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화순을 여행하면서,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에 있는 김삿갓 유적지를 찾았습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풍류시인인 김삿갓의 유적지는,

강원도 영월에 김삿갓면이 있어 그곳만 알고 있었는데,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구암리 구암마을에 그의 종명지와 화순 지역에 유허지가 있슴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화순군 동복면 구암리 구암마을의 입구에서,

김삿갓 종명유적지 입구를 알리는 표지석을 볼수 있고,

 

 

 

구암마을을 들어서면 너른 주차장과 장승이 있어 유적지 임을 알게 되는데..

 

 

 

주차장 안쪽에는 김삿갓의 동상과 그의 시비들이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어,

 

 

 

김삿갓 동산에서는 민중의 언어로 기성권위에 도전한 시인 김삿갓의 시들을 만날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풍류시인  난고(蘭皐) 김삿갓은,

본명은 김병연(金炳淵1807∼1863))으로 1807년(순조7년)3월 13일 경기도 양주군 회동면에서 출생한 그는,

6세 때 조부 김익순이 선천부사로 있다가 홍경래 난을 진압하지 못하고 오히려 투항한 것과 관련하여 폐족을 당한 후,

황해도 곡산, 경기도 가평, 광주, 강원도 평창등을 전전하다 영월 삼옥리(三玉里)에 정착하여 화전을 일구며 살게 되었는데,

 

 

 

조부의 행적을 모르고 자랐던 그는,

20세 때 영월동헌에서 열리는 백일장에서 "홍경래난 때, 순절한 가산 군수 정공의 충절을 찬양하고,

항복한 김익순을 규탄하라."(論鄭嘉山忠節死 嘆金益淳罪通于天)는 시험 제목의 향시(鄕試)에서 장원을 하였고,

이 소식을 들은 어머니로부터 김익순이 조부라는 것을 알게 되자,

조상을 욕되게 하여 하늘을 쳐다 볼 수 없다고 삿갓을 쓰고 벼슬길을 포기하고 방랑생활을 하였습니다.

 

 

 

김삿갓은 57세의 일기로 객사할 때까지 전국 각지를 떠돌아 다니면서 방랑 걸식하였는데,

 

 

 

화순지역은 그가 말년에 머물며 많은 시를 남긴곳으로,

그의 시는 몰락 양반의 정서를 대변한 것으로 당시 무너져가는 신분 질서를 반영하고 있으며,

풍자와 해학을 담은 한시의 희작(戱作)과, 한시의 형식에 우리말의 음과 뜻을 교묘히 구사한 언문풍월(諺文風月)이 특징으로,

구전되어오던 그의 시를 모은 김립시집(金笠詩集)이 전하고 있어,

 

 

 

구암마을의 화순 김삿갓 동산에서는 주석을 달아둔 시비들이 있어,

천천이 돌아 보며 50여개 시비에서 그의 시(時)들을 감상할수 있습니다.

 

 

 

시비공원의 길건너에는 김삿갓 종명지임을 알려주는 작은 표지가 있고,

 

 

 

이곳에서도 김삿갓의 시비를 볼수 있습니다.

 

 

 

사랑채로 보이는 건물로,

김병연(金炳淵)이 전라도 지역을 유랑하다가 동복(同福: 지금의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땅에 이르러 쓰러졌는데,

어느 선비가 나귀에 태워 자기 집으로 데려가 그곳에서 신세를 지게 되었던 곳으로,

1728년 백인당 정치업이 건립하였고 1850년 백인당의 6세손 정시룡(丁時龍)의 배려로 김삿삿이 6년간 머물렀던 곳을 복원해 두었는데,

 

 

 

안내문이 없어 자세히 알수는 없으나,

이곳이 김삿갓이 숨을 거둔 정시룡(丁時龍)의 사랑채로 보여집니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호남식 와가의 사랑채는 특이하게도 중간에 대문이 나있으며,

 

 

 

사랑채에서 쪽문이 있어 안채로 들어갈수 있습니다.

 

 

 

"ㄱ"자 형태의 안채의 모습이며,

 

 

 

안채의 건너편에는 사당으로 보이는 1칸규모의 작은 건물도 보입니다.

 

 

 

옛날에는 담장이 있었겠지만 지금은 건물만 들어서 잇는데,

백인당파정씨(白忍堂派 丁氏) 종가는 2005년 화순군에 터 기증하여 복원하였다고 합니다.

 

 

 

구암마을 뒤편 동쪽에 김삿갓 초장지(初葬地)가 있어 찾아 봅니다.

 

 

 

낮은 언덕에 있는  김삿갓의 초분(初墳)으로,

정시룡(丁時龍)이 임시 장례를 치루고 3년 후에 아들에게 인도하여 영월 고향 땅으로 이장하였다고 합니다.

 

 

 

김삿갓의 초분지(初墳地)임을 알려주는 작은 표지가 있고,

 

 

 

조선조 말엽 전국을 바람처럼 떠돌며,

위로는 강계, 금강산, 영월, 아래로는 여산, 지리산, 동복까지 끝없는 방랑의 길을 떠돌며,

그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시가 물처럼 쏟아졌고 그의 숨결이 닿는 곳마다 해학이 넘쳤는데,

날카로운 풍자로 상류사회를 희롱하고, 재치와 해학으로 민초의 애환을 읊은,

방랑 시인 김삿갓이  37년간 방랑생활 중 마지막 6년을 지내다 생몰(객사)한 종착지인 김삿갓의 종명지(終命地) 입니다.

 

 

 

화순을 노래한 그의 시를 가져와 봅니다.

無等山高松下在    무등산이 높다더니 소나무가지 아래에 있고

赤壁江深沙上流    적벽 강이 깊다더니 모래위에 흐르는구나

 

 

 

김삿갓 종명지(終命地)에서 그리 멀지 않은곳에 있는 그가 찾았던 물염적벽 (勿染赤壁) 입니다. 

藥經深紅蘚   山窓滿翠微     약 캐러 가는 길가엔 붉은 이끼가 깊고    산창에는 푸르름이 가득한데

羨君下花醉   胡蝶夢中飛     그대 꽃 아래 취해 있음이 부렵구려    나비는 꿈속에서 날고 있겠지

郡樓乘曉上   盡日不能回     협선루에 아침 일찍 올라     진종일 돌아갈 줄 몰랐네

晩色將秋至   長風送月來      석양 빛은 가을이 이르려 함인지    긴 바람이 스쳐 가더니 달이 솟아 오는구나

 

 

 

전남 화순을 여행 하시면,

김삿갓이 유람하며 즐겼던 물염적벽 (勿染赤壁),  노루목적벽, 등의 화순적벽과 함께..

그가 35년간의 방랑생활을 마무리하고 생을 마감한 곳으로 "화순 김삿갓 유적지"를 함께 찾아 봄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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