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군위, 의성지역을 돌아보면서,

의성을 대표하는 고찰 고운사(高雲寺)를 찾았습니다.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구계리 등운산(騰雲山)에 있는 고운사(高雲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로 의성, 안동, 영주, 봉화의 4개 시·군의 60여개의 말사를 관장하고 있는데,

명찰로 이름나 있는 영주의 부석사, 안동의 봉정사 등도 포함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찰이 시작되는 경계임을 알려주는 일주문(一柱門)으로,

절에 들어서는 산문(山門) 중 첫번째의 문으로 재가와 "출가가 둘이 아니며 시간과 공간도 둘이 아니요, 생사와 열반이 둘이 아니라"는 의미로,

누구든지 이 일주문에 들어오면 이 진리를 깨닫고 잃었던 본 바탕을 되찾으라는 뜻으로 세워진 일주문(一柱門)입니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고운사(高雲寺)의 사찰 배치를 알수있는 안내문이 있어 살펴보면,

고운사는 681년(신문왕 1)에 해동 화엄종의 시조 의상(義湘)이 창건하여 고운사(高雲寺)라 하였는데,

그 후 최치원(崔致遠)이 승려 여지(如智), 여사(如事)와 함께 가운루(駕雲樓)와 우화루(羽化樓)를 건립하고,

이를 기념하여 최치원의 자(字)를 따서 고운사(孤雲寺)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헌강왕 때는 도선(道詵)이 약사여래석불과 석탑을 안치하였는데 그 당시 사찰의 규모가 五法堂十房舍(5동의 법당과 10개의 요사채)였다고 하며,

948년(정종 3) 운주(雲住)가 중창하였고 1018년(현종 9)에는 천우가 대웅전·약사전·극락전·적묵당·설선당 등을 중창하였으며,

1695년(숙종 21)에 중수하였고 1835년(헌종 1) 화재로 소실되자 만송·호암·수열 등이 함께 재건하여 근대까지 재건과 중수가 계속 되어온 사찰입니다.

 

 

 

일주문을 지나면 불법을 수호하고 부처님의 세계를 지키는 사천왕(四天王)을 모시는 곳인 천왕문(天王門)이 자리해 있어,

사천왕문(四天王門)으로 칭하기도 하는데 사천왕들은 불교경전에 나타나는 인도 재래의 神(신)인데,

불교의 수호신이 되어서 사방을 지키게 된 것으로 일정한 모습이 처음부터 규정된 것이 아니어서 인도에서는 귀족의 모습으로 표현되었고,

중앙 아시아나 중국, 우리 나라로 전파되는 동안 무인상(無人像)으로 변형 되었다고 합니다.

 

 

 

천왕문(天王門)을 들어서면 오른쪽에는 4개의 하늘중 동쪽을 지키는 持國天王(지국천왕)은 비파(琵琶)를 들고 있고,

보검(寶劒)을 들고 있는  증장천왕(增長天王)은 남쪽을 수호 하고 있으며,

 

 

 

맞은편에는 서쪽의 광목천왕(廣目天王)은 용과 여의주(如意珠) 또는 견색(絹索; 새끼줄)으로 표현하고 있고,

북쪽의 다문천왕(多聞天王)은 보탑(寶塔)을 받쳐든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천왕문을 지나면 "丁"자형의 고불전(古佛殿) 전각이 있어,

 

 

 

고불전(古佛殿)의 현판이며,

 

 

 

전각의 중앙에는 통일 신라시대의 불상으로 추정되는 약사불 좌상(藥師佛坐像)이 모셔져 있어,

약사불은 결가부좌한 무릎 위에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하고 있으며 머리와 얼굴 부분이 손상되어 훼손이 심합니다.

 

 

 

3칸으로 나누어져 있는 고불전(古佛殿)의 오른쪽은 닫혀있고,

왼쪽에는 돌로 된 석비가 아니라 보기 드문 쇠로 만든 철비가 있어,

"현령 이용준 영세불망비(縣令 李 侯 容準 永卋不忘碑)"로 정확하게는 철비가 아니고 구리로 만든 동비라 하며, 

1859년(己未 哲宗10년)에 세운것으로 이곳 고운사와 인연이 있는듯 한데  철비는 주로 17~18세기에 성행 했다고 합니다.

 

 

 

고불전을 지나면 전각들의 모습이 들어오며,

신라말 학자인 최치원(崔致遠)이 여지(如智), 여사(如事) 두 대사(大師)와 함께 세운 누각인 가운루(駕雲樓)가 있어,

옛날에는 이 누각 아래로 계곡물이 많이 흘러내려서 계곡에 잠기는 부분에는 돌기둥을 놓고 그 위로는 나무기둥을 이어서 누각을 받쳤는데,

이제는 예전처럼 물이 흐르지 않아 본래의 진가는 발휘하지는 못하지만 건물 자체의 정교한 아름다움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1호로 지정된 가운루(駕雲樓)에는,

1676년(숙종 2)과 1717년의 중수기가 남아 있어 여러차례 고쳐 지었슴을 알수있으며,

 

 

 

고운사를 관통하는 개울 위로 사람들이 지나다닐 수 있게 만들어진 가운루(駕雲樓)는,

땅의 높낮이에 따라 기둥의 길이를 달리해 지어진 건물로 가운루의 기둥 길이는 저마다 다른데,

물길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계곡 속 바위를 초석 삼아 거기에 맞춰 기둥을 세웠기 때문 이라는데,

3쌍의 긴 기둥이 계곡바닥에서 거대한 누를 떠받치고 있는 모양새로 만들어져 있는 특별한 건축 양식에 다시 한 번 눈길이 가는 곳이기도 합니다.

 

 

 

가운루(駕雲樓)는 건물의 전면과 양 측면은 판벽으로 구성되었고,

전면 중앙 3칸에는 가운데 설주가 있는 쌍여닫이 판창문이  남측면에는 판문으로 된 출입문을 두었으며,

북측면의 동쪽 칸에 치우쳐서 누각을 오르내리는 계단이 나무로 짜여 있고 양여닫이 판문을 달아 누에 들게 하였습니다.

 

 

 

가운루(駕雲樓)는 전체적으로 보아 조선중기의 양식이 지배적이기는 하나,

각 부분의 세부형식이 각기 다른 시대의 수법을 보이고 있어 몇 차례의 중수과정을 짐작케 하고 있으나,

초익공계 건물에 귀기둥만 2익공으로 꾸민 점이나, 산지 가람에서 계류 위에 꾸민 누형식 등은 흔치 않은 예 입니다.

 

 

 

가운루에서 계곡을 건너 백련암(白蓮庵) 아래의 식당 입구에는, 

 

 

 

"누가 감히 내눈을 피할수 있겠는가" 라는 안내문의 그림이 있어.

조선중기에 그려진 그림으로 호랑이 눈이 어딜가도 따라오는 특이한 기법으로 살아있는 "호랑이 벽화"입니다.

 

 

 

백련암(白蓮庵) 뒷쪽에 용왕각(龍王閣)이 있어,

산사의 사찰에 용왕각이 자리해 있어 특이한데..

 

 

 

용왕각(龍王閣)으로 오르는 계단 옆에는 양지바른곳에 자리한 장독들을 볼수있어,

고운사는 "사찰음식문화제"를 개최할 정도로 사찰음식이 유명한곳여서 해외 유명 셰프가 찾아올 만큼 명성이 나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용왕각은 사찰 입구의 높은곳에 배치되어 있으며 전각 뒤에는 샘이있어 이곳에 자리한듯 한데,

 

 

 

용왕각(龍王閣)의 현판이며..

 

 

 

용왕각(龍王閣)은 산신각(山神閣)과 마찬가지로 불법 수호신인 용왕을 모신 전각으로 용왕전, 용왕당 이라고 하는곳도 있으며,

용왕신앙은 인도의 고대 사신신앙(蛇神信仰)에서 유래되어 불교에 수용된후 불법을 수호하는 신으로,

삼면이 바다이고 섬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옛날부터 용왕신앙이 발달해 왔습니다.

 

 

 

용왕각에서 내려와 백련암(白蓮庵)을 지나면서 축대와 나란히 서있는 굴뚝이 정겹습니다.

 

 

 

대웅전으로 가는길에 만덕당과 극락전이 있어,

 

 

 

극락전(極樂殿)은 1695년 도청(道淸)과 선조(禪照)가 극락전에 아미타불과 대세지보살을 봉안하여,

이전의 관음상과 함께 삼존 불상을 모신곳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이며 지붕은 골기와로 맞배지붕을 이었습니다.

 

 

 

극락전을 나오면 가운루 뒤편에 종각이 자리하고 있어,

 

 

 

소리로써 불음(佛音)을 전파하는 목어(木魚)와,

허공을 나는 생명을 대상으로 하는 운판(雲版)이 있으며,

 

 

 

법고(法鼓)는 축생의 무리를 향하여 법음을 전하며,

범종(梵鍾은 지옥의 중생을 향하여 불음을 전파하여 깨달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마당을 지나 한단 높은곳에 석가모니불과 문수보살, 보현보살을 모시고 있는 고운사의 큰법당인 대웅보전(大雄寶殿)이 있어,

대웅보전 대중의 조석예불과 사시불공 등 모든 의식과 법화가 이루어지는 고운사 신앙의 중심지로 1992년도에 완공된 50평 규모의 전각입니다.

 

 

 

대웅보전 앞에는 위로 오르는 계단이 있어 조금만 오르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8호로 지정된 "고운사 삼층석탑(孤雲寺 三層石塔)"이 있어,

 도선국사가 조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삼층석탑으로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렸으며,

아래층 기단에는 희미한 안상(眼象) 무늬가 보이고, 위층 기단에는 기둥 모양이 조각되어 있으며..

탑신은 1층 몸돌에 비해 2층부터 급격히 줄어들고 있으며, 각 층의 몸돌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습니다.

약한 경사가 흐르는 지붕돌은 네 귀퉁이에서 치켜 올림이 크지 않고  밑면에 1층은 4단, 2·3층은 3단의 받침을 각각 두었으며,

꼭대기에는 노반(露盤: 머리장식받침돌) 복발(覆鉢: 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 뒤집혀진 앙화(仰花: 활짝 핀 연꽃모양 장식) 등을 올린,

 

머리장식을 하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석재가 많이 닳아 있고  아래층 기단이 특히 심하며 통일신라의 일반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지만,

 

줄어든 규모나 지붕돌의 조각양식 등에서 시대가 조금 내려간 모습들이 보이고 있어 통일신라 후기의 작품으로 추측 됩니다.

 

 

 

 

 

삼층석탑 위에는나한전(羅漢殿)이 자리하고 있어,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의 건물로 본래 고운사의 대웅전이었으나,

현재의 대웅전이 신축되면서 이곳으로 옮겨 나한전으로 쓰고 있습니다.

 

 

 

나한전(羅漢殿)의 현판으로,

 

 

 

나한전(羅漢殿)에는 중앙에 석가모니불이 모셔져 있고 좌,우로 16나한을 봉안 하였습니다.

 

 

 

나한전에서 내려와 대웅보전을 지나 너른 마당으로 향합니다.

 

 

 

고운사는 해동제일지장도량이라 불리는 지장보살영험성지여서,

 

옛부터 죽어서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고운사에 다녀왔느냐"고 물어볼 정도였다고 하는데,

 

사세가 번창했을 당시에는 366간의 건물에 200여 대중이 상주했던 대도량이 해방이후 쇄락하여 많은 사찰재산이 망실되고,

 

지금은 이십여명 대중이 상주하는 교구본사로는 작은 규모의 사찰로 전락 하였다가,

 

10여년전부터 중창불사의 뜨거운 원력으로 주변을 정리하고 건물들을 수리 및 단청하여,

지금은 위풍당당한 본산의 위상과 소박하고 절제된 수행지로서의 이미지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곳 입니다.

 

 

 

 

 

고운사에는 경상북도의 유형문화재 제470호로 지정된 연수전(延壽殿) 이라는 특별한 전각이 있어,

"불교안의 또 다른 유교문화"를 살필수 있는데 고운사 연수전은 1774년(영조 20)에 영조가 내린 어첩(御帖)을 봉안하던 건물로,

일반 사찰에서는 볼수없는 곳여서 이곳에 대한 이야기는 별도로 설명하기로 합니다.

 

 

 

연수전 건너 대웅전 뒤편에는 약사전(藥師殿)이 있어,

 

 

 

약사전에는 보물 제246호인 "의성 고운사 석조여래좌상(義城 孤雲寺 石造如來坐像)"이 있어,

석조여래좌상은 불상 높이 79cm, 대좌 높이 72cm, 광배 높이 134cm의 크기로 불신·광배·대좌가 모두 완전한 상태이며,

우견편단으로 법의를 입고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는 석굴암 본존상 계통의 상으로,

보주형(寶舟形)의 광배는 그 안에 이조선(二條線)으로 두광과 신광을 표현하고  얕은 부조로 매우 화려하게 장식했으며,

둥근 형태의 두광과 신광 안에는 보상당초무늬가 장식되어 있고  바깥의 주변에는 불꽃무늬가 자연스러운 선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는 석조비로자나불좌상(石造毘盧舍那佛坐像)의 광배와 매우 흡사하다고 하며,

불신과 옷주름 표현의 경직성과 도식화 경향으로 미루어 9세기 정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통일신라 후기에 유행한 항마촉지인 불좌상 중에서는 비교적 우수한 불상 입니다.

 

 

 

은자의 상징으로 불리는 고운 최치원의 "증산승(贈山僧)"이란 시를 가져왔습니다, 

스님이여, 청산이 좋다고 말하지 마오

산이 좋다면서 무슨 일로 산을 떠나시는지

훗날 나의 종적 살펴 보시길

한번 청산에 들면 다시는 나오지 않을지니

증산승(贈山僧)은 입산시(入山詩)라고 불리는데,

이 시에서 말한대로 최치원은 52세이후 종적을 감췄고,

삼국사기 최치원전에는 가야산 해인사에 숨어 자유로운 생활로 일생을 마치며 전설에는 신선이 되었다 전합니다.

 

 

 

약사전 건너편 윗쪽에는 삼성각과 명부전이 자리해 있어,

산신(山神)·칠성(七星)·독성(獨聖)을 함께 봉안하고 있는 전각인 삼성각(三聖閣)이며,

 

 

 

죽은 사람이 간다는 저승의 유명계(幽冥界)를 상징하는 사찰 당우인 명부전(冥府殿)으로,

염라10왕이 모신곳으로 영험 있는 기도처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운사(高雲寺)를 돌아 보고 내려오는길에 가운루(駕雲樓)를 다시보게 됩니다.

 

 

 

"연꽃이 반쯤 핀 형국" 이라는 "부용반개형상"의 천하명당에 위치하여,

구름을 오르는 등운(騰雲)산 에, 외로이 떠 있는 구름 고운(孤雲) 같은 절이라 해서 얻은 이름으로..

근자에는 사찰음식으로도 더욱 많이 알려진 곳으로 경북 의성의 고찰 고운사(高雲寺)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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