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제천을 돌아보면서,

제천 10경중 제9경인 "탁사정((濯斯亭)"을 찾았습니다.

 

제천 10경중 9경에 드는 “탁사정”은 정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자 주위의 절경을 말하는 것으로,

구한말  정운호(鄭雲灝 1892~1930)가 제천의 절경 8곳을 노래한 곳 중 제8경인 “대암”이 바로 이곳으로,

정운호(鄭雲灝)의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백상(伯祥), 호는 계릉(桂陵)으로

제천시 금성면 월림리에 모여 사는 연일 정씨 문중 출신으로,

법부 주사를 지냈으며 향교에 깊이 관여하여 그가 작성한 명륜당 중건기문이 전하고 있는데, 

일제의 단발령이 내려진 후 제천을 중심으로 봉기한 유인석(柳麟錫)의 호좌의진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던 인물입니다.

 

 

 

탁사정(濯斯亭)은 제천시에서 봉양읍을 거쳐 국도 5호선을 따라 원주 방면으로 15㎞가량 가다 보면,

 길 우측의 용암천 변 높은 절벽 위 송림(松林) 속에 동남향하여 자리하고 있으며..

탁사정유원지는 송림과 해묵은 나무들 속에 가리어 정자는 잘보이지 않지만,

이곳 유원지는 서늘한 골바람과 크고 작은 바위가 맑은 물살에 씻기어 사방에 널려 있고,

계곡과 푸른물빛, 낮은 폭포가 어우러져 주위의 노송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곳으로,

여름철이면 정자 아래의 용소 주변에 넓은 모래밭에 야영과 물놀이를 즐기는 피서객으로 많은이들이 찾는곳 입니다.

 

 

 

탁사정((濯斯亭)을 오르기위해 나무로 만들어진 계단을  올라서면,

 

 

 

낮은 능선이 보이고 능선의 오른쪽에 자리한 탁사정((濯斯亭)이 보이는데,

탁사정이 위치한 곳은 구학산과 감악산 사이 궁골의 뾰족한 바위로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기도 합니다.

 

 

 

1568년(선조 1)에 제주수사(濟州水使)로 있었던 임응룡(任應龍)이 고향으로 돌아올 때,

해송 여덟 그루를 가져와 심고 이곳을 팔송(八松)이라 명명하였고,

그의 아들 임희운(任希雲)이 정자를 짓고 ‘팔송정(八松亭)’이라 명명하였는데,

임응룡(任應龍 1523~1586)은 제천시 송학면 무도리 출신으로, 

1556년(명종 11) 무과에 급제하고 전라도 병마절도사, 제주 목사 등을 역임하면서 목민관으로 선정을 베풀었던 인물 입니다.

 

 

 

탁사정(濯斯亭)의 현판으로,

"탁사(濯斯)"는 《맹자》의 〈진심장구〉에 나오는 귀절로, 

“같은 내에 흐르는 물이라도 그것이 맑으면 갓끈을 빨고 그것이 흐리면 발을 씻겠다"는 의미로,

"소자청지(小子聽之) 청사탁영(淸斯濯纓) 탁사탁족의(濁斯濯足矣) 자취지야(自取之也)”에서 빌려 왔으며,

탁사(濯斯)의 철학은 굴원의 "어부사"에서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물이 더러우면 발을 씻는다.”는

"탁영탁족(濯纓濯足)"으로 인용되는 의미 입니다.

 

 

 

탁사정((濯斯亭) 현판도 정자 내부에 있어서, 

정자의 동·서·남 3면에는 "탁사정(濯斯亭)" 현판을 비롯하여 "탁사정기(濯斯亭記)" 등 많은 현판이 걸려 있는데,

현판의 제작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탁사정기(濯斯亭記)를 쓴 이병선과 탁사정으로 정자의 이름을 바꾼 원규상이,

이병선에 이어 봉양면장을 맡은 점 등으로 미루어 한일한방 이전에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장자에서 내려다보이는 유원지앞쪽의 모습이며..

 

 

 

팔송정은 오래되어 헐리었으나,

1925년 그의 후손 윤근(潤根)이 다시 세우면서 탁사정(濯斯亭)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하며,

옥파(玉波) 원규상(元圭常)이 "탁사정(濯斯亭)"이라 이름 지었다고도 전하는데, 

그 후 6·25 전쟁으로 불에 탄 것을 1957년에 재건하였으며,

2005년에 제천 10경 정비 사업의 하나로 보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원규상(1868~?)은 일본의 침략이 노골화 되던 시기에 봉양면장을 지낸 선비로,

단발령 이후 유인석을 대장으로 하는 호좌의진이 출범할 때 전투부대의 하나인 좌군을 이끌었던 좌군장으로,

제천에서 활동한 그는 "제천향약"을 시행하며 일진회의 발호를 막았던 인물 입니다

 

 

 

정자의 구조를 살펴보면 바위와 흙을 돋아 지대석을 마련하고 외벌대로 자연석 기단을 쌓고,

그 위에 자연석 초석을 놓고 원기둥을 세웠으며 내부 바닥은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4면에는 한 자 높이 정도로 머름난간을 둘렀습니다.

각 면의 가운데 기둥머리에 十자로 장통보를 걸어 지붕을 받치고 있으며 중도리 부분은 우물반자를 설치하고,

중도리와 처마도리 사이는 연등천장으로 하였습니다.

 

 

 

탁사정은 주변으로 송림과 잡목이 우거져 있는 평탄지에 동남향하여 위치하고 있는데,

전면의 기암절벽 밑으로는 용암천이 굽이쳐 흐르고,

서북쪽으로는 제천~원주 간 국도 5호선이 지나고 있으며, 

탁사정은 제천 10경 중 9경의 경관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곳 입니다.

 

 

 

탁사정((濯斯亭) 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중국 초(楚)나라 사람이었던,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詞)」에 나오는 "창랑지수청혜탁오영 창랑지수탁혜탁오족(滄浪之水淸兮濯吾纓 滄浪之水濁兮濯吾足)"

이라는 글귀를 줄인 것으로 "세속의 모든 때를 깨끗이 씻고 자연과 같이 소박하게 살자"는 것을 의미하므로,

물질 만능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교훈적 자료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풍광이 뛰어나고 물놀이에 적합한 유원지가 아래에 있어 역사적 교훈과 놀이를 함께 할수있는 곳으로,

충북 제천의 정자 탁사정((濯斯亭) 방문기 입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