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의 정자 문화재 탐방길에서,

장흥의 부춘정원림(富春亭園林)을 찾았았습니다.

 

광주 전남의 8대 정자중 하나에 드는 부춘정원림(富春亭園林)은

장흥의 젖줄인 탐진강의 곡(曲)진 곳에 부춘정과 그 주변의 송백림등이 수려하게 어울려,

장흥군 부산면 부춘리에 있는 정원림(亭園林)을 부춘정 원림(富春亭園林)이란 명칭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정자로 들어가는 입구의 강가의  바위에 음각되어 글씨가 보이고,

 

 

 

축대 아래에는 세운지 오래지 않아보이는 비가 있으며..

 

 

 


비 앞에있는 바닥의 바위에는 음각된 글씨가 있어,

이곳 부춘정원림(富春亭園林)과 관련된 글씨로 보이지만 알아보기 힘듭니다.

 

 

 

정자가 있는 절벽 아래에 탐진강에 잠긴 "용호바위"로,

장흥출신으로 조선중기 8대 문장가이며 당대 최고의 시문과 글씨를 자랑했던,

옥봉 백광훈(白光勳:1537~1582)이 썼다는 "용호(龍湖)"라는 초서체가 날아 갈듯한 필체로  음각되어 바위에 세겨져 있슴을 볼수있어,

용호(龍湖)는 옥봉(玉峰)이 호(號)를 지어준 청영(淸暎) 문희개(文希凱)의 아들인 용호(龍湖) 문익명(文益明)을 의미 합니다.

 

 

 

부춘정(富春亭)과 그 주변의 송백림이 수려하게 어울려 부춘정원림(富春亭園林)으로 삼았는데,

원림(園林)이란 자연에 조금의 인공을 가하여 자신의 생활 공간으로 삼은 곳을 뜻합니다.

 

 

 

전라남도 기념물 제67호로 지정된 부춘정원림(富春亭園林)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목조 팔작지붕의 기와집으로,

2칸의 온돌방과 2칸의 대청을 두었고, 앞뒤로 반 칸쪽의 툇마루를 둔 익공계 구조의 건물입니다.

 

 

 

부춘정원림(富春亭園林)은,

남평문씨인 청영(淸潁)  문희개(文希凱:1550~1610년)가 정유재란 뒤 고향에 돌아와 세운 것으로 창건 당시에는 청영정(淸潁亭)이라 불렀는데

문희개(文希凱 )는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참전하였으며 정유재란 때는 고창현감으로 수성(守城)에 공을 세웠던 인물이며,

그후 청영정은 헌종 4년경(1838)에 청풍(淸風)김씨 영동정공파(令同正公波)의 후손인 김기성(金基成)이 사들여,

오늘과 같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실이 있는 팔작집으로 개축하고 이름도 부춘정(富春亭)으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부춘정(富春亭)은 마루 가운데 방을 들인 호남 정자의 전형직인 구조로,

 

 

두칸의 온돌방은 깨끗하게 괸리가 되어 있으며,

 

 

 

부춘정은 본래 남평인 춘정(春亭) 문위천((文緯天 1492~1573)이 지었는데,

문희개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고창현감이 되어 정유재란에도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그후 말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정자를 다시 세우고 당대 유수한 문인문객들과 시주로 유유자적하며,

장흥의 문학을 한층 풍성하게 높이는 역활을 했던곳 입니다.

 

 

 

 

부춘정(富春亭)의 현판으로,

부춘(富春)이란 본래 중국 한나라 때 엄자릉(嚴子陵)과 관련된 지명으로,

엄자능(嚴子陵)은 어려서 후한 광무제(後漢光武帝)와 함께 수학한 친구였으며 광무제가 즉위한 뒤에,

그는 불의한 현실을 개탄하여 초야에 뭍힌 뒤 광무제(光武帝)의 거듭된 부름을 물리치고,

부춘산(富春山) 칠리탄(七里灘)이란 곳에서 평생 밭 갈고 낚시 하다 세상을 등진 선비로,

그 칠리탄이 바로 '용호(龍湖)' '용연(龍淵)' '용강(龍江)'이라고도 불리웠습니다.

 

 

 

부춘정(富春亭) 에서는 또다른 이름의 누각의 현판도 보이며,

 

 

 

커다란 글씨의 백세청풍(百世淸風)의 현판이 있어,

"백세청풍(百世淸風)"은 길이 남을 맑은 기상을 의미하는데,

주자가 백이숙제를 사모하여 수양산(首陽山) 이제묘(夷齊廟)에 "백세청풍(百世淸風)" 네 글자를 썼다고 하는데,

백세청풍과 함께 중류지주(中流砥柱)와 함께 쓰고 있어 "세속에 휩쓸리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절조를 지키는 사람"을 비유하는 말로,

황하(黃河)의 중류에 지주산(砥柱山)이라는 작은 돌산이 있는데 이 산이 세찬 물결 속에서도 우뚝하게 버티고 서있는 데에서 이르는 의미 입니다.

 

 

 

제일강산(第一江山) 이라 칭하고 백세청풍(百世淸風)를 노래한 현판으로,

"제일강산(第一江山)"이라는 현판은 전국에 약 10여곳의 정자에서 볼수있는데,

제일(第一)이라는 글씨는 중국 명나라때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 전해지는 "주지번"의 독특한 모각 글씨이며,

여기에 다른 이의 글씨를 조합하여 만들어 진것으로 여겨집니다.

 

 

 

부춘정(富春亭)에는 조선말기 문인으로 1876년(고종 13) 황해도 암행어사  문학.시강원 겸 사서.부응교.부교리.승지 등을 역임하고,

1880년 순천부사에 재임임했던 김윤식(金允植 1831 순조 31~1900)을 비롯하여,

수 많은 문객들이 다녀간 흔적으로 서른개에 못미치는 많은 시판과 창건기 등이 올려져 있습니다.

 

 

 

부춘정(富春亭)은 서쪽에는 탐진강이 인접하여 남쪽으로 흘러가고,

강안에는 붉은 소나무, 푸조나무, 개서어나무, 단풍나무 등의 노거수가 수림을 이루어 수려한 경관을 이루고 있으며,

정자의 맞은편 강변에는 자미나무의 군락으로 여름철이면 장관을 이루었다고 하나 세월의 흐름으로 지금은 숲은 없어지고 제방이 축조되어 있습니다.

 

 

 

장흥출신이며 삼당시인(三唐詩人) 백광훈의 "용호를 지나며" 입니다.

渡頭風急落帆過  入夜雲沙望轉?        나루에 바람 급해 돛 내리고 지났는데/밤 들자 백사장은 외려 멀리 뵈는구나.

隔岸幾家紅葉樹  靑山斷處月明多      언덕 저편 몇몇 집엔 붉게 물든 단풍잎/푸른 산 끊긴 곳에 밝은 달만 곱구나.

 

 

 

정자에서 강쪽으로 보이는곳엔 두사람이 마주 앉을만한 작은 루(樓)가 있어, 

정자의 주인인 김기성(金基成)이 쓴 시를 가져옵니다.

年已四旬成此亭 眼前物物各新形     나이 이미 사십에 이 정자를 세우니/ 눈앞의 사물마다 제각기 새롭구나

龍盤老石行時雨 魚躍長江動夜星     용이 서린 듯한 늙은 바위는 때 맞춰 비 내리고/ 긴 강에 물고기 뛰노니 밤별이 움직이는 것 같고

皓月盈臺談且笑 淸風滿座醉還醒     밝은 달빛 자득한 누대에서 이야기 꽃 피우고/ 청풍이 가득히 모여 앉아 취했다 다시 깨네

先祠始闢春山裏 天以與之鐘地靈     부춘산에 선조의 사당을 비로소 이 봄 산속에 모셨으니/ 허늘이 내려주신 신령한 곳이라네

 

 

 

부춘정(富春亭)의 뒤편에는 불을 넣는 아궁이와 장작의 모습이 보이며,

 

 

 

정자의 뒤편과 주변을 한바퀴 돌아 봅니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필요한 부분에만 자신의 생활공간으로 삼았던,

자연을 거스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활용하여 즐겻던 옛선비들의 정신을 살필수 있는곳으로,

전남 장흥의 탑진강가의 빼어난 정자 문화재 부춘정원림(富春亭園林)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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