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의 정자 문화재를 찾아서,

봉화군 봉화읍 거촌리 황전마을의 도암정(陶巖亭)을 찾았습니다.

 

도암정이 있는 황전마을의 "황전"은 누른밭이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그 연유는  옛날에 이 동네 앞산에 황학이 떼를 지어 서식을 했다고 하며,

황학들이 마을 밭 에 내려와 앉아 있으면 온 들이 누렇게 아주 장관을 이루었다고 해서 그 모습을 보고 황전이라고 불렀다 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도암정 주변의 풍경을 묘사한 그림을 가져와 보았습니다.

 

 

도암정을 찾으면 먼저 른쪽의 커다란 독바위를 볼수 있으며,

독바위 곁의 느티나무는 310년쯤 된 나무로  도암정을 세운 뒤 풍광을 돋우기 위해 누군가 심은 나무로 짐작되며,

앞에는 효(孝)는 백행(百行)의 근본(根本). 경상북도 효시범 마을 이란 작은 碑(비)도 보입니다.

 

 

 

봉화 도암정(陶巖亭)은,

조선시대의 문신 황파(黃坡) 김종걸(金宗傑: 1628~1708)이 효종 1년(1650)에 세운 정자로,

당대 유림들의 교유, 토론, 풍류를 위해 지었다고 하며, 당대의 유림들이 모여 時流(시류)를 논하고 풍류를 즐기며 交遊(교유)를 나눈곳이라 합니다.

김종걸은 학식이 높았을 뿐 아니라 효성이 지극하기로도 유명했는데,

사후(死後)에 유림(儒林)의 추천으로 동지의금부사 가선대부 이조참판(同知義禁府事 嘉善大夫 吏曹參判)을 추서(追敍) 받았습니다.

 

 

 

도암정 오른쪽의 마을을 지켜주기도 한다는 독바위는,

천년에 한번 뚜껑을 열어 그 기운을 내뿜는다고 천년바위라고도 한다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 세 개의 집채만 한 바위를 마을의 풍요를 지켜주는 바위라 하여,

제각기 쌀항아리, 술항아리, 돈항아리라는 별명으로 부른다고 하는데, 

나무 쪽에서 보면 세차게 몰아치는 바람을 막아주는 바람막이 구실을 하는 바위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3개의 독바위중 가운데 독바위의 허리쯤에는,

도암정과 연관된듯한 붉은빛의 글씨가 새겨져 있슴을 볼수 있습니다.

 

 

 

황전마을은 예로부터 효도를 마을 정신문화의 근간으로 삼았던 곳으로,

이 마을을 대표하는 선조 가운데 조선 효종 때의 문신 황파(黃坡) 김종걸(宗傑·1628~1708)이 있습니다.

황파는 효종때의 대표적인 문신으로 학문(學問)과 덕행(德行)뿐만 아니라 효성(孝誠)이 지극하여 팔도에 알려졌습니다.

그 일화로, 부모님의 병을 고치기 위해 소태산(小太山)에 기천단(祈天壇)을 설치(設置)하고,

7일간 금식(禁食)하며 하늘에 기도한 후 약(藥)을 구하러 나서니,

호랑이가 길을 인도(引導)하여 명약(名藥)을 얻어 부모의 병(病)을 고쳤다는 미담(美談)이 전해져 내려오는곳 입니다.

 

 

 

도암정(陶巖亭)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크기이며,

다락식 건물로 지붕은 팔작지붕이며 처마는 홑처마 입니다.

간결하게 꾸민 건물로 가운데 칸은 마루를 놓았고 양쪽에 온돌방을 두었으며 누마루 주변에는 난간을 설치하였으며,

정자 앞의 연못, 인공섬, 큰 바위들과 노송 등 주변 경관과 정자가 잘 어우러져 당시 양반들의 안목을 엿볼 수 있는 곳입니다.

 

 

마루로 오르는 디딤돌로 자연석을 조화있게 세워두었으며,

 

 

 

정자의 뒤편에도 자연석을 있는 그대로 활용하여 마루로 오를수가 있습니다.

 

 

 

도암정의 마루에서는 여러개의 편액들을 볼수가 있는데..

원래 도암정(陶巖亭)은 김씨의 선조가 직접 심은 소나무가 옆에 있음으로 그 정대(亭臺)를 송정(松亭)이라고 불렀다고 하며,

송정(松亭)에서는 인근의 사대부들이 모여 정기적으로 수계(修稧)를 개최하여 시문을 짓고 학문을 나누었다고 합니다.

 

 

 

도암 김종걸의 호를 따서 붙인 도암정(陶庵亭) 현판으로,

현판은 당나라의 서예가 안진경(顔眞卿)체의 흘림이 있는 해서체(海西體)로,

획의 한자 한자에 힘이 있고 강약이 분명하며 굳센 기운을 느끼게 해줍니다.

 

 

 

도암정의 정자에는 두 개의 현판이 걸려있는데,

하나는 위의 도암정(陶巖亭) 현판이고 또 하나는 그림에 가까운 해서체 언비어확(鳶飛魚躍)입니다.

언비어약(鳶飛魚躍)은 솔개는 하늘을 날고 고기는 물속에서 튀어 오른다는 뜻으로,

"만물이 각기 자기의 소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묘사한 것으로,

"솔개가 나는 것이나 물고기가 뛰는 것이나 모두 자연의 법칙이고, 새나 물고기나 스스로 터득한다는 뜻"으로,

"도리(道理)는 천지간 어디나 있다는 말" 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으며,

김종걸(金宗傑)의 서체로서  정자 주인의 소임을 다하고자 하는 그의 생활태도를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도암정에는 여러개의 편액이 있는데,

溪山拱揖環抱  自作別天地  亦文殊山下  一勝地也       

나는 일찍이 황전(黃田)의 송정(松亭)에 오른 적이 있는데, 몇 그루의 큰 소나무가 기암과 작은 연못가에 늘어져 있었다.

계산(溪山)이 두 손 모아 포옹하며 스스로 별천지(別天地)를 이루니, 문수산(文殊山) 아래의 승지(勝地)를 이루었다.

 - 문소 김진동(聞紹 金鎭東:1727-1807)의 송정회음록후서(松亭會飮錄後序)-

이것은 문소 김진동이 도암정 송정회(陶巖亭 松亭會)에서 여러 현자들과 대화를 나눈 “시(詩)를 읊조리며”라는 시(詩)의 일부입니다.

 

 

 

가운데에 마루를 두고 양쪽으로 온돌방을 두었는데

 

 

 

언비어확(鳶飛魚躍)의 현판이 걸려 있는 왼쪽방 입니다.

 

 

 

방 앞쪽의 천정은 우물반자로 마감을 해둔 모습이며,

 

 

 

온돌방의 내부는 채광이 잘되어서 비교적 밝은 편입니다.

 

 

 

마루에서 앞을 내어다 봅니다.

도암정 앞 연못은 가로  세로의 비가 5:1 정도의 직사각형 형태의 보기 드문 형태로,

옛 선비들은 연못을 만들 때 천원지방, 즉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라는 음양의 사상으로 둥근 섬에는 한그루의 늠늠한 소나무가 서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모여 시연회(侍宴會)도 베풀며 공유한 별서의 중심공간 도암정은,

효종원년(1650) 황파 김종걸(1628-1708)에 의해 건립 후 여러 차례 중수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직사각형 연못과 둥근 섬, 기묘한 바위와 수림,

정자와 연못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지형 등이 잘 조화되어 조선시대 선비의 기품 있는 별서정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정자의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정자 앞의 인위적으로 조성한 전통원지가 있으며,

소나무와 느티나무 등의  바위동산이 있고 경암헌(耕菴軒)이 있는 본제가 있어서 별서정원으로서의 명승으로 지정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합니다.

 

 

 


담장은 전면으로 쌓지 않고 세 방향만을 쌓게 하여 확 트이게 했으며,

좌우측 담장에는 연못 쪽으로 출입문인 사주문(四柱門)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연못과 함께 陶巖亭(도암정)을 운치있게 꾸며주는 것은 정자 바로 옆에 서 있는 늙은 느티나무와 아름드리 바위인데,

7월 중순이 넘어 가면서 도암정 앞의 연못에는 연꽃이 가득하여 출사지로도 인기 많은곳 입니다.

 

 

 


정자앞 선비사상의 연못과 인공섬, 큰 바위들과 노송 등 주변 경관과 정자가 잘 어우러진곳으로,

연꽃이 만발하는 시기에 다시 찾아보고 싶은 봉화의 아름다운 정자 "도암정(陶巖亭)"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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