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괴산의 문화재 탐방에서,

괴산군 괴산읍 능촌리에 있는 괴산 취묵당(醉墨堂)을 찾았습니다.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61호로 지정된 취묵당(醉墨堂)은,

괴산읍 능촌리의 괴강가에 자리하고 있는 독서광 김득신(金得臣)의 정자로,

 

 

 

취묵당으로 들어가는 길을 네비게이션이 제대로 찾아주지 못해서 헤메기도 하였는데,

도로변에 서있는 미록상으로 보이는 석상이 보이기 전에있는 우측길을 잡아야 찾을수 있습니다.

 

 

 

취묵당(醉墨堂)은 1662년(현종3년)에 백곡(栢谷) 김득신(金得臣)이 만년에 세운 독서재(讀書齋)로,

 

 

 

취묵당(醉墨堂)은 정면3칸, 측면2칸의 팔각지붕에 목조 기와집으로,

가구(架構는 5량가 구조로 내면은 통칸의 우물마루를 깔고 사방으로 줏대살 문양의 난간과 원형의 돌란대를 둘렀으며,

자연석 기단 위에 자연석 덤벙주초를 놓고 방주를 올리고 있고 기둥머리에는 주두 없이 도리와 보를 뺄목으로 처리하고,

내부 보 하부에는 사절한 보아지가 있으며 평주에서 대량을 건너지르고 그 위에 동자주를 세워 중도리와 중량을 받고,

판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받치고 있는 도리는 장혀를 받친 납도리이고 오량가의 구조로 천장은 연등천장으로 비교적 보존상태가 양호하며,

괴강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최고의 조망을 자랑하고 있어 정자건축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곳 입니다.

 

 

 

기둥에는 몇 개는 없어지기는 했지만 주련이 있어,

괴강 쪽 전면 4개의 기둥에 걸려 있는 주련으로 김득신(金得臣)의 대표작인 "용호"를 양각한 주련으로,

고목한운리(古木寒雲裏)    고목은 찬 구름 속에 잠기고

추산백우변(秋山白雨邊)    가을 산엔 소낙비 들이친다

모강풍랑기(暮江風浪起)    저문 강에 풍랑이 일자 (없어진 주련 부분 입니다)

어자급회선(漁子急回船)    어부가 급히 뱃머리 돌리네

 

 

 

취묵당(醉墨堂)에는 원래,

“깨어 있어도 입을 다물고 취해도 입을 다물어야 재앙을 모면할 수 있으니 침묵을 금으로 여기는 삶을 살겠다.” 라는 의미로,

백곡(栢谷) 김득신(金得臣)이 쓴  "술에 취해 있어도 침묵한다"의 취묵당(醉墨堂)의 현판과,

후손 김교헌(金敎憲)이 썻다는 억만재(億萬齋)의 현판이 1980년대까지 있었다고 전하나 지금은 찾아볼수 없어 아쉽습니다.

 

 

 

마루에 오르면 여러개의 편액을 볼수 있어,

 

 

 

정자의 마루 위에는,

취묵당중건기(醉墨堂重建記)와 독수기(讀數記), 취묵당서(醉墨堂書)등 각종 시문등의 편액들이 올려져 있으며,

 

 

 

취묵당(醉墨堂)에서 보이는 풍경으로, 

충주호로 향하는 달천과 멀리 성불산이 한눈에 들어 옵니다.

 

 

 

김득신(金得臣)의 초당과 취묵당(醉墨堂) 관한 시(詩)로 "붓을 달려 짓다" 입니다.

開香山口結茅庵      개향산 입구에 지은 띠집,

日夜?間透翠嵐       밤낮으로 창 사이로 푸른 기운이 스며드네.

明月欲沈花滿地     밝은 달은 지려하고 꽃이 땅에 가득한데

枕邊孤夢落江南     베갯머리의 외로운 꿈은 강남 땅에 떨어지네

 

 

 

취묵당(醉墨堂)의 주인인 김득신(金得臣·1604∼1684)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안동 자는 자공(子公) 호는 백곡(柏谷) 구석산인(龜石山人)으로 진주목사 김시민(金時敏)의 손자이며 부제학 김치(金緻)의 아들로,

현종 3년(1662) 늦은 나이에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급제하였고 가선대부에 올라 안풍군(安豊君)을 습봉(襲封)하였으며,

당대에 시명이 있어 당시(唐詩)의 풍이 있다는 평을 받았고 당시의 한문 사대가인 이식(李植)으로부터,

“그대의 시문이 당금의 제일”이라는 평을 들음으로써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으며,

정두경(鄭斗卿) 임유후(林有後) 홍석기(洪錫箕) 홍만종(洪萬宗) 등과 망년지우(忘年之友)의 친교를 맺고 시와 술로 풍류를 즐겼으며,

1684년 81세로 이곳 취묵당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병자호란으로 그의 저술이 많이 유실되었으나 문집인 "백곡집(柏谷集)"에 많은 글들이 전해지고 있으며 문(文)보다 시(詩)에 능하였으며,

오언, 오언·칠언절구를 잘 지어 어촌이나 산촌과 농가의 정경을 그림같이 묘사한「용호(龍湖)」·「구정(龜亭)」·「전가(田家)」등의 작품들과,

술과 부채를 의인화한 가전소설 「환백장군전(歡伯將軍傳)」과 「청풍선생전(淸風先生傳)」과 <종남총지(終南叢志)>같은 시화도 남겼습니다.

 

 

 

한번 읽기도 힘든 책을 만번 이상 읽었다는 백곡(栢谷) 김득신(金得臣)은 만화로도 소개 되었는데,

문화재청에서 발행하는 "월간문화재사랑 2015. 09월호"에 실린 만화로 모든 저작권은 문화재청에 있습니다.

 

 

 

어릴 때 천연두를 앓아 노둔한 편였던 김득신(金得臣)의 일화로,

한 번은 말을 타고 어떤 사람 집을 지나가는데 책 읽는 소리가 들려와 그는 말을 멈추고 한참 동안 듣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글이 아주 익숙한데, 무슨 글인지 생각이 안 나는구나.”

말고삐를 끌던 하인이 올려다보며 말하길 “부학자(夫學者) 재적극박(載籍極博) 어쩌고저쩌고 한 것은,

나으리가 평생 맨날 읽으신 것이니 쇤네도 알겠습니다요. 나으리가 모르신단 말씀이십니까?”

김득신은 그제서야 그 글이 즐겨읽던 "백이전(伯夷傳)"임을 깨달았는데 그 노둔함이 이와 같았으나,

천 번을 읽지 않은 것은 기록에 올리지도 않았을 정도로 노력하여 만년에는 능히 시(詩)로 세상에 이름이 났던 인물입니다.

 

 

 

김득신(金得臣)은 이곳 취묵당(醉墨堂)에서,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백이전(伯夷傳)"을 1억 1만 3천번을 읽었다고 하여 일명 억만재(億萬齋)로도 불리는데,

여기서 1억은 10만을 의미하는 옛말이라고 합니다.

 

 

 

어릴 때 천연두를 앓아 지혜가 부족하고 노둔한 편이었으나,

천 번을 읽지 않은 것은 자신의 독서록의 기록에 올리지도 않았을 정도로 노력하여,

만년에 시(詩)와 그림으로 이름을 떨쳤던 백곡(栢谷) 김득신(金得臣)의 정신을 뒤돌아 볼수있으며,

인근에 김충민 장군의 사당인 "충렬사"와  "벽초 홍명희 생가, "제월대" 등의 명승지가  가까이 자리하고 있어,

함께 찾아봄직한 곳으로 충북 괴산의 "취묵당(醉墨堂)"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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