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의 중심지역 이면서,

선비의 고장이기도한 함안의 낙동강 주변을 여행하면서,

한해를 보내며 찾은곳은 낙동강의 정자 "광심정(廣心亭)" 입니다.

 

칠북면 사무소에서 칠서방면으로 직진하다 이령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이령초등학교를 지나,

창녕함안보에서 700m 지점에 위치한 광심정(廣心亭)으로  정자 가까이에 차량으로 이르는길은 좁은편여서 조심을 해야합니다. 

함안 봉촌리 낙동강변의 절벽 위에 있는 아담한 정자입니다.

 

 

 

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217호로 지정된 광심정(廣心亭)으로,

그림에 보이는 대문채는 원래 정면 3칸으로 가운데에 대문을 두고 양옆에 온돌방을 두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단출하게 정면 1칸의 홑처마 맞배지붕의 솟을 외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광심정(廣心亭)은 조선 선조 2년(1569) 영산군 길곡리에 칩거하고 있던,

용성 송씨(龍城宋氏) 문중에서 젊은 사람들이 수학을 목적으로 건립한 정자(亭子)로,

임진왜란(1592) 때 파손 되었다가 조선 현종 5년(1664)에 성리학자인 송지일(宋知逸)이,

선비들과 더불어 학문을 연구하기 위해 중수 하였고 자신의 호를 따라서 광심정으로 편액(扁額)하였으며,

1734년에 다시 중수하였고, 1949년경에 보수공사를 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광심정(廣心亭)의 평면 구조는,

뒷면 2칸은 2개의 방, 앞면 2칸은 개방된 마루로 팔작지붕의 구조로 되어 있으며,

온돌방과 마루 사이의 벽체는 창문처럼 살을 세우고 벽지를 발라놓아 채광에 유리하도록 하였습니다.

 

 

 

마루를 앞에두고 뒤에는 방을둔 모습이며,

 

 

 

광심정(廣心亭)의 현판으로,

광심(廣心)이라는 이름은 "넓은 마음"을 가지고,

학문 수양뿐만 아니라 마음 수양도 열심히 해서 넓은 마음을 가지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마루위 천정의 모습으로,

 

 

 

전면에 있는 2칸의 마루 위에는 용성 송씨(龍城宋氏)의 가계도를 비롯,

광심정의 내력을 알려주는 중수기등 많은 편액들이 있는데,

경상도관찰사·대사간 등을 역임했던 우의정(右議政) 우봉(牛峰) 이숙(李●:1568~1645) 등,

저명인사들의 송덕음(頌德今)이 현판(懸板)되어 있다고 하는데 식견이 모자라 일일이 알아보기가 힘듭니다.

 

 

 

문이 열려있는 왼쪽방에는 이불한채가 있어 살짝 들여다볼 뿐입니다.

 

 

 

정자의 마루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으로,

삼량진을 향해 하류로 향하는 낙동강의 모습이며,

 

 

 

광심정 아래로 낙동강이 유유히 흐르고  그 너머로 창녕 하내마을과 신선봉이 펼쳐져 보입니다.

 

 

 

윗쪽으로는 창녕함안보가 보이며 낙동강변의 절벽 위에 자리잡고 있는 광심정 에서의 풍경입니다.

 

 

 

정자의 주인격인 송지일(宋知逸)의 자(字)는 휴재(休哉), 호(號)는 광심(廣心)이며,

조선 때 학자(學者)로  성품(性品) 이 청근(淸謹)하며 성리(性理)의 학(學)에 뜻이 있어 성리학(性理學) 연구에 전념하였던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구릉진 자연의 경사면을 거스르지 않고 돌로 축대를 2단으로 쌓아,

후면의 방과 전면의 마루를 배치한 모습을 볼수가 있습니다.

 

 

 

특이한점은 정자의 왼쪽벽면 아래의 모습으로,

불을 넣는 아궁이는 아닌듯 하고 돌로쌓은 축대아래의 모습과 이어져 있어 수로의 구멍으로 보이는데,

온돌방의 아래로 수로가 있어서 한참을 들여다 보게 합니다.


 

 

광심정(廣心亭)의 뒷모습으로,

한칸의 방에는 벽장을 두었슴을 알수가 있고,

낙동강을 내려다보며 날아갈듯 자리한 모습의 정자 입니다.

 

 

 

벼슬에 뜻을두지 아니하고,

성리학(性理學)의 연구에 생을 맏기며 살았던 송지일(宋知逸)과,

집안의 융성을 위해 애쓴 흔적이 보이는 용성 송씨(龍城宋氏) 문중의 염원이 녹아있는,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함안의 정자 문화재 광심정(廣心亭) 방문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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