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달성의 문화재를 찾아,

현풍의 누각 원호루(遠湖樓)를 찾았습니다.

 

원호루(遠湖樓)는 대구 달성군 현풍면 상리 706-6에 위치한 "현풍 석빙고" 뒤편에 있으며,

 

 

 

현풍천변을 두고 낮은 언덕으로 오르면..

 

 

 

먼저 맞이 하는것은,

옛 선조들이 사신(토지신)과 직신(곡신)에게 제사 지내는 곳인 "사직단(社稷壇)"이 있습니다.

 

 

 

현풍(구 달성) 사직단임을 알리는 표지석으로,

입구의 담장앞에 세워 두었으나 나무에 가려 제대로 알아 보기가 어렵습니다.

 

 

 

현풍 사직단은 1469년(세조 14년경)경에 만들어 졌다고 하나,

구한말인 순종 2년 때 일본 강압에 의해 폐허가 되어 사직단은 없어지고 대신 그 자리에 일본신사가 들어섭니다.

그러던 곳을 1945년에 우리 애국지사들이 신사를 불태워 버렸고  그후 2010년 이종진 군수가 지금의 사직단을 개축 복원하였습니다.

 

 

 

원래 사직단(社稷壇)은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있었는데,

다른 기념물이 들어서면서 지금의 자리에 옮겨오게 되어 수난을 겪어온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입니다.

또한 사직단의 북문은 신문 이라고 하여 다른 세 방향의 문보다 삼문으로 세우거나 커야 하는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곳은 네 방향의 홍살문이 모두 같은 크기와 모양으로 세워져 있습니다.

 

 

 

사직단(社稷壇) 바로 위의 언덕에 자리한 원호루(遠湖樓) 입니다.

 

 

 

이 누각은 구한말 1897년 현풍현령 홍필주가 인근 현령 및 향유들과 정사를 논의하고 풍류와 여흥을 즐기기위하여 지은 것으로,

원래 지금의 현풍면 사무소(현풍면 부리352)후원에 있었으나,

1989년에 면사무소 증측으로 해체되었다가 초대 민선 달성군수 앙시엉에 의해서 1996년에 현위치에 이축 복원 되었습니다.

 

 

 

원호루의 이축 표지석이 누각앞에 서있고..

 

 

 

원호루(遠湖樓)는 처음에는 2층의 아담한 누각이었으나,

1957년 중건하면서 높은 댓돌 위해 단층으로 바뀌었고 복원된 현누각은 자연산 주초석을 자재로 하여,

기둥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대청마루를 설치하고 그 위에 둥근 기둥에 굴도리를 돌린 다락집 형태의 겹치마 팔작 지붕으로,

우리나라 누각의 정형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원호루(遠湖樓)의 현판이며,

 

 

 

주춧돌은 자연석을 이용했슴이 보이고,

 

 

 

뒤편에 있는 나무계단을 통해 누각으로 올라봅니다.

 

 

 

원호루(遠湖樓)의 상량문이 편액 되어있고,

 

 

 

한글로 씌여진 원호루(遠湖樓)의 이건기문도 편액되어있습니다.

 

 

 

루의 마루에서 보이는 현풍의 비슬산 방향으로의 풍광이며,

 

 

 

누각에서의 정면은 숲에 가리어 도시화 되어가는 현풍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원호루(遠湖樓) 아래로 흘러 내려가는 현풍천을 내려다 보며 발걸음을 옮깁니다.

 

 

 

산업화와 도시화의 산물로 공해에 강한 노란색의 외래종 민들레는 흔이 보이지만,

고유의 하얀 민들레는 이제 우리의 주변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어 졌습니다.

발빠르게 도시화 되어가는 현풍을 언덕 위에서 내려다 보며 서있는 "달성 원호루(遠湖樓)" 방문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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