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의 정자 문화재 탐방길에서,

전라북도의 문화재자료 제15호로 지정된  진안 영모정(鎭安 永慕亭)을 찾았습니다.


 

영모정(永慕亭)은 미계(美溪) 신의연(愼義連, 1581~?)의 효행을 기리고 본받고자,

1869년(고종 6)에 건립한 2층 누정으로 전북 진안군 백운면 노촌리에 있는 미재천의 풍광 좋은곳에 자리해 있습니다.

 

 

 

노촌리 마을의 초입 이며,

영모정(永慕亭)으로 들어가는 입구 이기도한 이곳에는 효자각과 비석들이 자리해 있어,

 

 

 

정면 1칸 측면1칸의 팔작지붕의 구조로,

1801년(순조 1)에 세운 "미계 신의연 효자 정려각(美溪 愼義連 孝子旌閭閣)"으로,

 

 

 

정려각(旌閭閣)의 내부에는 "증 수의부위 효자 신의연지려(贈 修義副尉 孝子 愼義連之閭)"의 편액이 있습니다.

 

 

 

효자각 곁에는 비석군이 자리하고 있어,

"영모정(永慕亭)비"와  "미계 신의연(愼義連)선생을 기리는 비" 등이 자리해있어,

"미계신의련유적비(美溪愼義連遺蹟碑)"의 내용을 살펴 봅니다.

잉어와 꿩이 기적을 나타내고      승냥이와 뱀들이 독을 풀지 못함은

효성이 하늘에 닿음이요             천성이 독실하였기 때문이다.

인성(仁聲)의 감응에서              은혜가 오만(五萬)에 미쳤으니

공덕의 드높음이                      병수사(兵水使)와 맞먹는다.

후손들 사적을 기록하니,            동구에 빗돌 드높으나,

구태여 비를 할 것 뭐람,             만구(萬口)가 전송(傳誦)할 것을

 

 

 

효자각과 비석군의 길 건너에 내려 가는 길이 있어,

돌너새로 이은 팔작지붕의 영모정(永慕亭)이 보입니다.

 

 

 

노촌리의 미재천 냇가에 자리하고 있는 영모정(永慕亭)으로,

1869(고종6년) 지어진 누각으로 전면 4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을 이루고 있으며 지붕에 너와를 사용한 것이 특이합니다.

 

 

 

영모정(永慕亭)의 현판으로 공조참의 조인승(曺寅承, 1842~1896))의 글씨로 알려져 있으며,

영모(永慕)란, "오래도록 사모 한다"는 의미 입니다.

 

 

 

마루로 오르는 네기둥에서 주련의 모습을 볼수있어,

"忠孝傳家子孫興(충효전가자손흥)" "綠野長春知鹿壽(녹야장춘지녹수)"의 주련이 들어옵니다.

 

 

 

마루에서 올려다 보이는 천정 중앙에는 용문양을 그려 넣었는데,

일반적으로 팔작지붕의 천정 에서는 이 부분을 우물천장으로 마감 하는데 영모정(永慕亭)에는 판자로 가리고 용을 그려 넣었습니다.

 

 

 

마루에서 남쪽 가운데에는 영벽루(永碧樓)라고 쓰인 현판이 보이고,

 

 

 

영모정(永慕亭)은 그리 크지 않은 정자임에도  위아래 기둥은 다른 정자와 달리 12개가 서있어,

튼튼한 점은 있지만 마루위는 기둥으로 인해 좁아 보이며 이용할 공간이 줄어들어 아쉬우며,

마루 위에는 여러 편액들을 볼수 있어,

 

 

 

영모정상량문(永慕亭上樑文)으로 이조참판을 지낸 윤성진(尹成鎭, 1862~?)이 지었으며,

 

 

 

진안군지(鎭安郡誌)에 있는 원문을 번역한 영모정기(永慕亭記)도 편액되어 있으며,

 

 

 

후손들의 시판(詩板)들을 함께 볼수 있습니다.

 

 

 

정자의 마루에서 계곡의 윗쪽을 내어다 봅니다.

난간 아래로 들어오는  미재천은 깨끗하고 맑습니다.

 

 

 

영모정(永慕亭)과 효자각이 있는 이 마을은 거창신씨들의 집성촌으로,

영모정(永慕亭)은 거창 신씨(居昌 愼氏) 미계공(美溪公)파 자손들이 이 마을에 정착한 시기는 중종반정이후로,

450년 전에 입향조(入鄕祖)인 신인장이 현재 하미치와 노촌제 사이에 있는 바위밑에 띠집을 짓고 살았다고 하며,

 신인장의 아들은 신순이고,  손자가 바로 미계 신의연(愼義連)으로 효행과 연계가 됩니다.

 

 

 

신의련愼義連(1581~?)은 본관은 거창이고 호는 미계(美溪)이며,

어려서부터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부친의 병 구완을 위해 한 겨울에 꿩과 잉어를 구하여 간호 하기도 하였습니다.

임진왜란을 당하여 김천일의 의병에 가담코자 하였으나 늙으신 아버지 신순이 병중이어서 나아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왜적이 이곳까지 쳐들어와 아버지를 죽이려 하였을 때 자기 몸으로 아버지를 몸으로 막으며,

울면서 왜적에게 차라리 자기를 죽여 달라고 간곡히 애원을 했다고 합니다.

공의 효도에 감동한 왜장은 해를 끼치지않고 다만 공의 효성을 실제로 보기위하여 손가락을 깨물어 "효자 신의련"다섯자를 써 보라고 했고,

신의련이 다섯자의  혈서를  써서 주니 왜장이 뜰에 불을 피워 글을 태웠으나,

"효자 신의련" 다섯 글자는 불타지 않고 종이만  타버린후 글자가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이에 왜장이 하늘이 내신 효자라고 감탄하면서,  

동구 밖에 "효자가 사는 곳(孝子所居之地)  이곳을 해하지 말라" 라는 푯말을 마을 입구에 세우고 물러가게 되었고,

이로 인해 이곳은 피난처가 되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거치며 이 골짜기로 들어와 살아남은 사람은 5만명에 달한다고 전하며,

 

 

 

그런 연유로 이곳을 일명 오만동(五萬洞)이라 부르기도 했고 저 들판은 면화평(免禍坪), 남쪽에 오똑 솟은 산은 덕태산(德泰山)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후에 조정에 알려져 선조임금은 신의연에게 수의부위(修義副尉)라는 벼슬을 내리고 품계와 정려가 내려졌으며,

마을 입구 왜장이 푯말을 붙였던 곳에 효자각을 세우게 하였는데, 이 사실은 명나라에까지 전해 졌다고 합니다.

 

 

 

영모정(永慕亭)의 처마를 단장한 화려한 단청에 돌판 너와의 지붕끝 모양도 들여다 봅니다.

 

 

 

호남지방에서는 보기힘든 돌너와 지붕의 "영모정(永募亭)"으로,

돌너와 든 나무 너와든 너와집은 대부분 영남 북부산간이나 강원도 쪽에 있어 인상적 입니다.

 

 

 

정자의 아랫부분을 살펴 보고,

기둥은 지형의 고,저에 따라 세가지 크기의 기둥에다 주초는 단순가공한 원형 주춧돌을 이용 하였슴을 볼수있는데,

 

 

 

앞부분 좌우측 두 기둥의 초석은 거북형상의 초석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특이한데,

거북의 형상이 물을 향하고 있으면 그곳이 흥한다는 믿음과 거북이 장수의 상징이니,

오랫동안 잘 보전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초석에 돌거북을 넣은 것으로 여겨 집니다. 

 

 

 

영모정 주변에는  참새가 많은데 참새도 효심을 아는지 영모정에는 똥을 싸는 일이 있지만,

효자각에는 똥을 싸지 않은 것을 보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더욱 감탄하고 있다도 전하며,

물길에 투영되는 정자와 자연이 어우러지는 풍경이 인상적으로 남아 있는곳 입니다.

 

 

 

정자를 휘어감고 흐르는 맑은물과 계곡일대가 시심(詩心)을 불러 일으킬만 하여,

"진안 영모정 하천숲"은 제9회 "아름다운숲 전국대회"에서 누리상(네티즌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아름다운곳 입니다.

 

 

 

영모정(永慕亭)에서 윗쪽으로 조금만 더가면,

내려가는 계단 앞에  천을 가로질러 미룡교가 놓여 있고,

 

 

 

미룡교에서 보이는 모습으로,

계곡물은 비사동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데 곳곳이 수려해 여름에는 외지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으로

미재천 계곡은 아주 높은 산의 깊은 골짜기마냥 수려하여 여름이면 저 바윗돌에 앉아 발 담그면 좋겠다 싶은 그런 계곡입니다.

 

 

미룡교를 건너면 정면 세칸, 측면 두칸의 팔작지붕의 제법 규모있는 미룡정(美龍亭)이 자리해있어,

 

 

 

돌계단을 통하여 마루로 올라 봅니다.

 

 

 

미룡정(美龍亭)또한 영모정과 마찬가지로 방을 들이지 않고 마루만 둔 형태 이지만,

중간기둥이 없어 규모도 크지만 더욱 넓게 느껴 집니다.

 

 

 

고풍을 찾기보다는 마을의 휴식처 같은 느낌의 미룡정(美龍亭) 으로,

 

 

 

미룡정(美龍亭)의 마루위 에서도 편액들을 볼수 있어,

 

 

 

미룡정상량문(美龍亭上樑文)과 후손의 시판등을 볼수 있습니다.

 

 

 

미룡정(美龍亭)의 마루에서의 풍경으로 영모정에 비해 떨어지는 느낌은 있으나 산수를 즐기기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미룡정(美龍亭) 또한 영모정(永慕亭)과 마찬가지로,

신의련(愼義連)의 효행을 기억하고자 후손들이 세운 것이라 합니다.

 

 

 

미룡정(美龍亭)의 뒤뜰에는 미룡정기와 신의련의 영모비를 볼수 있고,

 

 

 

자연석에 글을 새긴 선돌도 볼수 있으며,

 

 

 

정자의 앞을 비켜선곳에 자연석으로 세운 비석들도 보입니다.

 

 

 

호남에서는 볼수없는 점판암 판돌의 돌너와 지붕과,

진안 영모정 숲의 아늑함 속에 자리하고 있으며,

신의련(愼義連)의 효행으로 전란속에서 많은 백성들을 구할수 있었던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는곳으로,

전북 진안의 효행의 정자 문화재 영모정(永慕亭) 방문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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