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화성을 잠시 다녀오면서,

효심의 사찰 화성 용주사(龍珠寺)를 돌아 보았습니다.

 

화성시 송산동에 있는 아담한 화산(華山) 자락에 자리한 용주사(龍珠寺)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 본사로 융건릉에서 1.7km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854년(문성왕 16)에 창건하여 염거화상이 창건한 갈양사(葛陽寺)가 있었던 곳으로,

고려 광종21년(970)에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수륙재를 개설하는 등 청정하고 이름 높은 도량 이었으나,

 1636년에 일어난 병자호란으로 소실되어 폐사 되었던 갈양사(葛陽寺)의 옛터에 창건된 사찰로,

1790년(정조 14)에 사일(獅馹), 철학(哲學) 등이 갈양사 옛터에 145칸의 사찰로,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능인 현륭원(顯隆園)에 명복을 빌어 주는 능사(陵寺)로 창건 되었습니다.

 

 

 

사찰의 입구에서 용주사(龍珠寺)의 가람 배치도를 살펴 봅니다.

용주사(龍珠寺)는 1790년 창건과 동시에 전국 5규정소(五糾正所)의 하나가 되어 승풍(僧風)을 규정하였고,

 그 후 1900년에 용해(龍海)가 중수하였고, 1911년에는 30본산의 하나가 되어 수원·안성·용인·고양·시흥 등에 있는 49개 사찰을 관장 하였습니다.

1931년에 강대련(姜大蓮)이 중수하였고,

1955년 사찰 정화 뒤에 조계종 제2교구 본사가 되었으며 같은 해에 관응(觀應)이 불교 전문강원을 개설하였으며,

1965년 대웅보전을 중수하는등 중수와 개축을 거듭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용주사(龍珠寺)에는 산문이 일주문(一柱門)은 없고 사천왕문(四天王門)을 가장 먼저 만날수 있어,

사천왕(四天王)의 지국천왕(持國天王)은 비파(琵琶)를 들고 동쪽을 지키고 있고,

보검(寶劒)을 들고 있는  증장천왕(增長天王)은 남쪽을 수호 하고 있으며,

 

 

 

서쪽의 광목천왕(廣目天王)은 용과 여의주(如意珠), 또는 견색(絹索; 새끼줄)으로,

북쪽의 다문천왕(多聞天王)은 보탑(寶塔)을 받쳐든 모습을 하고 있어 불법을 수호하고,

부처님의 세계를 지키는 사천왕(四天王)들은 불교경전에 나타나는 인도 재래의 신(神)인데,

불교의 수호신이 되어서 사방을 지키게 된 것으로 일정한 모습이 처음부터 규정된 것이 아니어서 인도에서는 귀족의 모습으로 표현되었고,

중앙 아시아나 중국, 우리 나라로 전파되는 동안 무인상(無人像)으로 변형 되었다고 합니다.

 

 

 

사천왕문(四天王門)을 지나면 연풍교(連豊橋)와 선돌들의 모습이 보이고,

좌우로 세워둔 선돌에서 "도차문래(到此門來)"와 "막존지해(莫存知解)"의 글이 있어,

"이 문(門)에 이르러선 마음을 허공과 같이 비우라"는 뜻 이라고 합니다.

 

 

 

송림을 배경으로 선돌들이 길의 양 옆으로 홍살문까지 서 있어 사찰 진입로에 매우 보기 드문 경우로,

용주사(龍珠寺)는 사도세자의 원찰로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설치해 두었다고 합니다.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의 선돌도 있어,

"하늘 위, 하늘 아래 오직 나만이 홀로 존귀하다"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 설화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선돌을 지나면 선돌과 마찬가지로 사찰에서 보기힘든 홍살문(紅門)이 있어,

일반적으로 능(陵), 원(園), 묘(廟), 궁전(宮殿) 또는 관아(官衙), 서원(書院)등의 정문앞에 세워, 

그 행실을 널리 알리고 표창하는 것을 정표(旌表), 그 일을 정려(旌閭)라고 하여 "경의(敬意)를 표하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홍살문을 지나면 솟을삼문의 삼문각(三門閣)있어,

삼문은 궁궐등 유교 건축물에서 보이는 배치로  불교 건축물과는 거리가 먼 구조인데,

솟을삼문 좌우로 행랑채가 이어져 있는 모습은 궁궐 건축물에서 흔히 보이는 배치이며,

세개의 문가운데 사람들은 양쪽의 문만을 사용할수 있어 들어갈 때에는 오른쪽 문을 이용하고 나올 때에는 왼쪽문으로 나와야 하며,

가운데 문은 신도라고 해서 신이 드나드는 문으로만 사용하도록 되어있어,

용주사(龍珠寺)에 삼문이 있는 것은 이 절이 신주를 모시는 사당의 역할을 하였음을 알려 줍니다.

 

 

 

삼문각(三門閣) 앞에는 운주사를 지키는 석상인 해태상이 있어,

선악을 가리고 액운을 없애주고 화기(火氣)를 억누르는 영물인 해태상은 아담하며  귀여워 보이기도 합니다.

 

 

 

삼문을 들어서면 천보루(天保樓)를 배경으로 세존사리탑(世尊舍利塔)이 가람의 중심을 잡고 있는데,

 

 

 

오층석탑인 세존사리탑(世尊舍利塔)으로,

1790년 창건 당시 지어진 5층 석탑에는 부처님의 사리 2과가 봉안되어 있다고 하며,

일반적으로 석탑은 대웅전 앞에 자리하는데 전각이 아닌 누각(樓閣) 앞에 있어서 특이 합니다.

 

 

 

왼쪽에는 종각인 불음각(佛音閣)이 있으며,

 

 

 

경기문화재자료 제36호로 지정된 천보루(天保樓)로,

1790년에 세웠으며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측면의 1칸은 앞으로 돌출 하였으며 2칸은 좌우 요사채와 직접 연결하여,

궁전이나 관아의 건물처럼 아래층은 돌기둥으로 2층 누각을 이루었으며 삼면에도 난간을 둘러 웅장한 모습입니다.

 

 

 

천보루(天保樓)의 돌기둥으로,

아래층의 전면에 6개의 돌기둥에 주련(柱聯)처럼 기둥에 글귀를 새겨 놓아 살펴보면,

自笑一聲天地驚 (자소일성천지경)    스스로 웃는 웃음 한마디에 천지가 놀라고

孤輪獨照江山靜 (고륜독조강산정)    외로운 달 홀로 비추니 강산이 고요하네.

心得同時祖宗旨 (심득동시조종지)    조사의 종지 마음으로 깨달으니

傳持祖印壬午歲 (전지조인임오세)    조사의 인가 전하고 간직하니 때는 임오년

叢木房中待釋迦 (총목방중대석가)    숲속에서 석가모니 부처님 기다리니

眞歸祖師在雪山 (진귀조사재설산)    진귀조사(문수보살) 설산에 계시네

 

 

 

천보루의 돌기둥중 하나는 교체를 한듯하며,

원래의 돌기둥은 훼손방지를 위해 투명창으로 보호하여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천보루(天保樓)로 들어서면 대웅보전(大雄寶殿)이 들어오고,

 

 

 

누각은 앞에서 들어올때는 천보루(天保樓)이고 대웅전 쪽에서 보면 홍제루(弘濟樓) 편액이 보이는데,

홍제루(弘濟樓)의 현판은 구한말의 서예가 차우(此愚) 김찬균(金瓚均,1910~?)의 글씨로 홍제(弘齋)는 정조의 호입니다.

 

 

 

 

 

천보루 안쪽의 벽에는 그림과 글이 있는데 안내문이 없어 내용을 알수 없습니다.

 

 

 

천보루를 들어서면 오른쪽에 승당인 나유타료(那由他寮)가 있고,

 

 

 

왼쪽에는 나유타료와 마주하고 선당인 만수리실(曼殊利室)이 있어,

 

 

 

만수리실 앞에는 당간을 지탱하기 위하여 당간의 좌·우에 세우는 기둥인 당간지주(幢竿支柱)의 모습을 볼수있는데,

용주사(龍珠寺) 경내에서는 다른곳보다 많은 당간지주들을 볼수 있습니다.

 

 

 

천보루(天保樓)의 한쪽에서 보이는 대웅전앞의 모습이며,

 

 

 

보물1942호로 지정되었슴을 현수막으로 알리는 대웅보전(大雄寶殿)으로,

 

 

 

대웅전의 축대에서 조각이 아름다운 수구장치의 모습이 볼수있고,


 

 

대웅전으로 오르는 계단 앞에는 북 모양의 막음돌에 삼태극과 모란문양 있어,

일반 사찰에서 보기 드문 형태로 현륭원(顯隆園)의 정자각 계단 소맷돌 에서도 같은 양식을 찾을수 잇습니다.

 

 

 

1790년에 세운 대웅보전(大雄寶殿)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多包系) 팔작지붕의 건물로,

18세기 불전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능침사찰의 주불전으로 권위와 격식, 시대성을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대웅보전(大雄寶殿)의 편액은 정조(正祖)의 친필이며,

 

 

 

대웅전에 모셔진 "화성 용주사 대웅보전 목조삼세불좌상(華城 龍珠寺 大雄寶殿 木造三世佛坐像)"으로,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1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후불탱화는 김홍도의 지휘로 그려진 걸작으로,

용주사 대웅전 후불탱화 (龍珠寺 大雄殿 後佛幀畵)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대웅전의 외벽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수행모습과,

 

 

 

열반에 드신후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볼수있습니다.

 

 

 

대웅전 옆에는 작은 비각을 연상케 하는 범종각(梵鐘樓)이 있어,

 

 

 

국보 제120호로 지정된 "용주사동종(龍珠寺銅鍾)"으로,

신라 동종의 양식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는 고려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거대한 범종으로,

높이1.44m, 입지름 0.87m, 무게 1.5톤의 규모로 "상원사 동종", 국립경주박물관의 "에밀레종" 등과 더불어 손꼽히는 걸작으로 평가되며..

"비천상 과 결가부좌 한 삼존상"이 새겨져 있는데 고려시대의 종으로는 최초의 양식 이라고 합니다.

 

 

 

범종각 옆에는 1993년에 지은 천불전(千佛典)이 있어,

 

 

 

천불전(千佛典)은 천분의 부처님이 모셨으며,

"누구나 수행하면 부처님이 될 수 있다"는 법화경(法華經)의 사상이 깃들어 있는곳 입니다.

 

 

 

천불전 뒤편에 자리한 시방칠등각(十方七燈閣)으로,

 

 

 

독특한 전각이름의 "시방칠등각(十方七燈閣)"은,

칠성과 산신, 독성 탱화로 모셔진 곳으로 칠성각(七星閣)의 별칭 이기도 합니다. 

 

 

 

담장너머의 중앙선원을 배경으로 경내의 가장 안쪽에는 전강스님(1898~1975)의 사리탑이 있어,

현대 한국의 대표적 고승이며 용주사의 정신적 지주였던 전강스님은 "쥐가 고양이밥을 먹다"라는 이야기로 유명하며,

전강스님 오도송(悟道頌)을 찾아 봅니다.

昨夜月滿樓(작야월만루)   어젯밤 달빛이 누각에 가득하더니

窓外蘆花秋(창외노화추)   창 밖엔 갈대꽃 가을이로구나.

佛祖喪身命(불조상신명)   부처와 조사도 몸과 목숨을 잃었는데

流水過橋來(류수과교래)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 구나.

 

 

 

사리탑 앞의 대웅전 옆에는 호성전(護聖殿)이 있어,

 

 

 

호성전(護聖殿)은 사도세자와 경의황후(혜경궁 홍씨), 

정조대왕과 효의왕후 김씨(정조의 왕비)의 위패를 모신 곳이며,

 

 

 

호성전 앞에는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 석탑이 있어,

정조(正祖)는 용주사를 중창할 때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넋을 위로하고 추효(追孝)하기 위해,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을 목판에 새겨 보존하도록 명을 내리고 당대 제일의 화가 김홍도에게 맡겨 아름답게 꾸미도록 하였는데,

대웅전 옆 잔디밭에는 10개항에 이르는 부모은중경을 새긴 3층탑비로 목판 과 비슷하게 석탑에 화강석으로 새겨 표현 하였는데,

목판 원본은  조선 시대 4대 화가에 꼽히는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1745~?)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호성전 옆에는 지장전(地藏殿)이 있어,

 

 

 

지장전(地藏殿)은 지옥중생을 구제하는 지장보살을 모신 전각으로,

지장보살(地藏菩薩)과 저승의 심판관인 시왕 등을 봉안하고 있습니다.

 

 

 

대웅전 앞으로 나오며 화성 용주사(龍珠寺)가 일반사찰과 다른 몇가지 특이점을 떠올려 봅니다.

* 홍살문에 이르는 길 양쪽에 있는 "선돌"

* 일반 사찰에서는 볼수없는 용주사의 "홍살문"

* 궁궐이나 사원, 사당 등에 세워지는 유교 건축물인 "삼문"

* 천보루 앞에 있는 세존사리탑(世尊舍利塔)의 위치

* 천보루(天保樓) 돌기둥의 "석조 주련(石造 柱聯)"

* 불음각, 범종각이 있어 사찰 하나에 2개의 "범종"

* 사도세자와 정조(正祖) 부부의 위패를모신 호성전과 "부모은중경 석탑"

우선 생각나는대로 적었으나 더 있을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것들을 살펴보며 용주사(龍珠寺)를 돌아 보는것도 또다른 볼거리 일것입니다.

 

 

 

용주사(龍珠寺)를 나오면서,

용주사의 옛모습을 살필수 있는 사진이 있어 들여다 봅니다.

 

 

 

일반 사찰의 가람 배치를 따르고 있지만,

유교 건축물과 혼재되어 있어 더욱 특이한 사찰로 기억에 남게되는,

정조(正祖)의 효심을 살필수 있는 조선후기의 독특한 사찰인 화성의 용주사(龍珠寺)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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