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영양을 여행 하면서,

산간지역의 생활모습을 한눈에 모아놓은 "영양 산촌생활박물관"을 찾았습니다.

 

영양 산촌생활박물관은 너른 주차장과 주변정리가 깔끔하게 되어 있으며,

박물관의 야외전시장인 "전통생활체험장"을 돌아보고,

윗쪽에 있는 산촌생활박물관의 실내전시장을 찾아 봅니다.

 

 

 

영양 산촌생활박물관으로,

경북 영양은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이 갈라지는 산악지에 있어 근대까지 산촌문화가 잘 보존돼 있었는데,

산업화와 도시화로 소중한 문화자원이 급속히 사라지자 지난 1999년 박물관 건립을 추진하게 되어,

영양군 입암면 연당리 2만여 평의 부지에 들어선 영양산촌생활박물관은 2006년 9월 박물관을 개관한 후,

이듬해인 2007년 4월 전문박물관으로 등록을 마쳤으며 건평 1천650㎡ 의 산촌생활박물관과 720㎡규모의 전시장이 있습니다.

 

 

 

박물관을 들어서면 입구에서 오래된 전통 항아리들이 반겨주고,

 

 

 

전시관 입구에서 커다란 조형물이 있어,

 

 

 

용화사 물레방아확 을 주제로한 디오라마로,

통일신라시대 사찰인 용화사에서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19세기 역암으로 만든 물레방아의 호박으로,

"확"이란 절구공이를 생각하시면 편한데,

높이1,240mm, 둘레는 4,100mm, 무게는 4.6톤의 크기로 확을 만드는 과정을 재현해 두었는데,

역암으로 만든 돌확으로 충격을 흡수 할 수 있도록 타원형으로 만들었습니다.

 

 

 

산촌생활박물관의 전시관으로.

이곳에는 산촌의 삶과 문화를 꼼꼼히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로 채워져 있어서,

산촌의 살림살이, 신앙생활, 생산활동, 여가활동, 산촌의 공예에 대한 전시물들이 다양하고 꼼꼼하게 전시되어 있어,

 

 

 

전시실에는 산촌 생활에서의 생활도구의 전시와 함께,

 

 

 

봄철의 보릿고개 넘기의 하나로,

해방 후까지 우리에게는 보릿고개 넘기란 말이 있었습니다.

가을철 쌀을 수확하여 한겨울을 나면 식량이 집집마다 다 떨어지게 되어,


그 이듬에 늦봄에 보리를 수확할때까지 굶주림에 시달리는 상황을 "보릿고개 넘는다"라고 하였습니다.

한끼 배를 채우기 위해 하루종일 일을 하였으며 이도 아니면 들과 산으로 먹을 것을 찾으러 나가야 굶어 죽지 않으므로,

칡을 캐거나, 나물과 쑥을 뜯거나 소나무 껍질을 먹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던 생활로 봄철 춘공기는 산촌의 생활을 더욱 궁핍하게 하였는데,

봄철 산나물 다듬기 또한 봄철식량의 귀한 재료로 산촌 생활에서 봄에 가장 많이 볼수있는 일상이며,

집집마다 산나물을 뜯어 데쳐 말리는 작업을 해야만 1년을 견디는 양식이 되며 부식입니다.

 

 

 

추수를 하는 디오라마로,

산촌의 가을도 풍요롭지만 평지에 비해 농작물을 키울 수 있는 전답이 넓지 않아서,

겨울철을 나고 나면 금세 보릿고개가 오곤 한다고 합니다.

 

 

 

산촌에서의 귀한 영양제이자 약재이기도 했던 벌꿀로,

산촌 생활에서 소중한 수입원이기도 했던 다양한 "꿀따기" 도구 입니다.

 

 

 

영양의 산촌신앙인 일월산 미륵동굴 이야기로,

해와 달의 정기가 어린 일월산은 일자봉과 월자봉의 두개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세상이 어지러울때 극락세상을 열어 중생을 제도한다는 미륵불을 모신 동굴로 기도처입니다.

 

 

 

동굴안에는 미륵불이 모셔져 있으며,

미륵불은 석가가 열반에 든후 56억 7천만년후에 나타난다는 미래의 부처님입니다.

 

 

 

영양의 산촌신앙에는 영양의 여신도 있어, 

영양군의 일월산 월자봉 아래에는 황씨부인당을 모시고 있으며,

구주령은 아홉개의 구슬을 꿰어 놓은 듯한 험준한 태산준령에 있는 고개로 낙동정맥이 지나갑니다.

영양 수비면에서 울진 온정면 백암온천을 연결하는 고개로 정상에 옥녀를 모신 서낭당이 있으며

황씨부인을 중심으로 왼쪽에 옥녀가 오른쪽으로는 황씨 부인의 두 딸이 장갈령과 동산령을 지키고 있습니다.

 

 

 

서낭당의 별칭인 성황당(城隍堂) 현판으로,

마을의 수호신으로 서낭을 모셔놓은 신당으로 형태는 크게 다섯 가지로 구분할 수 있어서,

서낭나무에 잡석을 난적(亂積)한 누석단이 있고, 이 신수에 백지나 청·홍·백·황·녹색 등의 오색 비단 헝겊을 잡아맨 형태가 있으며.. 

잡석을 난적한 누석단 형태와 서낭나무에 백지나 5색 비단 헝겊 조각을 잡아맨 형태와,

서낭나무와 당집이 함께 있는 형태가 있으며 입석(立石) 형태 등이 있어 주로 다섯가지로 나누어 집니다.

 

 

 

이곳 전시관은 산촌생활 전시관으로,

 

 

 

베틀을 놓고 베짜기를 하는 아낙의 모습을 재현해 두어,

농사일을 마치고 베틀에 매달려야 하는 옛사람들의 모습을 볼수 있는데,

옛날의 베틀은 오늘날의 직조기와 같은 원리라고 하며 같은 동작을 반복해서 작업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베짜기와 다림질등 천과 관계된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고,

 

 

 

산촌의 자치로 산촌에도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규범과 제재관행이 있어서,

공동체의 윤리나 도덕을 어길 경우 가벼운 훈계에서 태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처벌을 자치적으로 운용 했었는데,

그중 멍석말이는 불효 등 비교적 무거운 죄를 범한 사람에게 내렸는데 이는 잘못을 뉘우치게 하여 다시 올바른 사람으로 만들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농사일을 위한 도구들을 전시해둔 공간이 있으며,

 

 

 

산촌 생활에서 실제로 사용했던 도구들과 산촌생활을 디오라마로 생생하게 재현해두어,

설명감이 뛰어나게 전시해 두었습니다.

 

 

 

해마다 모내기 할무렵에는 산촌마을에서 행했던 영풀베기를 하는 모습으로,

당시 화학비료가 없던 시절 땅에 영양분을 공급하여 지력을 높이기 위해 풀을 베어 비료로 퇴비를 사용을 했다고 합니다.

 

 

 

벼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일중 하나는 물대기 입니다.

동력인 양수기가 없던 시절여서 간단한 도구를 이용하여 인력으로 논에 물을 대어야 하는 어려움이 엿보이며,

 

 

 

개천의 물을 논으로 퍼올리는 광경과,

아낙이 차려온 새참을 먹는 모습들이 재미있고 실감나게 표현해두었습니다.

 

 

 

이번 코너에는 전시관 가운데에 커다란 나무가 서있고,

 

 

 

 

노거수 나무에는 금줄을 둘러 두었고 나무 앞에는 작지만 제단도 마련되어 있으며,

 

 

 

영양군 일월면의 주곡리와 가곡리에서 지냈던 마을 고사인 "대보름 서낭굿"으로,

해마다 섣달 그믐에 "쑤(숲)"에서 서낭대의 신을 받는 행사로,

두 마을의 화합을 이끌어내고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새해맞이 축제를 즐기는 모습입니다.

 

 

 

농토가 부족한 산촌에서는 산에서 곡식을 구하기 위해서 화전을 개간하는 모습으로,

화전은 산에 불을 놓아서 지력이 유지되는 단기간 동안만 경작하는 방법으로,

 

 

 

특히 일제강점기 때 수탈을 피해 화전민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며

화전민 촌은 1968년 무장공비 침투사건을 계기로 정부에서 주도한 이주정책으로 거의 사라졌다고 합니다.

 

 

 

영양의 원놀음으로 경상북도 영양군 일대에 전승되는 청장년의 유오적(遊娛的) 놀이로,

음력 정월 초순에 행하졌으며 영양읍에서는 1900년에 중단되었다가 1972년 이래 복원 전승되고 있는데,

정월 초순 마을의 청장년이 10여 명만 모이게 되면 부유한 농가의 대청이나 행랑방을 무대로 삼고,

구성원으로 원(수령)· 이방· 호방· 공방· 병방· 형방· 예방· 통인· 사령 등 조선시대 하위 관아의 소속원을 배역하여,

권력행사와 재판을 모의하여 놀게 되는데 그 집의 주인이 범법자가 되어 불려나오면,

원이 여러 가지 부정과 비위를 들추어 죄명을 씌워 중벌을 선고하게 되는데,

이 벌을 감면하는 대가로 주안상을 요구하여 일동이 질탕하게 먹고 마시며 즐기는 놀이로, 

실컷 먹고 나면 한 사람이 암행어사 출두를 외쳐 배역들은 혼비백산 도망하듯 하면서 다음 집으로 옮겨 가는 놀이로,

이 놀음은 근 10일 가량 이 마을 저 마을을 다니며 벌여 때로는 민폐를 끼치기도 하였는데,

조선 말기에는 현감이 이들을 초빙하여 관아에서 놀게 한 일도 있고,

서원을 짓거나 다른 건물을 짓는 공공사업을 위한 모금운동에 이용하기도 하였습니다.

 

 

 

산촌의 생활 용품과 도구등을 전시해둔 전시관에서 해학적인 모습의 장승도 볼수있고,

 

 

 

산촌의 수렵과 천렵으로,

산촌민들이 동물성 단백질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수렵,천렵을 통해 짐승들을 사냥하거나 물고기 잡이를 했습니다.

주로 농사가 잘 되지 않는 늦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사냥과 천렵을 했다고 하며 다양한 천렵의 도구를 살펴볼 수 있는곳 입니다.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14호 영양 상여장으로,

상여는 사신(死身)을 장지로 운구하는 일종의 다인교(多人轎)인데,

영양 상여는 서민용으로 화려한 특색과 조립식이며 재료는 유목, 자장목, 피목 등 잡목을 사용하여,

오래되어도 터지기를 덜하고 틀어지지 않는 것이 특징인데,

화려한 모습의 영양 상여는 장인이 고증을 받아 축소모형으로 재현했다고 합니다.

 

 

 

지자체의 영향으로 근자에는 지역별 박물관이 많이생겨 찾아보게 되는데,

지역 특징을 잘 살리지 못하고 특징 없고 개성이 부족한 박물관도 더러 만나게 되어 아쉬울 때가 많았는데,

영양산촌생활박물관의 새로운 개념과 체계적인 야외와 실내를 아우르는 전시물들은 아쉬움을 말끔히 씻어주는 계기가 될정도 여서,

영양을 여행 하시게 되면 추천 할만한 곳이며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에도 그만인 곳으로, 

영양 산촌생활 박물관의 실내 전시관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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