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을 여행하면서,

초연물외(超然物外) 원경 "대전 옥류각(大田 玉溜閣)"을 찾았습니다.

 

대전광역시 대덕구 비래동 계족산 자락에 있는 옥류각(玉溜閣)은,

비래사(飛來寺)의 초입에 있어 좁은 주차장에 차를 두고 조금 걸어야 합니다.

 

 

 

주차장에서 조금만 오르면 암반을 앞에두고 옥류각(玉溜閣)이 보이고,

 

 

 

옥류각 입구의 길옆 비스듬한 암반에는 글씨가 암각되어 있어,

 

 

 

초연물외(超然物外)의 암각으로 동춘당 송준길의 친필로 알려져 있으며,

"세상물정을 떠나 자연에 귀의" 하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이는 암각으로,

초연물외는 송준길이 이곳 옥류각 지역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 하였는지를 알려주는 증표 이기도 합니다.


대전 옥류각(大田 玉溜閣)은 대전시 비래동 비래암 앞에 현존하는 누각으로,

조선 효종 때 대사헌과 병조판서를 지낸 동춘당 송준길(同春堂 宋浚吉 1606-1672)이 1639년 34세때 세운 서당인 비래암이 있었던 곳으로,

1693년에 은진 송씨로 송준길의 문인이면서 항렬로는 조카뻘인 송규렴이 세웠는데,

옥류각(玉溜閣)은 논어에 나오는 "지자요수(知者樂水)요, 인자요산(仁者樂山)"인 곳에 위치 하는데,

도심지와 떨어져 있고 세상 물정을 멀리하면서 자연에 몰두하고자 하는 초연물외(超然物外)의 정신이 서려 있는 장소 입니다.

 

 

 

이해를 돕기위해 가져온 김영환의 2014년작 "옥류각의 내원도"로,

여름의 옥류각의 내원을 진입로 입구 초원물외와 계류 ,폭포등을 진경산수화로 표현한 그림으로..

평소에는 수원이 많지않아 그림의 경관 만큼은 찾을수 없어 아쉽습니다.

 

 

 

옥류각(玉溜閣)이 있는 비래사(飛來寺)는 백제시대 계족산 옹산성을 옹호 지원하는 호국원찰이었다는 주장도 있으나,

문헌에는 은진 송씨 문중의 서당이었던 비래암(飛來庵)에서 송준길이 강학하고 심신을 수련했던 것을 기념해서,

송규렴(1630-1709) 등 제자와 문인들이 1693년 비래암 앞에 세운 누각으로,

논어(論語)에 나오는 지혜롭고 어진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송준길의 문하생들이 주축이 되어 계류를 끼고 지은 누각 입니다.

 

 

 

옥류각(玉溜閣)은 정면3칸  측면 2칸으로 8각 석주 위에 단주( 丹柱)를 세우고,

그 위에 마루를 깔고 누각을 세워 안정감있으면서도 날렵한 형태의 누각으로 우측 1칸에는 온돌방을 두었는데,

그 방 밑으로 계곡물이 흐르고 있어 한층 운치를 더하고 있어 주로 조망 및 강학공간으로 이용되었습니다.

 

 

 

옥류각(玉流閣)이란 명칭은,

송준길의 시 “층암비옥류(層岩飛玉流), 적우세창태(積雨洗蒼笞)”의 옥류(玉流)란 물의 표현에서 연유하였으며,

“층층 바위에 날리는 옥 같은 물방울이 있는 곳”이란 뜻입니다.

 

 

 

옥류각(玉溜閣)의 현판으로,

청음 김상헌의 손자이자 송규렴의 처남인 곡운(谷雲) 김수증(金壽增)의 팔분체(八分體) 글씨로

예서에서 소전(진나라 때 이사가 정리해 놓은 서채) 의 2분(分)은 변하고 8분(分)을 남겨 놓았다 하여 이것을 팔분체(八分體)라고 하는데,

예서는 일상적으로 쓰기에 편리한 서체입니다.

 

 

 

누각의 아래에서 자연석 주초위에 기둥을 세운 모습이 보이여,

물가의 기둥을 제외하고는 다듬지 않은 돌을 그대로 놓고 그 위에 기둥을 세웠는데 그것을 덤벙주초라고 합니다.

 

 

 

위에 방을 두고 방 아래로 계곡이 흐르고 있어 뛰어난 배치를 보입니다.

 

 

 

옥류각(玉溜閣)의 주인인 송준길(宋浚吉, 1606~1672)의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명보(明甫), 호는 동춘당(同春堂)으로,

조선시대 후기의 문신이자 성리학자,정치가로서 유교 주자학의 대가 였습니다.

노론·소론이 분당되기 전에 사망하였으나 사실상 그가 이끌던 문인들은 그의 사후 노론을 형성하였으며,

성균관 문묘(文廟)에 배향된 해동 18현(海東十八賢)의 하나입니다.

송시열과 함께 북벌론을 주장하였으며,

제1차 예송 논쟁 당시 송시열과 함께 주자의 성리학과 주자가례에 의거하여 자의대비의 복상 문제때 기년복 설을 주장하였는데,

율곡 이이를 숭상하는 기호학파의 중심인물 였으나 그는 학파와 당파를 초월하여 퇴계의 학덕을 흠모하였고,

꿈에서 퇴계를 만나 가르침을 받은 사실을 진솔하게 시(詩)로서 밝히기도 했습니다.

 

 

 

나무 계단을 따라 옥류각(玉溜閣)의 마루에 오릅니다.

 

 

 

화려하지 않고 간결한 구조로 옥류각(玉溜閣)의 천정 모습으로,

지붕틀 가구는 앞뒤 모양이 같은 기둥 사이에 대들보를 걸고 그 위 양쪽에 짧은 기둥을 세워놓았으며,

들보를 지지하고 있는 2개의 무거운 들보와 5개의 시렁(횃대)은 서까래 가구로써 들보 위에는 낮은 나선형 모형 같은 정밀한 모양을 설치하였습니다.

 

 

 

마루에는 또하나의 팔분체로로 쓴 옥류각(玉溜閣)의 현판을 볼수 있어,

파란색 밑판에 하얀 글씨로 되어 있으며 모두 김수증(谷雲 金壽增)의 글씨인데 팔분체는 당시 유행하던 서체의 하나 였습니다.

 

 

 

마루 안쪽의 방문위에는 “來遊諸秀才 愼勿壁書 以汚新齋 (공부하러 온 수재들은 벽에다 낙서를 해서 새 재사건물을 더럽히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내용의 현판이 걸려있어 1647년(인조25) 종중에서 승려를 시켜 비래암을 중창하게 한 후 낙성되자,

송준길이 위의 글을 써서 문하생들에게 건물을 더럽히지 말고 쓸 것을 주문한 글로,

비래암(飛來庵) 시절에 사용 했던것인데 옥류각(玉溜閣)에 걸려 있습니다.

 

 

 

마루 안쪽의 두칸의 방을 들여다 봅니다.

트여있는 2칸의 방은 조금 어두운 편이며 마루방에도 편액이 걸려 있어,

 

 

 

옥류각(玉溜閣)의 마루방 에는,

옥오재(玉吾齋) 송상기(宋相琦)의 시판과 옥류각상량문(玉溜閣上樑文)등 3개의 편액이 걸려 있으며,

 

 

 

마루방에서 전통마루인 짧은 널을 가로로 긴 널을 세로로 놓아 "井" 자 모양으로 짠 우물마루를 살펴보고,

 

 

 

옥류각(玉溜閣) 마루의 문을 열고 바깥 풍경도 즐겨봅니다.

 

 

 

이곳을 노래한 동춘당집(同春堂集) 권24, 시(卷24,詩) 차김옥천(次金沃川) 수창비래암운(壽昌飛來菴韻)의 글을 가져와 봅니다.

良友隨緣至(량우수연지)    좋은 벗 인연 따라 찾아왔기에

扶?共上臺(부공공상대)     지팡이 짚고 함께 대에 오르니

層巖飛玉溜(층암비옥류)    층암에는 옥 같은 맑은 물 흘러내리고

積雨洗蒼苔(적우세창태)    장맛비는 푸른 이끼 씻어 내었네

誤軟情如漆(오연정여칠)    부드러운 담론 속에 정 더욱 깊어지고

吟高氣若雷(음고기약뢰)    소리 높여 시 읊으니 기상 우레와 같네

天行元有復(천행원유복)    하늘의 운행엔 복이 있으니

七日更朋來(칠일경붕래)    칠일에 다시 벗 찾아오리라

동춘당집 권24, 시, 비래암시에 차운한 글 입니다.

 

 

 

옥류각(玉溜閣)의 본제는 송촌동에 있는데,

그곳에서 별당채인 동춘당(同春堂)을 거쳐 옥류각으로 이르는 길은,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이 짚신을 신고 지팡이를 끌며 산을 오르던 곳이기도 합니다.

 

 

 

옥류각(玉溜閣) 뒤에는 사찰인 비래사(飛來寺)가 있어,

원래 이곳은 은진 송씨(恩津 宋氏) 자제들의 강학처 및 문중원찰 였다고 합니다.

 

 

 

마당을 두고 비래사의 대적광전(大寂光殿)이 자리해 있어,

 

 

 

대적광전(大寂光殿)의 현판이며,

 

 

 

법당안에는 두 손을 가슴 앞으로 모아서 오른손 검지 위에 왼손 검지를 올린 지권인(智拳印)의 손모양을 하고,

길상좌(吉祥坐)의 자세로 앉은 모습의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 있으며 흔이 보이는 후불탱화나 장엄이 없어 특이한데,

 

 

 

보물 제1829호로 지정된 대전비래사목조비로자나불좌상 (大田飛來寺木造毘盧遮那佛坐像)로,

대전 비래사 목조비로자나불좌상은 불상의 밑면에 쓰여 있는 기록을 통해 1650년(효종 1)의 정확한 제작 시기와,

조각가인 무염(無染)의 작품임을 알수있어 17세기 불교조각 연구의 기준자료가 되며,

균형이 잘 잡힌 안정적인 신체에 옷주름의 표현도 섬세하고 우아하여 17세기 전중반기에 크게 활약한 조각승 무염의 대표작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대적광전의 뒤편에는 삼성각(三聖閣)이 자리해 있어,

 

 

 

삼성각(三聖閣)의 현판이며,

 

 

 

산신(山神)·칠성(七星)·독성(獨聖)을 함께 봉안하고 있는 전각 삼성각(三聖閣)으로,

우리나라에서만 볼수있는 불교 전각으로 전통신앙인 삼신신앙(三神信仰)과의 습합현상을 볼수 있습니다.

 

 

 

사찰의 뒤편 암벽아래에는 또하나의 불전의 모습이 보이고,

비래암(飛來庵)은 근자에 대웅전과 삼성각을 짓고 비래사(飛來寺)로 이름을 바꾸면서 중찰불사를 하는 바람에,

예전의 고즈넉한 산사의 운치는 많이 반감 되었다고 합니다.

 

 

 

옥류각으로 들어오는 입구 쪽까지 주차장이 들어서 있고,

비래암(飛來庵)에서 비래사(飛來寺)로의 발전과 길을따라 인위적인 펜스가 설치되어 있어서,

옥류각의 단아한 풍경은 본래의 모습을 잃어 옛정취는 찾아보기 힘들어져,

아쉬움이 남아있는 대전의 누각 옥류각(玉溜閣) 방문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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