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상주를 여행 하면서,

하늘이 내린 절경인 낙동강 경천대(擎天臺)에 있는 정자 무우정(舞雩亭)을 찾았습니다.

 

무우정(舞雩亭)은 경북 상주시 사벌면 삼덕리에 있는 경천대(擎天臺)옆에 있어,

 

 

 

무우정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커다란 커다란 안내문이 있어,

봉산곡(鳳山曲)은 조선 인조 때 우담(雩潭) 채득기(蔡得沂)가 지은 가사(歌辭)로 천대별곡(天臺別曲)이라고도 하며,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지극한 정과 자연에 대한 애착을 읊었으며 모두 101구로서 3, 4조 또는 4, 4조로 되어 있으며,

봉산곡은 병자호란으로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갈 때 인조로부터 호가(扈駕)를 명령 받았으나 칭병(稱病)하고 거절하자,

3년간 보은(報恩)에 유배되었는데 후일 임금(인조)이 다시 부르자 감격하여 이 가사를 지었다고 합니다.

 

 

 

나무계단으로 내려가는길 아래에 낙동강을 앞에두고 자리한 무우정(舞雩亭)이 들어 오고,

 

 

 

비석 한기가 자리하고 있어 "우담채득기선생유적비(雩潭 蔡得沂先生遺蹟碑)로,

우담(雩潭) 채득기(蔡得沂, 1604~1647)는 조선 인조, 효종 때의 학자이며,

경사 백가와 역학에 밝았으며, 천문, 지리, 의약, 복서(卜筮), 음률, 병진(兵陣) 등에도 능하였다고 합니다.

 

 

 

 "우담채득기선생유적비(雩潭 蔡得沂先生遺蹟碑)" 비문으로,

세운지 그리 오래되지 않아 보입니다.

 

 

무우정(舞雩亭)으로 우담 채득기(蔡得沂:1604~1647)가 청나라 심양에서 돌아와 은거하기 위해 지은 정자로 경천대 아래쪽에 자리하고 있는데,

경천대(擎天臺)는 본래 기묘한 괴석이 봉우리를 이루고 있는 자연천성(自然天成)의 뜻으로 자천대(自天臺)라 하였으나,

채득기가 터를 잡은 뒤 하늘을 떠받친다는 뜻의 경천대(擎天臺)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정자는 정면3칸 측면 한칸반이며 동서로 3.35m, 남북으로 6.9m로 약7평 크기로 4면이 모두 트여있으며,

바닥전체가 마루로 되어 있는 각형 정자로 홑처마의 지붕은 모임지붕(육모지붕)이며,

육각 모서리에 6개의 기둥을 세우고 기둥 밖으로 난간을 설치하였으며 막돌로 기단을 쌓고,

자연석 주초위에 전면은 원기둥이고 뒷면은 네모기둥을 세웠는데 보수 당시는 가운데 칸과 전면 반 칸은 우물마루이고,

안쪽의 남쪽에 방이 있었으나 나중에 방은 헐어버렸다고 하며,

1748년 상주목사 이홍이 중건하였고, 1948년 이를 보수한 뒤 2005년 지붕부수와 목조공사를 시행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힘찬 초서체의 무우정(舞雩亭)의 현판으로 채득기(蔡得沂)의 1640년경의 글씨로 전하며,

무우정(舞雩亭) 은 춤을 추며(舞) 비를 빈다(雩)라는 뜻으로,

우담(雩潭)이 공부뿐만 아니라 가뭄이 심할 때 이곳에서 악공과 무희를 동원하여 기우제를 지내 해갈이 되었다는 데서 연유한 것이라 합니다.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무우정의 우물마루로,

무우정(舞雩亭)의 원래의 모습이 지금처럼 마루만 있는 구조인지,

보수공사 전에 있었다는 남쪽에 방이 있는 구조인지는 알수 없으나 자료가 있다면,

우담(雩潭) 채득기(蔡得沂)의 유허지(遺墟地)인 살던집과 정자는 원래대로 복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무우정(舞雩亭)은 앞서 살펴본 한글가사인 봉산곡(鳳山曲)을 낳은 창작 공간으로,

일명 천대별곡(天臺別曲)이라고도 하는 이 곡(曲)은 당시 경천대를 떠날 때 우담(雩潭)이 읊은 한글가사 입니다.

 

 

 

밖에서 보는것처럼 정자의 내부도 소박하고 간결한 구조로 되어 있으며,

많은 시판과 편액들이 올려져 있어 살펴 봅니다.

 

 

 

우담(雩潭)의 방후손인 광식(光植)이 지은시를 판각해 놓은 "경천대감음(擎天臺感吟)"외,

 

 

 

무우정중건기(舞雩亭重建記)가 보이고,

택구거사(澤癯居士)란 별호의 택당(澤堂) 이식(李植, 1584~1647)의 "무우정기(舞雩亭記)"와,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1570~1652)기문인 "우담신정기(雩潭新亭記)" 등의 편액은 마모가 심하여 알아보기 힘듭니다.

 

 

 

낙동강을 굽어보는 절벽에 세워진 무우정(舞雩亭)은,

우담(雩潭)이 경천대에 터를 닦고 은거하면서 기우제(祈雨祭) 터 우담(雩潭) 위에 지은 강계연변형(江溪沿邊形) 정자로,

충절과 북벌의지를 다지며 공부하던 곳이라 전합니다.

 

 

 

정자의 마루에서 송림사이로 낙동강의 푸른풍경을 내려다 봅니다.

 

 

 

1617년(광해군 9)에 이준(李埈)이 편찬한 경상도 상주의 읍지인 상산지(商山志)에,

"舞雩亭 在洛江上自天臺下別坐蔡得沂所建金淸陰尙憲崔遲川鳴吉李澤堂植皆有記中廢有遺址今 上戊辰春牧使李侯?重創募人守護有記詩"로 되어 있어,

"낙강상 자천대하에 별제 채득기가 세우고, 청음 김상헌 지천 최명길 택당 이식이 기를 썼으며, 중간에 폐하고 유지만 있었는데,

1748년에 목사 이협이 중창하고, 사람을 두어 수호하게 하며 기와 시를 썼다"라고 기록에 남아 있으며,

 

 

 

이곳은 갑오경장(甲午更張) 이전까지 낙강범주시회(洛江泛舟詩會)에서는,

이곳에서의 유상이 빠진 적이 없을 정도로 많은 선비들이 시문을 남기기도 한 곳으로,

낙강시회(洛江詩會)의 중심이 되어 문향(文鄕)상주를 전국에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는데,

상주의 선비들은 물론 인근의 여러 선비들이 시문을 남긴곳 이기도 합니다.

 

 

 

무우정(舞雩亭)은 조선조 선조 때 경상우도 순찰사를 지낸 군량리 출신의 월촌(月村) 이성임(李聖任:1555∼ ?)이 처음 지었는데,

이성임(李聖任)은 문장과 글씨에 능했고  목소리와 용모가 아름다워 가성(歌聲), 용모(容貌), 언어(言語), 필한(筆翰),문사(文辭)가,

모두 옥처럼 깨끗하여 당시 사람들이 오옥(五玉) 선생으로 불렀다는 인물이며,

그 후 이성임의 6세손인 이사성(李思晟)이 이인좌의 난에 무고하게 연루되어 처형되는 바람에 무우정까지 헐리게 되었습니다.

1748년 목사 이협이 중건했으나 허물어진 것을 1948년에 크게 보수하고,

현재의 정자는 군량리 출신으로 고향 가꾸기 사업을 벌여 군량리의 많은 역사와 민속을 복원한 김병일(金炳鎰)이,

사재를 들여 1981년에 예전의 자리에 다시 중건하였고 2005년에 서까래를 교체하고 번와(翻瓦)를 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무우정 옆에는 경천대(擎天臺)가 있어 오르면,

 

 

 

우담(雩潭)이 심었다는 우담송과,

대명천지(大明天地) 숭정일월(崇禎日月)의 비석, 자연석을 이용하여 다듬은 다목적 석기를 낙동강의 정취와 함께 살펴볼수 있습니다.

 

 

 

무우정(舞雩亭)을 나와 낙동강변에 조성된 송림의 둘레길을 걸어 봅니다.

 

 

 

1987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되면서 놀이기구와 눈썰매장,

전망대와 이색조각공원, 드라마 상도 세트장 등등 많은 시설들이 들어서 있지만,

문화유적 이기도한 우담(雩潭) 채득기(蔡得沂)의 집터와 무우정의 복원에는 소홀함이 있어 아쉬움이 남기도 하는,

상주 경천대(擎天臺)의 소박한 정자 무우정(舞雩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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