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국립공원에 자리한,

의정부의 석굴암을 돌아보고 회룡사(回龍寺)를 찾았습니다.

 

회룡사(回龍寺)는 입구인 "회룡 탐방지원센타"에서 약 1 km 정도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데,

용암약수터 근처로 다리 건너 삼거리에서 석굴암으로 올라가는 갈림길의 반대쪽의 길로 올라갑니다.

 

 

 

회룡사로 오르는길에 회룡폭포가 있다고 하여 들여다보니,

겨울가뭄탓인지 수량이 적어 폭포의 진면목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화강암의 깨끗한 암반과 여러군데의 소가 형성이 되어있어 여름철에는 많은이들이 찾을듯 합니다.

 

 

 

회룡사(回龍寺)의 입구로,

산문은 없고 관공서의 입구같은 느낌이드는 대문입니다.

 

 

 

이곳은 신라시대에 의상스님이 법성사로 창건했다고 하며,

회룡(回龍)은 "용이 돌아왔다" 는 의미인데 조선 태조 이성계와 관련된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사찰로,

태조가 이곳에서 수도했다거나 왕위에서 물러나 함흥에 머물다 다시 서울로 돌아왔을 때 들렀다는 얘기가 전합니다.

건물들은 1950년 한국전쟁시에 전소 되었고 1954년부터 도준( 道準스)님의 노력으로 복구가 시작되어 지금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사찰의 초입의 오른쪽 산아래에는 나란이 서있는 부도전이 자리해있으며,

그리 오래 되어보이지 않는 3개의 부도 모두 크기나 형태가 비슷합니다.

 

 

 

마당을 들어서면 가장먼저 보이는 설화당으로,

스님들의 요사채인 건물로 1998년에 지어졌다고 하는데,

경계를  멀리해야 한다는 스님의 사찰에 유일하게 담장을 둘러 경계를 지어둔 곳입니다.

 

 

 

설화당(說話堂)의 현판 입니다.

 

 

 

설화당을 지나 왼쪽에는 범종각(梵鐘閣)이 있으며,

범종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2층 누각의 팔작지붕 건물로,

1989년에 건립되었는데 내부에는 불전 사물인 범종(梵鐘), 법고(法鼓), 운판(雲板), 목어(木魚) 등을 모두 갖추고 있는데,

범종(梵鐘)은 지옥의 중생을 구제하는 부처의 말씀을 전하고, 목어(木魚)의 소리는 물에 사는 중생을 구제하고,

법고(法鼓)는 네 발로 걸어 다니는 짐승을 제도하고, 운판(雲板)은 하늘을 날으는 날집승을 제도한다는 구름모양의 동판으로,

범종(梵鐘)은 아침에 28번, 저녁에 33번을 타종한다고 합니다.

 

 

 

범종각의 누각 아래에는 경기도의 문화재자료 제117호인 "회룡사 석조(回龍寺 石造)"가 있는데,

돌로 만든 수조를 석조라 부르는데 물을 저장하여 사용하는 용도의 석조는 예로부터 사찰의 필수품였습니다.

길이가 244cm이고, 폭이 153cm, 깊이가 67cm, 돌의두께가 21cm나 되는 이 거대한 장방형석조는 서울 근교에서는 가장 큰편에 속한다고 알려져 있으며,

석조를 전체적으로 잘 치석하여 표면이 매끈하게 처리되어 있고, 바닥으로 내려가면서 완만하게 내곡을 이루어 시작적으로 안정되게 보이고 있습니다.

물이 흘러내리는 주구도 끝을 부드럽게 처리하였고 물이 흘러내리는 홈도 매근하게 만들어 석조의 분위기를 잘 살려내고 있어,

이런 석조는 《서산 보원사지 석조》에 버금갈 만한 것이며 《관악산 삼막사 석조》보다는 다소 큰 것으로,

서울 인근 석조로서는 보기 드문 석조라 할 수 있고 만든 솜씨도 뛰어나며 고려시대 제작된 석조의 형식을 따른 대표적인 작품으로,

사역내 《오층석탑》과 같은 조선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용도가 불분명한 다른 석조와는 달리 주구가 달려 있어 수조로 사용 되었음을 알 수 있어,

석조연구에 중요한 자료라고 합니다.

 

 

 

범종각 앞에 보이는 석조관음보살입상(石造觀音菩薩立像)으로,

1987년에 조성된 것으로 팔각의 기단을 마련하고 앙련과 복련 2단으로 된 연화대좌 위에 정병을 들고 서 있습니다.

보관에 화불을 새겨 놓아 관음보살임을 알 수 있으며, 상호도 원만하게 잘 표현되어 있는데,

일반적으로 관세음보살의 형상은 머리에 보관을 쓰고 있으며 손에는 버드나무가지 또는 연꽃을 들고 있고 다른 손에는 정병을 들고 있습니다.

관세음보살은 단독 형상으로 조성되기도 하지만,

아미타불의 협시보살로 나타나기도 하며 지장보살(地藏菩薩),대세지보살(大勢地菩薩)과 함께 있기도 하는데,

수월(水月)관음보살, 백의(白衣)관음보살, 십일면(十一面)관음보살, 천수(千手)관음보살 등의 형태로 조성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기전,

회룡사에서 기도중에 관세음보살을 친견했다는 이야기도 있을만큼,

회룡사는 관음도량으로 알려져 있는데, 관세음보살 입상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것 같아 보입니다.

 

 

 

관음 보살상의 오른쪽위에는 극락보전(極樂寶殿)이 자리하고 있으며,

 

 

 

극락보전 앞에는 의상대사의 사리를 봉안했다는 회룡사오층석탑(回龍寺五層石塔)으로,

15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삼층석탑으로  2003년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86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단층 기단위에 오층탑신을 올린 높이 3.3m 규모의 일반형 석탑으로,

1950년 6·25전쟁 기간에 폭격을 맞아 상륜부와 옥개석 일부가 파괴되었으나 1979년 복원되었습니다.

 

지대석과 기단의 상면에는 단엽 복판의 연화문을 조각했고 면석의 각 면에는 장방형의 구획을 나눈 후 모두 안상을 새겼으며,

1층부터 3층까지는 탑신석과 옥개석을 각각 별개의 석재로 4층 이상은 탑신과 옥개석을 동일석(同一石)으로 조성했습니다.

탑신석의 각 면은 직사각형의 액(額)으로 삼등분했으며 옥개석의 하면에는 각형 3단의 옥개받침을 조출했는데,

회룡사는 무학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조선 태조의 회가(回駕)를 기념해 중창이 이루어지고,

현재의 이름으로 바꾸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 석탑은 왕실의 발원(發願)으로 건립된 것으로 보입니다.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15세기에 건립된 석탑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 석탑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고 합니다.

 

 

 

극락보전은 1996년에 완공된 목조건물로,

서방 극락정토의 주재자인 아미타불을 모시는 법당으로 극락보전이 대웅전보다 크고 우람하게 지어져 있어 이채롭습니다.

 

 

 

극락보전(極樂寶殿)의 현판이며,

 

 

 

극락보전 문위에서 큰눈을 부릅뜨고 법당을 지키고 있는 용의 모습이 들어 옵니다.

 

 

 

회룡사의 대웅전(大雄殿)으로,

일반적으로 대웅전은 사찰의 중심이 되는 법당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전각으로,

대웅전앞에 걸려있는 주련을 살펴봅니다.

佛身普遍十方中 三世如來一?同 廣大願雲恒不盡 汪洋覺海渺難窮

"부처님께서 온 우주에 두루 계시며, 삼세여래 다 같은 부처님, 넓고 크게

 원하시는 것이 항상 그치지 않으며, 넓은 바다와 같이 아득하고 궁함이 없다"

 

 

 

대웅전(大雄殿)의 현판으로,

대웅은 법화경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을 큰 영웅, 즉 대웅이라 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큰 영웅인 석가모니 부처님이 기거하시는 집이라는 의미 입니다.

 

 

 

대웅전 옆에는 삼성각이 위치하고 있고,

 

 

 

삼성각(三聖閣)은

산신(山神). 칠설(七星). 독성(獨聖)을 함께 봉안하고 있는 사찰 당우 중 하나로,

삼성은 각각 재물과 수명과 복을 관장하는 존재로서, 전통신앙인 삼신산앙(三神信仰)과의 습합현상을 볼수있는 법당입니다.

 

 

 

근간에 발견된 춘추좌전(春秋左傳, 70권 20책 전질)의 기록에 의하면,

1635년(인조 13) 5월에 양주 도봉산 회룡사에서 해제판본을 간행하였다고 하며,

이 책 20책 말미에 장유(張維,1587~1638,谿谷)와 김육(金堉,1580~1658,潛谷)의 발문(跋文)이 권말에 있어 간행연대를 확실히 증명해주고 있으며,

승정원일기(1880년)에서 보이는 회룡사는 어제(御題), 어필(御筆), 도서(圖書), 의장(儀仗)을 봉안하는 전각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삼성각 앞에는 크기와 모양이 서로다른 여러 동자승의 모습이 들어와 불자들의 신심을 알려주는듯 합니다.

 

 

 

대웅전(大雄殿)의 지붕 옆면의 합각에 동그란 원 안에 둥근점 3개가 있어 삼법인 또는,삼보륜이라고 하는데,

세 점은 범어(梵語)로 "∴" = "伊"자로 제법무아(諸法無我), 번뇌를 종식시킨 이상세계인 열반적정(涅槃寂靜)을 삼법인이라고 하며,

삼보륜(三寶輪)은 불(佛), 법(法), 승(僧)의 삼보를 상징하는것으로 세 점은 법신(法身: 해탈의 법인 진리), 보신(報身: 수행의 결과로 얻은 불신),

화신(化身: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일시 나타난 응신)의 삼신불을 나타낸 것으로  세 신의 합일된 경지를 상징한 것이라고 합니다.

결국 세점은 각기 어느것이 더 중하고 덜 중하지도 않으며, 모두 평등하고 서로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라고 하는데,

사찰에서 흔히 볼수있는 문양입니다.

 

 

 

약사여래를 모시고 있는 약사전(藥師殿) 으로,

회룡사의 계곡옆 맨안쪽에 자리해 있으며 약사여래는 중생의 질병을 치료하고, 재화를 소멸시키며 원만행(圓滿行)을 닦게 하는 부처님 입니다.

 

 

 

회룡사에는 사찰이름과 관련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다양하게 있지만 그 중 대표적인 이야기는 두 가지로,

첫째는 함흥에서 태조 이성계가 환궁하면서 이 절에 있던 무학대사를 찾았는데  무학대사가 기뻐하면서 회룡사라 했다는 내용이고,

두번째는 절을 짓기전 태조는 근처 석굴암에서, 무학대사는 무학굴에서 3년동안 머물며 각각 기도를 올렸는데,

 

그 뒤 태조는 요동으로 출전했고 무학이 홀로 남아 절을 짓고 지내다 왕위에 오른 태조가 무학대사를 찾아와,

 

절의 이름을 "회룡"이라 지었다는 내용 입니다.

 

 

 

 

 

조선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의 이야기가 남아있는곳으로,

한국동란으로 인한 소실로 새로이 건축하여 조선 전기의 고풍스런 맛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남아있는 석조유물과 전하는 내용들로 위안을 삼을수 밖에 없습니다.

의정부 사패산의 계곡이 아름다운 사찰 "회룡사(回龍寺)" 방문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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