.

 

 

 

노거수 팽나무 앞에는 해학적인 얼굴의 장승형태의 느림보 우체통이 보이고,

 

 

 

팽나무 주변으로 금줄대신 소망을 곱게 접어둔 모습들도 들어 옵니다.

 

 

 

초가지붕의 주막촌 뒤에서 옹기종기 모여있는 장독의 모습도 정겹게 어울립니다.

 

 

 

500년 수령의 팽나무에는 연리지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나무의 뿌리에서 함께하는 연리지가 일반적인데,

이곳은 나무의 가지가 이어져 한몸이된 모습으로,

한쪽이 죽어도 다른 한쪽에서 영양을 공급해주어 살아 나도록 도와주는 연리지는,

두몸이 한몸이 된다고 하여 부부의 영원한 사랑에 비유하며 이나무에 빌면 세상의 모든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사문진 나루로 나왔습니다.

낙동강 상류쪽의 모습으로 낙동강과 금호강이 합류하는 모습이 보이고,

그위로는 너르게 펼쳐지는 달성습지와 낙동강의 여러개의 보 중에 가장 아름답다는 강정보가 있습니다.

 

 

 

하류쪽으로는 하루를 보내는 일몰이 아름답게 펼쳐지고..

 

 

 

사문진 나루의 유람선 입니다. 

이곳에서는 낙동강 최초의 유람선과 나룻배를 운항하고 있는데,

사문진나루를 출발해 달성습지~강정고령보 디아크~달성보 일원까지 한바퀴를 돌아오는 코스로 운항합니다.

 

 

 

1930년대 이곳 화원 유원지의 전경으로,

낙동강의 고령군 다산면 호촌리 사문과 달성군 화원을 잇던 조선시대 나루터로,

사문진은 과거 경상도 관아와 대구지역 일원에 낙동강 하류로부터 유입되는 물산운송에 중심적 역할을 담당한 낙동강의 대표적인 나루터였다고 합니다.

 

 

 

나루터 주막촌의 한쪽에는 "화원 나루공원"을 조성해 두어서 돌아 봅니다.

 

 

 

작은 연못에 있는 복두꺼비 앞에 동전을 던져넣어 소원을 빌어보는 곳도 있습니다.

 

 

 

사문진 나루의 역사를 살펴 봅니다.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호촌리 마을은 조선 인조 때 개척되었는데 낙동강 범람으로 인해 늪이 여기저기 많이 생겨 ‘늪마을’이라 하다가,

120여 년 전 이씨라는 선비가 들어와 마을 앞 큰 호수를 보고 ‘호촌’이라 불렀다고 전해지는 곳으로,

낙동강이 범람할 때 이곳 흙을 많이 훑어갔다고 ‘훑촌’이라고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1906년(고종 43) 고령군으로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사천동, 사동, 사문(沙門), 사문(寺門)이라 하였는데,

사문(沙門)은 낙동강 홍수로 인해 마을이 형성되어 호촌2리에서 모래를 거쳐 배를 탄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이며,

큰 절로 가는 관문이기 때문에 사문(寺門)이라고도 불려졌습니다.

 

고령군 다산면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이 사문진나루터를 통해 대구 지역 재래시장에 판매되었는데,

이를 위해 2척의 배가 하루 70회 정도 오갔었다는 기록이 있어 많은 이들이 이용하였음을 알 수 있으며,

도선 운영권은 주로 입찰로 정해졌고 승객 대부분은 서쪽 고령군 다산면 주민들이었습니다.

도선은 처음 장대를 이용해 사람의 힘으로 저어 다니는 목선이었으며,

이후 자동차 엔진을 갖다 붙였고, 나중에는 엔진이 달린 철선으로 바뀌었습니다.

1985년 6월 1일 도입된 철선의 규모도 10t급으로 한 번에 60명의 승객과 차량 6대를 운반할 수 있게되어, 

승객이 몰리는 출퇴근 시간에는 1시간에 3~4회, 낮 시간대는 시간당 1회 정도 고령과 달성을 오갔습니다.

당시 하루 평균 100여 대의 차량과 1,000여 명의 승객을 실어 날랐으며,

운임은 마을 사람이면 1년에 벼 1말 5되 정도를 선주에게 지불하고, 일반인은 1인당 500원, 중학생 이하는 무료였다고 합니다.

 

도선이 운항될 때만 해도 여름철이면 대구 시민들이 고령 쪽 낙동강 모래사장을 찾았는데,

전하는 말에 의하면 1978년 8월에는 모래찜질이나 목욕을 하기 위해 사문진나루터를 이용한 사람이 8,000여 명에 이르렀다고 하니,

그때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 덕분에 화원유원지도 유명해지기도 했습니다.

 

 

 

피아노와 관련한 기념비로,

1900년 3월 26일 미국선교사 사이드 보탐에 의해 그 당시 “귀신통”이라 불린 한국 최초의 피아노가,

이곳 사문진 나루를 통하여  유입되어 역사적 의미를 지닌 곳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계승하여 달성군에서는 2012년부터 매년 피아노 콘서트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당시 피아노를 운반하던 모습이 사진으로 남아 기념비에 들어있습니다.

 

 

 

화원 나루공원 에는 여러 작품들도 구성 해두었는데,

김봉수님의 "피노키오의 항해"로 "제3회 강정대구 현대미술제" 출품작 으로,

욕망을 위한 인간의 이기적인 이중성을 "피노키오의 코"를 통해 표현하고자 합니다.

 

 

 

화단으로 꾸며둔 대형 꽃시계도 있으며,

 

 

 

이강소님의 작품으로 철재를 소재로한 "풍경 셋" 이라는 작품이며,

 

 

 

"제3회 강정대구 현대미술제" 출품작 으로,

조숙진님의 "바람"을 비롯해 많은 작품들이 전시가 되어 있습니다.

 

 

 

눈을 부릅뜨고 서있는 돌로된 장승의 모습도 보입니다.

 

 

 

날이 저물고 있나 봅니다.

상류쪽 강정보 쪽으로는 불빛이 들어오는 모습입니다.

 

 

 

들어왔던 주막촌의 입구로 되돌아 왔습니다.

 

 

 

사문진 나루의 주막촌에서는,

막걸리를 비롯해 잔치국수, 국밥, 부추전, 두부 등 다양한 먹거리를 판매하고 있어,

옛 정취와 함께식사를 즐길 수 있으며 사문진 낙조의 풍경을 감상하면서 유람선을 이용할수도 있습니다.

 

 

 

사문진나루 곁으로 1993년 7월 1일 사문진교(沙門津橋)가 개통되면서 나루터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주막촌에서 주차장으로 나오는길에 보이는 주막촌의 뒷모습으로,

 

 

 

주막촌의 뒷벽에는 사문진나루 주막의 옛모습을 볼수있는 정겨운 모습도 보입니다.

 

 

 

과거 영남 최대의 물류 집산지였던 달성의 사문진 나루에는 유람선이 여유롭게 지나 갑니다.

 

 

 

영남 최대의 물류 집산지였으며,

울창한 버드나무와 낙동강 모래사장으로 많은 이들이 찾아 즐겼던 화원유원지로,

다리의 개통으로 사문진 나루는 쇠락해 잊혀져 갔지만,

새로이 단장을하여 옛정취를 즐길수있는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는곳 달성의 "사문진 나루"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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