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함양의 정자 문화재 탐방에서,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운림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누각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숲으로 함양8경의 제1경인 상림(上林)에 있는 함화루(咸化樓)를 찾았습니다.

 

함양 상림(上林)은 함양읍의 서쪽을 흐르고 있는 위천(渭川)을 따라서 조림한 호안림(護岸林)으로,

통일신라 때 최치원(崔致遠)이 함양읍의 홍수피해를 막기 위해 만들었다고 전해지고 있어,

상림(上林)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숲으로 천연기념물 제154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는 상림공원으로 조성되어 봄의 신록, 가을의 단풍 등 계절마다 색다른 낭만을 즐길 수 있는곳 입니다.

 

 

 

상림 입구에서 만날수 있는 "타워맨(Towerman)"으로,

중세 유럽의 교회 건물을 의인화하여 만든 타워맨은 덴마크의 듀오 작가 란디 & 카트린의 작품으로,

 

 

 

타워맨은 2012년 3월 이후 서울의 다양한 공간에서 전시를 마친후 함양 상림에 자리를 잡았으며,

목재로 만들어진 타워맨은 숲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 관람객들을 친근하게 맞이하여 숲과 사람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상림(上林)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머루터널"이나,

 

 

 

"다래터널" 등으로 다양하게 산책로를 조성 해두어,

 

 

 

다래터널 에서는 봄 나물로도 인기가 많은 다래순도 볼수 있는데,

여름을 넘길때면 다래와 머루의 모습도 볼수 있을것 입니다.

 

 

 

다래 등의 터널을 지나면 작은 개천을 건너게 되고,

 

 

 

너른 광장이 나오며 한쪽에서는 그네를 즐기는 모습도 들어 옵니다.

 

 

 

상림(上林)은 신라 진덕여왕 때의 문장가로 당나라에서 유학 하고온 최치원(崔致遠)이 함양고을의 수령을 지내며,

선진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정을 펼쳤는데 당시 함양을 가로지르는 하천이 홍수 때마다 범람해서 고을사람들의 피해가 컸는데,

이를 본 최치원은 하천에 둑을 쌓고 그 주변에 나무를 심고 늪지대에는 연꽃을 심게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숲 상림(上林)은 이렇게 조성 되었으며,

상림이 생긴 이후 지금까지 함양은 홍수의 피해가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상림(上林) 안에서 만날수 있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58호로 지정된 함화루(咸化樓)로,

함화루는 본래 함양읍성(咸陽邑城)의 남문(南門)으로 남악루(南嶽樓)였던 것을,

일제시대 도시계획이라는 명목으로 총독부에서 강제 철거하려하자 1932년에 함양고적보존회의 대표 노덕영(盧悳泳) 선생이 사재를 들여,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고 함화루라고 이름 지었는데,

본래의 명칭은 남문에서 지리산이 보이기 때문에 망악루(望嶽樓)라 하였는데 옮기면서 이름도 함화루(咸化樓)로 고쳤다고 합니다.

 

 

 

함화루(咸化樓) 누각 앞에는 웅크린듯 앞을 보고있는 돌거북의 모습을 볼수 있는데,

설명문이 없어 내력은 알수 없으며,

 

 

 

함화루(咸化樓)의 현판이며,

 

 

 

함화루(咸化樓) 안내문에는 "성의 문루였던 것을 전혀 다른 장소로 이전하였기에 본래의 모습은 찾기 어렵다.

다만 누각의 아랫부분이 윗부분보다 높아 문루였음을 짐작할 뿐이다.

본래 함양읍성에는 동쪽에 제운루(齊雲樓), 서쪽에 청상루(淸商樓), 남쪽에 망악루(望嶽樓) 등 삼문(三門)이 있었는데 지금은 이 문만 남아 있다."라고,

설명 하고 있는데..

이부분에 대해 일각에서는 다른 의견을 제시 하고있어,

"함화루는 함양읍성의 남문이 아니고 동헌을 들어가기 전에 있었던 외삼문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첫째는 성문치고는 높이가 낮다는 것이고 둘째는 성문의 누각에는 잘 사용하지 않는 계자난간(鷄子欄干)을 사용한점,

셋째 성문이 있었다면 문지석이 있어야하는데 보이지 않는다는 것과 넷째 문을 달았던 흔적은 보이지만 성문과는 관계없어 보이는다는 것이 있으며,

일반적으로 성문의 누각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방향과 상이한 곳에 오르는 계단이 있습니다."

고려해 보아야 할 점이 있는 내용입니다.

 

 

 

누각에 오르면 시원한 상림(上林)의 전경을 즐길수 있을듯하여,

왼쪽에 있는 나무계단을 올라보려 하지만,

 

 

 

누각으로 오르는 곳에는 두개의 자물통으로 굳게 닫아 놓았는데,

닫아둔 함화루를 보면서 "보존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해야만 하는지?"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조선전기 영남의 대유학자인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1431년~1492년)이 함양 현감으로 재임(1471년~1475년)시,

함화루의 옛 이름인 망악루(望嶽樓)를 주제로 남긴 시(詩)가 있으며..

去年塵跡汚岩巒 (거년진적오암만)    작년 내 발자취 저 멧부리 더럽히고

望嶽樓中更靦顔 (망악루중경전안)    망악루 올라서 다시 보니 무안하구나

却恐英灵恥重滓 (각공영령치중재)    산신령도 (내가) 다시 더럽힐까 두려워하여

洞門牢與白雲關) (동문뢰여백운관)    흰구름시켜 고을 문을 굳게 닫는구나

 

 

 

곡강군수(曲江郡守) 어득강(魚得江,1470~1550)도 망악루(望嶽樓)를 주제로 시시(詩)를 남겼습니다.

西州都是一書院 (서주도시일서원)    서주 이곳 한 서원에

日斷吟髭未有嫌 (일단음자미유혐)    시 읊는 이 없다 해도 탓하지 않으리

更敞高樓增遠目 (경창고루증원목)    다시 높은 루 있어 멀리 봄이 쾌홯한데

使君多醉恐傷廉 (사군다취공상렴)    사군이 너무 취해 청렴 상할까 두려워..

 

 

 

누각 옆에는 식수대가 있어,

어린이들은 때이른 물놀이에 한창 입니다.

 

 

 

2층 누각의 아래층 기둥은 주춧돌(礎石) 위에 굽은 그대로 세웠으며,

그 위에 마루를 깔고 천장은 없고 둘레에 닭벼슬 모양의 난간인 계자난간(鷄子欄干)을 두른 전형적인 누각의 모습으로,

누각으로 오르지 못하고 아래에서 살펴 볼뿐 입니다.

 

 

 

상림에서 나오면서 보이는 천년교 다리로,

1천100여년전 최치원(崔致遠)이 제방을 쌓아 상림숲을 만들면서 돌다리를 놓아 오작노디(오작징검다리)를 놓은 사연과,

오작노디는 사라지고 천년이 지난 지금에 군민들의 성원으로 2012년 함양군이 천년교를 세워 오작노디를 대신 한다는 안내문을 볼수 있습니다.

 

 

 

함양8경의 제1경인 상림(上林)은 함양의 명소로,

함양 군민뿐 아니라 외지인들도 많이 찾는 곳입니다.

함화루가 성의 문루 였는지 아니면 동헌의 내삼문 였는지는 다시한번 살피어 알려 주었으면 하는 바램과,

누각을 개방하면서 보존하는 방법을 구하여 상림을 찾는 이들에게 또다른 즐거움을 주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경남 함양의 누각, "함화루(咸化樓)" 방문기를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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