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의 문화재 탐방에서,

전라북도 정읍시 태인면 태창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누각,

정읍 피향정(井邑 披香亭)을 찾았습니다.

 

호남제일정(湖南第一亭)으로 불릴만큼 호남지방에서 으뜸가는 누정 건축물인 피향정(披香亭)은,

보물 제289호로 지정된 문화재 입니다.

 

 

 

피향정(披香亭) 담장을 따라 관찰사와 현감의 공적비들이 서있어,

그중에는부패한 탐관오리로 고부민란과 동학혁명의 발단이 되었던,

조병갑(趙秉甲:1844~1911)의 아버지 조규순(趙奎淳)의 공적비도 함께 있습니다.

 

 

 

피향정(披香亭)은 신라 헌안왕(857∼860) 때 최치원(崔致遠)이 태인현감(泰仁縣監)으로 재임 중 세웠다고 전하나,

정확한 초창연대는 알 수 없으며 <증보문헌비고>에 의하면  광해군 때 현감 이지굉(李志宏)이 중건하고 현종 때 박숭고(朴崇古)가 확장 중건하였으며,

1716년(숙종 42) 현감 유근(柳近)이 전라감사와 호조에 교섭하여 정부의 보조로 재목을 변산(邊山)에서 베어다가 현재의 규모로 건물을 세웠다고 하며,

그 후 1882년에 또 한 차례의 중수가 있었고  6·25전쟁 후에는 태인면사무소로 사용되어 오다가,

1957년 면사무소를 신축하면서 원상으로 환원되었고 근자에는 1972년 주변의 신축공사가 있었고 1974년 단청공사를 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피향정(披香亭)으로 오르기전 누각의 아래를 들여다 보면,

막돌초석을 놓고 그 위에 짧은 돌로 만든 두리기둥을 세웠으며 부분적으로 단주형(短柱形) 초석을 놓고 위에 나무로 된 두리기둥을 28개 세웠습니다.

 

 

 

피향정(披香亭)은 마루로 오르기 위하여,

전후의 어간(御間)에서는 난간을 끊어 그 앞에 나있는 돌 계단을 통하여 오르내릴 수 있으며,

 

 

 

누각으로 오르며 볼수있는 피향정(披香亭)의 현판 입니다.

 

 

 

우물마루로 된 바닥은 지상으로부터 약 1.42m 높이의 28개 화강암 기초 위에 놓여진 누마루 형태를 하고 있으며,

기둥은 창방(昌枋)으로 결구하고, 기둥 위에 주두(柱頭)를 얹은 뒤, 쇠서[牛舌] 하나를 내밀어 초익공(初翼工)식의 구조를 이루고,

가구는 7량(七樑)으로 내부에는 고주(高柱) 사이에 대들보를 걸고, 첨차(?遮)로 된 동자기둥을 세워 종보[宗樑]를 받치고..

다시 이 위에 초각(草刻)된 대공을 얹어 종도리를 받치고 있으며, 

두리기둥은 모두 28개가 세워져 있는데 이는 우주를 28숙으로 나눴던 사상을 따른것 이라고 합니다.

 

 

 

천장은 연등천장(椽背天障)이 주류를 이루나,

양쪽 협간(夾間) 사이에는 귀틀을 짜 우물천장을 가설 하였고 사방이 모두 트이게 되어 있습니다.

 

 

 

누각 안에서 볼수있는 또하나의  피향정(披香亭) 현판으로,

태인현감을 1794년에 1799년까지 6년동안 지냈던 풍성(豊城) 조항진(趙恒鎭) 글씨로,

 1799년(기미)에 이 편액을 썼음을 알수 있으며,

 

 

 

피향정(披香亭)의 마루에는,

이곳을 거쳐간 시인 묵객들의 시가를 기록한 많은 편액(編額)이 있어, 

대부분 고운(孤雲)과 연지(蓮池)에 관련된 글들이라 하며 일부를 살펴봅니다.

 

 

 

왼쪽의 편액은 <현판 위의 운자로 시를 지음>으로  정묘년 중춘에 현감 서상옥의 편액으로,

매학(梅鶴)의 공당(公堂)이 가까이 있는데,         가을바람 피리소리 군루(郡樓)가 열렸네.

공중에 나는 새는 푸른 연기 끌고 가고,            해질 무렵 나그네는 푸른 들판 건너오네.

맑은물 연꽃향기 십리로 퍼지고,                     푸른산 송죽은 천 겹으로 둘러 있네.

벼슬길 바쁜 걸음 부평초(浮萍草) 같아,            남쪽 고을 달려와서 이 술잔을 들어보네.

 

 

 

오른쪽의 편액은 <울면서 선고께서 벽 위에 쓴 시에 차운함>으로,

선고께서 이곳을 지나실 때를 생각해 보니,            삼십년 전에 모시고 꽃구경 했네.

벽 위에 사룡(紗龍)은 세고(世槁)를 이루고,           연잎 속에 빚은 술은 원기를 길러주네.

아롱옷 옛날에 기쁜정을 다했는데,                     현감되어 오늘 오니 감회눈물 떨어지네.

경색은 변함없이 난간밖에 있으니,                     연꽃은 옛날처럼 변함이 없네.

불초(不肖) 손자 태인현감 유○○

 

 

 

피향정중수기(披香亭重修記) 편액으로,

철종 6년 을묘(1855년) 11월 하순 당시의 현감(縣監) 한산(韓山) 이승경(李承敬)의 기(記) 이며,

중수한지 140년이 경과하여 퇴폐함에 책임을 느껴 중수공사를 했는데,

인부가 2,692명, 장인 577명이 동원되고 엽전 1,600꾸러미가 소용 되었슴을 살필수 있습니다.

 

 

 

피향정(披香亭)이란 이름은 동서 양쪽에 파 놓은 상연지(上蓮池)와 하연지에 핀 연꽃의 향기가 주위에 가득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이 건물은 호남지방에서 가장 대표적인 정자 중의 하나로,

신라 정강왕 1년(887)에 고운 최치원이 태산군수로 재임 중에 풍월을 읊고 소요하던 연못가에 세워진 정자로서,

고려 현종때 증축되었다고 전하나 현재의 모습은 조선 인조때의 현감이던 유근이 중수한 것입니다.

피향이란, 향국(香國)을 둘로 나누었다는 의미로, 본래 이 누정의 상하에는 상연지제(上蓮池堤)와 하연지제(下蓮池堤)의 두 연지(蓮池)가 있어,

여름에는 연꽃이 만발하여 향기가 누정의 주위에 가득차므로, 이를 뜻하여 피향정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원래 커다란 연못 속에 세워져 있었으나 현재는 연못이 메워져 있으며,

마치 평지 위에 누정이 건립된 것처럼 보여 본래의 정취를 찾아볼 수 없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태인지역의 오랜 역사와 문화유적, 전통, 인물 등을 집대성한 종합역사서인 "태인지(泰仁誌)"를 보면,

상연지의 둘레가 1,444척이며 깊이가 2척이고, 하연지는 둘레가 1,026척이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과거 비슷한 크기의 연지가 있었음을 알 수 있으나 지금은 상연지는 없어지고 하연지만 남아 함벽정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매년 "태인연꽃축제"를 하고 있습니다.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이 지은 시(詩)가 점필재집 시집 제21권에 전하고 있어,

泰仁蓮池上懷崔致遠  "어느 날 태인의 연지 가에서 최치원을 생각하며" 입니다.

割雞當日播淸芬   할계하던 당일에 맑은 덕행 전파했기에

枳棘棲鸞衆所云   사람들이 가시나무에 난새가 앉았다고 하였네

千載吟魂何處覓   천재에 시 읊던 그 마음을 어디에서 찾을꼬

芙蕖萬柄萬孤雲   일만 자루 연 줄기에 일만의 고운이로다

 

 

 

연지(蓮池)를 향하여 남향으로 세워진 피향정(披香亭)은,

정면 5칸, 측면 4칸의 겹처마 팔작지붕건물로 우물마루에 사방에는 계자난간(鷄子欄干)을 둘렀으며,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정자의 하나로 조선 중기의 목조건축 양식을 살펴 볼수있는 건축물 입니다.

 

 

 

한쪽의 연못이 메워져 본래의 정취를 찾기 어려워 아쉬움이 있지만,

조선 중기의 목조건축 양식을 살펴볼수 있으며,

연꽃이 한창 피어 오르는 뜨거운 한여름에 다시찾고 싶은곳으로,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관청 정자의 하나인 호남제일정(湖南第一亭)인,

정읍 피향정(井邑 披香亭) 방문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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