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변의 정자 탐방에서,

서울 마포구에 있는 망원정(望遠亭)을 찾았습니다.

 

서울 특별시 마포구 망원동 410-8에 위치하고 있는 망원정(望遠亭)으로,

이곳 망원정 터는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9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망원정(望遠亭)은 한걍변 강변북로변에 있어서 지나면서 볼수 있지만,

내려서 돌아 보려면 합정동의 골목길을 경유해서 찾아야 합니다.

 

 

 

솟을 외문을 들어서면 보이는 망원정(望遠亭)으로,

이곳은 망원정의 후문에 해당하며 정문격인 삼문은 동쪽의 걍변도로변에 별도로 있습니다.

 

 

 

망원정(望遠亭)으로 오르는길의 왼쪽에는 관리사가 있고,

그리크지 않은 나무에는 크리스머스때의 장식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강변도로 일산방향으로의 도로변에 있는 망원정(望遠亭)의 정문인 솟을삼문으로,

이곳에는 주차공간도 없으며 진입하는 길도 그리 마땅치 않습니다.

 

 

 

망원정(望遠亭)은 양화나루(楊花津) 서쪽 언덕인 마포구 망원동 137, 207-1번지 일대에 있었던 정자로,

태종의 아들이자 세종의 형인 효령대군(孝寧大君, 1396∼1486)의 별장으로 세종 6년(1424)에 건립되어 처음에는 "희우정(喜雨亭)"이라 하였는데,

세종 7년(1425) 왕이 농사 형편을 살피러 이 곳에 거둥하였다가 새 정자에 올랐을 때 때마침 기다리던 비가 내려 온 들판을 흡족하게 적시므로,

왕이 매우 기뻐하여 정자의 이름을 희우정(喜雨亭)이라 붙인 것이라 하며 효령대군은 이러한 왕의 행차와 명명(命名)에 깊이 감사하여,

부제학(副提學) 신장(申檣)으로 하여금 현판을 쓰게 하고, 변계량(卞季良)에게 기문(記文)을 짓게 하였습니다.

 

 

 

망원정(望遠亭)의 하부의 모습으로,

지형에 맞춰 높이가 다른 돌기둥으로 초석을 대신하였슴이 보이고,

1980년대 후반에 복원을 하여 석재나 목재가 깨끗한편 입니다.

 

 

 

마루아래의 기둥들 사이 에서는 드러난 암반이 있어,

한강변의 암반으로된 낮은 언덕에 망원정(望遠亭)이 자리잡고 있슴을 알수 있으며..

 

 

 

망원정(望遠亭)의 현판으로,

한강쪽을 바라보는 처마 아래에 자리해 있어 눈여겨 보지 않으면 찾지 못할수도 있습니다.

 

 

 

정자로 오르는길은 동쪽에 나있는 계단으로 오를수 있어,

 

 

 

계단을 오르면 슬리퍼를 마련해두어 정자의 관리를 잘하고 있슴을 느끼게 하고,

망원정(望遠亭)은 방을 들이지 않고 마루만 둔 누각형태의 정자로,

 

 

 

조선 전기의 문신인 변계량(卞季良, 1369년~1430년)의 기문과 망원정의 주변 풍광을 노래한 시들에 의하면,

정자가 사치하지도 않고 누추하지도 않으며 강변에 매우 가깝게 있고 누각 형식의 건물로 둘레에 난간이 돌려져 있었으며,

주위에는 소나무와 버드나무가 울창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으며,

작가 미상의 희우정 그림을 보면 강가 절벽 암반 위에 덤벙주초석을 놓고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건물로서,

마루 둘레에는 난간을 돌리고 팔작지붕을 한 모습으로 되어있어 복원된 망원정(望遠亭)도 이에 따른것으로 보입니다.

 

 

 

세종 27년(1445)에 왕이 이 곳에 거둥하여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이천(李蕆)등이 군사를 거느리고,

대포를 발사하며 실전을 방불케 하는 훈련을 하게 하고 세자와 대군 등이 희우정(喜雨亭) 서쪽 봉우리에 올라 관람 하였는데,

따라서 이 부근은 경치 좋은 명소로서만이 아니라 수륙군(水陸軍)의 훈련장으로도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루에 걸려있는 희우정(喜雨亭)의 현판으로,

글씨는 당시 서도(書道)로 이름높던 부제학 신색[申穡]이 쓴 것으로,

자세히 보면 가운데 "희(喜)"의 한획이 빠져있어 보통 특정한 글자를 피하거나 혹은 고쳐 써야 하는 경우를 일컬어 "피휘" 라고하며,

글자의 한 획을 쓰지 않는 "결핍법(缺筆法)"이라고 합니다.

 

 

 

복원한 정자여서 인지 마루위에는,

시문과 상량문, 중건기등의 편액은 찾을수 없고 한글이 혼재된 망원정복원기만 올려져 있습니다.

 

 

 

정자는 난간이 2중으로 되어있어,

기둥을 중심으로 바깓과 안쪽을 분리해 난간을 두어,

난간 사이에는 좁고 길다란 통로가 나 있으며,

 

 

 

마루의 분리된 공간만큼 천정부분도 그림으로 채워둔 모습이 보입니다.

 

 

 

성종 15년(1484)에는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月山大君, 1454∼1488)이 정자를 고쳐 짓고 이름을 망원정(望遠亭)이라 하였는데,

이는 정자에 오르면 연희평(延禧坪)의 넓은 들판을 건너 도성 서북쪽의 산악지대를 바라볼 수도 있고,

동남쪽으로 한강을 끼고 벌려 있는 산야의 먼 경치를 잘 바라볼 수 있었음을 뜻하는 것이며,

성종은 세종 때의 예에 의하여 매년 봄 가을 이 곳에 나와 농사 형편을 시찰하고 또 수전 연습을 관람하였으며,

문인 명사들과 시주(詩酒)를 즐기기도 하였는데,

월산대군은 특히 이곳의 경치를 좋아해 눈 덮인 양화벌의 겨울 경치를 "양화답설(楊花踏雪)"이라고 하여,

"한성십영(漢城十詠: 한성을 대표하는 열 가지 볼거리)"의 하나로 손꼽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지만,

성종은 월산대군이 죽은후에는 망원정(望遠亭)을 다시 찾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후 연산군 12년(1506)에는 연산군의 향락행위를 위하여 한강 명소인 망원정을 크게 확장할 것을 명하였는데,

이 때 지붕은 초가로 하고 건물은 천여명이 앉을 만큼 크게 짓게 하며 정자 위에서 바라다 보이는 건물은 모두 철거하도록 하였으며,

정자의 이름도 수려정(秀麗亭)으로 고치게 하였으나 그해 9월 중종반정으로 모든 공사는 중지되고 철거됨에 따라,

망원정도 다시 옛 모습으로 명사들이 즐기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이 곳은 경치가 매우 좋아 명나라 사신을 접대하던 연회장으로도 사용되었으며,

잠두봉(蠶頭峰)과 가깝기 때문에 잠두봉을 찾는 길에 이 곳에 들르는 사신도 있었습니다.

 

 

 

한강의 경치를 굽어보는 낮은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는 망원정(望遠亭)은 수려한 풍경에 조선시대 선비들이 자주 찾았던 곳이었다고 하나,

세월의 흐름으로 이제는 강변북로를 달리는 자동차의 소음만 우렁차게 들립니다.

 

 

 

그후 망원정은 1925년 을축년(乙丑年) 대홍수 때에 유실되어 마포구 망원동 동명에서만 그 자취를 찾을 수 있었는데,

그후 서울시에서 1986년에 한강변 문화유적 복원계획의 일환으로 문헌 고증과 현지 발굴조사를 통해 망원정을 복원하기로 하여, 

원래 위치에서 약간 벗어나 마포구 동교로8안길 23 (합정동)에,

대지 341.5평에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2층 팔작기와집 누각으로 복원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세월의 흐름으로 한강을 내려다보는 양화나루 인근의 옛풍경은 찾을길 없지만,

왕실 종친의 별장으로 세종과 성종의 왕위를 양보해준 형님에 대한 정을 살필수 있으며,

중국의 사신들뿐 아니라 많은 선비들이 찾아 수려한 풍경을 즐겼던 한강변의 정자 "망원정(望遠亭)"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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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합정동 457-1 | 망원정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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