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포항을 기점으로하는 문화재 탐방에서,

첫번째로 포항의 문화재로 영해의 "제남헌(濟南軒)"을 찾았습니다.

 

제남헌은 흥해군(興海郡)의 동헌으로,

지금은 "영일민속박물관(迎日民俗博物館)"으로 향토문화를 알리는 장소로 단장 하였는데,

옛날 관아를 시민들의 볼거리가 풍부한 휴식공간으로 활용한 좋은예로 볼수있는곳 입니다.

 

 

 

민속박물관을 들어서면 입구에서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는 600년 수령의 회나무가 두그루가 서있는데,

회나무가 힘을 잃고 고사위기에 처하자 영양제로 막걸리를 주는 행사를 가진후 회나무가 다시 싱싱하게 녹색잎으로 활력을 찾았다고 합니다.

 

 

 

회화나무 주변으로는 송덕비로 보이는 크고작은 비석의 군락이 있고..

 

 

 

노거수를 배경으로 해학이 가득한 장승의 모습도 보이며,

 

 

 

나무아래에는 부도로 보이는 석물도 있습니다.

 

 

 

안으로 들어오다가 입구의 오른쪽의 건물이 보여 그쪽으로 방향을 바꿉니다.

영일민속박물관은 제1전시장, 제2전시장, 전통초가 1동, 연자방앗간 1동, 야외전시장, 유물보관창고 등의 전시시설을 갖추고 있는데,

제1전시장은 생산관으로 생산용구와 토기, 고서적 등이 전시되어 있고,

제2전시장은 생활관으로 조상들의 관혼상례용구, 부엌도구, 신변잡구류 등이 전시되어 있는데

주요 소장품으로는 베틀, 토기항아리, 디딜방아를 비롯하여 1,771점의 생활용구류와 지게, 도리깨, 절구, 새우잡이통 등 1,142점의 농어업 기구류,

조선 건국사집, 칙령, 교지, 시집 등 250점의 고서적류, 질그릇, 도자기, 귀대병 등 591점의 토기류, 상례복, 혼례복 등의 관혼상제 및 의관류 240점,

골패와 비석 640여 점 등이 있습니다.

 

 

 

문간채에 해당하는 이곳에는 동헌에서 죄인을 신문하는 옛모습을 재현해 두었는데,

 

 

 

죄를 지어 형벌을 받고있는 모습의 재현으로,

 

 

 

인형들의 자세나 표정을 실감나게 표현해두어,

 

 

 

가족단위의 나들이에 특히 인기있는곳 이기도 합니다.

 

 

 

제남헌(濟南軒)으로 흥해군(興海郡)의 동헌으로,

1925년에 원래의 자리에서 동남쪽으로 70m 가량 떨어진 지금의 흥해읍사무소 자리로 이건하여 읍회의실로 사용되다가,

1976년에 다시 원래의 자리인 현 위치로 이건하여 영일민속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지도서(輿地圖書)』와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의 지도에 나타난 바와 같이 흥해읍성(興海邑城)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데,

성은 일제강점기 초기에 모두 헐려버리고 거기서 나온 돌은 포항 축항공사에 사용되었으며,

나머지의 관아건물도 이때 모두 없어지고 현재는 제남헌만이 남아있다.

건립년대에 대한 기록은 이건시에 나왔다고 하는 “도광십오년(道光十五年, 1835)”이란 상량문 외에는 남아 있는 것이 없는데,

이것도 건립 당시의 상량문인지 중건상량문인지는 분명치 않다.

 

 

 

입구의 회화나무 주변뿐만 아니라 오른쪽의 담장 옆에도 송덕비들을 볼수가 있으며,

야외 전시장에는 이 지역에서 발견된 여러 석조물들을 한곳에 모아 놓았는데, 부도에서부터 생활도구들까지 그 종류가 다양 하며,

 

 

 

송덕비를 거느리듯 산남의병의 투쟁사를 기록한 "한말의병 항왜혈전 기념비"가 있습니다.

 

 

 

제남헌(濟南軒)은 정면 7칸, 측면 3칸 규모의 '一'자형건물인데 자연석 기단위에 다듬돌 주초를 놓고 원주를 세웠으며,

주두상부에는 출목없이 3익공으로 장식하였고 내부를 모두 통칸으로 구성하여 우물마루를 깔았는데,

문 얼굴 전면의 어칸 3칸에는 3분합문을 양측의 2칸에는 쌍여닫이 세살문을 달았으며 양측면의 전면에는 외여닫이 살문을 설치하였습니다.

 5량가인데 대량 위에 초각한 판재를 두어 종량을 받고 종량위에는 파련대공을 세워 마룻대와 장혀를 받았으며,

양측면의 가운데 두 기둥 상부에는 충량을 걸어 대량위에 걸치게 하였습니다.

1800년대의 동헌건물로 두 차례에 걸쳐 이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1976년의 이건시에는 가능한 한 구재를 많이 사용하고,

고증을 거쳐 원형에 충실하게 복원하였다고 하나 주심도리 하부는 모두 신재(新材)를 사용하여 원형을 많이 상실한 상태이지만,

그 유구가 많지 않은 관아건물이란 점에 중요한 의미를 둘 수 있습니다.

 

 

 

제남헌 앞에는 대원군 척화비가 서있는데,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이 쇄국양이정책(鎖國攘夷政策)을 내외에 과시하기 위해 전국의 주요도시에 세운 비석으로,

척화비에는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아니하면 화친하는 것이고,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 라는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화강암으로 된 이 비석은 귀부(龜趺)와 이수( 首)를 갖추지 않은 통비(通碑)로서  2001년 8월 6일 옛 칠포도로 칠포암각화군 앞에서 발견하여,

이곳에 옮겨 세웠는데 전국 여러곳에  실물이 남아 있지만 이곳의 척화비는 보존상태가 좋은 편입니다.

 

 

 

제남헌(濟南軒)의 현판이며,

 

 

 

영일민속박물관(迎日民俗博物館)으로 활용하고있는 제남헌(濟南軒)의 내부로,

전시실 안에는 옛 농기구를 비롯해, 고서적, 토기류 등이 전시되어 과거 백성들의 생활을 살펴볼 수 있어,

 

 

 

경상북도 향토역사관으로 지정된 "영일민속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이곳에는,

전통민속 생활용구 4천 6백여 점이 전시되어 있어 지역민의 중요한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대관루(大觀樓)로 사찰의 누각에 걸려 있었을것으로 추측되는 현판 모습도 보입니다.

 

 

 

제남헌은 목재를 사용한 기와건물로 팔작지붕 홑처마이며,

조선 헌종 원년인 1835년에 중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남헌(濟南軒) 전시실을 나와 동헌의 뒤뜰로 나옵니다.

 

 

 

돌절구와 멧돌등으로 통행로를 조성해둔 모습이며..

 

 

 

초가지붕의 연자매로 불리기도하는 연자방아의 모습도 보입니다.

 

 

 

가축의 힘을 이용해 맷돌을 돌려 곡물을 찧는 큰도구로, 

동물의 눈을 가리어 주변을 보지못하게 하여 앞으로만 전진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영일민속박물관(迎日民俗博物館)은 1983년 10월 29일에 개관하여,

1985년 5월 제2전시실이 신축되었으며, 1987년 6월 군단위 민속박물관으로는 국내 최초로 준박물관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연자방아 주변의 이동로에는 맷돌대신 다듬이돌이 맷돌을 대신하여 졸절구의 짝이되어 놓여 있습니다.

 

 

 

제남헌앞에서 오른편에는 제2 전시관이 있습니다.

 

 

 

민속 전시관으로,

 

 

 

제2전시관에는 생활과 관혼상제등과 관련한 여러 유물을 전시하고 있어서,

 

 

 

추수를 한후 곡식을 빻아 양식을 마련 하는등의 옛모습이며,

 

 

 

글공부를 하는 사랑채 에서의 모습과,

 

 

 

안방에서는 아낙들이 다딤이질을 하는 모습등을 인형들로 재현 해두어 이해를 도와줍니다.

 

 

 

40~50전만 해도 볼수있었던 우리나라 부엌의 모습이며,

 

 

 

옛사람들의 의복등 다양한 구성으로 진열이 되어있습니다.

 

 

 

다양한 민속자료들과 아기자기한 구성으로,

잊혀지고있는 우리의 옛문화와 생활상을 돌아 볼수있는 곳으로,

어르신을 모시면 옛정취를 돌아보실수있게 하고 어린이들과 함께하면 우리의 옛문화를 알수있는 교육의 장으로 옛 관아를 활용한 훌륭한 공간으로 거듭 태어난 포항의 문화재 "제남헌(濟南軒)"이 있는 "영일민속박물관(迎日民俗博物館)" 방문기 입니다.


⊙ ​문의  : 054  261 2798

⊙ ​ 이용 시간 :   09:00~18:00 동절기 17시까지, 명절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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