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의 문화재를 돌아보면서,

반충(潘沖)의 효심을 느껴 볼수있는 정자인 관물당(觀物堂)을 찾았습니다.

 

관물당이 있는 용궁면(龍宮面)은 낙동강 상류와 내성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있어,

바닷속 용궁을 연상케 할 정도로 풍경이 아름답다고 해서 얻어진 이름이라고 하며,

관물당은 덕계리 달계마을의 나지막한 야산에 동남향으로 위치하고 있는데,

정자 앞에는 연꽃을 심은 작은 연지가 있고 곁에는 비각이 서있습니다.

 

 

 

관물당(觀物堂)으로 1535년에 반충(潘沖, 1508~1584)이 공부를 하면서 수양을 하려고 건립하었으며 ,

1762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관물당의 오른쪽에는 비각이 자리하고 있어 먼저 찾아 봅니다.

 

 

 

비각 안에는 "충효반충지비(忠孝潘冲之碑)"가 자리해 있고,

 

 

비각 위에는 "충효반선생지려(忠孝潘先生之閭)"의 현판이 있습니다.

 

 

 

관물당(觀物堂)으로 돌아와 구조를 살펴봅니다.

온돌방의 아궁이는 옆면 받침 부분에 꾸며 놓았고, 굴뚝은 높게 쌓지 않고 연기가 빠져나가는 연도(煙道)만을 두었고,

온돌방의 좌우 옆면에는 외여닫이 띠살문을 달아 외부와 출입하도록 하였고,

앞면 툇마루쪽에는 2짝의 여닫이 띠살문을 달아 밖을 바라볼 수 있게 하였습니다.

앞면에는 툇마루를 놓았는데, 마루와 함께 우물마루 구조로 바닥을 마감하였으며,

마루는 뒷면을 벽면으로 조성하고서 여닫이 판문 2짝을 달았으며, 앞면과 옆면은 개방된 모습이고,

툇마루에는 오른쪽에 2짝의 여닫이 판문을 달았습니다.

 

 

 

앞면 가운데칸의 여닫이 창문 2짝 위에는 "관물당(觀物堂)"의 편액이 걸려 있고,

 

 

 

마루의 안쪽에도 시문(詩文) 편액 2개가 걸려 있습니다.

 

 

 

정자의 뒷면과 좌우 옆면은 기와를 올린 나지막한 토석(土石) 담장이 둘러싸고 있는 관물당(觀物堂)은,

18세기 양식으로 추정되는 평면과 함께 예스럽고 소박한 통머름, 문틀의 위치와 짜임새 등에서,

고식(古式)의 수법을 확인할 수 있는 건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정자의 주인인 반충(潘沖)은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를 극진히 모시다 돌아가시자,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였는데 한 번도 묘소를 떠나지 않았고, 시묘기간 내내 죽으로만 끼니를 때웠다고 하며, 

한겨울인데도 움막 곁에는 푸르른 채소가 저절로 자라나 3년 동안 제수(祭需)로 사용하다가 시묘(侍墓)가 끝나자 시들었다고 전하며,

주변 사람들이 이를 보고 이르기를 “반충의 효성이 지극하여 신령이 감탄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중종, 인조, 명종, 문정황후가 돌아가시자 3년 동안 고기와 여자를 멀리하고 지냈기 때문에,

1650년(효종 1) 경상관찰사 민응협(閔應協, 1597∼1663)의 상소를 통해,

충효 정려(旌閭, 충신, 효자, 열녀 등을 기리기 위해 동네에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 하였고,

숙종 때에는 덕계리(德溪里) 달계(達溪)의 충효사우(忠孝祠宇)와 달계서원(達溪書院)에 제향 되었습니다.

 

 

 

관물당 마루에서 보이는 연꽃을 심은 작은 연못과 마을앞의 모습입니다.

 

 

 

7월 말경이나 8월 초순쯤,

연꽃이 한찬 피어오르는 시기에 다시 찾고 싶은곳 관물당 입니다.

 

 

 

어머니에 대한 효심과 충심으로,

충효를 일깨워 주는 중화(仲和) 반충(潘沖)의 소담한 정자, "예천 관물당(醴泉 觀物堂)" 방문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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