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김천을 다녀오면서,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상좌원리에 있는,

초당(草堂) 이장원(李長源)의 장루지지(杖屢之地)에 세운 정자, 모성정(慕聖亭)을 찾았습니다.

 

모성정(慕聖亭)은 김천시 대덕면과 지례면 등지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직지사로 갈 때 지나는 길인 구성면 사무소에서 상좌원리의 윗부분의 황학로 변에 위치해 있어 쉽게 찾을수 있으며,

 

 

 

도로옆에 자리한 모성정(慕聖亭)으로,

 

 

 

정자로 오르는 입구에는 초당(草堂) 이장원(李長源)이 지은 시(詩)로,

모성정(慕聖亭)에서 내려다본 4가지 풍경의 "월롱한수연롱안(月籠寒樹烟籠岸) 화만강성수만탄(花滿江城水滿灘)"의 글을 볼수 있으며,

 

 

 

하원천(下元川)옆 암벽위에 자리한 모성정(慕聖亭)으로,

 

 

 

정자 아래의 암벽에는 암각된 글씨가 많이 보이는데,

 

 

 

"초당이선생장구지소(草堂李先生杖屨之所)"로,

이장원(李長源)의 후손인 학산 이현기가 1929년에 쓴 글씨 이며,

 

 

 

앞의 큰글씨 "경앙대(景仰臺)" 역시 후손인 학산 이현기의 1929년에 쓴 글씨이며,

뒤편의 "굴암(屈岩)"은  초당(草堂) 이장원(李長源)의 장손인 회산  이진영(李震英)이,

1697년에 굴암(屈岩)을 모성암(慕聖巖)이라 고쳐 부르고 바위에 새겼다고 합니다.

 

 

 

정자 아래의 많은 글씨를 볼수 있는 바위의 옛 이름은 굴암(屈岩) 이었는데,

1695년에 모성암(慕聖巖)이라 개칭하였다고 합니다.

 

 

모성정(慕聖亭)으로 오르는 길은 돌게단을 놓아두어 쉽게 오를수 있으며,

 

 

 

입구에는 비석이 한기 있어,

모성정(慕聖亭)의 창건과 유래에 대해 알수 있으며..

 

 

 

바위 위에 4개의 화강암 기둥으로 마루를 받치고 그 위에 마루를 깔았으며,

방을 들이지 않은 누각의 형태로 정면 1칸, 측면 1칸의 규모 이지만 1칸의 간격이 길어 그리 작지 않은 크기의 모성정(慕聖亭)으로,

 

 

 

모성정(慕聖亭)은 일제 강점기인 1929년 이현기가,

그의 선조로 이곳 상좌원 출신 학자인 초당(草堂) 이장원(李長源,1560~1649)을 기리기 위해,

그의 장루지지(杖屢之地)에 세운 정자로 후손들이 우모정(愚慕亭)이라는 이름으로 정자를 세웠는데,

 세월이 흘러 퇴락하자 1949년 후손 이정화 등이 중건 하였고 1991년 구성~대항을 잇는 도로가 확장되면서 헐리고,

현재의 위치인 모성산 아래 바위 절벽 위로 이건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모성정(慕聖亭)의 주인 이장원(李長源,1560~1649)의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호원(浩遠)이며,

호는 초당(草堂)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이구령이며 1560년(명종 15년) 구성에서 태어났으며,

학자이자 효자로 소문난 이장원은 7살에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묘 옆의 여막에서 기거하며 3년간 흰죽만 먹으며 시묘를 할 만큼 효성이 지극했고,

예절이 어른보다 나았다고 전하며 가난하였지만 아버지의 식성에 맞는 음식을 끊이지 않게 하였다고 하며, 

임진왜란 때는 아버지를 업고  삼성암(三聖庵)으로 피난을 갔었는데 호랑이 두 마리가 따르며 이들 부자를 호위했다는 전설과,

부친상을 당하여 시묘를 할 때는 이장원의 효행에 감동받아 묘역의 소나무가 3년간 잎이 나지 않다가 탈상을 하고서야 잎이 났다고 하여,

이를 두고 사람들은 그의 효성이 금수와 초목에까지 미쳤다고 탄복 하였다고 합니다.

1897년(고종 34) 어사 조경의 천거로 사재감첨정에 증직 되었고 충효당에서 향사하게 하였으며 현재는 경덕사에 배향 되었습니다.

 

 

 

정자는 마룻바닥으로부터 70㎝ 높이의 계자 난간을 사면에 둘렀고,

마루로부터 높이 210㎝, 둘레 140㎝의 웅장한 소나무 원형 기둥을 사면에 받쳤으며,

지붕과 기둥 사이에는 화려한 단청과 용을 형상화한 조각물을 배치했으며,

처마 끝 사면에 보조 기둥을 세워 안정감을 더한 팔각지붕 양식입니다.

 

 

 

모성정(慕聖亭)에는 모성정상량문(慕聖亭上樑文)을 포함한 2기의 기문만 올려져 있으며,

 

 

 

화려한 단청과 용을 형상화한 조각물을 천정에서 볼수 있는데,

모성정은 수차례에 걸친 중건과 이건 과정에서 원형이 많은 변형 된것으로 보여집니다.

 

 

 

모성정(慕聖亭)의 마루에서 구성면 방향으로의 전경이며,

 

 

 

전면은 소나무 숲에 가리어 잘보이지 않으나,

김천시 대항면의 진밭산에서 발원하여 구성면 상좌원리에서 감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하원천(下元川)이 정자 아래로 흘러가고 있으며,

 

 

 

직지사로 향하는 길의 모습과 산으로 들어가는 풍경이 들어 옵니다.

 

 

 


굴암(屈岩)의 유래를 살필수 있는 시(詩)를 가져와 봅니다.

投竿欲作江湖客  투간욕작강호객     자연에 묻혀 사는 선비가 낚싯대를 더닞고자 하고

還怕文王載後車  환파문왕재후거     문왕이 수레에 실려 돌아오기를 싫어 하도다​.

事無忠孝外  사무충효외                충효 밖에 할 일이 없으니

虛老屈岩邊  허노굴암변                굴암 변에서 헛되이 늙었도다

 

 

 

김천을 대표하는 정자인 방초정(芳草亭)과 그리 멀지 않은곳에 있으며,

방초정에 비해 지명도가 떨어지는 비지정 문화재 이지만,

하원천(下元川)변에서 산세를 살필수있는 풍광 좋은곳에 자리한 곳으로,

경북 김천의 정자, "모성정(慕聖亭)"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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