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북동부에 위치해 있으며 "육지 속의 섬"으로도 불릴만큼,

높은 산들에 싸여있는 산촌지역인 "영양(英陽)"을 여행 하면서.

조선 후기의 정자 문화재, 가천정(佳川亭)을 찾았습니다.

 

경북 영양군 일월면 가천로 173에 위치해 있으며,

경상북도문화재 자료 제196호로 지정된 영양(英陽) 가천정(佳川亭)은,

"ㅡ"자형의 누정과 사주문으로 일각을 이루고 있는데 정자 앞마당에 서있는 노거수 소나무가 인상적입니다.

 

 

 

가천정(佳川亭)은 가천 김찬구(金贊九,1732∼1806)가 조선 정조 18년(1794)에 지은 정자로,

처음에는 효도와 공경을 근본으로 하여 후대에 정성을 다한다는 뜻을 가진 "삼친당"이었으나,

1907년 후손들이 건물을 고쳐 지으면서 추모의 의미로 "가천정(佳川亭)"으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가천정(佳川亭)의 현판으로,

이곳의 산수가 아름답다고 해서 가천(佳川) 이라고 합니다.

 

 

 

가천정(佳川亭)은 전퇴가 있는 "ㅡ"자형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1.5칸 규모로,

평면은 전면에 툇마루를 꾸미고 중앙 마루간을 중심으로 좌우로 온돌방을 배열 했으며,

정면의 툇마루는 정면 원기둥을 밖으로 마루 끝을 확장한 후 마루 끝에 계자난간을 설치 하였고,

측면과 일부 배면에 쪽마루를 달고 좌우측면으로 출입이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정자에서 볼수있는 또하나의 현판인 "삼친당(三親堂)"으로,

가천(佳川) 김찬구(金贊九)가 처음 정자를 지었을때의 이름으로,

1907년 후손인 낙현 준현이 퇴락한 건물을 고쳐 지으면서 가천정(佳川亭)으로 바뀔때 까지 시용한 당호 입니다.

 

 

 

가운데에 있는 마루방은 툇마루와 같이 우물마루 구조이며,

전면은 네 짝 여닫이 세살분합문을 달았고 배면에는 머름을 꾸미고 판벽에 두 짝 여닫이 우리판문을 달았으며,

마루방 위에는 많은 편액들이 올려져 있어,

 

 

 

마루에서는 여러 시판들과,

삼친당기(三親堂記),를 비롯하여 가천정기(佳川亭記), 가천정상량문(佳川亭上樑文)등 많은 편액들을 볼수 있습니다. 

 

 

 

마루안에서 보이는 네 짝으로 된 분합문으로,

마루나 방 앞에 설치하여 접어 열 수 있게 만든 큰 문인 사분합문(四分閤門)이며,

 

 

 

좌,우의 온돌방은 중앙 마루간 으로부터 두 짝 여닫이 만살문을 달아 출입이 가능하도록 했으며,

정면에는 머름을 꾸미고 두 짝 세살문과 두 짝 미닫이 용자살을 달았고,

측벽에는 외여닫이 세살문을 달아 외부와 통하도록 했으며 배면으로는 두 짝 여닫이 만자살문을 달았습니다.

 

 

 

가천정(佳川亭) 마루에서 보이는 풍광으로,

담장 안에서 늠름하고 크게 자란 소나무와,

안에서는 낮은 담장 이지만 밖에서 보았을 때 가천정의 담장은 높아 보이며,

 

 

 

장파천을 앞에두고 가천리 주변의 높은산들이 가까이 다가선 느낌입니다.

 

 

 

가천정(佳川亭)의 백미는,

입구인 사주문을 한켠으로 밀어내고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듯 느껴지는 노거수 소나무로,

늠름하고 시원하게 뻗어 올라 있어 깊은 인상을 남겨줍니다.

 

 

 

가천정의 기단은 자연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기단 상부는 시멘트몰탈로 마감 했으며,

좌우 온돌방의 아궁이는 정면의 마루 밑 기단에 있고 굴뚝은 측면 쪽마루 끝에 위치하고 있으며, 

가구는 맞보형식의 오량이며 지붕은 한식기와를 올린 팔작지붕으로 서까래 사이에는 회바름으로 마감했고 벽면 또한 회바름으로 마감 했습니다.

 

 

 

산수가 아름답다고 해서 가천 이라고 했으며,

효자로 이름났던 정자의 주인 김찬구(金贊九)도 자신의 호를 가천(佳川)으로 삼을 정도였으며,

반변천으로 향하는 장파천 가까이에 세운 정자로 인상적인 소나무를 떠올리게 하는,

경북 영양(英陽)의 정자 문화재 "가천정(佳川亭)"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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