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를 대표하는 사찰로는,

설악산의 신흥사와 백담사, 양양의 낙산사를 비롯하여 이름난 사찰들이 있지만,

평창의  오대산(五臺山) 월정사(月精寺)를 빼고 이야기 할수 없습니다.

 

오대산(五臺山) 월정사(月精寺)의 산문인 일주문(一柱門)으로,

일주문(一柱門)은 사찰에 들어서는 산문(山門) 중 첫번째의 문으로,

일주문은 기둥이 한 줄로 되어 있는 데서 유래 하였으며 한줄기둥은 "일심(一心)을 상징하며,

"둘이 아니며, 반야(般若)와 번뇌(煩惱)가 둘이 아니다"라는 의미로,

"재가와 출가가 둘이 아니며 시간과 공간도 둘이 아니요, 생사와 열반이 둘이 아니다"임을 표현하는데,

누구든지 이 일주문에 들어오면 이 진리를 깨닫고 잃었던 본 바탕을 되찾으라는 의미이며,

일주문의 월정대가람(月精大伽藍) 현판은 탄허(呑虛)큰스님의 글씨 입니다.

 

 

 

일주문(一柱門)의 주춧돌 위 기둥 옆에는,

부처님의 정법(正法)을 수호하는 신장(誓願)들의 모습을 볼수있어,

 

 

 

4군데 조각이 되어 있으나 사천왕(四天王) 아닌듯하며 팔부신중(八部神衆)으로 여겨 집니다.

 

 

 

산문을 들어서면 쓰러진 전나무로 작품을 조각해둔 모습이 보이며,

마진성님의 작품 "천년의 목(木)소리" 입니다.

 

 

 

월정사(月精寺)하면 가장먼저 떠올리는 "전나무 숲길"이 나타나는데,

 

 

월정사의 전나무 숲길은,

부안 내소사와 광릉 국립수목원의 숲길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전나무 숲길로 유명한데,

개인적으로 내소사의 전나무 숲길에 비해 훨씬 운치있고 조용하며 아름다운 숲길 입니다.

 

 

 

월정사 전나무 숲길은 일주문에서 금강교까지 1km에 달하는 구간에,

500년 수령의 전나무 약 1,800여 그루가 하늘을 가리듯 울창하게 서있어 월정사를 찾으면 반드시 걸어 보아야 할곳 입니다.

 

 

 

전나무 숲길이 끝나면 왼쪽에 주차장으로 나가는 다리인 금강교가 있고,

앞쪽에는 일명 사천왕문四天王門이라고도 하는 천왕문(天王門)이 있으며,

 

 

 

천왕문(天王門)에는 사천왕(四天王)이 있어,

불법을 수호하는 수미산 중턱에서 동, 서, 남, 북에서 그들 무리와 살면서,

간의 선악을 관찰하며 불법을 외호(外護)하는 사방(四方)의 신장(神將)으로,

 

 

 

동방 지국천왕(持國天王)은 오른손에 비파(琵琶)를 들었고,

남방 증장천왕(僧長天王)은 왼손에 보검(寶劒)을 들었고,

 

서방 광목천왕(廣目天王)은 용과 여의주(如意珠), 또는 견색(絹索; 새끼줄)을 들었고,

북방 다문천왕(多聞天王)은 보차와 보탑(寶塔)을 받쳐 들고 있는데,

 

 

 

 

월정사의 천왕문은 조선시대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사천왕의 모습을 가지고 있으며, 

1974년 만화당(萬化堂) 희찬(喜讚)스님이 중건 하였습니다.

 

 

 

천왕문을 들어서면 안쪽에 누각이 있고,

세운지 오래 않아 보이는 부처님 상과 탑등 석물들이 보이고,

 

 

 

웃는 모습의 호랑이 석물이 해학적인 모습으로 서있고,

자연석 위에 삼층석탑을 올려 두는등 많은 석물들이 경내에 가득 합니다.

 

 

 

천왕문을 지나면 자리해 있는 금강루(金剛樓)로,

일주문, 사천왕문, 불이문으로 이어지는 한국사찰의 가람배치에 있어서 월정사는 금강루의 1층에 금강문을 두고 있습니다.

 

 

 

월정사(月精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의 본사로,

643년(선덕여왕 12)에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 하였는데,

창건 당시 자장율사는 임시로 초암(草庵)을 얽어 머물면서 문수보살의 진신(眞身)을 친견하고자 하였으나,

그가 머물던 3일 동안 음산한 날씨가 계속되어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그 뒤 유동보살(幼童菩薩)의 화신이라고 전하는 신효거사(信孝居士)가 이곳에 머물렀고,

범일(梵日)의 제자였던 두타승(頭陀僧) 신의(信義)가 자장율사가 휴식하던 곳을 찾아와서 암자를 짓고 살았으며..

신의가 죽은 뒤 이 암자는 오랫동안 황폐해 있었는데,

수다사(水多寺)의 장로 유연(有緣)이 암자를 다시 짓고 살면서 월정사의 사격(寺格)을 갖추었습니다.

 

 

 

그 뒤 1307년(충렬왕 33) 화재로 전소된 것을 이일(而一)이 중창하였고,

1833년(순조 33)에 다시 화재로 전소된 것을 1844년(헌종 10)에 영담(瀛潭), 정암(淨庵) 등이 중건하여 내려오다가,

6.25 동란시 1·4후퇴 당시 작전상의 이유로 아군에 의하여 칠불보전(七佛寶殿)을 비롯한 10여 동의 건물이 전소 되었는데,

1964년 탄허(呑虛)가 법당인 적광전(寂光殿)을 중창한 뒤 만화(萬和)가 꾸준히 중건하여,

현재 삼성각(三聖閣)·대강당·심검당(尋劍堂)·승가학원(僧伽學院)·범종각·용금루(湧金樓)·일주문·요사채·창고 등이 있습니다.

 

 

 

경내로 들어서면 왼쪽에 종고루(鐘鼓樓)가 있어, 

종고루(鐘鼓樓)는 2009년 퇴우 정념스님이 증축 했다고 하며, 

일반적으로 사찰에서는 종각, 종루, 범종각, 범종루라고 되어 있는데,

이곳 월정사에서는 종고루(鐘鼓樓)라는 현판이 있어 특이 합니다.

 

 

 

종고루와 마주하는곳에 월정사의 주불전인 적광전(寂光殿)이 있고,

불전 앞에 팔각구층석탑 (八角九層石塔)이 자리해 있습니다.

 

 

 

국보 제48호로 지정된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 (平昌月精寺八角九層石塔)으로,

높이 15.2m로 6·25전쟁 때 일어난 화재로 이 절의 건물과 함께 심하게 손상 되었으나,

현재 일부가 보수되었으며  특히 상륜부가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으며,

이 석탑은 전체적으로 체감비율이 서서히 줄어들면서 2층 탑신부터는 거의 같은 폭으로 되어 안정감을 주며,

기단이나 탑신이 팔각형이고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점 등에서 고려시대에 유행한 다각다층(多角多層) 석탑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으며,

1970년 해체·보수할 때 1층 옥신석에서는 동경·경문·향목 등의 사리장치가 나왔으며, 5층 옥개석에서는 은도금 불입상 1구가 발견 되었습니다.

 

 

 

 

팔각형의 2층 기단 위에 9층의 탑신과 상륜부가 올려진 특이한 형식의 석탑으로,

기단부는 낮은 편으로 지대석 위에 놓여 있는데 하층기단의 각 면에는 안상이 2개씩 조각되었으며,

그 위를 덮고 있는 갑석 윗면에는 복련의 연꽃무늬가 조각되어 있으며,

하층기단과 상층기단 사이에는 상층기단의 중석을 받치는 별석이 끼워져 있으며 상층기단의 각 면에는 우주가 새겨져 있고,

그 위로 갑석과 탑신을 받치는 별개의 8각 받침돌이 차례로 얹혀 있습니다.

 

 

 

탑신부는 옥개석과 옥신석의 크기에 따라 1개 또는 2, 3개의 돌로 구성되었으며,

각 층의 옥신에는 우주를 새겼는데 특히 1층 옥신에는 4면에 장방형의 감실이 표현되어 있으며,

옥개석은 전반적으로 수평을 이루고 있고 밑에는 각형과 반원형의 받침돌이 있는 것이 특이하며 처마 끝에는 풍령이 달려 있습니다.

 

 

 

상륜부는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는데,

노반(露盤)· 복발· 앙화· 보륜은 석재로 만들어진 반면에 보개· 수연(水煙)· 용차(龍車)· 보주 등은 금속제로 되어 있습니다.

 

 

 

팔각 구층석탑을 마주하고 국보 제48-2호인 "평창 월정사 석조보살좌상(平昌 月精寺 石造菩薩坐像)""이 있어,

1.8m의 크기로 최근까지 월정사 팔각구층석탑(八角九層石塔)을 향하여 놓여있던 석조보살좌상으로 현재 월정사 성보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으며,

월정사 석조보살좌상에 관한 문헌 기록이나 명문이 남아 있지 않아 조성 배경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으나,

이능화(李能和)의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에 실려 있는 "월정사사적(月精寺事蹟)"과 "신효거사친견류오성사적(信孝居士親見類五聖事蹟)"에는,

“탑 앞에 약왕보살석상(藥王菩薩石像)이 있는데, 손에 향로를 들고 탑을 향하여 무릎을 꿇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 석상은 절의 남쪽 금강연(金剛淵)에서 나왔다고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다만 이 기록이 석조보살좌상의 조성 당시 상황과 직접적으로 관련되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실려 있는 고려시대 정추(鄭樞, 1333∼1382)의 시에는 석조보살좌상을 문수보살로 기록하고 있기도 합니다.

 

 

 

월정사(月精寺)는 1금당 1불탑의 배치 형태를 보이고 있어,

백제시대의 가람배치와 유사함이 보입니다.

 

 

 

월정사(月精寺)의 주불전인 적광전(寂光殿)으로,

정면 다섯 칸, 측면 네 칸의 팔작지붕으로 매우 큰 법당으로 다포계 양식으로 1964년 탄허스님이 중건하였습니다.

 

 

 

보통 석가모니불을 모시면 대웅전이라 칭하고 적광전이라고 하면 비로자나불을 본존불로 모시는 것이 통상적인데,

월정사는 적광전(寂光殿)에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점이 특이한데,

석가모니부처님을 모시는 경우 대웅전이라 해야 하지만,

탄허스님이 화엄경을 중시하여 "화엄경"의 주불인 비로자나부처님을 모신다는 의미로 적광전이란 이름으로 현판을 달았습니다.

 

 

 

적광전(寂光殿) 현판과 주련(柱聯) 글씨는 탄허스님의 친필로,

적광전(寂光殿)의 기둥이 여섯개 이므로 좌우에,

"나무대방광불화엄경"과 "나무실상묘법연화경"의 글귀를 넣어 이곳이 부처님의 도량임을 나타내고 있으며,

주련의 넉 줄은 자장율사의 불탑게(佛塔偈)입니다.

南無大方廣佛華嚴經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 화엄경에 귀의합니다

萬代輪王三界主           만대윤왕삼계주          만대의 법왕이며 삼계주인 부처님께서

雙林示滅幾千秋           쌍림시멸기천추          쌍림(사라쌍수)에서 열반한지 얼마나 흘렀는가!

眞身舍利今猶在           진신사리금유재          석가세존 진신사리 지금 여기 모셨나니

普使羣生禮不休           보사군생예불휴          중생들로 하여금 예배 쉬지 않게 하리.

南無實相妙法蓮華經      나무실상묘법연화경    실상묘법 연화경에 귀의합니다

 

 

 

적광전(寂光殿) 팔작지붕의 삼각면에는 절을 의미하는 "卍"자가 있고,

왼쪽 아래의 도형은 희미하여 알아볼수 없으며 오른쪽에는 태극문양이 있으며,

태극문양 부분에 작은 나무문이 있어 용도가 궁굼해 집니다. 

 

 

 

적광전의 옆쪽 뒤편에 정면 다섯칸, 측면 두칸 규모의 수광전(壽光殿)이 있어,

 

 

 

수광전(壽光殿)도 다른 전각과 마찬가지로 한국전쟁 이후에 중건 되었다고 하며, 

수광전의 맞배지붕의 면에는 지장전(地藏殿)의 현판이 있어 특이한데,

 

 

 

수광전(壽光殿)은 서방 극락정토를 주관하는 아미타불을 주불로,

협시불로 좌우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모신 전각으로 일반사찰에서는 극락전(極樂殿)으로 불리는데,

별도의 지장전(地藏殿)이 없고 한켠에 지장보살(地藏菩薩)을 모시고 그 입구에 저렇게 현판을 붙였습니다.

 

 

 

수광전 뒤편에는 삼성각(三聖閣)이 있어,

 

 

 

산신(山神), 칠성(七星), 독성(獨聖)을 봉안하고 있는 전각으로,

우리나라의 사찰에서만 볼수있는 불교 전각으로 전통신앙인 삼신신앙(三神信仰)과의 습합현상을 살필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삼성각옆 적광전 뒤편에는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로 맞배지붕의 전각 "개산조각(開山祖閣)"이 있어,

 

 

 

개산조각(開山祖閣)의 현판이며,

개산조각(開山祖閣)은 오대산의 고승들을 모신곳으로 1958년 영해당 경덕 스님이 중건했으니,

현존하는 월정사 당우 가운데 가장 오래된 전각 입니다.

 

 

 

개산조각(開山祖閣) 이란,

오대산을 연 조사를 모신 전각이라는 의미 이므로 개창주(開創主)인 신라시대의 고승 자장율사(慈藏律師)의 진영(眞影)을 중앙에 모셨으며,

 

 

 

왼쪽부터 통일신라시대의 보천태자(寶川太子),

왼쪽에서 꽃을건너  붉은 장삼의 구한말의 인물로 한국선불교의 중흥조이자 한암스님의 스승 경허(鏡虛,1849~1912)스님이 계시고,

조선시대 인물로 훈민정음창제의 주역으로 회자 되고 있는 신미대사(信眉大師,1403~1480) 와,

서산대사(西山大師) 휴정(休靜, 1520~1604)과 사명대사(泗溟大師) 유정(惟政, 1544∼1610)의 진영(眞影) 모셔져 있으며,

 

 

 

 

자장율사 왼쪽의 처음이 통일신라시대의 고승으로 조계종의 종조종조(宗祖)인 도의국사(道義國師,8C)의 진영(眞影)이며,

세계문화유산인 단오제의 주인공 범일국사(泛日國師)를 모셨으며,

고려조에서는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1158년∼1210)과 나옹선사(懶翁禪師)가 모셔져 있으며

꽃나무 건너 오른쪽에는 통일신라시대의 성덕왕의 진영(眞影) 입니다.

 

 

 

월정사(月精寺) 경내를 돌아보고 금강루(金剛樓)로 나오며,

 

 

 

금강루(金剛樓)의 2층 누각에 올라 화려한 조각의 윤장대(輪藏臺)가 있어,

윤장대(輪藏臺)는 팔각형으로 된 책장에 밑에는 바퀴를 달고,

중앙에는 기둥을 세워 궤를 돌리면 찾고 싶은 책을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만든 책궤로,

이것을 돌리면 불경을 한 번 읽은 것과 같은 의미가 있어..

불경은 사실 일반인들에게 매우 어렵게 느껴지며 옛날에는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도 많아서,

윤장대는 글자를 모르거나 불경을 읽을 시간이 없는 신도들을 위하여 만들어진 불구로,

중국 양(梁)나라의 선혜대사(善慧大師)가 처음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금강루(金剛樓)의 마루에서 월정사(月精寺)의 법당쪽을 살펴보고,

 

 

 

들어왔던 천왕문(天王門)과 주변풍경을 내려다 보면서 잠시 쉬었다 갑니다.

 

 

 

월정사(月精寺)를 나오는 길중 하나로 금강교(金剛橋)를 건너면 주차장이 있습니다.

 

 

 

금강교 아래로 흐르는 오대산(五臺山) 오대천(五臺川)의 맑고 깨끗한 물로,

문수보살의 현신이 있었으며,  조선의 세조임금의 이야기를 들려줄듯 합니다.

 

 

 

월정사(月精寺)에서 상원사로 향하는 길에는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42호로 지정된 평창 월정사 부도군(平昌 月精寺 浮屠群)이 있어,

부도는 승려의 무덤을 상징하여 그 유골이나 사리를 모셔두는 곳으로,

월정사부도군(月精寺浮屠群)에는 모두 22기에 이르는 부도들이 있으며 크기는 1~2m 내외의 그리 높지 않은 크기로,

조선시대 중기 이후에 세웠을 것으로 추측되며 운공성관(雲空性觀), 금성당(金聖堂)등의 호를 가진 승려들의 사리를 모시고 있는 이 부도들은,

낮은 받침위로 종모양의 탑몸돌을 올린 모습들이 대부분이나 2층 기단(基壇)과 지붕돌을 갖춘 부도의 모습도 보입니다.

 

 

 

강원도 평창의 문수신앙의 상징인 오대산(五臺山)의 대가람으로,

국보 문화재인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 (月精寺八角九層石塔)의 아름다움과,

국보급 숲길인 전나무 숲길이 있어 "마음의 달이 아름다운 절"이란 이름에 걸맞는 사찰..

오대산(五臺山) 월정사(月精寺) 방문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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