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겨울날,

전남 화순을 여행하면서 화순의 고찰 "쌍봉사(雙峰寺)를 찾았습니다.

 

20여년 만에 다시찾은 쌍봉사는 예전보다 달라진것이,

천왕문 앞에는 옛날에 있었다는 연못을 재현 해두어 1994년에 복원 하였다고 합니다.

 

 

 

전남 화순군 이양면 증리에 자리한 쌍봉사(雙峰寺)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 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로,

우리나라 전통적인 "1탑 1금당식"의 가람배치가 남아있는 사찰입니다.

 

 

 

사찰의 경계인 산문인 일주문(一柱門)을 들어서면,

천왕문(天王門)이 보이고 오른쪽엔 연지가 자리해 있으며,

 

 

 

천왕문(天王門)을 들어서면 사천왕상(四天王像)이 자리하고 있어,

서쪽의 광목천왕(廣目天王)은 용과 여의주(如意珠)로, 북쪽의 다문천왕(多聞天王)은 보탑(寶塔)을 받쳐든 모습을 하고 있으며..

 

 

 

지국천왕(持國天王)은 비파(琵琶)를 들고 동쪽에 있고,

보검(寶劒)을 들고 있는  증장천왕(增長天王)은 남쪽을 수호 하고 있어,

불법을 수호하고 부처님의 세계를 지키는 사천왕(四天王)은 불교경전에 나타나는 인도 재래의 신(神)인데,

불교의 수호신이 되어서 사방을 지키고 있습니다.

 

 

 

쌍봉사(雙峰寺)는 통일신라 시대인 839년 이전에 창건되어 혜철선사가 여름을 지냈고,

855년 경에 철감선사가 중국에서 귀국하여 종풍을 떨친 사찰로,

지형이 절의 앞과 뒤에 산봉우리가 2개 즉, 쌍봉이되므로 이에 쌍봉사(雙峰寺)라 칭 하였다고 합니다.

 

 

 

천왕문(天王門)을 지나면 소리로써 불음(佛音)을 전파하는 범종각(梵鐘樓)이 있으며,

 

 

 

847년에 신라 경문왕때 철감선사(澈鑒禪師)가 중국에서 귀국하여 산수의 수려함을 보고 자리 잡았으며,

철감선사는 이절에서  구산선문의 하나인 사자산문(獅子山門)의 기초를 마련 했으며,

철감선사의 법력과 덕망이 널리 퍼지자 왕이 궁중으로 불러들여 스승으로 삼았으며,

이곳에서 그의 종풍(宗風)을 이어받은 징효선사가 영월의 흥녕사(興寧寺, 지금의 법흥사)에 사자산문을 개산(開山)하기도 하였습니다.

 

 

 

쌍봉사(雙峰寺)의 대웅전(大雄殿)으로,

평면이 방향형인 3층 전각으로 사모지붕의 목조탑파 형식을 지닌 희귀한 양식으로,

목조탑파 건축으로는 법주사 팔상전과 쌍봉사 대웅전 이렇게 2동만이 현존 한다고 하며,

보물 제 163호였던 대웅전은 화재로 보물지정이 해제 되었는데,

1984년 촛불로 인해 소실된것을 복원한 쌍봉사 3층목탑(현 대웅전)으로,

조선시대에 개조 되기 이전 모습으로 재현하여 복원했다고 합니다.

 

 

 

대웅전(大雄殿)은 1962년 해체공사때 3층 중도리에서,

1690년 (숙종 16년)의 두번째 중건에 이어 1724년 세번째 중건된 사실이 기록되어 있는 상량문이 나왔고,

최근까지 대웅전으로 사용되었던 3층각은 원래 대웅전 건물이 아닌 목탑 이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쌍봉사 대웅전(大雄殿)에 모셔져있는 목조삼존불상(木造三尊佛像)으로,

앉은 모습의 석가여래상을 중심으로 가섭존자와 아난존자가 양옆에 서있는 특이한 형식의 삼존불상으로,

화재에도 다행이 목조삼존불상은 화를 입지 않았는데 가운데 모셔진 석가여래상은 약간 앞으로 숙이고 있는 모습으로,

얼굴은 사각형에 가까우며 머리는 소라모양의 나발을 하고 있으며 협시불인 가섭과 아난존자는 두손을 가슴에 모아 합장을 했으며,

석가여래좌상과 함께 숙종20년 (1694년)에 만들어져 조성수법이나 형식에 있어서 조선후기 불상의 특징을 잘나타내고 있고,

만들어진 연대가 확실하여 연대를 알수없는 다른 조각상의 표준이 되어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51호로 지정 되었습니다.

 

 

 

대웅전의 목조삼존불상(木造三尊佛像)에는 미담(美談)이 전하고있어,

대웅전 내부에 불이난 1984년 4월 2일 스님들은 초파일을 앞두고 장을보러 간사이,

불공을 드리던 신도 한분이 촛불을 넘어뜨려 손쓸틈도 없이 순신간에 건물전체로 번졌다고 하며,

화재당시 근처에서 논일을 하던 농부부자가  재빨리 달려와 대웅전에 모셔져 있던 삼존불을 모두 바깥으로 옮겼다는데,

그 불상의 무게가 두사람이 들기에는 무리라하여 불력의 미스터리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쌍봉사(雙峰寺)에서 대웅전과 함께 일반 사찰에서 보기 힘든곳이 있어 "호성전(護聖殿)" 입니다.

 

 

 

호성전(護聖殿)은 "T"자 형의 맞배지붕 건물로,

우리나라의 유일무이한 형태의 전각이라고 하며..

 

 

 

앞면은 신발을 벗고 마루로 올라야하는 전실의 형태로 되어 있으며,

 

 

 

들어가는 입구쪽은 팔작지붕으로,

천정은 우물반자로 꾸렸으며 다포계의 화려한 공포 장식과 단청을 볼수있어,

 

 

 

봉황과 더불어 화려한 단청을 볼수 있습니다.

 

 

 

호성전(護聖殿)은 원래 세조의 위패를 모신것으로 사료되나,

지금은 쌍봉사 창건주 "철감도윤 선사"와 우리나라 절 가운데 최초로 중국의 "조주 종심선사"의 진영이 모셔져 있습니다.

 

 

 

화순 쌍봉사(雙峰寺)는 템플스테이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며,

 

 

 

호성전에서 곁에있는 나한전(羅漢殿)으로 향합니다.

 

 

 

나한전(羅漢殿)에는 중앙에 석가모니불이 모셔져 있고,

좌,우로 부처님의 제자인 16나한(羅漢)을 봉안하고 있습니다.

 

 

 

대웅전(大雄殿) 뒤에는 실질적인 쌍봉사의 주법당 역활을 하는 극락전(極樂殿)이 있어,

쌍봉사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로 정면 3칸, 측면 3칸에 맞배지붕의 다포계 건축물로,

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66호로 지정되었으며 규모가 크지않은 소박하고 단아한 느낌을 주는 건물이며,

 

 

 

극락전(極樂殿)에는 목조아미타불 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으며,

아미타여래와 관음, 대세지보살과 함께 삼존불의 형식을 갖추고 있어 조선 숙종 20년에 조성 된것으로,

"화순 쌍봉사 극락전 목조아미타불여래좌상"은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52호로 지정 되었습니다.

 

 

 

극락전 옆에는 지장전(地藏殿)이 있어,

 

 

 

지장전(地藏殿)에는 "지장보살(地藏菩薩) 삼존상 및 시왕상"이 봉안되어 있으며, 

 

 

 

지장전(地藏殿)에 봉안된 "화순 쌍봉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和順 雙峰寺 木造地藏菩薩三尊像및十王像一括)"은,

보물 제1726호로 지정 되었으며 1667년(현종8년)에 조성 되었으며,

조선시대 17세기 중,후반에 활발한 조각활동을 펼친 조각승 "운혜(雲惠)"의 불상 양식 연구와,

운혜파 조각승의 조각활동 및 경향을 시기별로 파악 할수있는 중요한 자료 입니다.

 

 

 

지장전(地藏殿)의 시왕상과 권속상들은,

조각과 채색이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불상으로 조선후기 채색불상 연구에 필요한 귀중한 자료가 된다고 합니다.

 

 

 

지장전(地藏殿)의 외벽에서 억압받는 자, 죽어가는 자, 나쁜 꿈에 시달리는 자 등의 구원자로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사자의 영혼을 모두 구제할 때까지 자신의 일을 그만두지 않겠다는 서원을 세웠다는 지장보살(地藏菩薩)의 그림을 살펴 봅니다.

 

 

 

보물 제 170호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비(和順 雙峯寺 澈鑒禪師塔碑)로,

비신은 없어지고 귀부(龜趺)와 이수(螭首)만 남아 있으나 이수나 귀부의 전체적인 조형은 격렬한 조각기법으로 당대를 대표하는 우수작으로,

철감선사(澈鑒禪師)는 한주 사람으로 호는 쌍봉(雙峰) 속성은 박씨이며,

798년에 출생하여 18세에 불법에 귀의하여 귀신사에서 수학하였고,

825년 당라나에 들어가 남천보원의 법을 전승하고,

847년 범일국사와 함께 돌아와 경문왕을 불법에 귀의 시켰으며,

868년 71세로 입적하고 철감(澈鑒)은 시호이며 탑명은 징소 라고 합니다.

 

 

 

쌍봉사(雙峰寺)의 정점인 국보 제 57호 "쌍봉사 철감선사탑(雙峰寺 澈鑒禪師塔)"으로,

부도의 높이는 2.3m이고 통일신라시대 석조부도의 기본 양식인 팔각 원당형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각 부분의 조각이 매우 정교하고 아름다우며 세부의 화려함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인상은 장중하며 당시에 만들어진 부도 가운데 최대의 걸작품이라 할수 있습니다.

철감선사(澈鑒禪師)는 통일신라시대의 승려로, 28세 때 중국 당나라로 들어가 불교를 공부 하였고,

문성왕 9년(847) 범일국사(梵日國師)와 함께 돌아와 풍악산에 머무르면서 도를 닦았으며,

경문왕대에 이 곳 화순지역의 아름다운 산수에 이끌려 이곳에 머무르며 종풍을 떨쳤으며,

경문왕 8년(868) 71세로 이 절에서 입적하니, 왕은 "철감(澈鑒)"이라는 시호를 내리어 탑과 비를 세우도록 하였습니다.

 

 

 

탑은 전체가 8각으로 이루어 졌으며 대부분 잘 보존되어 있으나 머리장식은 없어진 상태이며,

탑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기단은 밑돌, 가운데돌, 윗돌의 세부분으로 갖추어져 있으며,

특히 윗돌과 밑돌의 장식이 화려한 편으로 2단으로 마련된 밑돌은 여덟마리의 사자가 구름위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저마다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으면서도 시선은 앞을 보고 있습니다

 

 

 

윗돌 역시 2단으로 두어 아래에는 연꽃무늬를 두르고,

윗단에는 불교의 낙원에 산다는 가릉빈가(伽陵頻迦)가 악기를 타는 모습을 도드라지게 새겨 두었고,

지붕돌의 낙수면에는 기왓골이 깊게 패여있고 각 기와의 끝에는 막새기와가 표현되어 있으며 처마에는 서까래까지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사리가 모셔진 탑신은,

몸돌의 여덟모서리마다 둥근 기둥모양을 새기고 각면마다 문짝모양. 사천왕상. 비천상등을 조각해두었습니다

 

 

 

승보사찰 송광사의 말사이지만,

전통적인 가람배치인  "1탑 1금당식"의 형식을 볼수있고,

우리나라 사찰에서는 보기힘든 목조탑파 형식을 지닌 대웅전(大雄殿)과 함께 화려하고 특이한 전각인 호성전(護聖殿)이 있으며,

철감선사(澈鑒禪師)의 유적을 살펴 볼수있는곳으로,

국보와 보물을 비롯한 많은 문화재를 찾아볼수 있는 화순의 고찰(古刹) "쌍봉사(雙峰寺)"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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