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선의 원림으로 이름나 있는, 

강원도 춘천의 청평사(淸平寺) 고려선원(高麗禪園)을 다녀왔습니다.

 

청평사(淸平寺)로 들어가는 길은 차로 들어가는 길과,

소양강댐 선착장에서 배로 들어가는 방법이 있는데 풍광이 좋은 후자를 택하여 배를 이용합니다.

 

 

 

청평사(淸平寺)로 들어가기전 소양강댐 선착장의 주차장에 차를두고,

소양강댐 물문화관도 둘러보고 호반의 경치도 즐긴후 청평사(淸平寺)로 향합니다.

 

 

 

소양호 유람선 선착장에서 청평사(淸平寺)로 들어가는 배는신분증이 필요치 않지만,

유람선을 타고 소양호를 관광하려면  별도로 신분증이 있어야 합니다.

 

 

 

소양호 선착장에서 청평사 선착장까지 배타는 시간은 그리오래 걸리지 않으며,

소양호의 경치를 살피다 보면 어느새 내려야할 선착장이 들어 옵니다,

 

 

 

청평사 선착장에서 노점상가를 지나다 보면,

평양공주와 상사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표지도 보이고,

 

 

 

익어가는 가을임을 알리듯,

단풍이 물가 가까이 까지 내려와 있습니다.

 

 

 

청평사(淸平寺)로 오르는 초입부터 가을 단풍으로 수놓고 있고,

 

 

 

오르는 길옆의 계곡의 소폭포에서도 가을이 넘어가는 모습이 비칩니다.

춘천 청평사(淸平寺) 고려선원(高麗禪園)은 계곡, 영지(影池), 소(沼), 반석, 기암괴석, 폭포 등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선경을 간직하고 있어,

2010년에 명승 제70호로 지정되었으며 도교적 은둔관과 불교의 선(禪) 사상이 내재된 사찰로,

이제현, 나옹선사, 김시습, 퇴계 이황 등 많은 시인 묵객들이 찾아 머물며 글을 남겼던 곳이기도 합니다.

 

 

 

 

 

청평사(淸平寺)하면 빼놓을수 없는 이야기가 "평양공주와 상사뱀" 입니다.

공주는 원나라 왕 순제(진종)의 딸로 이름은 평양공주로 그녀의 외모는 매우 아름다웠다고 하며,

그를 짝사랑한 사람이 많았는데 그중 산둥지역 자사(지방관 벼슬)의 아들이 있었는데, 결국 상사병에 걸려 죽어서 상사뱀으로 환생했는데,

어느날 공주가 목욕하는데 숨어있다가 목욕하러온 공주를 덮쳐, 그녀의 몸을 칭칭 감아버렸고 그후 공주의 몸에서 떨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후 공주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여 거의 폐인의 지경에 이르게 되는데,

그때 고려에서 온 어느 승려의 권유로 고려땅으로 들어가서 고려의 주요 사찰을 순례하며 불공을 드리게 되었고,

그렇게 고려땅을 순례하다가 어느덧 이곳 청평사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절 근처의 굴에서 머물며 기도를 하기로 결심하였고  절에 들어가 예불을 드리기 위해 목욕재계를 해야했던 공주는,

뱀에게 잠시 몸에서 나와달라고 간절히 부탁을 하여 허락을 받아 공주는 목욕을 하고 야윈 몸을 추스리고  청평사에 들어가서 기도를 하였고, 

동굴에 남아 있던 상사뱀은 기다리다 못해 공주를 찾아서 절에 올라가 정문을 들어 가려고 하니,

별안간 뇌성벽력과 함께 소나기가 쏟아져서 마침내 그 물에 떠내려가 죽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은 이 문을 회전문(回轉門)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절에서 예불을 드린 공주가 먹을것을 얻어 기거하던 굴로  내려와보니 자신의 몸을 칭칭 감았던 뱀이 죽어서 폭포아래에 떠 있는 모습을 보고,

가련한 생각에 정성껏 묻어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공주의 병이 깨끗이 낫게 되었고 그 소식을 접한 원나라 황제은 기뻐하며 청평사에 크게 지원을 했다고 하며,

평양공주 역시 이 절에 더 머물러 기도하며 있다가 귀국했다고 합니다.

 

 

 

"평양공주와 상사뱀의 전설" 에 대한 설명이 적힌 안내판엔,

신라시대의 당나라 황제 태종의 딸이라고 되어있지만 청평사는 고려 광종때 창건된 사찰로,

선덕여왕때 당나라의 공주가 신라에 온것으로 되어  기록에도 찾아볼수 없으며  이 절의 창건시기는 고려광종때 이므로,

선덕여왕때와 무려 300여년이나 차이가 나며  또한 당나라에서 지체높은 왕족이 왔다해도, 

당시 춘천땅은 고구려와 가까운 산악지대로 별로 안전한 곳은 되지 못하는 곳입니다.

청평사에 얽힌 평양공주와 상사뱀의 전설은 저마다 시대적으로 들쑥날쑥하여 어떤것이 정설인지는 확실하지는 않으나,

실제 평양공주는 몽고 원나라의 공주였을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이 전설로 미루어볼때 이 청평사는 몽고의 지원을 받은 사찰로,

고려에 시집온 몽고 공주와 인연이 있었던 것으로 사료되며 이런 인연으로 청평사는 중흥할수 있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또다른 자료에는 이 사찰이 몽고왕실의 복을 기원하는 사찰 이었다고도 전하는데,

우리나라 산천에는 애틋하고 아련한 전설과 사연이 참으로 많은듯 합니다.

 

 

 

사찰을 향해 조금더 오르다 보면 자연암석인 거북바위 가 보이고,

청평사(淸平寺) 원림은 선동(仙洞)으로 진입하는 대문과도 같은 거북바위를 지나면서 시작되는데,

거북이가 물을 바라보게되면 청평사가 크게 융성할것이라는 전설이 있기도 합니다.

 

 

 

거북바위에는 "신규선(申圭善)"과 "김교창(金敎昌)"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신규선(申圭善)"은 절의 역사책인 "청평사지"를 편찬하도록 권고하고,

문수원기를 극락전으로 이전할 당시인 1914년에 춘천군수를 지냈으며,  1915년에 청평사를 정비한 인물입니다.

 

 

 

 

청평사(淸平寺)로 오르는길에는,

이곳을 찾은이의 수많은 돌탑들을 있는데 공력이 돋보이는 돌탑도 눈에 들어옵니다.

 

 

 

거북바위를 지나면,

두개의 아름다운 폭포를 만나게 되는데,

아홉그루의 소나무가 있어 얻은 이름인 "구송폭포(九松瀑布)" 중 하폭의 모습입니다.

 

 

하얀 물줄기를 푸른 담으로 떨어뜨린 구송폭포(九松瀑布) 에는,

가을낙엽도 함께하여  또 하나의 운치를 더해 줍니다.

 

 

 

하폭의 윗쪽에는 두 개의 폭포로 이루어진 구송폭포(九松瀑布)중 상폭의 전경이 들어오고,

 

 

 

시원한 물줄기를 자랑하듯,

환경에따라 아홉가지의 소리가 난다는 "구성폭포"라는 별칭이 있는 "구송폭포"의 상폭입니다.

 

 

구송폭포(九松瀑布)의 아홉그루 소나무는 조선후기에 없어졌으나,

폭포 앞에는 공주가 절에 들어가기전 머물렀다는 "공주굴"은 남아 있습니다.

 

 

 

공주굴의 벽면에는 글씨지 그림인듯 있으나 알아보기 힘듭니다.

 

 

 

평양공주의 상사뱀이 죽어 발견 되었다는, 

구송폭포(九松瀑布)의 소(沼)를 폭포위에서 내려다 봅니다.

 

 

 

사찰을 향해 오르다 보면 건물이 보이고,

세향원(細香院) 터로 추정 되는곳으로 김시습(1435~1493)이 한때 은거했던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김상헌(金尙憲;1570∼1652)은 「청평록(淸平錄)」에서 "절의 남쪽 골짜기 속에 세향원(細香院)이 있는데,

"청한자(淸寒子)"가 머물러 살던 곳으로 지금은 무너졌다" 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청한자는 김시습의 호이며 예스런 담장안으로 청평루가 있으나 들어갈수 없으며 한쪽에는 찻집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세향원(細香院) 터를 지나면 이자현의 부도가 있어 들어가 봅니다.

 

 

 

뒷쪽의 화강암 부도의 주인은 1990년에 입적한 청평사 주지 석진화상 이며,

앞쪽에 이끼가 앉은 팔각원당형의 부도는 이자현의 것으로,

이자현(李資玄:1061년(문종 15)∼1125년(인종 3))은 고려시대 중기의 문신, 학자, 문인, 거사(居士)이며,

본관은 인주(仁州), 자는 진정(眞靖), 호는 식암(息庵)·청평거사(淸平居士)·희이자(希夷子)로

문하시중 이자연(李子淵)의 손자이며, 인예왕후, 인경현비, 인절현비의 조카로 1089년(선종 6)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여러 벼슬을 거쳐 대악서승(大樂署丞)이 되었으나 관직을 버리고 강원도 춘천의 청평산(淸平山)에 들어가서,

아버지가 세웠던 사찰 보현원(普賢院)을 문수원(文殊院)이라 이름을 고치고 중건하였으며,

여기에 당(堂)과 암자를 지어 생활하며 이곳에서 베옷과 나물 밥 등으로 생활하며 학문 연구와 선(禪)을 즐겼습니다.

문벌과 배경이 있었으나, 관직 욕심이 없었는데 후일 예종이 사람을 시켜 다향(茶香)과 금백(金帛)을 보내어 여러 번 불렀으나 모두 사양하였고,

1117년(예종 12) 예종이 남경(南京)에 행차하였을 때 잠시 왕을 만나기는 하였으나,

곧 다시 문수원에 들어가 평생을 수도생활로 일관하였으며,  사후 진락(眞樂)의 시호가 내려졌습니다.

 

 

 

이자현의 부도위 길건너 에서는 "영지 명문 바위(影池 銘文 바위)"를 만날수 있는데,

 

 

 

명문바위의 윗면에 한문으로 지은 시가 새겨져 있어,

心生種種生(심생종종멸)     마음이 일어나면 모든 것이 생겨나고

心滅種種滅(심멸종종멸)     마음이 사라지면 모든 것이 사라지네.

如是俱滅已(여시구멸이)     이와 같이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나면

處處安樂國(처처안락국)     곳곳이 모두 극락세계로구나.

이 시는 스님이 깨우침을 얻고 나서 지은 시라는 뜻의 오도송(悟道頌)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영지(影池)는 청평산의 견성암이 비친다는곳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연못으로 알려져 있는곳 입니다.

영지는 연지와 달라 연꽃을 심는 연못이 아니라 못의 수면을 고요하게 하여,

수면이 가지는 투영효과에 의해 그림자를 드리우게 하는 못으로 여러 사찰에 조성되어 있는 사찰 지당의 한 종류입니다.

매월당 김시습은 청평사 영지를 보고 “네모난 못엔 천 층의 봉우리 거꾸로 들어 있고(方塘倒揷千層峀)..”라 표현하고 있는데,

이 영지는 북단에 자연석을 지하에 중첩되게 깔고 석축을 쌓았는데 계곡물이 이 석축 아래로 스며들어 영지 수면 아래서 물이 솟아오르게 하는,

특이한 입수구조를 지닌 못으로 알려져 있으나 지금은 물이 부족한 탓인지 풀들만 자라고 있어 아쉬움이 남습니다.

 

 

 

청평사(淸平寺) 경내가 눈에 들어 옵니다.

청평사 고려선원은 973년(광종 24)에 백암선원(白岩禪院)이 창건된 이후,

1068년(문종 22)에 이의(李顗)가 중건하면서 보현원(普賢院)으로 명칭이 바뀌었다가,

1089년(선종 6)에 문수원(文殊院)으로 다시 명칭이 변경되었는데,

이는 이자현(李資玄)이 문수보살의 감응을 받아 선원의 이름을 명명한 것이라고 합니다.

 

 

 

청평사(淸平寺)의 석축에서도 우리만의 독특한 건축술의 하나인 그랭이 기법의 일부를 볼수있으며,

 

 

 

청평사 원림은 선학(禪學)에 매진한 이자현에 의해 참선의 경역으로 승화 되었는데,

그는 문종 때 문과에 급제한 후 대악서승(大樂署丞)에 올랐으나 벼슬을 사직하고 청평산에 입산하여 보현원을 문수원이라 고치고,

당(堂)과 암자를 지었으며 청평식암(淸平息庵)이라는 글자를 바위에 새겨 청평사 일대를 선원의 공간으로 다듬었습니다.

 

 

 

청평사(淸平寺)에는 우리나라 서예사상 가장 뛰어난 두 명품 비석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로 김부철(金富轍,,富儀, 1079-1136)이 짓고, 대감국사(大鑑國師) 탄연(坦然, 1070-1159)이 글씨를 쓴,

《진락공 중수 청평산 문수원기 (眞樂公重修淸平山文殊院記)》로 비는 지금은 모두 없어지고,

현재 청평사에 남아있는 이 비 들의 흔적은 서편에 있는 문수원기비의 받침 뿐입니다.

문수원기비(文殊院記碑)는 6.25 때 완전 파괴되어 일부 남은 비편만 동국대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다행히 탁본이 다수 남아 있어 비의 진면목을 알수 있고 비문은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이 지었으며 행촌(杏村) 이암(李嵒)이 비문을 썻다고 합니다.

 

 

 

보물 제164호 청평사 회전문(淸平寺 回轉門) 입니다.

앞면 3칸, 옆면 1칸의 단층 문으로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문은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위치해 있으며,

가운데 1칸은 통로로 사용되고 있는데 제법 넓은 편으로 그 좌우의 협간(夾間)은 가운데칸에 비해서 매우 좁지만,

3면을 모두 벽으로 마감하여 안에 천왕(天王)이나 신상(神將) 등의 입상(立像)을 모실 수 있도록 하였으며 문의 좌우에는 익랑이 길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회전문을 들어서면 중층누각인 경운루(慶雲樓)가 들어오고,

 

 

 

연등이 가득한 경운루(慶雲樓)의 마루에 올라봅니다.

 

 

 

누각의 마루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으로,

만추의 산사는 감탄이 절로 나오게 합니다. 

 

 

 

청평사의 경운루를 지나면 대웅전(大雄殿)의 모습이 보이고,

 

 

 

오른편 한쪽에는 범종각의 모습도 들어 옵니다.

 

 

 

대웅전(大雄殿)을 가운데 두고 오른쪽에는 나한전(羅漢殿)이 있어,

 

 

 

나한전(羅漢殿)은  아라한의 경지에 이른 성자들을 모신 곳입니다.

 

 

 

대운전의 왼쪽에는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시는 전각인 관음전(觀音殿)이 자리해 있고,

 

 

 

대웅전 오른쪽 옆에는 오래지않은 비석으로 법당중창불사공덕비가 자리해 있고,

 

 

 

나한전의 뒤편에는 사찰의 화장 장소인 다비장(茶毘場)의 장소로 보이는곳도 있습니다.

 

 

 

안을 들여다 볼때는 몰랐었는데,

대웅전과 관음전, 나한전 모두 맞배지붕으로 올려져 있슴을 극락전으로 오르면서 알게 됩니다.

 

 

 

아미타전(阿彌陀殿), 무량수전(無量壽殿)으로도 표현되기도 하는 극락전(極樂殿)입니다.

불교도의 이상향인 서방극락정토를 묘사한 전각으로 극락정토의 주재자인 아미타불을 모신 법당(法堂)입니다.

 

 

 

화려한 팔작지붕 아래에서 극락전(極樂殿)앞을 지키고 있는 두마리의 용가운데 황룡의 모습을 담아보고,

 

 

 

극락전(極樂殿)옆에 한단높이 정도 올라있는 산신각도 들여다 봅니다.

산신각 (山神閣)은 우리나라 사찰에서 특유의 전각 가운데 하나로서 한국불교의 토착화 과정을 보여주는 좋은 증거가 되는 전각으로

산신을 봉안한 사찰의 당우의 하나 입니다.

 

 

 

청평사(淸平寺) 경내를 돌아보고,

스님의 수행처로 일반인 출입금지구역의 스님들의 살림살이도 먼발치서 보게됩니다.

 

 

 

사찰의 겨울나기 준비의 모습으로,

청정한 이곳의 시레기는 그맛이 다를것으로 여겨져 더욱 깨끗해 보이기도 합니다.

 

 

 

법당을 나와 사찰앞에 있는 공주탕을 찾아 봅니다.

 

 

 

낙엽에 가려 찾아내는데 어려움이 있었던 공주탕으로,

"평양공주가 공주굴에서 하룻밤을 자고 이곳에서 몸을 깨끗이 씻은후 스님의 옷인 가사를 만들어 올렸고,

그 공덕으로 상사뱀은 공주와 인연을 끊고 해탈 하였다" 라고도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는 공주탕 입니다.

 

 

 

우리나라에 현존하고 있는 고려시대의 정원 유적은 매우 희소하여,

조선왕조 500여 년을 지나는 동안 많이 훼손되기도 했지만 남아 있는 유적조차 주로 북한 지역에 분포하고 있기 때문이며,

충남 아산에 있는 맹사성 고택이 있어 찾아 보았지만 정원 유구가 정확히 당시의 것이라고 할 수 없고,

이에 관한 내용도 거의 문헌에 의존하고 있어 그 실체를 짐작할 수밖에 없는 상태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청평사 고려선원은 고려시대 원림 유적을 대표하는 조경유산이라 할 수 있어,

고려시대 정원에 관한 면모를 찾아낼 수 있는 유일한 선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찰인 청평사(淸平寺)를 살피기 보다 참선의 원림인 고려선원(高麗禪園)을 돌아보는데 더큰 의의가 있었던,

강원도 춘천의  명승 청평사(淸平寺) 방문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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