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영동의 정자문화재 탐방길에서,

양산팔경 권역에 있는 봉양정(鳳陽亭)을 찾았습니다.

 

봉양정(鳳陽亭) 역시 함벽정과 마찬가지로,

이곳을 찾으려면 영동군청의 홈페이지 주소로는 찾을 수가 없는것이,

소재지가 "충북 영동군 양산면 수두리 산 5-11번지"로 되어있는데,

지도 검색을 해보면 아예 없는지번으로 나올 정도로 관리가 허술 합니다.

 

 

 

그래서 함벽정을 둘러 보기위해 택했던 양산팔경 금강 둘레길 6km 코스를 이용하여,

강선대에서 출발해서 함벽정을 거쳐 봉양정(鳳陽亭)을 돌아 보기로 합니다.

 

 

 

둘레길에서 함벽정을 지나 얼마걷지 않으면,

안내문과 함께 위로 오르는 계단 위에서 봉양정(鳳陽亭)을 찾을 수 있으며,

 

 

 

영동군 향토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된 "봉양정(鳳陽亭)"으로,

 

 

 

봉양정(鳳陽亭)의 안내문으로,

이곳 또한 안내문은 관리상태의 부실로 판독(?) 하기에 힘이 듭니다.

또한 홈페이지의 주소와 안내문의 주소는 서로 달라,

오히려 안내문의 주소가 정확한편인데 이곳을 찾고난후에 바른 주소가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면 2칸, 측면 두칸의 목조기와 팔작지붕의 구조로,

봉양정(鳳陽亭)은 함벽정과 닮은 부분이 많아  마치 사촌쯤 되는 정자로 보이기도 하는데,

 

 

 

 

봉양정(鳳陽亭)의 현판으로 봉양정에는 모두 3개의 현판이 걸려 있어,

입구에서 보이는 현판으로 정자앞에서 보면 왼쪽에 있으며,

 

 

 

정자의 정면에 있는 봉양정(鳳陽亭) 현판이며,

 

 

 

정자의 오른쪽 옆면에서 볼수있는 봉양정(鳳陽亭)의 현판으로,

글씨체도 다르며 현판의 글씨도 제각기 다른사람의 것임을 보게 됩니다.

 

 

 

방의 정면은 함벽정과는 다르게 4짝문을 달았는데,

문짝을 들어올린 들문의 모습을 보여주어 시원함을 맛볼수 있으며,

 

 

 

방도 함벽정(涵碧亭)과 마찬가지로 마루방여서,

비바람을 피하거나 쉬는 공간으로 사용 되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정자의 매력은 들문을 들어 올려,

방안에서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방안까지 들여 오는데 큰매력이 있습니다.

아쉽게도 방문틀 위에 보이는 낙서는 문화재를 훼손하면서 써놓아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봉양정(鳳陽亭) 의 마루에서 현판외 볼수있는 단하나의 편액으로,

편액의 날자가 단기4290년(檀紀四二九ㅇ年)으로 되어있어 1957년에 올렸슴을 볼수있으나,

글이 짧아 내용은 알수 없습니다.

 

 

 

봉양정(鳳陽亭)은 함벽정에 비해 좀더 높은곳에 자리해 있어,

 

 

 

인근의 함벽정은 물가의 풍광을 즐겼다면,

봉양정(鳳陽亭) 조금더 높은곳에서 멀리까지의 조망을 즐겼던 것으로 보입니다.

 

 

 

봉양정(鳳陽亭)은 금운(錦雲) 이명주(李命周)가 젊어서부터 이곳을 좋아하여 동문수학(同門受學)하던 13명과 함께 힘을 모아,

병신년(丙申)에 정자를 지었다고 되어 있는데 병신년은  또는 1956에 해당 되는데,

1956년 창건이면 1967년에 중건한 것으로 되어 있어 1년만에 중건은 이상하며,

이명주(李命周)는 지금의 금호루(錦湖樓) 자리에 있었던 무주 한풍루와 밀접한 관계가 있어,

일본인 우수이이또(簿井 誠)가 매입한 한풍루(寒風樓)를 1936년 충북 영동군 양산 사람 이명주(李命周)가 다시 매입하여,

1938년에 이명주외 선비 37명이 전북 무주군의 한풍루(寒風樓)를 뜯어다 지은후 금호루(錦湖樓)라고 명명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젊은 시절의 이명주(李命周)라는 단초가 있어 1896년에 지은것으로 추측해 봅니다.

 

 

 

양산팔경 금강 둘레길 6km 코스중 강선대에서 봉황대에 이르는곳이 정점이기도 한데,

기록이 부족한 점이나, 정자의 구조및 양식등이 함벽정과 많이 닮아 있으나 분위기는 다른곳으로,

충북 영동의 정자 문화재 "봉양정(鳳陽亭)"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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