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봉화를 여행 하면서,  

봉화군 봉성면 봉성리 418번지로 장터에 위치한,

2002년 경북문화재자료 418호로 지정돤 "봉화 봉서루(奉化 鳳棲樓)"를 찾았습니다.

 

봉화군 봉성면은 유서 깊은 옛 봉화 고을(縣)의 소재지로,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古斯馬縣(고사마현)에 속했으며, 신라의 경덕왕 때에는 玉馬縣(옥마현), 고려 현종 때에는 鳳城縣(봉성현),

고려 공양왕 때 奉化縣(봉화현), 조선 고종 때 부터는 奉化郡(봉화군)으로 각각 불려 왔었는데,

인근의 봉화읍이 봉화의 중심지가 되면서 옛명성이 빛이 바랜 느낌입니다.

봉성은 예로부터 縣(현)이긴 했으나 관아가 설치되고 현감이 배치된 것은 조선왕조 태종 3년(1406년)부터 라고 합니다.

 

 

 

누각옆에는 비각과 거북 형상의 돌이 놓여져 있어 살펴 봅니다.

우리의 전통풍수 지리학설에는 천하명당을 27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그 중 어느 곳에도 없는 두 가지 명당이 공존하는 곳이 있다.

그 곳이 현재 봉성역의 뒷산 정상 봉우리로 두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金輪峰(금륜봉)과 渴馬峰(갈마봉)이다.

금륜봉은 背山面陽(배산면양)의 '봉황이 둥지로 날아든다.'는 飛鳳歸巢形局(비봉귀소형국)의 명당으로,

옛날 성곽 안에는 오동나무가 밀림을 이루어 길조인 봉황새가 서식하는 고개라 하여 鳳城(봉성)이라 이름 하였다 한다.

 渴馬峰(갈마봉)은 '목마른 말이 물을 먹으러 가는' 모양인 渴馬飮水形局(갈마음수형국)의 천하명당이다.

이 갈마형국의 穴(혈) 앞에는 연못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연못이 없으면 연못을 파서 裨補(비보)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裨補(비보) : 형국의 모자람을 도와서 채워 줌

또 한편 불과 물은 상극으로 물만 있으면 불이 많이 나게 된다는 것이다.

갈마형국의 산세가 가져오는 기운을 유익하게 얻기 위한 예방책으로 물에 사는 거북을 상징하는 바위를 모시고 있어,

그 기에 눌려 불(火)의 화를 피할 수 있었다 하며,

장터 앞에 있던 연못에는 十長生(십장생)의 하나로 무병장수와 잡귀. 잡신을 쫓는다는 돌 거북이 있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봉화군 봉성면 봉성리 속칭 장터(옛날 연못 터)에서 봉성 돼지숯불축제장 정비 공사 중,

길이 190cm, 폭 96cm, 높이 86cm나 되는 초대형 돌 거북이 발견되었다 한다.

축제를 앞두고 돌 거북이 발견되어 길사의 징조로 여기고 전설의 내용이 역사적 사실로 나타난 돌 거북을 봉성장터에 안치하였다.

이해를 돕기위해 가져온 안내문의 글입니다.

 

 

 

돌거북과 누각사이에는 비각이 서있어 들여다 보니 철비가 서있습니다.

 

 

 

현감조공동익영세불망비(縣監趙公東益永世不忘碑)라 새겨진 송덕비(頌德碑)로,

쇠로 부어 만든 철비는 좀체로 보기 힘드는데 이곳에서 볼수가 있으며,

"조동익이 현감으로 재직시 그 공덕을 세상이 영원토록 잊지 못한다" 하여  세운 불망비로 송덕비와 같은 유형으로 보입니다.

 

 

 

비각의 처마 안에는 비각을 세우고 올린 비각중수기가 걸려 있어 내력을 알아보게 하였습니다.

 

 

 

봉서루(鳳棲樓)는 본래 봉성면사무소 자리에 있었던 봉화현 관아 건물의 일부였으며,

구한 말 현재의 위치로 이건되었다고 하며 조선 영조 14년(1738)에 봉화현감 이광직(李匡直)이 동헌인 조양관을 중건하면서 외동헌으로 중건한 건물로,

현내의 유현들이 집회하며 교류하였던 장소라고 합니다.

 

 

 

 

현재 경로회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봉서루는 2칸의 방과 마루로 개조되어 있으나,

과거에는 왼쪽부터 부엌 ·방 ·마루의 순으로 평면이 이루어져 있었다고 하며,  

어칸에만 쌍여닫이 문을 두었으며 양퇴칸은 창을 설치하였으나 원형의 모습을 많이 잃은듯 합니다.

 

 

 

누각에 올라 주변을 살펴 봅니다.

마을의 번화가에 속하는 장터에 있어서 주변의 풍광에서 이건하면서의 위치 선정에 아쉬움이 남습니다.

 

 

 

봉서루(鳳棲樓)의 현판으로, 

봉화지’의 구봉화현도(舊奉化縣圖)에 의하면,

금윤봉을 뒤에 두고 객사와 아사(衙舍) 앞쪽에 추봉루와 봉서루가 있었으며 동헌문루(東軒門樓)로 기록되어 있는데

과거 봉서루 앞쪽에 연못이 있었다고 하며 건물은 ‘ㄱ’자형으로 좌측 3칸은 일자형 단층건물이며 우측 2칸은 중층형 입니다.

 

 

 

봉서헌(鳳棲軒)이라는 현판도 안쪽에 보입니다.

 

 

 

우측의 루 부분은 하층은 벽체로 폐쇄되어 있다고 하나 열려 있으며,  

상층은 우물마루를 깔고 주변은 난간을 돌렸고 좌측부분과 연결되는 곳은 판벽으로 막아 상부가구의 노출을 막았으며, 기둥은 상·하부 모두 각주 입니다.

 

 

 

봉화 봉서루는 건축적인 측면에서 원형은 다소 변형되었지만,

봉화현 관아의 부속 건물 이었던 점에서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합니다.

 

 

 

누각의 아랫층으로 내려와보니,

인근 주민의 것으로 보이는 생활용품과 도구들이 보이고..

 

 

 

한켠에는 건축 자재들로 앞을 막아 두었고

안쪽까지 자재를 놓아둔 모습이 보여지고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한때 봉화를 대표하는 지역으로

봉성의 자존심과도 같은 문화재 임에도,

활용과 방치는 엄연히 다름인데 주민들의 인식과 관리의 아쉬움이 남은,

 

경북 봉화의 누각 문화재 "봉서루(鳳棲樓)"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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