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충주의 문화재 탐방 길에서,

충주 최응성고가(忠州 崔應聖 古家)와, 함께있는 함월정(涵月亭)을 찾았습니다.

 

충북 충주시 살미면 용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주택으로,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7호로 지정된 "충주 최응성고가(忠州 崔應聖 古家)"로,

이곳에 도착해 보니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 합니다.

 

 

 

최응성고가(崔應聖 古家)의 안내문에,

고택(古宅)의 건물배치도가 있어 먼저 살펴 봅니다.

 

 

 

최함월 고택(崔應聖 古家)으로도 알려져 있는 최응성고가(崔應聖 古家) 입구의 모습으로,

 

 

고택(古宅)의 입구에는 화강암으로 되어있는 솟대들이 보여 눈길을 잡으며,

 

 

 

일각문을 들어서면 보이는 최응성고가(崔應聖 古家)의 전경으로,

이곳을 찾았을때 거주하시는 분이 계셔서 흔쾌히 방문을 허락하십니다.

 

 

 

안으로 들어서면 오른쪽에 "ㄱ"자형의 창고가 사괴석(四塊石)담장으로 일곽을 이루고 있으며,

 

 

 

마당에 우물이 있는 본채가 나오고,

건물의 배치는 우측의 "ㄱ"자형의 안채를 중심으로,

안채의 좌측으로는 최응성이 서재로 사용하던 팔작지붕의 염선재가 있으며,

좌측에 "一"자형의 행랑채가 배치되어 전체적으로 트여있는 "ㅁ"자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안채의 굽어진곳의 마당에는,

강돌을 동그랗게 쌓아올려 눈길을 잡는 우물이 자리해 있고,

 

 

 

안채는 자연석으로 쌓은 기단위에 덤벙주초석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웠는데,

기둥머리에는 양봉(樑棒)이 없이 주심도리와 대들보만이 함께 결구되어 있으며 지붕은 홑처마 맞배 기와지붕을 이루어,

정면 7칸, 측면 1칸에 다시 꺾이어서 정면 3칸, 측면 1칸을 이루면서 "ㄱ"자형 평면으로 구성 되었으며,

 

 

 

안채는 2칸 통칸의 우물마루를 깐 대청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1칸 반의 안방과 1칸의 윗방을 "ㄱ"자형으로 꺾이는 부분에 들였고,

여기에 붙여서 1칸 반의 부엌을 만들었는데 상부를 다락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대청 마루위에서 상량의 글을 볼수 있으며,

 

 

 

안채를 들여다 보니,

"한옥스테이"를 하는곳여서 인지 고풍의 가구와 함께 정리가 되어 있어,

 

 

 

전통한옥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고택(古宅)체험도 좋을듯 합니다.

 

 

 

겨울의 찬바람을 막기위해,

미닫이와 여닫이로 2중창을 해둔 조선후기의 양식을 엿볼수 있으며,

 

 

 

최응성고가(崔應聖 古家)는 조선 숙종 때 문장가였던 함월(涵月)최응성(崔應聖)의 생가로 알려져 있으며,

원래 이곳에서 8km 남짓 떨어져 있는 살미면 무릉리에 있었으나,

1983년충주댐 수몰지구로 편입되어 지금의 위치로 다시 옮겨 복원 하였습니다.

 

 

 

안채의 맞은편에 "一"자형의 행랑채가 있고,

 

 

 

안채에서 오른쪽에는  사랑채인 염선재(念善齋)가 있어,

정면 4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구조인 염선재는 최응성(崔應聖)의 서재 였다고 합니다.

 

 

 

뒷마루가 너른 염선재의 뒤편을 돌아보고,

 

 

 

사랑채와 안채 사이의 뒤편엔 작은 창고로 보이는 건물이 있고,

 

 

 

창고뒤에 더 작은 건물이 있어 들여다 보니,

 

 

 

요즘엔 보기힘든 재래식 화장실 입니다.

 

 

 

최응성고가(崔應聖 古家)는,

조선시대 상류주택의 구성요소를 비교적 잘 보여주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고택(古宅)앞에는 사당인 무릉사(武陵祠)가 있어,

 

 

 

1874년(고종 11) 최응성의 후손들이 세운 무릉사(武陵祠)는,

수암(遂菴) 권상하(權尙夏,1641∼1721)와 함월(涵月) 최응성(崔應聖)을 향사(享祀)하는 사당입니다.

 

 

 

고택(古宅)의 주인인 함월(涵月) 최응성(崔應聖)은,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인보(仁甫), 호는 함월(涵月). 최문한(崔文漢)의 후손으로,

1655년(효종 6) 충주에서 태어난 최응성(崔應聖)은 수암(遂菴) 권상하(權尙夏)의 문인으로,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으나 관직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에 정진하다가 1727년(영조 3) 72세의 나이로 별세 했습니다.

 

 

 

고택을 나와 초입에 있는 함월정(涵月亭)으로 나오면,

작은 규모의 정자 이지만 앞에 있는 연못과 함께 어우러져 운치가 있습니다.

 

 

 

함월정(涵月亭)은 최응성(崔應聖)이 학문에 전념하기 위해 지은 정자로,

수암(遂菴) 권상하(權尙夏)은 문하인 최응성(崔應聖)이 정자를 짓자,

수암(遂菴)이 이를 찬양하고 정자의 이름을 함월정(涵月亭)이라 하였는데,

이로부터 최함월(崔應聖)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정사각형에 가까운 정자는,

정면과 측면은 한 칸 정도의 크기로 가운데에 방을 들이고,

방은 3면에 창호를 내고 한면은 벽으로 하였으며,

주변을 돌아가며 툇마루를 놓았으며 삼면의 창호는 모두 네 짝 문으로 마감을 하였습니다.

 

 

 

정자의 처마 아래에는 함월정(涵月亭)의 현판이 걸려 있어,

함월(涵月)은 최응성(崔應聖)의 호이며 "달빛에 젖다"라는 의미 입니다.

 

 

 

정자의 주춧돌은 둥글게 원형으로 깍았 올렸고 윗부분은 평평하게 하여 기둥을 놓았으며,

 

 

 

앞에 마루를 두고 4개의 분을 접어 열 수 있게 만든 큰 문인 사분합문(四分閤門)을 볼수있고,

 

 

 

뒷면의 마루는 한단을 올려 설치해둔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1칸 규모의 방은 3면을 사분합문(四分閤門)으로 되어 있어,

여름날 분합문(分閤門)들을 모두 올려두면 주변의 경치가 모두 방안으로 들어올듯 합니다.

 

 

 

함월정(涵月亭)의 마루에서 반원형의 아담한 연못을 내려다 봅니다.

 

 

 

안채와 서재인 염선재, 그리고 행랑채가 튼"ㅁ"자형으로 배치되고,

앞에는 사당인 무릉사가 있고, 초입에는 단아하고 운치있는 정자 함월정이 서로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어,

전체적으로 조선시대 상류주택의 구성요소를 잘 보여주고 있는 고택으로,

고택(古宅)에서의 "한옥스테이"에도 좋은 조건을 갖춘 곳으로,

충주의 문화재, 충주 최응성고가(忠州 崔應聖 古家)와 함월정(涵月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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