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의 문화재를 찾아서, 

봉화군 상운면 구천리에 있는 구산서당(龜山書堂)과 구산서당 주사(龜山書堂廚舍)를 찾았습니다.

 

구천리 마을입구 우측의 언덕 위에는 자리한 구산서당(龜山書堂)과 부속(附屬)된 주사(廚舍)인 까치구멍집 으로,

구산서당주사(龜山書堂廚舍)인 까치구멍집은,

공기의 유통을 위하여 낸 둥근 구멍이 까치둥지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이 구멍이 있는 집을 까치구멍집이라 부릅니다.

 

 

 

까치구멍집은 주로 경상북도 북부지방인 안동· 영양· 청송· 영덕· 울진· 봉화지역에 집중되어 있는데,
대문만 닫으면 외부의 침입이나 맹수의 공격을 막을 수 있고,
눈이 많이 와서 길이 막혀도 집안에서 모든 생활을 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구산서당 주사는 원래 기와집이었는데 최근 보수공사를 하면서 초가지붕으로 바뀌었다고 하며,

까치구멍집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건물로 독특한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서당건물과 나란히 서 있는데,  

서당보다 규모는 오히려 더 큰편 입니다.

 

 

 

까치구멍집 내부의 모습으로,

안으로 들어가면 너무 어두어 실내에 적응할때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합니다.

 

 

 

중간에 있는 대청마루의 뒷문쪽 모습으로 판자로 되어있는 문틈으로 빛이 들어 옵니다.

 

 

 

들어 오는문인 부엌쪽의 모습으로,

예전에는 앞열의 부엌 앞쪽으로는 마구가 앞으로 돌출되어 전체적으로는 'ㄱ'자 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었다고 하며,

고방에는 외부쪽으로도 문을 달아 외부에서도 손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 놓았으며,

부엌에서 텃밭이 있는 뒤안으로 나가는 출입구는 문이 설치되지 않은 대신,

부엌 내부가 외부에서 직접 노출되지 않도록 안방쪽으로 꺾인 위치에 놓여 있으며,

벽체구성은 봉당 전면과 마구의 출입구있는 면을 제외하고는 모두 심벽으로 처리되어 있습니다.


*심벽집 : 우리의 전통적인 초가를 지을 때 사용했던 건축공법이다.

            기둥과 보 등의 골격을 세운 다음, 기둥과 기둥사이에 힘살을 걸고싸리나무, 대나무를 칡이나 새끼로 묶어 엮은 후 진흙을 치는 방식이다.

            옛날에 가장 흔하게 지었던 초가집이나 기와집은 대부분 바로 심벽집에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심벽집의 벽은 세 번 처리한다. 제일처음에는 기둥과 기둥사이에 고정시킨 힘살을 기둥과 기둥사이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세운다.

            다음으로 산에서쉽게 구할 수 있는 싸리, 대나무 등을 가로로 엮어 흙이 접착될수 있는 외를 만들고 나서 진흙을 바르는초벽치기에 들어간다.

            그 다음에는 집을 섞은 진흙을 바르는 재벽치기와 마지막에 고은 흙으로 새벽치기를하여 마무리하게 된다.

 

 

 

왼쪽의 부엌 앞쪽으로는 마구가 1칸이 돌출되어 전체적으로 "ㄱ"자형(字形)의 평면을 이루게 하였는데,

이 집과 같은 마루중심형의 겹집에서는 보기 드문 형태라고 합니다.

 

 

 

구산서당주사(龜山書堂廚舍)인 까치구멍집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로 평면은 마루가 중심에 있는 마루중심형 겹집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까치구멍집 방의 모습으로 한낮에도 그리 밝지가 않습니다. 

 

 

 

하나의 주거공간내에 외양간을 둔 인축동거형(人畜同居形)으로서,

통풍, 환기를 위해 용마루 양쪽 끝에 낸 구멍이 까치둥지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답게,

그나마 까치구멍으로 빛이 들어와 집의 내부를 알아볼수있게 합니다.

 

 

 

까치구멍집의 오른쪽에 자리한 구산서당(龜山書堂)으로,

구암(龜菴) 전수동(全秀東, 1791~1862)이 만년에 머물며 문중 사람들과 함께 후진양성을 위해 조선 후기에 세웠으며,

서당은 정면 3칸, 옆면 1칸반의 규모로 2개의 방을두고 있으며 지붕은 팔작지붕의 구조 입니다.

 

 

 

구산서당(龜山書堂)의 현판이며,

 

 

 

오른쪽에 있는 방 처마 아래 붙어있는 현판으로 구암서숙(龜菴書塾)으로,

구암(龜菴)은 서당을 세운 전수동(全秀東)의 호이며 구산서당의 또다른 이름으로 사용한듯 합니다.

 

 

 

마루 위에는 2개의 현판외에 여러개의 편액이 올려져 있는데,

오래되어 보이지는 않으나 곁에 친절하게 설명을 해두어 이해를 도와줍니다.

 

 

 

중앙에 마루를, 양 옆으로 온돌방을 배치하였고 건물 앞으로는 마루를 덧대고 끝에 난간을 둘렀으며,

건물 규모는 작으나 지붕의 곡선이 간략한 건물 구조와 어우러져 소박한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어 서당의 진면목을 보여주는듯 합니다.

 

 

 

이곳 구천리는 마을앞개울에 거북형상의 큰바위가 있어서 구천(龜川, 귀네)라고 불려 왔는데,

일제시대에 우리민족의 정기를 꺽는다고 거북바위를 파괴하고 구천(龜川)을 구천(九川)으로 고쳐 행정구역을 설정하였다고 합니다.

 

 

 

구산서당의 마루에서는 가까이는 우직정(愚直亭)과, 함께있는 청간서실(聽澗書室)이,

마을 윗쪽으로는 들판과 함께 전응방(全應房)의 야옹정(野翁亭)까지 조망이 됩니다.

 

 

 

구산서당 주변에는 겨울이 걱정되는 어린 표고버섯이 보이고..

 

 

 

봉화군 상운면 구천리에는 야옹종택의 야옹정(野翁亭)과,

비지정 문화재 이지만 큰의미가 있는 우직정(愚直亭)과 청간서실(聽澗書室)이 한마을에 있어,

봉화를 찾으시면 함께 찾아봄직한 곳으로 까치지붕집의 봉화 구산서당주사(龜山書堂廚舍) 일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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