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부안을 여행하면서,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에 있는 변산반도의 명찰,

능가산(楞迦山) 내소사(來蘇寺)를 찾았습니다.

 

내소사(來蘇寺)로 들어가는 일주문(一柱門)으로,

절에 들어서는 산문(山門) 중 첫번째의 문으로 "재가와 출가가 둘이 아니며 시간과 공간도 둘이 아니요, 생사와 열반이 둘이 아니라"는 의미로,

누구든지 이 일주문에 들어오면 이 진리를 깨닫고 잃었던 본 바탕을 되찾으라는 뜻으로 세워진 사찰의 경계이기도 합니다.

 

 

 

사찰의 역사를 알려주듯 내소사(來蘇寺) 산문앞에 노거수 느티나무가 있어,

내소사는 백제 무왕 34년(633)에 창건되었다고 전하며,

혜구(惠丘)두타 스님이 이 곳에 절을 세워 큰 절을 "대소래사", 작은 절을 "소소래사"라고 하였는데,

그 중 대소래사는 불타 없어지고 지금의 내소사는 소소래사이며,

소래사가 내소사로 바뀐 것은 중국의 소정방(蘇定方)이 석포리에 상륙한 뒤,

이 절을 찾아와서 군중재(軍中財)를 시주하였기 때문에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고쳐 불렀다고 전하나 사료적인 근거는 없습니다.

 

 

 

산문을 들어서면 나타나는 내소사(來蘇寺)의 울창한 전나무 숲길로,

전나무 향기 가득한 매력적인 산책로 이며,

전나무 숲길을 벗어나면 단풍나무 터널을 만날수 있어 가을이면 단풍의 아름다움을 즐길수 있습니다.

 

 

 

전나무 숲길을 지나면 네모난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연못을  만나게 되는데,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전통적 우주관을 바탕으로 하여 우리의 옛 연못은 네모나고, 그 안에 있는 섬은 둥글게 만들었습니다.

대개 사찰 연못은 연지(蓮池)와 영지(影池), 둘 종류로 나누게 되는데, 

연지(蓮池)는 연꽃을 비롯하여 수생식물이나 물고기를 조성한 연못이며,

영지(影池)는 절 입구에 조성하여  일주문 가까이에 있는경우가 많으며,

수행자들에게 끊임없이 화두를 참구하여 깨달음에 이르기를 묵언으로 촉구하고 있어서,

마음이 맑고 고요하면 삼라만상의 이치를 볼 수 있는 깨침의 경지가 되어서 영지에 비친 경관을 보는 것은,

곧 마음의 바탕인 불성(佛性)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연못이 출렁이면 주위경관을 볼 수 없듯이 마음이 산란하면 불성을 관할 수가 없어서 선(禪)과 영지(影池)가 연결되어 있으며,

사찰의 영지는 원래 물고기를 풀지 않았는데 그들이 어지러이 헤엄치고 다니면 물 위에 뜬 오봉산 그림자들이 흐트러지기 때문입니다.

 

 

 

영지 윗쪽에는 낮은 언덕으로 향하는곳에,

작은 내를 건너는 돌다리가 있어 건너게 되면,

 

 

 

스님의 사리나 유골을 안치한 부도가 모여 있는 부도전(浮屠殿)으로,

근대의 선지식인 해안(海眼)대종사의 부도를 찾을수 있어,

해안당 봉수대종사(海眼堂 鳳秀大宗師)는 1901년생을, 호는 해안이며,

 14세에 내소사 만호스님을 은사로 출가, 백양사에서 만암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수지했으며,

1920년 불교중앙학림을 수료했으며 중국의 북경대학에서 2년간 불교학을 연구했고,

귀국후 내소사 앞 입암리에 계명학원을 설립하여 청소년 교육 및 문맹퇴치운동에 헌신하는 한편,

백양사 동래사 슨회포교사가 되어 본격적으로 교화활동을 폈습니다.

1945년 금산사 주지취임 이후 서래선림을 개설하여 참선지도에 전념했으며,

1950년 다시 변산 서래산림으로 옮겨 토굴에서 두문불출하며 정진 하였으며, 

1974년 4월 1일 내소사 서래선원에서 창립5주년 기념 7일 정진법회를 마친 다음 세수 74세 법랍 57세로 입적 했습니다.

 

 

 

부도전에서 단풍나무숲을 지나면 사천왕(四天王)을 모신 천왕문(天王門)이 있으며,

 

 

 

천왕문(天王門)의 사천왕(四天王)은 그림으로 대신하고 있는데,

 

 

 

그림 뒤로는 원래 사천왕상이 있는데,

그림으로 대신하고 있는 연유는 알수가 없습니다.

 

 

 

천왕문(天王門)을 들어서면 너른 광장이 시원하게 나타나고,

 

 

 

내소사(來蘇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禪雲寺)의 말사로,

633년(무왕 34)혜구(惠丘)가 창건하여 ‘소래사(蘇來寺)’라고 하였고,

그 뒤 1633년(인조 11)에 청민(靑旻)이 대웅보전을 지어 중건하였고, 1604년(인조 18)청영(淸映)이 설선당과 요사를 지었으며..

1902년관해(觀海)가 수축한 뒤 1983년 일주문을 세우고 1985년 대웅보전을 중수하였으며,

1986년 천왕문을 짓고 설선당과 요사를 보수 하였습니다.

1987년 봉래루를 해체 복원하였으며 1988년 요사인 진화사(眞華舍)를 건립하였고,

1995년 수각(水閣)과 종각을 짓고 범종을 조성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광장의 한켠에는 커다란 무쇠솥이 솥두껑과 함께 마당에 나와 있는데,

설명이 없어 이유는 알수 없습니다.

 

 

 

내소사(來蘇寺)에는 수령이 약 천여년 쯤 되는 느티나무(할머니 당산)가 있어 사찰의 역사를 알려주는듯 하며,

 

 

 

천년을 살았다는 느티나무는 높이 약 20m 둘레 7.5m의 크기로,

커다란 그늘을 만들며 늠름하게 서 있습니다.

 

 

 

노거수 느티나무 앞쪽에는,

나무아래 기와를 동그랗게 둘러두어 기와불사를 알리고 있어 눈길을 잡습니다.

 

 

 

마당의 오른쪽에는 범종각(梵鐘樓)이 자리해 있어,

소리로써 불음(佛音)을 전파하는 목어(木魚)와 허공을 나는 생명을 대상으로 하는 운판(雲版)이 있으며,

법고(法鼓)는 축생의 무리를 향하여 법음을 전하며, 범종(梵鍾)은 지옥의 중생을 향하여 불음을 전파하여 깨달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대웅보전을 향하는 길에는 또하나의 범종각(梵鐘樓)있어,

"내소사 고려 동종"으로도 불리는 보물 문화재인 "부안 내소사 동종 (扶安來蘇寺銅鍾)"으로,

 

 

 

고려동종은 1222년(고종 9)변산 청림사(靑林寺)에서 만든 종으로,

1850년 땅속에서 발굴된 뒤 이곳 내소사(來蘇寺)로 옮겨 졌습니다.

 

 

 

보물 제277호로 지정된 높이 103㎝의  부안 내소사 동종 (扶安來蘇寺銅鍾)으로,

원래 청림사에 있던 종을 1856년(철종 7)에 현위치로 옮겼으며 구리 700근을 사용하여 1222년에 제작하였고,

한중서(韓仲敍)라는 주종장의 이름도 확인되었는데 그는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장인으로,

시위군(侍衛軍)이라는 말단 군사에서 정7품 관직으로 출세하면서 왕성한 활동을 펼쳤던 인물로,

내소사 동종 이외에도 무술명 범종(1238), 복천사 반자(1238), 임자명 반자(1252) 등 다양한 작품의 제작에 참여 하였습니다.

내소사 동종은 전통의 양식을 계승하면서도 입상화문대와 음통의 세부 장식에서 고려만의 특징을 확인할 수 있어 뛰어난 주조 기술이 반영되었고,

보존 상태도 양호하여 원형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명문을 통해 봉안사찰, 조성시기, 주종장 등 제작 전반에 대한 내용도 파악 되었으며,

고려시대 13세기 범종의 양식과 장인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 된다고 합니다.

 

 

 

용통에 붙어 있는 구슬과 입화 장식에서 고려시대 종의 특징을 보여주는 작품이며

전체 외형은 종의 입구가 좁아지는 형태이며, 단룡(單龍)의 종뉴와 구슬 장식이 있는 음통을 갖추었고,

천판에는 입상화문대가 있고 상대와 하대는 당초문으로 장식 하였으며 상대 아래에는 연곽이 있고 그 하단에는 당좌를 배치하였습니다.

 

 

 

당좌는 뾰족한 꽃잎을 이중으로 둘러싼 형태로 화려하게 표현되었고,

몸체의 중심에는 삼존불좌상이 네 군데 부조되었으며 활짝 핀 연꽃 위로 구름이 있는 자리에 삼존불이 묘사되었는데,

본존은 연화좌에 앉아 있고 협시보살은 두 손을 모아 합장한 채 서 있으며 삼존상의 두광 뒤쪽에는 구름의 꼬리가 묘사되어,

천상에서 내려오는 듯한 모습을 연상하게 하며 그 위에 묘사된 천개에도 바람에 날리는 술 장식이 표현되어,

삼존불의 움직임을 강조하고 있어 전체적으로 사실적이고 생동감 있는 조각 솜씨가 돋보이며,

음통, 입상화문대, 당좌 등의 세부장식도 화려하고 섬세 합니다.

종의 몸체 하단에는 추가된 기록을 포함하여, 세 종류의 명문이 새겨져 있어 이를 통하여 원래는 청림사에 봉안하기 위해 주조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웅보전을 앞에두고 만나게 되는 누각인 봉래루(蓬萊樓)로,

1414년(조선 태종 12)에 지은 맞배지붕의 2층 누각으로 단청을 하지 않아 고풍 스럽고,

봉래루는 주춧돌의 높이가 각기 달라서 거기에 맞추어 기둥의 길이도 각각 다르게 해두어 이채로우며,

부처님 오신날이 가까워 지면서 연등이 누각앞에 가득 합니다.

 

 

 

봉래루(蓬萊樓)를 들어서면 부안 내소사 대웅보전(扶安 來蘇寺 大雄寶殿)이 들어오고,

왼쪽으로 비켜 선곳에 내소사삼층석탑(來蘇寺三層石塔)이 자리해 있어 백제식인 1금당 1불탑의 배치형식에 맞지않아 보이며..

 

 

 

대웅전 앞에 있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24호로 지정된 내소사삼층석탑(來蘇寺三層石塔)으로,

신라의 전형을 충실히 따른 고려시대 3층 석탑으로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우고 꼭대기에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으로,

판형(板形)의 지대석을 마련하고 그 위에 2중 기단을 세웠으며,

낮은 하층 기단은 저석과 중석을 하나의 돌로 하여 새겼는데 4매의 돌을 엮어 구성하였습니다.

하층 기단의 중석은 2개의 우주(隅柱)와 1개의 당주(撑)가 새겨져 있으며 하층 기단의 갑석은 2매의 돌을 동서 방향으로 나누어 구성하였는데,

낙수면이 급하고 상층 기단을 받치기 위한 2개의 테두리장식이 새겨져 있습니다.

 

 

 

내소사삼층석탑(來蘇寺三層石塔)은 2층의 탑신부터는 체감이 심하며,

파손이 심하여 원형을 잃고 있는 옥개석은 그 하부에 3단의 층급받침이 마련되어 있고 물끊기가 파여 있으며,

반전이나 우동(隅棟)은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탑신 위에는 노반(露盤)이 있고, 2개의 보륜(寶輪)이 중첩되어 있습니다.

이 탑은 전체적으로 보아 규모가 적고, 가늘고 길어 보이는 세장형으로,

신라의 전형탑을 충실히 따른 고려시대 탑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합니다.

 

 

 

4매의 돌로 조립된 상층기단의 중석은 다소 높은 감을 주며 1매의 돌로 된 상층 기단의 갑석은 그 하부에 1단의 부연(副椽)이 있고,

상부에는 탑신을 받치기 위해 2단의 호형(弧形)과 각형(角形)의 몰딩이 있습니다.

탑신은 각 층 모두 같은 모습인데 탑신석과 옥개석을 각기 하나의 돌로 만들었고,

각 층 모두 모서리기둥만을 새기고 탑신의 면석에는 별다른 장식이 없습니다.

 

 

 

대웅전으로 오르며 들어온 봉래루(蓬萊樓)쪽을 내려다보면,

내소사 삼층석탑(來蘇寺 三層石塔)이 중심선에서 오른쪽으로 나가있어,

1금당 2불탑의 형식으로 보면 왼쪽에도 탑이 있었지 않았나 추측해 봅니다.

 

 

 

보물 제291호로 지정된 부안 내소사 대웅보전(扶安來蘇寺大雄寶殿)으로,

1633년(인조 11) 청민대사가 절을 고칠 때 지은 것이라 전하며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의 건물로,

막돌허튼층쌓기로 된 높은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두리기둥(圓柱)을 세웠으며 기둥의 밑부분은 그랭이 공법을 사용하였으며,

공포의 짜임은 외3출목(外三出目)과 내5출목(內五出目)으로서 기둥 위에는 물론 주간(柱間)에도 공간포(空間包)를 놓은 다포계 양식이며,

주두(柱頭: 대접받침)는 굽면이 사면(斜面)으로 끊기고 굽받침이 없으며 소첨차(小檐遮)나 대첨차 모두 교두형(翹頭形)으로 조각 되었으며,

초제공(初諸工)에서 3제공까지의 살미첨차(山彌檐遮) 끝은 앙서(仰舌)로 되어 있고, 4제공은 수서(垂舌)로 되어 있습니다.

 

 

 

대웅보전(大雄寶殿)의 현판이며,

 

 

 

대웅보전(大雄寶殿)에는 대승불교의 부처 가운데 서방 극락정토의 주인이 되는 부처인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를 중심로,

우측에 아미타불의 오른쪽에 있는 보처(補處) 보살인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을, 좌측에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협시불로 모셨습니다.

 

 

 

대웅보전 내부의 공포(貢包)는 살미첨차가 모두 판형(板形)으로 되어 그 끝에 연꽃봉오리를 조각하여 장식하고 있으며,

가구(架構)는 대들보 앞면에서는 평주(平柱)에 걸고 뒷면에서는 내고주(內高柱)에 걸었으며,

그 위에 동자기둥을 세워 종보[宗樑]를 받치게 하였는데 종보부터는 우물천장을 가설하여 천장 속을 가리고 있으며, 

 

 

 

양측면의 평주에서는 충량(衝樑: 대들보의 직각방향으로 얹힌 짧은 대들보)을 내어 대들보 위에 걸었는데,

보머리에는 용이 목어(木魚)를 물고 있는 모습으로 되어 있으며,

 

 

 

 

마주하고 있는 보머리에는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데,

대웅보전은 1623년(인조 1)에 완공되었는데 그 의장(意匠)과 기법이 매우 독창적인 조선 중기의 대표작이며,

못 하나 쓰지 않고 나무를 깎아 서로 교합하여 만들었다고 하며,

전설에 의하면 이 건물은 호랑이가 화현(化現)한 대호선사(大虎禪師)가 지었다도 합니다.

 

 

 

내소사 대웅보전(來蘇寺 大雄寶殿)의 백미는 문짝의 문양으로, 

건물의 정면 3칸은 모두 정교하게 조각한 소슬빗꽃살창호를 달았고,

측면에는 협문(夾門)을 각각 한짝씩 달았으며 나머지는 벽으로 처리 하였는데,

건물 정면의 여덟짝 창호에는 꽃무늬 문살이 가득합니다.

 

 

 

문짝 상단의 문양도 단조로운것 같으면서도 정교함의 아름다움이 있고,

 

 

 

정교함과 아름다움이 함께 있는 내소사 대웅보전의 꽃창살은,

수묵화처럼 은은한 동양적 아름다움을 갖고 있어 화려하게 채색된 조각에서 줄 수 없는 그윽함을 안겨 주는데,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가장  잘 표현한, 우리나라 장식무늬의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전면에 꽃살무늬를 조각한 문짝을 달았는데 이들은 모두 정교한 공예품들이며,

이꽃살은 나뭇결 그대로에 도톰하게 살이 오른 것 같아 더욱 아름다우며 단청이 없어 더욱 자연스럽고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대웅전 뒤에는 조사당(祖師堂)이 있어,

 

 

 

내소사(來蘇寺)와 관련있는 스님들을 모신곳인 조사당(祖師堂)에는,

만허당 경화 대선사(滿虛堂慶華大禪師), 해안당 봉수대종사(海眼堂 鳳秀大宗師), 관해당 인주 대종사(觀海堂仁舟大宗師),

학명당 계종 대선사(鶴鳴堂 啓宗 大禪師)의 영정이 모셔져 있습니다.

 

 

 

조사당(祖師堂) 옆에는 지장전(地藏殿)이 자리해 있어,

 

 

 

지장전(地藏殿)은 지장보살(地藏菩薩)을 봉안한 사찰의 전각으로,

지장전(地藏殿),명부전(冥府殿),시왕전(十王殿)이라고도 불리우며 염라대왕등 10왕을 모신 전각인데 주존은 지장보살(地藏菩薩)을 모시고 있습니다.

 

 

 

지장전(地藏殿)은 이 세상이 아닌 어두운 세계인 명부 세계(冥府世界)의 왕인 염라대왕을 모신 곳이라 하여 명부전이라 하며,

또한 염라대왕 한 분만 아니라 지옥에 있어서 죄의 경중(輕重)을 정하는 열 분의 왕(十王)을 모신 곳이라 하여 시왕전이라고도 하며,

 

 

 

지장보살(地藏菩薩)은 억압받는 자, 죽어가는 자, 나쁜 꿈에 시달리는 자 등의 구원자로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사자의 영혼을 모두 구제할 때까지 자신의 일을 그만두지 않겠다는 서원을 세웠다고 합니다.

 

 

 

지장전(地藏殿)을 뒤로하고 오르는길에,

뒤돌아서 대웅보전(大雄寶殿)의 뒷자태를 살펴보고..

 

 

 

돌계단으로 오르는길 위에는 단을 높이하여 작은 전각이 한채 서있고,

계단 입구에 공들여 쌓은 돌탑이 길안내를 하듯 서있습니다.

 

 

 

게단을 오르는 길목인 돌탑앞에는,

바닥에 정성이 깃든 사랑의 표식이 있어 발길을 잡습니다.

 

 

 

지장전 뒤편 조금 높은곳에 자리한 삼성각(三聖閣)으로,

 

 

 

삼성각(三聖閣)은 산신(山神)·칠성(七星)·독성(獨聖)을 함께 봉안하고 있는 사찰 당우 중 하나로,

 

 

 

산신각이라고도 하는데 산신령을 모신 산령각으로,

불교에서는 산신을 가람수호신과 산 속 생활의 평온을 지켜주는 외호신으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산신각은 불교 밖에서 유입된 신을 모시는 건물이기 때문에 "전"이라 하지 않고  "각"이라 하며,

우리나라에서만 볼수있는 불교 전각으로 전통신앙인 삼신신앙(三神信仰)과의 습합현상을 살필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줄포만 건너편에 있는  선운사의 말사로,

선운사 보다는 규모가 작은 편이지만 절집의 운치는 선운사보다 못하지 않으며,

보물 제291호로 지정된 대웅보전(大雄寶殿)을 비롯하여 보물 제277호인 고려동종(高麗銅鐘), 보물 제278호인 법화경절본사경(法華經折本寫經),

보물 제1268호로 지정된 괘불 등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25호로 지정된 요사채, 설선당(說禪堂)·보종각(寶鐘閣)·봉래루(蓬萊樓),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24호로 지정된 삼층석탑 등 많은 문화재를 찾을수 있으며,

입구의 전나무길과 단풍나무길, 천년을 살아온 느티나무 등이있어 운치를 더하는곳으로,

전북 부안의 변산반도의 여행길에서 빠질수 없는곳으로 부안 내소사(來蘇寺) 방문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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